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조종(弔鐘)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리니

It tolls for thee

by Rudolf

제14장

It tolls for thee

조종(弔鐘)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리니


1


정일두는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급히 연락을 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독도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며 그 소문의 진위를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그 동료에게 답신이 왔다. 그 소문은 대체로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확실치 않은 부분이 많아서 더 조사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본 극우 쪽에서 그 문서 빼낸 인물을 추적할 조폭 앞잡이를 하나 고용했다고 한다. 또한 그 인물이 문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확인한 뒤 필요하면 제거하라고 지시했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정일두는 독도 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답신이 왔다.

그 문서의 서명에 참여한 인물들은 한국과 일본의 유력한 정치인 각각 다섯 명. 그중에서 한국인 한 사람은 사망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그 열 명은 문서에 서명할 때 어떤 조작을 했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조작은 나중에 만일의 경우 그 문서가 폭로되었을 때 발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

그리고 폐기되었던 독도 중립화에 대한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고 했다.


힣Z힣Z힣Z25-1.jpg


2


동준은 택시에서 내려 자기 오피스텔로 해선을 데리고 갔다. 휘청이는 해선을 부축해서 조심스럽게 이끌고 갔다.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서 해선을 침대에 누이고 물을 갖다주었다. 해선은 간신히 윗몸을 일으켜 잔을 받는다. 그리고 몇 모금 마시고 다시 잔을 동준에게 내밀었다. 그런 뒤 해선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동준에게 주었다.

동준은 무심코 받아들고서 해선을 바라보았다. 택시 타고 집에까지 오는 동안 그 핸드폰은 수없이 많이 울렸었다. 그러나 해선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꺼내지도 않은 것이다. 동준은 계속되는 핸드폰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받으라고 독촉하거나 왜 안 받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해선이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먹을 것 좀 주세요. 아침 굶었어요.”

동준은 사다놓은 빵과 우유를 꺼내어 갖다주며 말했다.

“병원 안 가도 돼? 너무 힘이 없어 보이는데.”

“괜찮아요. 이거 먹으면 좋아질 거예요.” 해선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동준이 탁자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 핸드폰 그놈들 거예요.”

?

동준은 탁자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들면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 전화가 10여 번 온 것이 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바탕 사진을 보니 적어도 여자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용 문신이 새겨진 팔뚝 사진이 들어 있었으니까.

동준은 핸드폰을 탁자에 다시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해선을 바라보았다. 해선 역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빵과 우유를 조금씩 먹고 있었다.

해선은 음식을 다 먹고 나자 기운이 나는지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리고는 탁자 뒤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해선은 탁자에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화면을 다시 켜서 동준에게 보여준다. 커다란 팔뚝 문신. 동준은 아무 말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다음 해선에게 가서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전화가 온다.

해선이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동준에게 와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마구 흘러나오는 욕. 해선이 인상을 찡그린다.

그러자 동준이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해선이 웃는다. 처음에는 작게. 그러더니 점차 커진다. 나중에는 낄낄거린다.

동준도 따라 웃었다. 점점 크게. 그리고 해선을 따라서 낄낄거렸다.

핸드폰이 켜진 상태로.


힣힣ㅎ31.jpg
힣힣ZZ힣힣ZZ5-1.jpg


동준과 해선은 미사대교 아래쪽에 서 있었다. 서로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은 뒤였다. 그리고 견 회장이 동준을 잡기 위해 해선을 납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놈들이 동준을 잡으려 하는 것이 단순히 동준이 한 말, 독도가 큰돈이 될 것 같다고 한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르신의 독도 문서에 또다시 의문부호가 달리게 된다.

동준은 혼란스러웠다.

어르신이 보여준 필적감정보고서. 어떻게 된 것이지? 그 방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의 업체 이름까지 언급되어 있었다. 마치 그 업계에서는 권위가 있을 듯한 업체들……. 동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필적감정보고서는 단지 동준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도 문서가 진짜라면 동준이 아니라도 언젠가 누구에 의해서라도 터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설픈 필적감정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동준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지금 동준이 아무리 생각한들 해답이 나올 리 없다. 그 방면에 대해서는 무외한이니까.그래서 일단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풀어나가자고 생각했다.

그중 하나는 오진희가 전달하고 있는 USB의 내용을 알아내는 것. 그 USB는 김상기 전무, 오진희, 205호 렉서스를 거쳐 결국 어르신에게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또 하나, 어르신이 동준을 통해서 최정명 지사장에게 전달한 봉인된 서류. 이 두 가지 일 사이의 공통점은 어르신.

하지만 USB나 그 서류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성공 가능성 높은 것은 오진희를 한 번 더 뒤쫓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그 USB를 확보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좀더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해선이 계속 오진희를 미행하면 들킬 수도 있다. 그래서 동준이 그 일을 대신 맡기로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뒤 동준이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해선에게 알려주었다.

“사실은 내가 어르신한테 간첩을 하나 보내놨어.”

“네?”

해선은 영문을 몰라 한다. 간첩이라니…….

“몰래카메라.”

해선이 눈을 크게 뜬다.

“어르신 집에 갈 때 작은 동양란 화분을 한 개 가지고 갔거든. 그것을 그 집의 자랑인 따님 사진 옆에 갖다놨지. 그 안에 몰래카메라가 들어 있다 이 말이야.”

동준은 통쾌하게 웃었다. 그 카메라는 소형 USB에 장착된 것으로서 동양란 화분 속에 감춰두었다. 화분 중간 위쪽에 마름모 모양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그 구멍을 통해 촬영되도록 카메라를 화분의 부엽토 속에 묻어놓은 것이다. 그 카메라는 최근에 러시아에서 밀수입된 것인데, 배터리 수명은 72시간이었지만 서재 내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을 때만 작동되는 것이어서 실제로는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 가능했다. 게다가 화분에 물을 주다가 카메라 방향이 틀어진다 해도 음성은 녹음되기 때문에 그것만이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 USB를 회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적당히 구실을 붙여서 그 저택에 다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반드시 그럴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때를 위해 일단 녹화부터 해놓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해선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중에는 동준도 따라 웃었다.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배를 잡고 웃었다. 허리까지 꺾이며 웃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나중에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힘이 들어 꺽꺽거렸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서 두 사람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해선이 동준을 쳐다본다. 의미가 있는 표정이다.

“왜, 뭐 할 말 있어?”

“저, 혹시……, 그 조폭들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나를 납치했다고.”

동준은 저 멀리 미사대교 건너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글쎄……. 당분간 그냥 두고 보는 게 좋겠는데. 혹 저놈들은 납치한 게 아니고 해선 씨가 자발적으로 따라왔다고 우길 수도 있거든. 그리고 기물파손이니 핸드폰 도난이니 하면서 오히려 고소하겠다고 할 수도 있고. 해선 씨 위치까지도 알아내는 놈들이니까 무슨 일을 꾸며댈지 알 수 없단 말야. 당분간 지켜보자. 나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봐야겠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런데 지금으로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저놈들은 지금 애가 달아 있다는 거야. 뭔가 급박하다는 거겠지.”

동준이 이렇게 말을 하자 해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치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불쑥 입을 연다.

“고마워요.”

뭘? 동준이 멀뚱하게 눈을 뜨고 바라보자, 해선은 자기를 구해주려고 그 집에 온 것 아니냐고 말을 한다.

“뭘 그런 거 가지고…….”

말은 이렇게 했으나 동준은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동준은 그놈들이 말한 대로 옛 명일당구장 자리에 가서 놈들에게 전화했다. 그러자 그러면 그렇지 하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자신들의 아지트를 가르쳐 주며 그리로 오라고 했다. 동준은 그리로 가기는 했지만, 실은 그 아지트 속으로 들어갈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보다는 그 주변을 탐색해 보다가 돌아가기로 하고 그 근처까지 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해선이 그 집에서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동준은 탑 속에 갇힌 공주님을 구하러 간 왕자님이 되었다. 속으로는 머쓱했지만,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다.

그러나 동준이 마침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동준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부추겼다.

험!

그것은 그렇고……,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돌계단-1.jpg


3


동준은 뉴레인보호텔 총지배인 김상기 전무가 수요일마다 가는 일식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5시쯤 되자 몇몇 신사가 들어온다. 그중 한 사람은 동준이 이미 그 호텔에 가서 얼굴을 익히고 또 해선이 카메라로 찍어놓은 사진으로 본 김 전무였다. 그 시간에는 사실 손님이 별로 없다. 어중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동준은 그 남자들을 하나하나 핸드폰으로 몰래 사진 찍었다.

그런 뒤 해선이 알려준 시간쯤 되어 동준은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나니 곧바로 정말로 한눈에 들어오는 얌전한 미인, 그러나 낮에 얼굴을 미리 확인해 놓은 여자 오진희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일식집에 들어온다.

“솔직히 장해선보단 훨 낫군…….”

동준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해선이 쏘아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동준은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꾸물거리면서 바깥을 엿보았다.

일식집에서 오진희가 먼저 나오고 곧 이어 김 전무가 뒤쫓아나온다. 그리고 USB가 건네지는 느낌.

동준은 천천히 화장실에서 나와 계단에 이르러서는 급히 내려갔다. 건물 입구에서 막 바깥으로 나서는 오진희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제 문제는 어디에서 오진희의 가방을 빼앗느냐 하는 것이다. 퇴근 무렵이라 사람이 많은 것이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된다. 잘못했다가는 강도로 붙잡혀서, 지난날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변명도 못하고 어두운 곳으로 또다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거창하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우울하게 되는 것이다.

동준은 여러 순간 망설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음을 크게 먹고 이때다 싶어 막 행동으로 옮기려는 순간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게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실 서울 시내 곳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다. 동준으로서는 그것까지도 감수하고 실행할 것인가, 아니면 CCTV 사각지대를 노릴 것인가 하는 문제도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오늘밤에 실행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저놈들도 눈에 불을 켜고 동준을 찾고 있을 테니까.

동준은 지하철역과 전동차 안에서는 결국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오진희가 전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간다. 조금 있으면 밖으로 나가게 된다. 동준은 오진희가 거의 밖으로 나갈 때쯤 달려가서 가방을 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준은 몇몇 군데 실행할 곳을 미리 점 찍어두고 그 일대를 조사해 두었다. 그중 하나가 지하철 입구다. 그 입구 바로 앞에 건물 사이로 골목이 나 있고, 그 뒤로 가면 신축건물 공사장이 있어서 여러 자재들을 쌓아놓았고, 그 바로 옆은 개천이었다. 더군다나 그 근처에는 CCTV가 없고 주택가 뒤여서 몸을 잘 숨기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다음 마스크를 꺼내어 꼈다.

오진희가 밖으로 나가는 계단 끝까지 몇 단 안 남기고 올라가고 있을 때 동준은 힘껏 달려올라갔다. 이제 서너 단만 올라가면 된다.

바로 그때 위에서 막 지하철 입구로 가까이 오던 한 여자가 ‘어머!’ 하며 오진희를 바라본다.

“얘, 너 진희지? 너 몰라보겠다.”

아차차, 동준은 얼른 오진희를 비껴서 그 옆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너 발자국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오진희는 좀 전의 여자와 함께 완전히 역 계단 위로 올라와 밖으로 나와서 동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또한 그 순간 한 떼의 젊은 여자들이 동준 앞에서 몰려오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오진희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너 오진희 맞아……?

몰라볼 뻔했다…….

약간 손댄 것 같은데 감쪽같구나…….

그 병원 어디니……?

너무 예뻐졌다…….

요즘 뭐하니……?

호텔……?

어머, 좋겠다…….

우리 모임에 나와라…….

…….

그때 갑자기 ‘강도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오토바이 하나가 쌩하고 달려간다.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뒤에 앉아 있는 녀석의 손에 여성용 큰 가방이 들려 있다.

“내 가방!”

“저놈 잡아!”

“날치기야!”

“경찰 불러!”

모여 있던 여자들이 오토바이 쪽으로 우르르 달려가며 소리지른다.

그 순간 동준은 사람들 제일 뒤쪽에 있는 오진희의 가방을 낚아채고 골목으로 뛰어든다. “강도야! 내 가방!” 하고 오진희가 비명을 지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와 겹쳐져 그 소리가 그 소리인 줄 알고 아무도 오진희 쪽은 돌아보지 않는다.

동준은 이렇듯 완벽한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그러나 동준은 이런 상황을 진행하려는 순간 얼른 멈췄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것이었지만 정말로 꼭 남의 사생활이 다 들어 있는 가방까지 빼앗아 가며 이 짓을 해야 하는가 하는, 실로 오랜만에 인성 바른 생각을 한 것이었다.

동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펄펄 뛰며 소리지르고 있는 여자들 옆을 지나 걸어갔다. 머리를 푹 숙인 채. 그리고 어차피 오진희가 가는 방향을 알기 때문에 먼저 그 근처에 가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처음부터 가방을 빼앗기로 계획했으면서도 이렇게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 어쩌자는 건지…….


IMG_7073 (2).jpg


동준은 미리 답사해 놓은 그 건물 주변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능한 한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동준이 잠시 서성이고 있는데 저쪽에서 오진희의 모습이 나타났다.

동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동준 자신은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오진희는 그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동준은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쫓아갔다. 동준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오진희는 막 계단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동준은 주변을 살피며 건물로 들어가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진희는 보이지 않았다.

동준이 205호를 지나 화장실 앞에서 잠시 서성이는데 누가 뒤에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머리가 헝클어지고 몸집이 좋은 나이 많은 남자가 급한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거의 달리듯이.

남자는 동준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지 눈도 주지 않고 서둘러 들어간다. 그리고 화장실 한 칸으로 급히 들어가더니 문이 닫히자마자 요란한 소리가 난다. 이어서 퍼지듯 흘러나오는 고약한 냄새. 동준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205호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난다. 뒤이어 들려오는 남녀의 목소리.

“언제 한잔해요.”

“네. 수고하세요.”

그런 다음 두 가지 발자국 소리. 하나는 가벼우면서도 살며시, 그리고 멀어져 가는 소리. 또 하나는 약간 묵직하면서도 급한, 그리고 동준 쪽으로 가까워 오는 소리.

동준은 급히 몸을 돌려 화장실 한 칸으로 후다닥 뛰어들었다. 하필이면 남아 있는 두 칸 중에서 바로 그 소화불량 옆 칸으로.

이게 그 냄새……?

아이고오. 해선이 이걸 두 번이나 맡았단 말이지?

그러자 곧바로 옆 칸의 문이 열리고 사람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동준은 얼른 화장실 칸에서 나갔다. 코를 막을 새도 없었다. 빨리 도망가야 했기 때문에.

동준이 화장실 밖으로 막 뛰쳐나가는데…….

어?

205호 문이 꼭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

동준은 얼른 주변을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문을 살짝 밀었다.

열린다.

그리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 가까운 책상 위에 조그만 가죽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윗부분이 가는 끈으로 묶여 있는 채. 동준은 순식간에 그것을 낚아채고서 얼른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문을 원래대로 살짝 닫아놓고는 뛰듯이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 다음에는 평범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 건물을 나섰다.


[다음 화로 계속]

이전 13화제13장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