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8 | 미련이란……
다음날 회사에 나갔다. 휘영은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 혼자서 식사하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뜻밖에도 윤 대리 혼자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직원들이 저녁 회식 대신 점심으로 추어탕 먹으러 간다고 했으나, 휘영은 비위가 약해서 못 먹는다고 하며 빠졌다. 말이 추어탕이지 실제로는 보신탕이다. 야근 잦은 12월이 다가오니까 미리 몸보신하자고 간 것이다. 요즘 보신탕 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기가 그래서 그런지 죄다 추어탕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다른 여직원들은 그런 것 가리지 않는지 모두 따라갔다. 입술까지 핥아가며. 윤 대리도 함께 가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그런 것들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다 끝났다.
“시들해졌다고!”
휘영은 18층 창문을 열고 밖에다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휘영은 윤 대리를 못 본 척하고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주 얌전하게. 의자를 살짝 꺼낸 뒤 스커트 가장자리를 양손으로 잡고 앉아서 의자를 앞으로 살짝 잡아당겼다. 아차, 그때 양치질해야 하는 것이 생각났다.
아니. 왜 그런 것을 잊어버린 걸까? 별일이네. 매일 점심 먹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것인데.
휘영은 또다시 얌전하게 의자를 밀고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뒤쪽으로 빙 돌아가려다가 ‘내가 왜? 죄지은 거 있어?’ 하는 생각에 그대로 윤 대리 책상 옆으로 지나갔다.
뒤통수가 어색하긴 했지만 윤 대리를 지나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휘영 씨.”
웬일이래? 희영 씨가 아니라 휘영 씨. 그렇게 잘 부르면서 평소 꼭 희영 씨라고 불러서 내 속을 뒤집어놓더니. 휘영은 얄미운 생각이 나서 모른 척하고 그대로 걸어갔다.
그런데 다시 뒤에서 부른다.
“휘영 씨.”
이번에는 좀 톤이 다르다. 뭔가 절박하다고나 할까, 어딘지 호소하는 느낌.
휘영은 그런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윤 대리가 책상에서 일어나서 이쪽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휘영은 윤 대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돌하게. 처음으로.
그런데 그 순간 생각이 났다. 꿈속에서 본 신랑의 모습. 바로 윤 대리였던 것이다!
휘영은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몸이 굳어버렸다. 그런 탓에 윤 대리가 뭐라고 말을 했는데 정확히 듣지 못했다. 그러니 대꾸할 수도 없었다. 굳이 말하면 무슨 말을 했어도 대꾸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런데 귓가에 남아 있는 소리가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휘영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데 또다시 뒤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안해.”
흥! 됐네요. 미안할 것도, 미안을 받을 것도 없는데 뭐가 미안하단 말야. 그동안 우리가 무슨 관계라도 있었어? 꼭 한때 썸이라도 탔었던 것처럼 말하는데, 그거 아주 웃기는 소리다. 썸은커녕 껌도 안 씹었다, 둘이서.
정말 웃기는 사람이네. 휘영은 쌩하고 서릿발 날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칫솔을 입에 막 집어넣는 순간 생각이 났다.
어제 꿈속의 그 신랑. 바로 윤 대리였다!
그 바람에 깜짝 놀라서 휘영은 칫솔로 잇몸을 찔렀다. 아주 강하게.
“아얏!”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