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은 한참 동안 누워 있었다.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대개 동맥의 벽이 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물론 결핵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게 그거다.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그러나 참 신기했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지금 한낮이라 부지런히 일들을 할 것이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한쪽은 낮이고, 다른 쪽은 밤이다. 밤과 낮이 공존하는 것이다. 선과 악의 공존. 생명과 죽음의 공존. 도희와 정욱의 공존.
공존? 도희와 정욱이?
글쎄다. 과거에는 공존했지만, 지금은…….
정욱은 벌떡 일어나 진흙 덩이 쪽으로 갔다. 그리고 또 한 덩이를 떼어냈다.
공존해야지…….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리고 과거가 어땠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기에 현실적 공존, 도희와 정욱이 현실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했다.
정욱은 진흙을 정성껏 다듬어 나갔다.
그러면서 또다시 생각은 과거를 더듬는다. 현실적 과거, 과거적 현실을.
이 말은 지금 정욱 머리에서 생각난 것이 아니다. 도희가 한 말이다.
“모든 예술은 과거적 현실을 보여준다.”
“어쭈. 멋진 말이네. 누가 한 말이야?”
“내가.”
“응?”
도희는 가방에서 리포트 하나를 꺼내어 내민다.
“A 플플플러스.”
정욱이 리포트를 받아보자 정말로 A 다음에 플러스가 세 개 덧붙여져 있었다. 제목은 ‘모든 예술은 과거적 현실을 보여준다.’
“우아―!”
정욱은 진심으로 부러웠다. 자신은 지금껏 A 플러스는커녕 A 자체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리포트에서는. 시험에서야 늘 A였지만.
정욱은 리포트를 대강 후루룩 넘겼다. 그리고 부러운 눈을 들어 도희를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올려다본 것이다. 존경을 담아서.
도희는 갑자기 도도해져서 정욱을 아래로 내려다본다. 당연하다. 정욱은 벤치에 앉아 있고, 도희는 벤치 등에 올라앉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위치 상황이 아니라 진심으로 정욱은 아래에서 우러러보았으며, 아래로 내려다보는 도희의 눈빛도 역시 승리자의 우월감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정욱이 도희의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지나친 것은 아니함만 못하느니라. A가 세 개인 것이 좀 수상한데……. 에이 에이 에이, 뭐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에이에이에이. 에이 뭐…….”
“교수님이 두 개는 보너스랬어.”
“와, 그 노처녀 안경이 웬일이냐? 나한테는 늘 야박하게 구는데.”
“평소에 좀 잘하시지.”
아무튼 ‘과거적 현실’이라는 말은 꽤 그럴듯했다. 혹시나 해서 정욱이 핸드폰으로 그런 말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뭘 찾는 거야?”
“응……, 아무것도 아냐.”
정욱은 얼른 핸드폰을 끄면서 다시 한번 올려다보았다. 진심의 눈빛을 담아서.
그래, 과거적 현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정욱은 엽서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하여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었다. 그것은 꼭 도희와 정욱을 대상으로 한 작품일 필요는 없다. 한 여자와 한 남자. 과거일 필요도 없고, 현실일 필요도 없다. 그냥 만드는 것이다. 두 사람을.
두 사람.
해안가에 앉은 두 사람.
뒷모습.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완성하자.
그렇지만 또다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이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전에도 그런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응급실에도 실려가고 중환자실에도 입원했었다. 한번은 중환자실 바로 옆 침대의 노인이 숨넘어가기 바로 직전 가족들이 와서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시는 것도 보았다. 교회 목사님도 와서 함께 기도하고, 가족들은 흐느끼는 장면. 그러나 정욱은 눈을 감은 채 외면하고서 보지 않았다. 어쩌면 다음 차례는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서. 그리고 임종은 아니지만 도희가 숨진 직후 병실에 들어가기도 했었지.
그날 정욱이 도희의 병실에서 주저앉자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정욱은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숨이 찼다. 도희가 임종이 가까웠을 것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달려온 것도 아니었다. 병실 번호를 확인하며 성큼성큼 걸었을 뿐이니까. 그러나 도희가 숨졌다는 사실을 안 뒤 갑자기 호흡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어지러웠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주저앉은 것이다. 물론 이 모두가 일종의 쇼크 현상이겠지만, 도희의 주검을 앞에 두고 황망한 부모들 앞에서 낯선 남자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주저앉았으니 그분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어떻게 오셨소?”
한국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 부친이 물었다.
“잘못 오신 것 같은데, 여기에는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정욱은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 봐요!”
그 소리에 정욱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도희, 현도희를 보러 왔습니다.”
“당신 누구요? 어디서 왔소?”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가!”
정욱은 변명할 사이도 없었다. 그 부친이 밀었던 것이다. 정욱은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부친이 다시 다가오면서 밀었다. 정욱은 그대로 밀리면서 문 앞까지 뒷걸음쳤다. 부친이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정욱은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뒷걸음으로 병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날 정욱은 병실 밖 나무의자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병실로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정욱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날 정욱은 그렇게 도희를 떠나보낸 것이다.
정욱은 진흙을 다 빚었다.
정욱은 그 테라코타를 탁자에 내려놓고 멀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두 사람.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 머리를 기울이고 있었고. 뒷모습이다. 역시 두 사람이어야 완성이 된다. 혼자서는 외롭다. 그래도 앞모습은 만들지 않았다. 아까 만들어 두었으니까. 그 둘을 합하면 제대로 된 작품이 되겠지만, 일단 앞모습만, 또 뒷모습만 따로따로 만들었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냥 그렇게 했을 뿐이다.
정욱은 앞모습 세 작품, 뒷모습 세 작품을 한 줄로 늘어놓았다.
저 중에서 도희는 어떤 것을 원할까? 남자만 있는 뒷모습?
정말 그럴까? 혹 엽서 그림의 빈칸을 정욱에게 채워달라고 한 것은 아닐까?
정욱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머리를 쥐고 흔들어댔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래, 내가 바보였어…….”
정욱은 벌떡 일어섰다. 그러면서도 계속 중얼거렸다.
“바보, 바보, 바보…….”
맞았다. 도희는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달라고 정욱에게 부탁한 것이다. 정욱이 그 엽서를 받을 즈음에는 도희 자신은 이 지상에 없게 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을 정욱에게 짐 지우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잊어버리라고, 기억에서 생각에서 지워버리라는 의미로 자신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잖은가.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 함께 나눈 그 언어들, 함께 쳐다보며 즐기며 웃으며 했었던 지상의 모든 풍경과 사물과 책과 그림과 영화와 하늘과 꽃과 그리고 모든 존재들. 그것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둘이 함께했던 모든 경험들을 어떻게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아마도 나중에는 마음을 바꿨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라도. 아니, 죽은 후에라도. 그 엽서 그림의 빈칸을 채워달라고. 자신의 존재는 틀림없이 존재했었고, 또한 정욱 바로 옆에 있었다고. 그래서 그것을 증명으로 남겨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릴 방법을 모르기에 도희는 엽서 그림 속의 흰 공간 속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지금도 답답해할 텐데.
“바보.”
정욱은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엽서 한 장을 꺼내왔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만든 진흙 테라코타를 앞에 놓고 엽서의 빈칸에 그 모습을 그려넣었다. 스케치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너무도 다정히 앉아 있는 두 사람.
그림이 끝난 뒤 발신인과 수신인 칸을 채워넣었다. 현도희와 이정욱. 영어로.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