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For whom the bell tolls

by Rudolf

제13장

For whom the bell tolls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1


정일두는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모으던 중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근 20년 전에 정일두의 태양국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일본이 또 다른 극우단체를 동원하여 독도에 대한 공작을 벌여왔다고 한다. 이는 태양국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척되지 않을 경우 일본이 독도의 중립화를 이루어 동해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프로젝트 역시 극비로 진행되어 오다 여러 이유로 인해서 사실상 중단되었는데, 최근에 재개하기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일본 총리실에서 은밀히 진행하고 있는 특급비밀이었는데, 얼마 전 그와 관련된 문서를 감정한 어떤 단체로부터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 이야기는 좀 복잡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아무튼 그 정보에 의하면, 그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문서가 외부로 노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긴급히 손을 써서 간신히 덮기는 했지만, 그 문제가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몰라 특히 한국 측 파트너들이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 그 프로젝트에 관여한 일본과 한국 인사들의 서명 문제를 처음부터 공작해 놓았기 때문에 일단은 가까스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문서의 노출에 관여된 어떤 인물이 여전히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어서 매우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

정일두는 이 이야기를 사실은 그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일두는 그 독도 프로젝트가 자신의 삼국동맹보다 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게다가 태양국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독도 중립화는 오히려 손해가 된다. 따라서 정일두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뒤 역시 예상한 대로 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최근에 사정이 역전되었다. 정일두의 프로젝트가 뒤로 밀리고, 독도 프로젝트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정일두는 이것을 그대로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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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선은 팔이 붙잡히고 입이 틀어막힌 채 억센 두 남자한테 끌려가서 시커먼 차에 태워졌다. 그리고 곧장 어디론가 태우고 갔다. 머리에 수건이 씌워진 채.

그리고 어느 지하실 같은 데 끌려 들어가서 의자에 앉혀지고 나서 더 이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선은 끌고 온 사람들도 방에서 나간 것 같았다. 남자들은 공원에서 해선을 끌고 올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원에서 납치될 때 잠깐 남자들의 얼굴을 본 것 같았지만, 가로등이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져 불빛이 희미한 곳이어서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해선은 몸을 덜덜 떨다가 주위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슬그머니 머리에 씌워진 수건을 들어올렸다. 환한 전등 불빛. 눈이 부셨다. 수건을 벗었다. 방. 깔끔하게 꾸며진 원룸 같은 곳. 퀸사이즈 크기의 침대와 화장대, 붙박이 옷장, 화장실 문, 2인용 소파와 탁자, 식탁과 의자, 책상, 아담한 주방, 냉장고, TV, 데스크탑 컴퓨터, 전화기, 인터폰 장치 등등 해선의 방과 비슷한 구조. 호텔 같기도 했다. 그러나 창문은 없었다. 그 대신 공기는 잘 순환되는지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에어콘도 자동으로 작동되는지 방은 시원했다. 마치 지하에 꾸며놓은 접객실 같은 느낌.

해선은 의자에서 살그머니 일어나 방 이곳저곳을 가서 만져보고, 밀어보고, 열어보고 했다. 모든 것이 깔끔하다. 최근에 지어졌거나 리모델링한 것 같았다.

해선은 문득 생각이 나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핸드폰. 없었다. 아, 집에서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다른 것들도 물론 없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니까. 원룸 현관은 번호를 누르면 되니까 열쇠도 필요없다.

그런데 지금 몇 시지? 그러고 보니 방 안에는 시계가 없었다. 그렇지만 집에서 나온 시간이 9시 반이었으니까 아무리 늦었어도 12시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해선은 TV 리모콘을 찾아서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해 보다 포기하고 그 옆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는 켜졌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해선은 인터폰으로 가서 이것저것 눌렀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전화기도 집어들고 버튼을 눌러봤으나 소용없었다. 현관문으로 가서 열어보고 두드려 봤지만 열리지도 않고 대답도 없었다. 한마디로 외부와는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해선은 벽을 돌아가며 두드려 보았다. 어딘가 빈 곳은 없는 것 같았고, 보통의 집, 오피스텔 같은 단단함.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생수병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주방의 서랍과 찬장들을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파이렉스 컵 두 개뿐. 그밖에는 칼이나 가위, 젓가락, 숟가락 등등은 하나도 없었다. 인덕션이 설치되어 있어서 켜보았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전원이 차단된 것 같았다. 화장실을 확인해 보았다. 크고 작은 크기의 흰색 타올 몇 장, 손세척제 같은 물비누 통 하나와 조그만 막대비누 하나, 소형 비닐봉지에 든 치약과 칫솔 세트 하나. 아주 작은 빗 하나. 역시 비닐에 든 아주 작은 로션 세트 하나, 두루마리 화장지 둘. 그것밖에는 없었다. 방 안의 탁자 위에 놓인 조그만 휴대용 클리넥스 하나하고. 마치 비행기 안에서 제공되는 것들 같았다. 참,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아주 작은 성경책 하나가 붙박이 옷장 속에 놓여져 있었다. 성경과 찬송가가 함께 붙어 있는 것. (웃겨.) 여기에 조금만 신경 쓰면 게스트 하우스가 될 것 같았다.

뭐 날 죽이려는 건 아니겠네. 손님으로 모셔왔구먼. 대접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해선은 갑자기 배짱이 생겼다.

일단 씻고 나서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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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선은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났다. 방 안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시계가 없어서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해선의 생활습관으로 보아 새벽 5~6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침대 옆을 더듬어 스탠드의 불을 켰다.

낯선 방. 왜……? 여기가 어디지?

아하……. 그래, 게스트 하우스.

해선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 안의 불을 다 켜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간단히 샤워를 했다. 더운물, 찬물은 잘 나온다. 샤워기도 이상 없고.

잠시 후 방으로 나온 해선은 비닐봉지를 뜯고 안에 있는 로션을 손과 얼굴에 살짝 발랐다.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배는 고프지 않았다. 단지 냉장고를 열어 어제 마시고 나서 집어넣은 생수병을 꺼내어 물을 조금 마셨다. 그러고 나서 평소에는 하지 않던 맨손체조를 약간 했다. 뻐근했던 몸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해선은 전화기, TV, 컴퓨터, 인터폰 등등을 한 번 더 점검해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맥이 탁 풀렸다.

해선은 문으로 가서 손잡이를 돌려보고, 소리도 쳐보고, 벽마다 쾅쾅쾅 두드려 보기도 했다.

그런 뒤 다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침대에 가서 벌러덩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나서 해선은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다.

해선이 현관으로 다가가자 문이 먼저 열린다.

남자 둘. 어제 그 남자들 같았다. 생각보다는 얼굴이 험악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락없는 조폭 같은 모습.

남자 하나가 플라스틱 네모난 쟁반을 들고 있었다. 식판 같은 것. 흰 천이 씌워져 있어서 내용물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먹을 것 같았다.

남자들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해선은 뒷걸음쳐서 침대 쪽으로 갔다.

한 남자가 쟁반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다른 남자는 방 안을 돌면서 여기저기 살핀다. 화장실 안으로도 들어가 돌아본다. 붙박이장마다 다 열어보고, 주방 찬장, 서랍, 수납장 등 모든 것을 열어보고 확인한다. 침대 밑도 들여다본다. 천장도 올려다보면서 세밀히 살핀다.

한 남자가 그러는 동안 쟁반을 들고 온 남자는 가만히 서서 해선만 쳐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도망가지 않게 감시하는 것 같았다.

검사가 끝났는지 두 남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간다. 그러는 동안 해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겁에 질려 꼼짝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비로소 해선은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문으로 달려가서 열어보고 두드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해선은 문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침대 위, 아까 침대에서 쪼그리고 누워 있다가 그대로 다시 잠들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금 몇 시일까?

아까 들어왔던 조폭 둘과 두목 같은 뚱뚱한 인간이 함께 들어온다.

두목이 천이 씌워진 쟁반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는 듯하더니 보자기를 살짝 들춰본다. 그러더니 인상을 조금 찡그리고 조폭 둘을 돌아다본다.

아까 쟁반을 가지고 왔던 조폭이 쟁반 앞으로 다가와서 역시 살짝 들춰본다. 그리고는 그 역시 약간 인상을 쓰고서는 다시 두목 뒤로 돌아가서 선다.

“뭘 좀 드셔야지. 그러다 쓰러져요.”

두목이 아주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나 그뿐. 배고프지 않느냐, 다른 것을 갖다주면 되겠다는 등등의 말은 하지 않고 방 안만 둘러본다.

해선은 갑자기 성질이 났다. 숙녀를 납치해 와서 잠은 제대로 잤는지, 불편한 것을 없었는지, 그리고 밥은 왜 한 먹었는지, 입에 맞지 않았는지, 원하는 다른 음식은 무엇인지 등등을 확인도 안 하고 걱정하는 척이나 해?

해선은 어디에서 배짱이 생겼는지 탁자 의자에 털썩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두목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첫인사가 뭐 그래요? 그쪽이 누구인지, 왜 이런 짓 하는지 밝히는 게 순서 아니에요?”

두목의 눈이 빛난다. 놀라는 것이 아니라 흥미 있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서 조폭 하나에게 손짓을 한다.

“서동준이한테 전화해.”

조폭이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한다. 상대방이 받은 모양이다.

“나다, 인마.” 조폭이 느닷없이 소리 지르듯 말한다. “니 까시가 얘기하고 싶단다.” 그리고는 해선에게 다가온다.

서동준? 그 인간이었어? 하지만 어딘지 한 패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까시’는 뭐야?

조폭이 해선에게 핸드폰을 내민다.

“말해.”

해선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여보세요?” 해선은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말을 했다. 그리고 약간 우물쭈물하다가 다시 말을 했다. “서동준 씨? 저 장해선이에요.” 해선은 일부러 겁먹은 소리를 냈다. “저 아시죠?” 해선은 갑자기 정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조폭이 전화를 낚아챈다. 그리고 두목에게 건네주었다.

“서동준이, 나 견 회장이다. 니 여자가 너 보고 싶다고 한다. 이리로 와.”

두목이 조폭에게 다시 전화를 내밀었다.

조폭이 다시 전화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서동준. 너 혼자 와. 꼬리가 달리면 둘 다 죽는다. 너 지난번 그 당구장 알지? 명일당구장. 너 여기 없을 때 이 동네 재개발돼서 싹 다 바뀌었거든. 이 근처에 와서 전화해. 지금 와.”

그 말을 하고 조폭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감방 갔다 오더니 실력 많이 늘었어. 딸 같은 애나 데리고 다니고.”

어딘지 부러운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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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선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폭이 마지막에 한 말 때문이 아니라, 조폭 세 놈이 전화를 끊고 나서는 쟁반을 들고서 아무 말 없이 그냥 나가버린 것 때문이었다. 정말로 아무 말 없이. 게다가 해선에게는 눈도 주지 않고. 그뿐만이 아니다. 식사도 다시 갖다주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아침에 갖다준 것이라도 먹을걸. 처음에는 신사 조폭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막장 조폭들이다. 더군다나 해선이 연기까지 그럴듯하게 해줬는데.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저놈들은 해선이 서동준 애인인 줄 아는 모양이다. 그놈 말에 의하면 아버지뻘 되는 인간하고. 그런데 서동준을 부를 때 ‘서동준이’하고 말했다. 서동준과 서동준이. 그래, 서동준이가 낫겠다. 어딘지 통쾌한 느낌이 든다. 서동준이, 서동준이, 서동준이……. 재미있는데…….

그런데 서동준 그놈이 해선을 구하러 올까? 그것은 그렇고, 여기 이놈들은 왜 해선을 서동준이와 연결시켰지? 그것도 애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서동준이를 만난 것은 두 번. 합의서 건네줄 때와 미사대교 근처 커피숍에서. 그 외에는 없다. 만날 일이 없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해선은 자신이 이 사람 저 사람 뒤쫓던 생각이 났다. 상대방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인가? 저 조폭들도 그런 식으로 해선을 뒤쫓았단 말이지?

기가 막혔다. 남들 미행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사이에 해선 자신도 미행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도는구나. 사람은 자기가 한 짓은 다 되받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쳐도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들이 해선을 서동준이 애인으로 생각한 것은 기가 막힌다. 그것만은 안 된다. 해선이 여기에서 나가지 못한다 해도 그 사실만을 바로잡아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납치보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이 더 싫다. 그 끔찍한 인간. 그런데 왜 그 인간은 요즘 해선이 가는 데마다 나타나는 거야? 재수 없게.

해선은 현관문으로 가서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거의 헛발질. 다시 걷어찼다. 정통으로 맞았다. 하지만 해선의 발이 아팠다. 해선은 발을 잠시 주물렀다. 그리고 또다시 문을 걷어찼다. 또 찼다. 계속 찼다. 문이 부서져라 찼다.

현관문 차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진다.

해선은 의자를 가져와서 집어던졌다. 또 던졌다. 마구 던졌다. 의자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도 던졌다. 탁자도 번쩍 들어서 던졌다. 하지만 문에 이르지는 못했다. 컴퓨터를 번쩍 들었다. 줄이 딸려 나온다. 줄을 확 잡아뺐다. 그리고는 줄이 달린 채 문으로 집어던졌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 자판도 가져와서 던졌다. 다른 의자도 던졌다. 전화기도 줄까지 빼내서 던졌다. 냉장고를 열어서 생수병도 던졌다. 퍽! 퍽! 퍽! ……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잡아당겨 빼내서 현관으로 가져와 던졌다. 변기 수조 뚜껑도 들고 왔다. 그리고 던졌다. 와장창창. 주방의 서랍들을 빼냈다. 그리고 던졌다. TV 모니터도 번쩍 들었다. 별로 무겁지 않았다. 던졌다. 생각보다는 소리가 요란하지 않았다. 해선은 갑자기 화가 더 솟구쳐서 뭐가 더 없나 두리번거렸다. 옷걸이 행거. 그래, 그것도 번쩍 들고 와서 던졌다. 그냥 픽 하는 소리. 식탁에서 컵을 가져와 던졌다. 소리가 별로 크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나무판을 잡아당겼다.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뜯어냈다. 집어던졌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도 한 손에 잡고 멀리 현관으로 집어던졌다. 퍽! 스트라이크! 화장대 위 거울도 뜯어냈다. 잘 안 빠진다. 마구 흔들어대니 결국 떨어져 나온다. 해선은 괜히 부아가 더 나서 두 손으로 번쩍 치켜들고 던졌다. 퍼버벅.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조그만 냉장고 문을 확 젖뜨려 열고 마구 흔들어댔다. 결국 경첩 쇠가 부러져 나갔다. 해선은 그 문을 번쩍 치켜들고 현관으로 가서 집어던졌다. 냉장고 안의 칸막이도 꺼내서 마구 던졌다. 화장실 안의 조그만 유리장. 그것을 뜯어내다가 잘못해서 바닥에 떨어졌다. 유리가 산산조각난다. 해선은 화가 더 나서 욕조 위의 가로 봉과 커튼을 뜯어서 들고 나가 둘 다 확 집어던졌다. 나중엔 벽지까지 뜯어내서 내던질 기세였다. 비누도 치약도 칫솔도 던졌다. 던지는 느낌도 안 든다. 주방 뒤 찬장 문들도 다 뜯어냈다. 그리고 마구마구 던졌다. 아, 조그만 쓰레기통. 둥그런 플라스틱. 왜 이제 눈에 띈 거지? 얄미운 생각이 들어서 더 힘껏 던졌다. 그런데 소리가 별로다. 침대 옆 조그만 탁자. 그래, 그거다. 해선은 탁자를 두 손으로 번쩍 치켜들어 현관을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그때 막 현관문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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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조폭 A가 한 손으로는 얼음주머니를 눈에 갖다댄 채 난장판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었다. 조폭 B도 탁자가 문에 부딪히면서 튄 나무 파편에 이마와 볼 한쪽에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얼굴에 일회용 반창고를 덕지덕지, 그것도 색색별로, 알록달록한 기저귀 아기들 무늬가 있는 것까지 붙인 채 현관 앞에 쌓인 못 쓰게 된 것들을 밖으로 내가고 있었다. 그러나 두목은 밖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해선은 아직 하나 온전히 남아 있는 식탁 의자를 침대 앞에 끌어다 놓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팔장을 낀 채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빨리빨리 못 치우지? 플라스틱 파편 밟지 말란 말야! 잘게 부서지면 청소하기 더 어려워. 나무는 나무대로, 유리는 유리대로 따로따로 모아서 치워. 분리수거 잘 지켜. 그렇게 우왕좌왕하지 말고 쫌!

해선은 속이 터졌다.

덩치는 산만 한 인간들이 널브러진 쓰레기 하나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란!

야, 조폭 A, 네 뒤에 의자 다리 부러진 것 있잖아. 그거 왜 못 봐? 눈은 장식으로 달았어?

조폭 B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빗자루로 유리조각을 쓰레받기로 쓸어담는 데 허리가 잘 안 숙여져서 쩔쩔매고 있었다. 에그, 저 인간, 뱃살 때문에 그렇잖아. 운동 좀 해! 저것도 조폭이라고. 그리고 손에 핸드폰을 든 채 빗자루를 잡고 있으니 잘 안 쓸리는 거야. 핸드폰 없으면 못 사니? 게다가 빗자루하고 쓰레받기도 어디서 구해 왔는지 아주 작은 것, 제일 싸구려, 천냥 하우스 같은 데서 사온 장난감 같은 것을 가져왔으니 그 우람한 조폭 손에 어울리겠느냐고. 한심한 인간들.

해선은 그런 꼴들을 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해선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조폭 B에게 다가갔다.

“그거 이리 줘요!”

해선은 빗자루하고 쓰레받기를 빼앗았다. 그리고 조폭 B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그 핸드폰 좀 내려놓고 하면 안 돼요? 핸드폰 손에 쥐고 청소가 제대로 되겠어요?”

조폭 B가 깜짝 놀라며 얼른 손을 뒤로 돌려 핸드폰을 엉덩이 쪽으로 감춘다.

“핸드폰 좀 내려놓으라니까! 그거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주머니에 집어넣든지, 저기 내려놓든지 해요!”

띨띨하긴!

조폭 B가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부서진 나무판 쌓아놓은 더미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는다.

“저 안에 들어가 큰 것들부터 내와요. 저기 저쪽에 쌓아놓고 나서 작은 것들을 쓸어담아요.”

해선이 눈을 치켜뜨며 말하자 조폭 B가 눈을 피하며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해선이 현관문 쪽을 슬쩍 살펴보니 두 인간이 여전히 헤매고 있었다.

“거기 두 분, 화장실 안에 가면 유리파편들이 많은데 그것 좀 치워줘요. 나 화장실 급해요. 빨리!”

조폭 A와 B는 깜짝 놀라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해선은 그 순간 조폭 B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현관문 밖으로 뛰어나가 짧은 복도를 지나서 계단으로 달려올라갔다. 뒤따라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니 그곳은 일층인 모양이다. 조금 뛰어서 모퉁이를 돌아가니 현관문이 나온다. 대리석으로 잘 꾸며진 건물 같았다. 해선은 현관문을 열고 한 단을 내려가서 밖으로 나갔다. 조그만 마당이 있고, 그 건너에 열려진 철대문이 있었다. 마당에는 SUV 두 대 세워져 있었다. 해선은 철대문을 통해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두어 사람이 지나가다가 돌아본다. 해선은 그대로 뛰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머리가 살짝 띵해 온다. 약간 어지럽다.

아침을 먹을걸……. 괜히 후회가 되었다.

헛것이 보이나? 저 앞에서 서동준이가 보인다. 아니, 그 비슷한 얼굴이. 그럴 리가 없지. 그 인간이 여기를 왜……?

갑자기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뛰어야 해. 도망가야 해! 그러나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아.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넘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누군가가 달려와서 해선을 붙잡는다. 해선을 끌어안는다. 희미해진 눈으로 보니 서동준이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인간이 여기 올 리가 없지……. 나쁜 놈. 서동준이 너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단 말야……. 저리 가……. 꺼져…….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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