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풍경화 (7)

장면 7 | 꿈속의 사랑

by Rudolf

장면 7 | 꿈속의 사랑



어떻든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나서 휘영은 침대에 누웠는데 그만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휘영은 꿈을 많이 꾸었다. 어지러운 꿈을. 평소에는 꿈을 꾸어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깨고 나서도 거의 생생했다.

결혼식 꿈. 휘영 자신의 결혼식. 참 별나다. 결혼할 상대도 없는데 결혼식이라니.

그렇지만 꿈에서는 마음이 많이 설레었다. 결혼한다고 하니까. 꿈에서도 예식장 입구가 환하게 보였다. 그리고 들러리 친구들, 옛 고등학교 친구들이 몰려와서 긴 웨딩드레스의 뒤쪽 끝 양쪽을 붙잡아준 채 식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휘영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

아버지. 얼굴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라는 사람이 휘영의 손을 잡아주고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누구지?

아버지?

휘영은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신부가 고개를 들어 여기저기 살필 수도 없어서 가만히 눈을 내리뜬 채 사분사분 걸어가고 있었다. 실내 오케스트라의 웨딩마치. 주변에서는 함성이 울려퍼진다. 박수 소리와 함께.

― 천사네.

― 와,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아.

― 신랑이 부럽다.

― 너무 예쁘네.

휘영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참았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웃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너무도 행복한 웃음이. 마치 하늘에서는 꽃송이가 떨어지고, 땅에서는 꽃들이 피어나고, 새들이, 나비들이 마구 날아오르며 지저귀기도 하고 나풀거리기도 하며 온 사방을 날아다닌다. 휘영은 손에 든 꽃다발을 살짝 들어올리고서 다른 손으로는 드레스 한쪽을 붙잡고 한 바퀴 돌았다. 드레스 자락이 길게 원을 그리며 하늘에서 나풀거린다. 휘영은 영화에서처럼 꽃다발을 들고 뛰었다. 저 앞에서 신랑이 기다린다. 어? 그런데 손을 잡아주었던 아버지가 없었다. 없어진 것이다. 어디 갔지, 아버지가? 주위를 둘러보니 저 앞에서 신랑이 기다린다. 아, 그래. 결혼식. 휘영은 신랑한테 걸어갔다. 신랑이 앞으로 나와서 손을 내민다. 그런데……, 누구지? 아는 사람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휘영은 행복에 겨워서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뒤로 던졌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그 꽃다발을 받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꽃다발 받은 여자. 틀림없이 보았다. 그런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꿈은 그 뒤로도 조금 이어지다가 잠에서 깨고 말았다.

꿈에서 본 신랑의 모습. 꽃을 받은 여자. 그리고 아버지.

모두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혹시 정말로 보기는 한 것인가……? 아버지는 본 것 같았다. 신랑도. 그러나 여자는 확신이 없다. 보았는지 아닌지. 그러나 꿈에서 깬 뒤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 보았든 말았든.

휘영은 자신의 지금 입장에서 결혼식 꿈을 꾼 것이 너무 이상했다. 내가 남자에 목말라 있는 건가? 그 윤 대리? 말도 안 돼. 한때는 기대를 가졌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다 시들해져 버렸다. 혹 윤 대리가 다가온다 해도 No! 거절할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우울해졌다. 슬퍼졌다. 아버지를 본 것이다. 꿈속에서.


IMG_68921.jpg


아버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보기는 했으니까 의식 저편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간혹 아주 어린 시절 집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인지 다른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다섯 살 때 헤어졌는데 기억이 나기나 할까.

그런데 아버지라……. 만일, 만일에 말이다, 휘영이 정말로 결혼식에 들어간다면 누가 손을 잡아줄까? 누구? 아버지가 아니라면 누구? 혹 아버지가 결혼식에는 나타날까? 죽었다는 소식은 못 들었으니까 이 지구상 어딘가에는 살아 있을 테니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한다면 올 수도 있겠지. 아니, 잠깐! 하나밖에 없는 딸? 그걸 어떻게 알아? 아버지나 어머니나 따로따로 재혼해서 아들딸 수억 낳고 살고 있는지. 남들은 아빠 엄마라고 하겠지만, 휘영에게는 아버지 어머니다. 엄마 아빠 같은 그런 정겨운 단어가 붙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친 모친 할 수는 없고.

꿈에서 깨기는 했지만 휘영은 후회가 되었다. 깨지 말걸. 그리고 휘영의 손을 잡아준 아버지를 맘껏 즐길걸. 그 손……. 따뜻했었나? 따뜻했을 거야. 비록 흰 장갑을 끼고 있었어도 참 따뜻했을 거야. 아버지…….

휘영은 침대 가에 걸터앉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 화로 계속]

이전 06화11월의 풍경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