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이야기
5
해연에게서 편지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연의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동하도 아는 사람이었다. 해연과 단짝이었으니까.
“해연이한테서 부탁을 받고 전화를 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러했다.
해연은 동하와 헤어지고 나서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낙태하기로 결정하고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는 자신은 낙태를 해줄 수 없지만 아는 사람을 소개해 줄 수는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경기도 반월에 있다는 의사를 찾아갔다. 시외버스와 전철과 택시를 갈아타고서. 그곳에서 상당한 금액을 주고 수술했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으니 집에 가서 며칠 푹 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해연은 시시때때로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해연이 그 의사에게 전화했더니 별일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며칠 기다려 보라고 한다. 그러자 정말로 며칠 지나니 괜찮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지나자 또 하혈이 생기기 시작했다. 해연은 의사에게 전화했다. 그러자 의사는 자궁외임신인데다 수술이 몹시 까다로워 힘들었고 어쩌고 하면서 말을 피했다. 그러나 해연은 처음 찾아간 의사나 수술을 해준 의사에게서나 자궁외임신이라는 말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따졌더니 전화를 갑자기 끊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연이 나중에 그 병원에 찾아가 봤더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해연이 그 길로 첫 번째로 갔었던 산부인과에 가서 따졌더니 자신은 그런 의사를 알지도 못하고 소개해 준 적도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해연은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더니 갑상선기능항진증에 응고장애, 그리고 작기는 하지만 자궁근종까지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해연은 그 이후 여러 병원을 옮겨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져 갔다. 수술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하혈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결국 부모님에게 알리고 대학병원에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병명은 동일했고, 치료 역시 지지부진했다. 그러면서 증세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 이전에 학교는 간신히 졸업했지만 사회생활은 하지 못하고 치료하는 데만 세월을 다 보냈다.
그리고 결국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병원에 오래 입원했다가 나중에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 다행히도 한동안은 증상이 호전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죽기 며칠 전 갑자기 하혈이 극심해지면서 엄청난 통증까지 동반되었다.
해연은 죽기 이틀 전에 동하에게 편지를 보냈다. 동하에게 전화한 친구에게 해연이 연락해서 동하의 주소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이미 해연은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뒤 곧바로 해연은 갑자기 하혈이 심해지면서 어떤 수단으로도 멈춰지지 않아 결국 과다출혈로 숨진 것이다.
해연의 친구는 여러 군데 수소문하다가 동하 동기들에게 연락해서 동하의 고시원 주소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해연이 죽기 전에 동하의 주소를 알려줄 수 있었다고 한다. 동하는 군대를 제대하고서 취업준비에만 매달리기 위해 친구들과 연락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아주 가까운 친구 몇몇에게만 알려주고서.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해연은 동하의 이메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편지를 보내지 않고도 연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얀 종이에 그 시를 직접 써서 보낸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하는 자신이 두 생명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해연과 그 태아의 생명. 그리고 자신은 이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취업은 물론 앞으로의 모든 인생이. 자신이 해연을 잊고 있었던 근 6년의 세월 동안 해연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 모든 일은 동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동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 수는 없다. 둘이 함께 저지른 일을 해연 혼자서만 다 짊어진 것이다. 해연은 무슨 죄인가? 사랑한 죄밖에 없다. 그런데 그 대가를 6년 동안 혼자서만 짊어지다니. 안 된다. 그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 세월 동안 털끝만큼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 동하는 이제라도 그 벌을 받아야 한다. 두 생명을 빼앗은 대가. 죽음에 대한 대가는 죽음뿐이다.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동하와 해연은 거진 앞바다에서 헤어졌다. 그로부터 해연은 불행이 시작되었다. 그때 두 사람이 헤어지지만 않았어도 그런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6년, 그 6년 동안, 해연아, 너는 어떻게 살았니? 어떻게 살았어? 나한테 연락도 하지 않고. 내가 죽을 놈인데 왜 네가 죽은 거야? 왜? 왜, 왜, 왜?
동하는 해연이 거진 앞바다로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하는 해연을 찾아 거진 앞바다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바다. 푸른 바다. 가이없이 넓고 멀리멀리 뻗은 바다.
가자. 그 바다로. 수평선 너머로 가면 혹 해연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태아도.
해연아…….
너무너무 미안하다. 너무너무.
동하는 울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리고 거진 앞바다로 온 것이다.
6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죠.”
소년이 말했다. 너무도 담담하게.
네 이놈!
“하지만 방법이 틀렸어요.”
이 나쁜 놈!
“네, 좋아요. 나한테 욕하세요.”
이노옴!
“하지만 지금 해연 누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네가 해연을 알아?
“잘 알죠. 내가 만나고 왔거든요.”
이놈이……!
“해연 누나가 이것을 전해 주라고 했어요.”
???
소년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그리고 동하 앞으로 내밀었다.
“자기 대신 평생 간직해 달래요.”
작은 펜던트.
해연과 동하는 어느 유원지에 가서 서양영화에서처럼 펜던트를 두 개 사서 즉석에서 찍은 두 사람의 미니 사진을 집어넣었다. 머리를 맞대고 웃으면서 찍은 모습.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다정하고 행복하고 꿈과 미래가 가득한, 끔찍할 정도로 진한 사랑으로 범벅이 된 사진.
동하는 그 펜던트를 잃어버렸다. 어느 날 문득 그것이 생각나서 찾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잊어버렸다. 어차피 필요 없는 물건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펜던트가 소년의 손바닥에 있는 것이다.
동하는 펜던트를 낚아채듯 받아들고 열어보았다.
아, 그 사진.
너무도 밝은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 특히 해연의 그 미소와 맑은 눈빛.
해연아…….
동하는 눈물이 어렸다. 두 사람의 사진이 흐릿해진다.
해연아…….
동하는 고개를 들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