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4 | 불러주지 않는 이름
소연은 주말에도 학교에 갔다. 초등학교라 편하게 직장생활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특히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야근에다 주말도 없다. 일요일에는 가끔 교회에 나가기도 하는데, 소연은 요 2주간은 그런 말도 없이 그냥 밖에 나가기만 한다. 그렇지만 휘영은 물어보지도 않았다. 야근 특근 하는 사람에게 그게 무슨 충성이냐고 말해 봤자 위로가 되지도 않는다. 외려 짜증만 날 뿐이다. 휘영에게도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잘 알고 있다. 특히 연말 가까워져 오면 회사에서는 연례행사처럼 그런 일이 생기니까. 아직은 11월 중순이라서 별말이 없지만, 12월 들어서면 틀림없이 사람 들볶을 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회사라는 게 다 그러니까.
윤 대리, 윤대환.
그 인간하고 요즘은 아예 절교다. 뭐 그렇다고 무슨 ‘좋은’ 시절이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한때 혹시나 하고 기대했었던 마음을 접었다는 뜻일 뿐이다.
특히 요즘은 아예 말도 안 섞는 것이다.
그전에는 희영이든 휘영이든 이름을 불러주고, 그것 때문에 휘영이 대답도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풀어주려고 눈치도 보고 옆에서 빙빙 돌고, 주전부리 같은 것을 슬쩍 갖다놓기도 했었다. 게다가 한두 개 틀린 서류를 가져와서 살펴보고 고칠 데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 똑똑하고 완벽하게 일 처리 잘하기로 소문난 윤 대리가. 게다가 휘영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틀린 것 고쳐서 갖다주면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었는지.
“우와, 이거 잡아냈네. 난 세 번이나 봤으면서도 발견하지 못했어. 역시 희영 씨, 아차 히영 씨, 아니 아니 휘영 씨다워. 큰일 날 뻔했네. 우와아, 대애박!”
이렇게 여러 사람 다 들으라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었다.
대박은 무슨 대박. 일부러 틀리게 해서 가지고 와놓고선.
그런데 이제는 아무렇게라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게다가 휘영이 확인해야 할 서류가 있으면 아무 말 없이 툭 갖다놓고 그냥 가는 것이다. 그 바람에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휘영이 검토 끝난 서류 가지고 가서 윤 대리 책상에 올려놓을 때도 얼굴 한번 올려다보지 않고 외면한 채 자기 일에 골몰한 척한다. 아예 사람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한동안은 사람들이 윤 대리와 휘영을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것도 이제는 없어졌다.
“왜들 그래?”
“싸웠나?”
“냅둬.”
“호시절이다. 사랑싸움할 때가. 부럽다. 나도 저럴 때 있었지…….”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아이고, 놔두세요. 지들 문제 지들이 알아서 하게.”
칫. 무슨 싸움? 나야말로 아이고다. 그런 싸움 한번 해봤으면 원이나 없겠다.
휘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휘영 씨,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휘영은 벌떡 일어났다. 언제 왔는지 황 이사가 휘영 옆에 서 있는 것이었다.
“아, 아, 앉아요, 앉아. 저번에 말 들어보니까 휘영 씨 코피도 쏟고 그랬다는데, 혹 몸이 안 좋은 거 아냐?”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지금은.”
“어이, 윤 대리. 당신, 아래 직원 너무 부려먹는 것 아냐? 잘못하면 회사에서 혹사시키는 줄 알겠어. 김 과장…….”
사무실 저쪽 끝에서 김영걸 과장이 벌떡 일어난다.
“박휘영 씨 얼굴이 말이 아니야. 이러다 병나면 누구 손해야? 회사 손해라고, 회사. 아까운 인재 혹사시켜서 드러눕게 하지 말고 알아서 잘 챙겨.”
그날부터 사무실에서 휘영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약국에 가서 쌍화탕 사다주고, 김 과장은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속초 리조트 사용권 한 장을 가져와서 이번 주말에 가서 쉬고 오라고 하지를 않나, 퇴근시간만 되면 얼른 일어나라고 주변에서 채근을 하지 않나,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그 탓에 휘영은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한편 휘영은 황 이사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생전 누구 챙겨주지 않는 것으로 소문난 황 이사가 직접 휘영에게 찾아와 준 것이다. 게다가 사무실 내에서, 아니 회사 전체에서 휘영이라고 발음을 정확히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황 이사만은 어딘지 ‘휘’에 악센트를 주듯이 불러주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히영’이라고 부르고 만다. 휘영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황 이사에게 머리를 숙였다. 다음 말이 나오기 직전까지는.
“아 참, 좋은 소식 들려오던데……. 결혼한다고? 사내결혼이라고 하던데, 이거 경사 났네. 누구셔, 신랑이?”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