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 4 | 지붕 위에서 거리를 내려다본다
1
석 경위는 본청에서 온 새빨간색 오토바이에 대한 정보를 보고서 머리를 갸웃했다. 오토바이 주인은 얼마 전 캐나다에서 들어온 남성이었는데 아무런 전과도 사고도 없었다. 이름은 로버트 강. 직업은 초등학교 임시 영어교사. 캐나다 시민권자.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초등학교 영어교사. 그것도 외사촌 여동생이 근무하는 미연초등학교였다. 그리고 정황상 로버트 강이 미행했던 여자 역시 그 학교 교사일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그 여자는 현희와 함께 있었다. 석 경위가 살펴본 바로는 꽤 얌전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그리고 현희와 아주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 둘이서 함께 다정히 걸어갔었던 것으로 보아.
석 경위는 잠시 생각했다. 현희에게 연락해서 그 남자를 조심하라고 할까……? 그렇게 되면 자신이 두 사람을 본 것도 알려야 한다. 그러면 좀 이상하게 되겠지. 미행한 것이 되니까. 그래서 당분간은 알리지 않고 로버트 강을 지켜보기로 했다.
석 경위는 미연초등학교로 직접 찾아가 현희를 만나보고, 그녀의 친구와 로버트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다음날 석 경위는 출근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살핀 뒤 현희의 학교로 갔다. 유학 가기 전부터 타다가 1년간 지하주차장에 세워놓았던 낡은 승용차를 몰고서. 석 경위는 학교 근처의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커피숍에 들어가 현희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학교 근처에 와 있는데 점심 같이 할 수 있을까?
15분 뒤에 현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쁠 텐데 여기엔 어떻게 왔어?”
“응, 이 근처에서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생각나서…….”
“학교로 와. 여기 점심 맛있어. 미국생활을 하다가 왔는데 싸구려 학교 음식이 입맛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무슨 말을. 학교로 갈게.”
“경비실에 와서 전화해.”
이렇게 해서 석 경위는 미연초등학교 교무실로 가게 되었다. 아주 깔끔하고 현대식으로 디자인이 된 교무실. 석 경위가 초등학교 다닐 때와는 사뭇 달랐다. 학교라는 느낌의 고리타분한 환경이 아니라 마치 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교무실 안에 싱크대도 마련되어 있고, 실내가 파스텔 톤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아늑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다. 세상은 변해 가는데 석 경위가 근무하는 경찰서만은 시대에 뒤쳐져 가는 느낌이다.
현희가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한다.
“오빠, 여기야.”
석 경위가 현희 쪽으로 다가가는데 현희의 눈이 석 경위 뒤쪽으로 향한다.
“마침 잘됐다.”
현희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한다.
석 경위는 현희의 눈을 좇아 뒤를 돌아다보았다. 막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한 사람은 여자, 또 한 사람은 남자. 여자는 어젯밤 현희와 함께 걸어갔었던 그 사람이 거의 틀림없다. 그리고 그 옆은 서글서글한 눈에 멋지게 생긴 남자. 그런데 남자의 손에 검은 오토바이 헬멧이 목 끈에 매달린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위가 모두 새카만 가죽재킷.
본능일까? 석 경위는 어젯밤 검은 헬멧과 가죽재킷을 입었던 오토바이 사내가 떠올랐다.
“우리 외사촌 오빠야.”
현희가 석 경위 옆으로 오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아, 경찰이신 분?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유학 갔다 오셨다고요?”
“아, 예…….”
“참, 이분은 제 외사촌 오빠예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막 돌아왔어요.”
현희가 가죽점퍼 남자에게 석 경위를 소개한다.
“이번에 새로 오신 우리 학교 영어선생님. 캐나다에서 오셨어.”
“아, 반갑습니다. 석진우라고 합니다.”
“오, 저는 로버트 강이라고 합니다. 경찰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해서 네 사람은 어울렸다. 석 경위가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말에 로버트는 꽤나 친밀감을 느끼는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면서 두 사람은 금방 친한 사이처럼 변했다.
네 사람은 떠들썩하게 어울리며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주로 현희와 로버트였다.
로버트는 석진우가 경찰이라는 데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것에 대해서도.
“캐나다에는 가보셨습니까? 경치 좋은 곳이 많은데.”
“몇 번 가보기는 했습니다만…….”
“공부하시느라 바쁘셨겠습니다.”
“뭐 그냥…….”
“오빠, 내가 탁 터놓고 얘기할게.”
그 말에 석 경위는 현희를 돌아다보았다.
“여기 이 선생님 이름은 채이슬. 이름 이쁘지? 내가 오빠한테 소개시켜 주려고 한 선생님이야.”
“얘는…….”
채 선생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면서 당황해한다.
“어제도 내가 얘기했잖아. 오늘 아주 잘 됐어. 어때? 솔직하게 말해.”
채 선생이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또 한 손은 앞으로 내밀면서 휘젓는다.
“아이, 선생님…….”
석 경위도 머쓱해져서 채 선생의 얼굴을 피하면서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로버트의 얼굴을 보았다. 미소 짓고 있는 모습. 재미있다는 표정.
그러나 그 눈에서는 묘한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석 경위는 로버트가 눈치 챌 것 같아서 얼른 얼굴을 돌리다가 채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부끄럼이 가득한 눈. 석 경위도 어색해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현희의 얼굴과 맞닥뜨렸다. 짓궂은 표정. 재미있어 죽겠다는 눈빛.
2
로버트 강. 한국명 강인석. 어떤 사람일까? 캐나다 오타와에 사는 교포. 어릴 때 이민 갔다고 하는데 한국어가 조금도 서툴지 않았다. 완벽한 한국인에다 완벽한 캐나다인. 한국어와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
석 경위는 이해하기 힘든 핑계를 대고 학교 뒤쪽 주차장으로 가서 얼른 빨간색 오토바이를 확인했다. 어젯밤에 본 바로 그 오토바이. 번호도 똑같았다. 물론 그 전에 이미 경찰 조회를 통해 로버트 강이라는 이름을 확인했지만 한 번 더 확실히 생각을 굳히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만 가지고는 로버트 강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채 선생에게 알려줄까? 그렇지만 로버트가 아직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닌데 남의 사생활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다.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쫓아다닐 수도 있잖은가. 그런 거 다 막으면 이 세상에 로맨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아직은 아니다. 좀더 지켜본 뒤에 스토커 가능성이 있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석 경위가 본청으로 돌아가기 위해 현희와 함께 본관을 나서는데 채 선생이 지나가다가 마주쳤다.
“어머, 가시게요?”
“제가 와서 방해만 했습니다.”
“아녜요. 자주 오세요. 그런데 경찰이시면 혹 여기 와서 가끔 안전교육 같은 거 해주셔도 되는 거 아닌가?”
채 선생이 현희를 보며 묻는다.
“그것도 가능하지.”
“오빠 생각은 어때?”
“이 근처에도 경찰이 많을 텐데.”
“건방지셔졌네. 애들하곤 안 놀아?”
“아니, 그게 아니고…….”
“실은 우리 반 애들이 좀 이상한 짓을 하는 것 같아요.”
“니네 반 애들은 원래부터 그래.”
“그건 잘 알고 있지만, 이상한 소문이 있어.”
“신경 꺼. 애들이야 원래 그래.”
“그래도 애들이 단체로 강도짓을 꾸민다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
“사람만 안 죽이면 됩니다.” 석 경위는 채 선생을 돌아다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때도 어렸을 때 별별 음모 다 꾸몄어요. 그땐 그게 재미였는데…….”
“오빠, 우리 집에 한번 안 올래? 아빠가 오빠 얘기 여러 번 했어.”
“다음 주에 한번 전화하고 갈게.”
석 경위는 본관의 현관 앞에서 한 손을 들어 보이고는 돌아섰다. 뒤에서는 두 여선생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리듯 말을 한다.
“무슨 강도를 하는 건데?”
“보석강도래 글쎄. 이번에 열리는 태국 코끼리…….”
석 경위는 얼른 몸을 돌리고서 물었다.
“3학년 2반인가요?”
3
석 경위는 자신이 그 편지를 받았다고 말하고서 채이슬 선생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러나 채 선생은 소문만 들은 것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물론 누가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본청에 요청하여 석 경위의 핸드폰으로 보내준 편지의 사진을 채 선생에게 보여주었는데, 컴퓨터로 타이핑된 간단한 내용이어서 그 문투만 가지고는 누구인지 짐작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혹시 우리 선생님 중 누군가가 보낸 것은 아니겠지?”
옆에서 현희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물어볼까요?”
“아직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잘못했다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어요. 괜히 아이들을 의심한다고. 그 편지를 꼭 아이들이 보냈다고 할 수도 없거든요.”
“그냥 장난편지일 테니까…….”
“제가 교장선생님을 만나봬도 될까요?”
“그게 좋겠어요.”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교장실로 향했다.
교장실 바로 앞으로 가니 마침 문이 열린다. 그리고 뜻밖에도 로버트 선생이 나오는 것이었다. 뭐 뜻밖이랄 것도 없다. 교장실에야 어느 선생님이든 갈 수 있으니까.
“아직 안 가셨군요?”
로버트 선생이 석 경위를 쳐다보며 말한다.
내가 얼른 사라져 주길 바랐나……. 석 경위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교장선생님 안에 계세요?” 얼른 현희가 끼어들며 물었다.
“네. 계십니다. 들어가 보세요.” 로버트는 몸을 돌려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 안에다 대고 말한다. “손님들이 오셨네요.”
이렇게 말하며 로버트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 편지를 우리 학생들이 보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나요?”
교장이 석 경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뇨. 제 말뜻은 그게 아니고…….”
“누가 장난으로 편지 보낸 것일 수도 있고, 또 애들이 장난삼아 한 보석강도 얘기가 그 반에서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고, 그러면 우리 학교 말고 다른 곳에서도 그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거 아녜요? 게다가 장난편지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보석을 아이들이 정말로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진짜 보석강도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게다가 그 전람회의 경비가 그렇게 허술한가요? 훔치겠다고 마음먹으면 애들이든 누구든 아무나 훔칠 수 있는 겁니까?”
“아니, 제 말은…….”
“두 선생님도 그래요. 이런 일로 경찰까지 동원해서 아이들을 수사하겠다고 나한테까지 온 거 그거 정상이에요?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지면 학부형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우리 학교가 강도소굴입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수사하려면 정식으로 영장 가져오세요.”
교장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은 책상으로 돌아가 앉는다. 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두 여 선생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교장실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두 분은 일단 수업에 들어가십시오. 교장선생님 말대로 다른 반 애들이 장난으로 편지를 보낸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애들이 보석강도를 모의했다고 하더라도 별 의미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재미삼아 그럴 수 있으니까.”
석 경위는 이렇게 말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말끝을 흐리면서.
“어쩌면 보석강도가 낭만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석 경위는 두 사람을 달래서 수업에 들어가게 하고는 학교에서 나왔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희나 채이슬 선생에게 공연히 부담만 준 것 같았다. 사실 교장의 말이 맞다. 그 보석은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훔치고 싶다고 해서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보석강도 공상을 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모두 의심한다면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을 수사해야 할 것이다. 그 코끼리 보석은 누구라도 욕심낼 만하니까.
그런데도 그런 편지를 정말로 보내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이다. 공상이나 상상 또는 장난 수준이야 즐겁고 신나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경찰에 제보한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도 더 중요한 사항, 즉 이 제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서 끝내고 신경 꺼야 하는 것일까? 그보다는 로버트가 채 선생 뒤쫓는 것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 참……. 어찌 보면 그 두 가지 모두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편지 일이야 장난으로 치면 되고, 로버트는 청춘남녀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니까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경찰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둘 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경찰로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각종 범죄. 예방은커녕 이미 벌어진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기도 벅찬 상태다. 이런 환경에서 어떤 일에 먼저 집중해야 하는지는 뻔한 것이다. 별일 아닌 일에 끼어들어서 괜히 두 여자 선생님들만 난처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 같아서 석 경위는 입맛이 씁쓰름했다.
석 경위가 교문을 나서서 공영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쪽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뒤돌아보자 새빨간색 오토바이와 검은 재킷, 검은 헬멧.
오토바이는 석 경위 옆을 지나쳐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굉음을 울리면서. 과속. 이곳 경찰에 연락을 할까……?
석 경위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오토바이는 멀어져 가더니 건물들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4
보석 코끼리 전람회는 연일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언론에서도 이 전람회를 집중해서 보도하고 있었고, 특히 방송국마다 보석에 대한 프로그램을 앞 다투어 내보내서 대한민국은 보석, 그중에서도 사파이어에 취해 있었다. 그 바람에 모든 상품에 사파이어 블루가 기본 색상이 되었으며, 보석도 사파이어에 갑자기 수요가 몰리자 가격까지 들먹이게 되고 말았다.
석 경위는 평소에도 블루의 색상이 신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깊은 바다 속 같은 블루. 맑은 날 하늘 꼭대기 같은 느낌의 블루. 미국에서 공부할 때 석 경위는 유리제품 박람회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석 경위의 눈과 마음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것은 짙푸른색의 작품들이었다. 오색찬란한 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중에서 오직 푸른색 제품들만 눈에 들어온 것이다. 푸른색들이 풍기는 신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나 한없이 멀고 먼 우주 같은 느낌에 석 경위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아마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신비의 동굴을 들여다보는 듯한 것. 황홀감. 신비감.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그 느낌은 가시지 않았었다.
어쩌면 석 경위처럼 사파이어 블루에 빠져든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호숫가나 바닷가 바위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사파이어 블루는 사람을 현혹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 탓인지 덕인지 석 경위는 보석에 대한 서적을 꽤 많이 사들였다. 그중에서 2016년 영국의 펭귄 랜덤 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에서 출간된 《GEM(보석)》이라는 도감은 석 경위가 가장 아끼는 책이 되었다. 석 경위는 그 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책을 참조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네 가지 보석의 분류에 대한 것이다.
[카테고리 1] 불순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순수형. 이들 보석은 매우 투명하다. 보석상이나 수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보석이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 다이아몬드(diamond). 다이아몬드는 전 세계에서 채굴된 원석 중 30퍼센트만 보석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 모거나이트(morganite). 장밋빛이 감도는 녹주석(綠柱石).
‒ 아콰마린(aquamarine). 남옥(藍玉)이라고도 불린다.
‒ 연수정(煙水晶, smoky quartz). 은은한 검은빛을 띠고 있다.
‒ 지르콘(zircon). 푸른빛이 나는 종류.
‒ 쿤자이트(kunzite). 핑크빛과 보랏빛이 기묘하게 섞여 있다.
‒ 크리소베릴(chrysoberyl) 중 노란빛과 초록빛이 나는 종류. 금록석(金綠石) 또는 알렉산더 보석이라고도 불린다.
‒ 탄자나이트(tanzanite).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보석 중에 속하며 탄자니아에서 발견되었다.
‒ 투르말린(tourmaline) 중 초록빛을 띤 종류. 전기석(電氣石)이라고 불린다.
‒ 헬리오도르(heliodor). 황록빛의 준보석이며, 녹주석(綠柱石)이나 골든 베릴(golden beryl)로도 불린다.
‒ 히데나이트(hiddenite). 초록빛을 띤 준보석의 일종.
[카테고리 2] 맨눈으로도 약간의 불순물이 보이는 종류. 그러나 그로 인해 보석의 가치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보석으로 사용될 때는 표면 처리를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 가넷(garnet). 석류석(石榴石)이라고도 한다.
‒ 루비(ruby). 홍옥(紅玉)이라 불린다.
‒ 사파이어(sapphire). 청옥(靑玉)이라 불린다.
‒ 아이올라이트(iolite). 보랏빛이 난다.
‒ 안달루사이트(andalusite). 홍주석(紅柱石)이라 불린다.
‒ 알렉산더 보석(alexandrite). 짙은 초록빛을 띠고 있다.
‒ 자수정(紫水晶, amethyst), 황수정(黃水晶, citrine) 및 자황수정(紫黃水晶, ametrine). 이들은 준보석에 해당한다.
‒ 지르콘(zircon) 중 푸른빛을 제외한 모든 종류.
‒ 투르말린(tourmaline) 중 붉은빛이나 푸른빛 또는 수박빛을 제외한 모든 종류. 이들은 준보석이며, 전기석(電氣石)이라고도 한다.
‒ 페리도트(peridot). 감람석(橄欖石)이라고 불린다.
[카테고리 3] 여기에는 불순물이나 기타 결함이 들어가 있는 모든 보석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가공하면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보석으로 인정받는다.
‒ 레드 베릴(red beryl). 녹주석의 변형이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석. 가격이 다이아몬드의 1만 배라고도 한다. (정말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 에메랄드(emerald).
‒ 토르말린(tourmaline) 중 수박빛과 붉은빛이 나는 종류.
사파이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04캐럿의 ‘스튜어트 사파이어(Stuart Sapphire)’인 모양이다. 이는 스코틀랜드 왕가에서 몇백 년 동안 내려온 보석으로서, 1603~1741년 동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치한 스튜어트 왕가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왕관의 앞쪽 아래 두 줄의 진주 사이에 그 사파이어가 장식되어 있다. 이밖에 1959년에 제작된 비스마르크 목걸이에 98.57캐럿짜리 사파이어가 장식되어 있으며, 스리랑카에서 발견된 422.99캐럿짜리 사파이어로 만든 로건(Logan) 사파이어, 16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흉배에 부착시켰던 십자가 예수상이 조각된 사파이어 십자가, 1950년대 사파이어의 인기가 한창 치솟았을 때 제작된 152.35캐럿짜리 브로치, 331개의 각종 색깔의 사파이어로 장식한 나비 브로치, 노란빛 사파이어가 들어간 파리 누벨 바그(Paris Nouvelle Vague) 팔찌, 1920년대에 제작된 터번 풍의 사파이어 목걸이, 32캐럿짜리 오팔 공작새 브로치 장식 아래에 주렁주렁 매달린 보석들 속에 들어가 있는 사파이어, 카르티에 파리 누벨 바그 반지 속에 장식된 사파이어, 1940년에 제작된 96.5×95.9mm, 즉 사방 10cm가량 되는, 1940년에 제작된 공작새 모양의 카르티에 플라밍고 브로치를 화려하게 수놓은 사파이어, 핑크 사파이어로 귀엽게 장식한 카르티에 귀걸이, 카르티에 동물 브로치 시리즈 중 도마뱀 몸통을 수놓은 큼직한 사파이어들, 아르누보 시대 알폰스 무하의 보석 콜렉션 중에서 발견되는 많은 사파이어 장신구들……. 그리고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있는 99m짜리 셰다곤 황금 탑 꼭대기에는 5,448개의 다이아몬드와 루비와 사파이어를 비롯한 2,317개의 보석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1,065개의 황금 종이 매달려 있고 그 꼭대기는 7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큰 사파이어는 2015년 스리랑카 라트나푸라(Ratnapura)에서 발견된 블루스타 사파이어이며, 그 이름은 ‘아담의 별’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가장 큰 사파이어는 1907년 발견된 466캐럿의 ‘동양의 푸른 거인(Blue Giant of the Orient)’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코끼리 사파이어 중에서는 독일 드레스덴의 한 보석 전시실에 진열된 ‘델리의 왕가(王家)’라는 제목의 미니어처에 장시된 것이 가장 컸다고 한다. 58×142×114cm의 이 모형은 인도 무굴제국의 아우란그제브(Aurangzeb) 대제(大帝)의 생신 축하연을 묘사한 것으로서 그 안에는 3천 점이 넘는 보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사파이어 한 개를 비롯해서 무려 5,643개의 각종 보석이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현재 391개는 분실되어 사라지고 없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모든 보물들을 사진으로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글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 양해 바란다.)
석 경위는 경찰의 크고 작은 업무에 시달리느라 약간 지쳐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채 선생을 오토바이로 뒤쫓은 로버트와 보석강도 편지 일은 석 경위 머릿속에서 늘 떠나지 않았다. 그 두 가지 일이 서로 직접 연관되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현희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로버트도 3학년 2반 아이들과 함께 그 보석강도를 함께 모의(?)했다는 것을 알고서 로버트에게 묘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영어선생님이, 물론 장난이겠지만 보석강도를 모의한다는 것, 사실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고 생각되면서도. 사실 석 경위는 자신도 그 일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아이들이 은행을 터는 것보다도 보석을 훔친다고 하니 꽤나 낭만적인 느낌까지 드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간 것처럼. 그런데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에게는 알리지 않고 캐나다에서 온 미남 영어선생님과 강도를 공모했다. 왜 그랬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담임이 먼저 아닐까? 혹 담임이 알면 야단맞을 것 같아서 그런 걸까?
3학년 2반 아이들, 영어선생님인 로버트. 이들이 보석강도를 모의했다. 누가 먼저 제안했을까? 그리고 이들 말고 또 누가 그 사실을 알까? 일단 그들 중에 배신자가 적어도 하나는 있는 셈이다. 담임이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경찰도 알게 되었고. 물론 경찰에 보낸 제보 편지를 통해서. 그렇다면 지금쯤 그 음모는 어쩌면 그 학교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시들한 비밀.
그런데 왜 편지를 보냈을까? 장난이든 아니든 말이다. 실현 가능성 없는 음모. 공공연한 비밀.
고발인가? 배신? 혹시 보복?
보복이라……. 정말 그렇다면 배신감이 우선될 것이다. 무엇을 배신했을까? 또 어쩌면 실망감이 배신감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 그럼 무엇에 실망했을까?
실망이라면 기대감이 먼저다. 어떤 사람에게 바라는 마음, 그것이 무너진 것이다. 이 경우 무엇을 바란 것일까?
생각은 한없이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러나 이쯤에서 석 경위는 그 편지는 아이가 썼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어른이라면 보석강도가 얼마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인지 잘 안다. 물론 아이들도 그럴 테지. 하지만 아이들은 실현 가능성보다 상상력을 더 원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성 없는 현실에서 동화적 현실을 찾고자 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무너졌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어떻게 할까? 포기할까? 잊어버릴까?
아니면 보복……? 또는 고자질…….
어쩌면 그 아이는 보석강도 음모에 가장 적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실현 가능성이 있든 아니면 상상적 만족만을 위한 것이었든. 따라서 그것이 무너졌을 때 그 실망감과 상실감이 가장 컸을 것이다. 그리고 배신감도.
배신감?
누가 배신한 거지? 대개의 경우 가장 큰 배신감은 가장 많이 의지한 사람한테서 온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가장 크게 기대한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 부모? 아니지. 부모는 그런 이야기 자체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해!’ 이런 핀잔이나 듣게 되겠지. 그리고 그런 것을 배신감으로까지 연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가능성이 조금 있기는 하다. 하지만 친구에게 보복하기 위해 투서를 해? 초등학생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면 초등학교 아이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굴까? 그것도 학교에서.
선 생 님.
당연하겠지.
그런데 채이슬 선생은 보석강도 이야기를 소문으로만 들었다고 한다. 아이들하고 제대로 소통이 안 된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보석 음모에서는. 이 점은 이해가 갈 듯하다. 아이들에게 담임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먼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일에서는.
그렇다면 아이들이 담임 대신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은?
다른 반 선생님?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담임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신한 것이 된다. 요즘 아이들 그 정도는 판단을 할 것이다. 얼마나 영악한데. 그보다는 소속감 없고 자신들과 깊은 관계도 아니지만 아이들이 호기심 느낄 만한 다른 선생님이 있을까?
동료의식도 느끼고 신선감도 지닌 사람.
그러면서도 전혀 부담감 없는 사람.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람.
그래,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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