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의 마지막 글귀 (3)

60대 이야기

by Rudolf

5


김언출은 언출이라는 이름처럼 언어에도 출중했으나 운동도 유난히 잘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유도부에 들어갔다. 체격은 크지 않지만 평소 힘깨나 쓴다고 알려져 있어서 주위에서도 유도를 하라고 권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도부에서 명길수라는 동급생 친구를 만났다. 동작이 좀 굼뜨고 말이 거의 없는 아이였다. 길수가 자신에 대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집안이 무척 어려운 모양이었다. 등록금도 겨우겨우 내고 있다고 하니까.

언출과 길수는 무척 가깝게 지냈다. 그러면서 언출은 차츰차츰 길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소문처럼 정말 집안이 무척 가난했다. 게다가 길수는 공부를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도에도 그리 소질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든지 유도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길수는 언출에게 많이 의지했다.

언출은 늘 마음이 넉넉한 편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집안도 좋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꽤 하는 데다가 유도에도 소질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한마디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다 갖춘 선택받은 인생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모범생이고.

그러나 어느 날부터 언출은 길수에 대해 묘한 짓을 하게 되었다. 언출은 길수에게 점심이나 용돈 등 여러 가지를 베풀어 주면서 조금씩 조금씩 주종관계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언출이 남들에게는 하지 않던 행동을 길수에게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학대였다. 처음에는 소소한 심부름 정도만 시키다가,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이 거칠게 나가게 되었다. 남들 앞에서는 그렇게 너그럽고 친절하던 언출이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가 세어져 갔다. 길수는 이러한 언출의 모습에 처음에는 당황해하다가 이내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포기한 것이겠지만. 그러다가 언출은 길수의 성기까지 만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출의 입에서 남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욕지거리도 나오게 되었다. 언출은 자기가 보는 앞에서 길수에게 자위행위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길수가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때리기 시작했다. 그것에서도 언출은 색다른 쾌감을 느꼈다. 길수가 도복으로 갈아입을 때 우연히 유도 선생님이 길수의 몸 여러 군데에 멍이 난 것을 보고 추궁했다. 그러나 길수는 올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길수가 싸움질을 하고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고 따귀도 때리고 엎드리게 해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수없이 때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길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 나 원망하냐?”

“…….”

“일러.”

“…….”

“야, 이 병신아, 왜 말을 못 해? 억울하지 않아? 이르란 말야.”

“…….”

“이 병신새끼. 넌 입도 없냐? 자존심도 없어? 나 같으면 목매 죽겠다. 병신.”

그러나 길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길수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언출이 보았다.

“어쭈, 울어? 야, 이 병신아, 나 같으면 우는 대신 죽겠다. 이 병신새끼야.”

언출은 이렇게 말하며 길수를 밀었다. 그냥 살짝 밀었을 뿐이다. 그런데 길수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 새끼 완전 허깨비네. 이젠 밀면 밀리는구나. 그럼 내가 죽으라 하면 죽겠구나. 그래, 한번 죽어봐. 죽는 방법까지 알려줘? 이 병신새끼.”

그 다음 날 저녁 언출은 또다시 길수를 체육관 뒤쪽으로 끌고 갔다.

“너 × 꺼내봐.”

그러나 이번에는 길수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꺼내보라니까. ××× 쳐봐. 그동안 잘 쳤잖아. 내 앞에서. 그런데 왜? 오늘은 싫어? 반항이냐?”

언출은 길수를 손으로 밀었다. 사실은 그냥 가볍게 주먹으로 툭 친 것이다. 그러나 길수는 힘없이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 새끼가……. 이거 완전 병신이네.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거지? 죽고 싶어? 너 지금까지 내 앞에서 한 짓 다 소문낸다. 일주일이면 온 세상 사람 다 알게 돼. 일어나. 그리고 얼른 까봐.”

하지만 그날 길수는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않았다.

언출은 화가 나서 발로 찼다. 그래도 길수는 맞기만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언출은 짓밟았다. 그래도 길수는 가만히 있었다. 언출은 바지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누었다. 그러나 길수는 그것을 다 맞으며 그대로 있었다. 얼굴에, 머리에, 온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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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길수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언출은 하루 종일 마음이 찜찜하고 불안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연락처도 모르고 집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방과 후에 답답한 마음에 평소 둘이 자주 가는 체육관 뒤 조그만 골방으로 가보았다.

언출이 문을 여는 순간 길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어딘지 이상했다. 처음에는 쓰러져 자는 줄 알았으나 한눈에도 그런 모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을 바닥에 댄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는데, 입에서 거품을 흘린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편지봉투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언출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며 그 봉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 있는 종이를 꺼냈다. 언출은 읽었다. 손이 덜덜 떨리는 채로. 그 안에는 그동안 언출과 길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수치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썼다.

언출은 뒤로 돌아서서 문을 살짝 열고 밖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언출은 봉투와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쑤셔넣고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학교 후문 쪽으로 달려갔다. 도중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언출은 뒷담을 넘어서 도망쳤다.

하지만 그날 길수는 죽지 않았다. 유도 선생님이 체육관 내부와 주변을 살펴보며 다니다가 그 골방을 열고 들어가서 길수가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길수는 수면제를 잔뜩 먹었다. 그러나 병원에 옮겨져서 위세척을 하면서 난리를 친 덕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후유증으로 길수는 말도 하지 못하고 손발도 비틀려 거의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정신도 온전치 못했고. 그런데도 길수는 자신이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길수와 친했던 언출에게 어찌된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언출은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언출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을 보고, 언출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론 언출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거의 자지 못했으니까. 그 탓에 담임선생님이 언출의 부모에게 연락해서 며칠 학교를 쉬고 병원에도 데려가 보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얼마 뒤 결국 큰 비극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길수가 죽은 것이다. 병원 건물에서 떨어져서. 그 병원은 당시의 건물에 잇대어서 옆에다 증축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길수가 몰래 그곳으로 들어가서 공사 중인 곳 한가운데까지 간 뒤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길수는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관과 이어진 공사 현장은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성한 사람도 뚫고 들어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병원의 안전시설 미비로 인한 과실인지, 아니면 환자의 의도적인 자살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 언출은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모른다. 알고 싶지 않아 회피한 것이겠지만.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언출은 큰 충격을 받아 휴학을 했다. 그 덕분에 언출에게는 동창이 두 부류가 있었다. 처음에 함께 학교 다녔던 친구들과, 그리고 1년 뒤에 다시 다닐 때 만났던 친구들.

그 뒤 언출은 그 편지, 즉 유서를 비밀리에 간직했다. 자신으로 인해 꽃 같은 한 생명이 부질없이 사라진 것에 대한 평생의 자책과 함께. 언출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시도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리고 그 뒤부터 언출은 모든 일에 자중했다. 그리고 인내했다. 아무도 몰래 스스로 자기 잘못에 대해 속죄하면서. 그리고 한참 후에 언출이 장성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그 가족을 찾아 몰래 넉넉한 금액을 보내주었다. 그때까지도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길수의 가족에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속죄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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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 회장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 유서를 어떻게 알아?

그러나 그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너무도 충격이 커서 마음속으로만 말했던 것이다. 50년도 더 된 그 유서. 그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김 회장만 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까지 깊숙이 보관해 두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것을 저 작은 소년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너는 누구냐? 정체가 뭐야?

김 회장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는 어제 말씀드린 대로 소년이에요. 그리고 제 정체는 양심이고요. 회장님의 양심.”

그런데 어떻게 그 유서에 대해 알았어?

이 말 역시 입 밖에는 내지 못했다.

“저는 회장님 자신이거든요.”

아니, 그런데 이 녀석이 어떻게 내 마음속 질문들을 알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대답하는 거지?

“회장님과 저는 같은 사람이에요.”

김 회장은 할 말을 잃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청명한 하늘 아래에 살아서 마주 보고 있는 소년이 자기 자신이라니…….

김 회장은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데 유서 마지막 글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시나요?”

마지막 글귀. 그래, 알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유서의 글자 한 자 한 자를 김 회장, 아니 김언출은 잊을 수 없었다. 단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 기억한다. 기억할 수밖에 없다. 김언출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의 증거이니까. 그리고 더더군다나 그 마지막 글귀는 늘, 항상, 언제나 김 회장 마음속에, 머릿속에, 눈에 남아 있었다.


나는 언출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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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는 왜 오셨나요?”

김 회장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들 수가 없었다. 너무도 마음이 처참해서.

“용서하러 오신 거죠?”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도 용서해야지……. 용서받았으니까.

김 회장은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김 회장은 고개를 들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너 하늘에서 왔다고 했니?”

“네, 맞아요.”

“하늘 어디에서? 길수가 보낸 거니?”

소년은 말은 없이 고개를 살짝 흔든다.

“그럼 누가 보낸 거야?”

“저 스스로 왔어요. 오늘 늦지 않아서 다행이죠. 하마터면 늦을 뻔했어요. 연착했거든요.”

김 회장은 멍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연착이라니?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데 연착을 해?

“회장님은 모르실 거예요. 천문학자들도 모르고. 저는 저어 멀리 우주 깊은 곳에서 왔어요.”

“어떻게?”

“지구행 은하전철을 타고.”

“……?”

“그런데 은하수역에서 갈아탈 때 전철이 연착하는 바람에 얼마나 초조했는지 몰라요.”

“은하수역? 우주에도 역이 있어? 그리고 갈아탄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그러게 말예요. 저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은하전철이 연착도 다 하고.”

김 회장은 아직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채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다행이잖아요. 늦기 전에 도착해서 회장님을 뵈었으니까요.”

김 회장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여기 지구에 안 올 거예요.”

왜?

“왜냐하면……, 저도 힘들거든요. 그 먼 거리를 왔다 갔다. 게다가 이번처럼 연착하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 마음속에 들락날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소년은 잠시 말을 멈추고 김 회장을 올려다본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양심이 되는 것, 그건 정말 어려워요. 한번 그러고 나면 얼마나 지치는지 몰라요.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소년은 다시 말을 멈추었다. 김 회장은 여전히 멍한 얼굴이고.

“그렇지만 보람도 많았어요. 저를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돌이켰거든요.”


7


김 회장은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갈 때 세 가지 장면을 떠올렸다.


첫 번째 장면.

소년이 몸을 돌이켜 걸어가던 모습. 그 아이는 조금 걸어가다가 한 발을 위로 올렸다. 허공으로. 그리고는 다른 한 발을 다시 그 위로 옮긴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계단. 그렇게 몇 단을 오르더니 소년이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김 회장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김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답했다. 살짝 흔들면서.

그러다가 문득 그 장면을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돌려 소년을 보았을 때, 소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허공 속으로.

김 회장은 망연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다가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자동차 세워놓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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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면.

김 회장은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시내 쪽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방금 전에 자신이 겪은 일을 곰곰이 반추해 보았다. 그러다 요즘 동창회 일과 강영철 총무 일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 소홀했던 민 여사가 문득 생각나서 어느 호텔로 향했다. 민 여사가 그 호텔 제과점에서 만든 케이크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좋은 날, 민 여사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김 회장은 차를 세우고 호텔에 들어가서 그 제과점으로 향하다가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숨기듯이 사람들 틈으로 얼른 섞여 들어갔다. 그 호텔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일식집 문으로 막 두 사람이 들어가고 있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새로 동창회 회장이 된 송경식과 민 여사가 손을 맞잡은 채.

그 순간 김 회장은 이제 민 여사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살아왔던 것이니까.

김 회장은 어이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이라도 두 사람 사이를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동안 여러 구실로 송경석이 김 회장 집에 들락거리고 또 실없이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 모든 것에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장면.

언젠가 동창회 모임에서 나온 대화. 이것도 어쩌면 오늘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그리고 마침맞게 오늘 생각이 나도록 프로그램된 장면 같았다.

그날 누군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사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자 늘 끼어들기 좋아하는 승언이 또다시 기회를 놓칠세라 한마디 하고 나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뭐가 지나가?”

“명구라니까.”

“명구? 영구?”

“70년대에 사나? 영구가 뭐냐?”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 말 좋은데.”

“솔로몬이 한 말이란다.”

“자세히 설명해 봐.”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 궁중 세공인에게 말했단다. 반지 하나를 만드는데, 거기에 명언 하나를 새겨넣으라고. 전쟁에서 이겨도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져도 낙담하지 않으며, 늘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다윗 왕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가서 물어보았더니, 잠시 생각해 보고는 바로 그 말을 가르쳐 주더라는 거야. 그래서 그 명언을 반지에 새겨서 다윗 왕에게 갖다주었다고 했다더라.”

“아는 것은 많군.”

“This, too, shall pass away.”

“그건 또 뭐냐?”

“원어로 말해 봤다.”

“영어가 원어야? 솔로몬이 영어로 말했어?”

“Hoc Quoque Transibit.”

“허허. 그건 또 뭐여?”

“라틴어.”

“다윗 왕 시대에 라틴어 썼어?”

“ این نیز بگذرد‎ ”

“무슨 말?”

“뭐라는 거야?”

“페르시아어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 מדרש”

“그게 뭔데?”

“이스라엘 경전인 ‘미드라시’를 말하는 거야. 거기에 그 내용이 들어 있어. ‘미드라시’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 역대하 13장 22절에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 24장 27절에 ‘열왕기 주석’이라는 표현으로 각각 한 번씩 나온다.”

“알기는 좀 아는 것 같은데…….”

“에드워드 피츠제럴드(Edward FitzGerald)라는 시인이 페르시아 우화를 쓰면서 그 이야기를 집어넣었는데, 링컨 대통령이 그것을 인용해서 유명하게 된 거야. 그 뒤에 랜타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라는 사람이 그 내용으로 시를 써서 또다시 잘 알려지게 되었지.”

“그런데 원어로는 뭐냐고? 뭐라고 읽어? 영어, 라틴어 말고 진짜 히브리어로.”

하지만 아무도 여기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말을 처음 꺼낸 승언도.

“결국 반만 아는군.”

그러자 늘 승언에게 핀잔 주는 동식이 끼어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을 두 글자로 줄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모두가 동식을 쳐다보았다. 충청도가 고향인 동식.

“됐슈.”

“뭐가 돼?”

“아, 됐다니까. 그런데 그것을 또 한 글자로 줄이면…….”

이번에도 모두가 동식의 입을 쳐다본다.

“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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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oo, Shall Pass Away

― Lanta Wilson Smith (1856-1939)


When some great sorrow, like a mighty river,

Flows through your life with peace-destroying power,

And dearest things are swept from sight forever,

Say to your heart each trying hour:

‘This, too, shall pass away.’


When ceaseless toil has hushed your song of gladness,

And you have grown almost too tired to pray,

Let this truth banish from your heart its sadness,

And ease the burdens of each trying day:

‘This, too, shall pass away.’


When fortune smiles, and, full of mirth and pleasure,

The days are flitting by without a care,

Lest you should rest with only earthly treasure,

Let these few words their fullest import bear:

‘This, too, shall pass away.’


When earnest labor brings you fame and glory,

And all earth's noblest ones upon you smile,

Remember that life's longest, grandest story

Fills but a moment in earth's little while: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랜타 윌슨 스미스 (1856-1939)


커다란 슬픔이 거친 강물처럼 밀려와

그대의 삶과 마음의 안식을 산산이 부수고

가장 소중한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갈 때면

그 순간마다 가슴에 대고 이렇게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힘든 일들이 끊임없이 밀려와 감사의 노래도 사라지고

너무 지쳐서 기도하기도 힘들 때가 오면

이 진리의 말로 마음에서 슬픔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무거운 마음의 짐에서 벗어나게 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미소를 보내고 삶이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서

근심 걱정 하나 없이 즐거운 날들이 이어지면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젖어 안주하지 않도록

마음속 가득 이 말을 새기고 음미하도록 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성실한 그대의 노력이 명예와 영광으로 보상받고

이 땅의 모든 것들이 그대에게 웃음꽃을 선물하며

평생토록 이어지는 아무리 훌륭한 일이라도

이 땅에서는 찰나에 스쳐가는 순간임을 기억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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