20대 이야기
3
동하는 어차피 하루 더 거진 근처에서 머물기로 했었기 때문에 소년이 다시 오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좀 이상하지 않은가? 동하가 여기에 사는지 다른 곳에서 왔는지도 모를 텐데 어떻게 내일 다시 온다고 한 것일까? 게다가 시간까지 정해 주면서. 그 시간 역시 동하가 계획 세웠던 시간이었다. 동하는 그 시간에 백섬까지 헤엄쳐서 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너머로. 한없이.
동하가 왜 그 백섬을 선택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단지 두 번의 이별이 그곳에서 있었고, 그 두 번 다 동하는 살아서 돌아왔다. 그러나 삼세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 번째 이별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만일 목숨이 붙은 채 돌아온다면 먼저 회사에 다시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자존심 다 내려놓고. 그러나 동하는 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자존심은 내려놓지 않아도 되리라는 것을.
동하는 속초로 차를 몰았다. 거기에 가서 갈 곳도 볼 곳도 없었다. 그러나 그냥 그곳으로 갔다. 시내를 몇 바퀴 돌다가 어떤 리조트 너머 조그만 동네에 가서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그 위쪽은 주봉산이다. 울창해서 아주 깊어 보이는 산. 그러나 350미터도 안 된다고 한다. 그 너머로는 또다시 크고 작은 산들이 이어져 설악산으로 향하겠지.
5월의 산은 참 아름답다. 신록의 아름다움을 넘어 그 풍성함까지.
동하는 해연과 그 산에 한 번 왔었다. 높이 올라가지는 않았었지만. 그때도 5월이었다. 대학 졸업반 때였지. 헤어지기 얼마 전. 동하는 덩치는 크지만 소극적인 면이 많은 데 비해 해연은 겉보기에는 얌전한 듯해도 실제로는 아주 활달한 면이 많다. 성격으로만 보면 남자와 여자가 바뀐 것 같았었다.
그때 산비탈에 있는 나무 하나를 가리키면서 해연이 말했다.
“오빠, 이 나무 이름 알아? 시골에서 자랐다면서?”
“글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럴 거야. 북한 지역에 많은 거래. 좀 추운 지방에. 강원도에도 이쪽 지역에만 있다나 봐.”
“꽃이 이쁜데.”
“이름이 병꽃나무래. 특이하지?”
병꽃나무. 해연의 설명을 들어보니 꽃이 처음 피어날 때는 노란색이었다가 나중에는 붉어진단다. 꽃 아래쪽에는 흰색이 도는데, 꽃잎은 피처럼 붉다. 5월초 햇살이 따가워지면 꽃이 피기 시작하고, 햇볕 잘 드는 곳이면 산 중턱이나 아래에서나 어디서든지 잘 자란다. 꽃이 자그마하면서도 아래로 고개를 숙이듯 떨구고 있는데, 꽃 입술이 너무 빨개서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모양이란다. 작고 예쁘장한 도자기 병 같은 꽃들. 그 잔잔한 꽃에는 보드라운 털이 자르르 덮여 있어서 마치 비단결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꽃은 더욱 부끄러워서 사람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단다. 나무 이름은 병꽃나무이지만 꽃 이름은 금대화(錦帶花)라고 하는데, 그 금(錦)자가 바로 비단을 뜻한다고 한다.
해연은 이런 설명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막힘없이 주욱 늘어놓았다. 마치 속초 관광객 앞에 놓고 병꽃나무 소개하는 안내원 같았다.
“꽃이 새빨개서 사람들 눈에 금방 띄겠다.”
동하가 수고했다고 박수쳐 주며 말했다.
“그게 싫은가 봐. 그래서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해연은 쑥스러운 듯이 저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꾸한다.
“부끄러운 거겠지.”
“그게 그거지 뭐.”
그때 두 사람은 병꽃나무의 붉은 꽃을 보고 마음이 설렜다. 두 사람의 가슴은 그 꽃보다 더 붉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치 오월의 봄에 붉은 꽃을 보는 것이 민망하기라고 한 듯 서로의 마음을 감추려 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감추지 못할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주머니 속의 송곳. 그래서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가 생긴 것이라나. 그리고 또 하나는 기침. 기침 참아본 적 있으신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참다가 결국 밖으로 뛰쳐나가 폭발하듯이 기침을 토해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관능적인 사랑인 에로스(eros), 친구 간의 사랑인 필리아(phillia), 바람둥이의 사랑인 루두스(ludus), 질투나 집착 또는 독점적인 사랑인 마니아(mania), 자기애를 뜻하는 필로시아(philautia), 감정보다 이성적인 사랑인 프라그마(pragma), 부부나 가족 간의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agape), 정신적인 플라토닉(platonic) 사랑 등등.
이 중에서 어떤 식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사랑은 무엇일까? 누구나 다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모두 다겠지.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의 가슴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굳이 그 이름을 콕 찍어서 드러낼 필요도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이 멀어지고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사랑. 그 사랑.
그래서 두 사람은 그날 밤 사랑을 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 졸업을 얼마 앞두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바로 거진 앞바다에서.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고, 상대방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해연한테서 편지가 왔다.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고시원 단칸방으로. 헤어진 지 얼마 만인가……. 5년 반, 햇수로 6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는 해연의 소식을 들었다. 다른 친구를 통해.
4
다음날 동하는 또다시 백섬 앞으로 갔다. 오월의 동해바다. 얼마나 찬란한가. 앞다투어 피는 꽃들보다 더 황홀하게 동하를 유혹하는 바다.
평일인데도 방파제 도로 위에는 사람이 많았다. 방파제 아래로 내려가 돌투성이 바닷가에서 이것저것 줍기도 하고 바위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방파제에서 백도로 헤엄쳐 가기는 글렀다. 차라리 다리를 건너가서 백도 뒤로 돌아가 망망대해 바다로 나가는 게 좋겠다.
동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지, 저 멀리 태백산맥을 바라보려고 몸을 돌렸다.
소년.
어제 본 그 아이.
언제 왔는지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번역 잘 하셨어요.”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번역이라니.
소년은 얼굴을 들고서 동하를 빤히 올려다본다. 180cm가 넘는 동하.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보이는 꼬맹이 소년.
“시를 번역했잖아요.”
뭐야? 뭘 번역해? 시?
시…….
대학 마지막 학기. 취직이나 군대, 대학원 등 어디로 나가야 할지 마음들이 뒤숭숭해서 수업도 잘 안 듣고 과 게시판이나 학장실, 취업안내처 등을 기웃거리고 있던 시기였다.
해연은 아직 3학년이어서 동하와 같은 처지의 절박감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뒤늦게 보들레르나 랭보와 같은 철 지난 프랑스 낭만적 퇴폐주의 시인들에게 푹 빠져 그에 대한 문집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인들의 대표적인 시들을 모아 번역을 한답시고 법석을 떠는 것이었다.
이미 다 번역되어 있는데 새삼 무슨 번역이냐고 동하가 툭 쏘았더니 해연이 눈을 가늘게 뜬다.
“시는 번역하는 게 아니라 새로 창조해야 되는 거야.”
무슨 소리?
“시를 새로 써야 한단 말야.”
“뭘 새로 써? 번역만 하면 되지.”
이렇게 타박하던 것이 말싸움으로 번졌다.
“그럼 번역 그렇게 잘 하는 분이 한번 해보시든지.”
해연은 발딱 일어서서 커피숍에서 나가버렸다. 불어 시집과 여러 자료들을 동하 앞에 던져놓고서.
그날 밤 동하는 인터넷을 뒤져 불어 시들을 한글과 영어로 번역해 놓은 것들을 죄다 찾아 프린트해 놓았다. 그런 뒤 밤새도록 있는 솜씨 없는 솜씨 죄다 동원해서 남들이 번역해 놓은 것을 보고 나름대로 이리저리 고치기도 하고 짜깁기도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 짧은 시들을 새로 번역하는 일이 전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경영학도에다가 작문 솜씨가 영 시원찮았던 동하의 실력으로선 그 많은 시들을 다 다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유명하다는 시인의 또 유명한 시 하나만 선택해서 번역한다는 것이 랭보의 ‘골짜기에서 잠든 이(Le Dormeur Du Val)’가 되었다. 이 시는 여러 사람이 번역하고, 심지어 BTS의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번역을 무시하고 동하는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고치고 고쳤다. 그렇게 해서 동하는 자신의 번역이 이 세상 최고라고 자부하면서 다음날 해연에게 전해 주었다.
해연은 처음에는 콧방귀 소리 내는 듯 쓰윽 훑어보더니 고개를 조금 끄덕이고는 그 번역이 들어 있는 노트를 가방에 쑥 집어넣었다.
“됐어요.”
그 말이 다였다. 번역이 좋다느니 아니다느니, 맞춤법이 어떻다느니, 수고했다느니, 힘들진 않았느냐느니 하는 말 한마디 없었다. 글자 그대로 한번 쓱 쳐다보고 만 것이다.
동하는 머쓱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지만, 자기 번역이 시원찮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해서 그 시에 대해서는 그날은 물론이고 나중에 헤어질 때까지도 한 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었다. 자존심은 무지 상했지만.
그 뒤 해연은 그때까지 진행하던 문집은 포기하고 다른 것에 매달렸다. 동하는 많이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뒤 해연과 헤어지고 군대 다녀오고 취업공부에 매달리고 회사 다니고 퇴직한 다음 이력서 들고 헤매고 있을 때 해연에게서 편지 한 통이 온 것이다.
그러는 동안 동하는 그 시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해연이 보낸 편지에는 다른 말은 아무것도 없이 동하가 번역한 그 시만 적혀 있었다. 하얀 편지지 한 장에. 그것이 다였다. 인사말도, 안부 묻는 말도, 자기에 대한 어떠한 말도, 심지어 날짜도 적혀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 시는, 동하 느낌으로는 자신이 써준 것에서 한 글자도 안 고친 것 같았다. 동하로서는 자신이 번역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또 한 가지, 해연의 편지를 받고 나서 며칠 뒤, 그러니까 사흘 전에 해연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하는 모르는 번호였지만, 혹 자신이 원서를 보낸 회사에서 온 것인지도 몰라 얼른 받았다. 그리고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로 인해 동하는 어제 이곳 거진에 오게 된 것이다.
동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꼬마, 자칭 소년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래, 너는 지금 내 지난날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것 같구나.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 끝났어. 모두 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이놈이……?
“나를 야단쳐도 돼요. 하지만 꼭 기억하셔야 해요. 해연 씨 마음을.”
헉!
네가 해연이를 알아?
“나는 다 알아요.”
무엇을 알아, 네가?
“해연 씨는…….”
“너 어디에서 왔어? 누가 보낸 거야? 해연이를 어떻게 알아?”
“해연 씨가 보내서 왔어요.”
“뭐라고? 해연이는 죽었어. 내가 죽였어. 나는 두 생명을 죽였단 말야!”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