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도둑과 낭만도둑 (5/10)

음모 5 | 골목길 바람 지나가는 소리

by Rudolf

음모 5 | 골목길 바람 지나가는 소리



1


드디어 전람회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석 경위는 그동안 현희 학교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틈이 없었다. 특히 태국 경비팀에서 석 경위에게 마지막 날 경매 현장에 참관해 달라는 요청을 해오기도 해서, 그 일을 위해 경찰 윗선이나 태국 담당자들과 여러 차례 만나 상의도 하고 현장도 여러 번 둘러보고 하는 바람에 일 자체보다도 마음이 더 바빴다. 하지만 경매 당일 석 경위가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전체적인 보안 문제는 석 경위와는 상관없다. 자신은 오직 경매 현장에 참관하는 일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사실은 좀 형식적이다. 경매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참관자와 TV 카메라나 감시 카메라가 둘러싼 가운데 석 경위는 그저 형식적으로 참여해서 우두커니 지켜보는 역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현장에는 태국 경비팀은 물론 한국 경비업체와 경찰까지 진을 치고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석 경위는 그 일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마음이 안정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본청의 일도 정신없이 바쁘기는 했어도 모두 자질구레한 것들뿐이고 특별히 석 경위를 힘들게 하는 일은 없었다.

석 경위는 그런 중에도 가끔 현희에게 전화를 했다. 채 선생 반 아이들의 일로 본의 아니게 공통화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로버트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로버트가 여전히 채 선생을 미행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그것 말고도 석 경위는 로버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여럿 있었다. 그 오토바이. 두카티 스크램블러 아이콘. 많이 알려진 종류는 아니지만 오토바이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평이 아주 좋은 편이다. 게다가 두카티는 최근에 한국의 여러 대도시에 대리점이 생겨나면서 점점 인지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 두카티를 한번 타면 계속 타게 된다는 말이 있다. 로버트도 아마 캐나다나 미국에서 두카티를 탔을 가능성이 많다. 아직 캐나다에 로버트의 전과를 조회해 보지는 않았으나, 한국에 와서 임시이긴 하지만 영어교사를 하게 된 사실을 보면 그 부분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로버트가 채 선생을 미행하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석 경위는 그를 그냥 멋진 청년으로만 여겼을 것이다. 한국 태생이면서도 외모에 어딘지 이국적인 면이 느껴지며 한눈에도 호감이 가는 인상이기 때문이다. 성격도 시원시원한 것 같고. 아마도 이런 부분 때문에 3학년 2반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로버트와 가까워지면서 보석강도 음모를 공유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반 아이 중 하나가 어떤 이유로 로버트와 틀어지게 된다. 그 아이는 아마도 리더급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음모는 처음부터 그 아이의 입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혹 뒤에서 누군가가 은근슬쩍 주입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또한 그 아이가 로버트와 틀어진 이유는 바로 그 아이 하나만 알고 있는 일 때문일 것이다. 반 아이들이나 담임, 심지어 로버트 자신도 모르는 것.

석 경위는 현희에게 이것저것 조심스럽게 물은 결과 3학년 2반 반장이 송민지인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더 이상 나갔다간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학교 사찰이니 인권침해니 하면서.

하지만 석 경위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로버트와 송민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다른 방법이라……. 어떤 방법?



2


때마침 현희에게서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썩 즐겁지 않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직장생활에서 늘 있는 것이겠지만, 지난번 석 경위가 학교에 다녀간 이후 현희 자신뿐만 아니라 채 선생도 교장과 아주 불편하게 되었다고 하소연한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석 경위가 학교에 찾아온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말 안 해도 뻔한 것이지만.

“내가 오늘 점심 살게. 학교 근처로 갈 테니까 나올 수 있겠어? 채 선생님하고 같이.”

석 경위는 오늘 코끼리 보석 경매에 참관인으로 참석해야 하지만 오후 3시까지만 가면 되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했다.

“알았어. 말해 볼게.”

“음식점 좋은 곳 찾아서 알려줘. 카톡으로 주소 보내.”

“OK.”

본청 내에서는 석 경위가 보석경매에 참관인이 된 것이 무슨 큰 명예나 되는 것처럼 축하해 주었다.

“좋겠어, 석 경위. 그거 아무나 못 해. 평생 그런 데 가보기도 힘들걸.”

“그 보석 아예 석 경위가 사지 그래.”

“방송 한번 타면 여기저기에서 전화 올걸.”

“유명인사 되는 거지.”

“앞으로 얼굴 보기 힘들겠네.”

“그런 보석 평생 가까이에서 보기도 힘들 텐데, 석 경위는 복 터졌네.”

“내가 대신 가면 안 될까? 석 경위가 저번 날 터진 상계동 사건에 급히 투입되었다고 핑계 대고서.”

“왜? 거기 가서 보석 하나 슬쩍하시게?”

“글쎄……. 내가 그럴 실력 되려나……. 석 경위 정도면 몰라도.”

“어이, 석 경위, 내 거도 하나 좀 부탁해. 큼직한 건 과장님 드리고, 난 아주 요만한 거면 돼. 마누라한테 아직 보석 반지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했어. 이번 기회에…….”

“경찰 마누라가 보석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의심받아요.”

“주렁주렁 소리 한다. 우리 집은 고드름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인간아.”

“고드름이 아니라 거미줄이겠지.”

“고드름이나 거미줄이나 모두 많기만 해라. 빈 주머니 대신.”

“석 경위님, 전화 왔어요.”

석 경위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전람회에서 일하는 경찰 동료에게서 온 것이었다. 석 경위는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무슨 일이긴. 오늘 여기 오는 거 맞지?”

“왜? 안 갔으면 좋겠나?”

“사람……. 아무튼 늦지 않게 와.”

“거 보석 지키는 일 되게 신경 쓰이게 하네.”

“보석 지키는 일은 우리가 해. 자네는 경매 참관인일 뿐이야. 부담 갖지 마. 보석이 도난당해도 우리 책임이니까. 아니, 태국 경비팀 책임이지. 우리는 그냥 외곽에서 지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어.”

“그런데 보석에 대해서는 좀 아나?”

“내 처지에 무슨 보석을…….”

“오늘 보석 감정가도 세 사람이 온다나 보이.”

“그런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인가 봐.”

“…….”

“내 말 듣고 있어?”

“말해.”

“왜? 보석에 관심 없어?"

“많지. 무지무지.”

“그런데 왜 그렇게 시들해?”

“그림의 떡이지 뭐.”

“참, 그 편지사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편지?”

“보석강도 제보가 들어왔다고 했잖아.”

“장난편지지 뭐.”

“아무튼 조심해.”

“…….”

싱거운 전화. 괜히 우울해진다. 늘 그늘에서 일해야 하는 석 경위 자신. 어떤 경우든 남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여러 면에서. 그런데 원치 않게도 보석경매 참관인이 되었다. 천재일우의 기회일까……? 하긴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별별 짓을 다한들 이처럼 더 좋은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까? 복이 굴러들어온 것이다. 이 보석박람회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렇게 큰 보석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꿈에나 가능한 일처럼 여겨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제보편지 또는 장난편지 덕분이다. 천운이지. 어떤 종류의 천운인진 모르겠지만.



아, 그 편지.

그 편지는 왜 보낸 걸까? 민지라는 애가 보낸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 같다. 그것도 홧김에. 그런데 왜 화가 났을까?

석 경위는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로버트도.

로버트 강. 정체가 뭘까? 경찰로서 석 경위의 직감에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무언지 모르지만 석 경위와는 가장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같이 여겨지는 것이었다. 아무튼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이리저리 피하고 피해서 갔는데 결국 그곳인 거. 아무런 생각 없이 갔는데도 마지막 도달한 곳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도 모의를 해서 마지막에는 큰 파국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하필 그곳에, 하필 그 일이, 하필 그 사건이 일어나서 마지막에 일이 틀어지는 것.

석 경위는 불안했다.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자신의 외사촌 여동생이 그 학교에 근무하는 것. 그 애 친구가 3학년 2반 담임인 것. 그 편지가 석 경위의 부서로 배달된 것. 그것도 하필 유학을 마치고 첫 출근을 한 날. 게다가 그 학교에 갔다가 로버트를 만난 것. 또한 로버트는 석 경위보다 먼저 그 학교에 와 있었는데, 그것도 운명에 의해서 석 경위와 마주치도록 되어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석 경위가 보석경매 참관인이 된 것도. 그리고 로버트가 채 선생을 미행한 것을 목격한 사실까지도. 아 참, 그뿐만 아니라 로버트가 두카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까지도. 석 경위 역시 미국에 가서 그 두카티를 처음 보고서 흔히 하는 말대로 필이 꽂혔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연의 일치? 우연이 계속 겹치면 필연이 된다던데……. 운명이 되는 거지.

운명? 그럼 그 끝은?

아,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 로버트는 빨간색 두카티를 타고 다닌다. 석 경위는 빨간색을 싫어하는데, 로버트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완전한 일치는 아니란 말이 될 수도 있다. 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일 테지만.

이렇게 영양가 없는 생각에 잠기면서 석 경위는 현희가 보내준 식당 주소로 찾아갔다.

막상 그곳에 도착해 보니 점심 먹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아주 고급 레스토랑이었던 것이다. 하급경찰 신분에 이런 데 드나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괜히 오해받는다.

석 경위는 약간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입구 카운터로 갔다.

“문현희라는 분이 예약했다고 하는데…….”

“잠시만요……. 아, 예, 여기 있네요.”

카운터 직원은 한 남자를 부른다. 꽤 나이가 지긋한 것으로 보아 혹 지배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남자는 서글서글한 눈매로 석 경위를 맞는다. 그를 따라서 넓은 홀 안쪽으로 들어가자 별실이 나오는데 남자는 그중 하나로 안내했다. 그리고 남자는 문을 살짝 노크하고서 살며시 연다. 그런 뒤 석 경위에게 들어가라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석 경위가 남자한테 살짝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현희는 없고 채 선생만 혼자 앉아 있다가 살며시 일어선다.

“현희는……?”

“여기에 같이 왔었는데, 학교에 가서 할 일이 있다고 하며 돌아갔어요.”

“그럼 언제 옵니까?”

“급한 일이 있어서 못 온대요. 방금 그렇게 문자가 왔네요.”

채 선생이 볼이 조금 발그레해지며 변명하듯이 말을 한다.

석 경위는 좀 멋쩍었지만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의식해서 아무 의미 없는 듯이 한마디 했다.

“로버트 선생님은 잘 있죠?”

“참, 저번 어젠가 그분 오토바이를 저희 집 아파트 근처에서 본 것 같아요. 집이 거기인가……?”

석 경위는 가슴이 철렁했다. 혹 채 선생이 석 경위 자신도 보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까?”

“아뇨. 한번 그랬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회식이 있었는데 그날…….”

채 선생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자신이 쓸데없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느꼈는지 말끝을 흐린다.

“혹 다른 사람은 못 보았습니까?”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누구……?”

아차, 너무 앞서 나갔다.

“아니, 혹시 집 주변에 또 다른 사람이 어른거린다거나 뭐…….”

채 선생은 말없이 머리를 가볍게 흔든다. 석 경위는 채 선생이 눈치 채지 않게 살며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음식을 시켜야 할 텐데, 여기에서 뭘 먹어야 하는지 아세요?”

두 사람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됐지만 차츰 긴장감이 풀리면서 조금씩 부드럽게 흘러갔다. 그리고 한 시간 반에 걸쳐 식사와 후식, 커피까지 마시고 레스토랑을 나서게 되었다.

석 경위가 채 선생에게 집까지 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으나 채 선생이 괜찮다고 해서 석 경위는 혼자 차에 올랐다.

석 경위는 본청으로 향하면서 오늘 대화의 내용을 찬찬히 곱씹어 보았다.

우선 약간 놀라운 것 하나. 즉, 채 선생이 오늘 휴직원을 냈다고 한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러나 채 선생이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교장과의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았다. 교장이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겠지만, 지난번 석 경위가 두 여선생과 함께 교장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상대로 질문을 하겠다고 한 다음부터 상당히 불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채 선생에게 심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어 수업을 거의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한 뒤 휴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어서 채 선생 자체도 약간 패닉 상태 비슷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아 보였다. 석 경위는 자신이 그날 학교에 가서 공연히 법석을 떤 탓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보통 미안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이 되었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런 일을 핑계로 현희가 석 경위와 채 선생을 한 데 엮어주려고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자신은 피해 준 것 같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한 석 경위는 영 마음이 찜찜해서 채 선생을 달래주려고 한 가지 제의를 했다.

“오늘 5시에 코끼리 보석 경매가 있는데, 그곳에 가보시겠습니까?”

“제가요? 제가 어떻게 그런 데를 들어가겠어요?”

그래서 석 경위는 자신이 그 경매의 참관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경매 시작 전에 박람회장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석 경위는 무엇인지 모를 찜찜함으로 계속 불안했다. 마치 어떤 올가미가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아니 이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아무튼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 자신을 감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야릇한 감정.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느끼긴 했으나 애써 외면해 왔던 것. 채 선생. 석 경위가 현희의 학교에 가기도 전에 길에서 보았던 여자. 경찰의 본능으로 보호해 주려 했었던 것이지만, 왜 하필 그녀와 자꾸 얽히는 것일까? 정식으로 소개받기 전부터.

운명? 에이, 그런 것까지…….

운명은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올가미 같은 것, 바로 그런 것이겠지.

그럼 혹 쌍 운명? 그런 것도 있나?

석 경위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억지로 털어버리고 차를 몰았다.



3

오후 5시에 코끼리 보석 사파이어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석 경위는 경찰 제복을 입고서 경매 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경매 현장이라기보다는 화려한 파티장 같았다. 박람회가 끝난 12시부터 5시까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화려하게 꾸며놓을 수 있었는지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보석 코끼리가 전시되어 있었던 공간은 원래부터 아주 널찍하고 천장도 높았으며, 가장자리로 돌아가면서 중상층, 즉 간이이층의 휴게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화려한 고대 궁궐처럼 꾸며놓았다.

사방의 네 벽에는 태국의 왕궁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태국식 불탑까지 설치했으며, 그 옆으로는 마치 이집트의 나일강변에 온 것처럼 벽에는 거대한 파라오 석상이 세워져 있고 그 양옆으로 이집트 여신상들이 각각 셋씩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즉 태국 왕실 맞은편에는 라스베이거스처럼 휘황한 네온사인으로 장식했는데, 벽 가장자리에는 보석경매에 대한 문구를 태국어, 영어, 한글로 만들어 놓았으며, 그 한가운데 설치된 대형 LED 스크린에서는 각종 보석에 대한 화려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잠시 뒤 그 화면으로는 보석경매 현장이 상영될 예정이다. 또한 경매 홀 안 곳곳에는 그보다 작은 화면이 설치되어 있어서 모두가 그 대형 화면과 동일한 화면을 내보내고 있었으며, 그들 화면에서도 경매 현장이 중개될 예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국 왕실 오른쪽 벽에는 경회루 모형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물까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배경에는 벽 전체에 한국의 강산들 화면이 느린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또한 천장은 우주를 옮겨다놓은 듯 새카만 바탕에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아홉의 행성들과 은하수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주와 문명의 신비가 홀 안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간이이층에는 고급 장식의 테이블과 의자들로 휴게실을 꾸며놓아서 경매 참여인사들이 쉬기도 하고 사교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간이이층 벽 쪽으로는 중간중간에 스탠드바가 설치되어 있어서 가벼운 와인 종류를 비롯한 각종 음료와 고급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또한 경매 현장 곳곳에는 감시카메라를 비롯해서 여러 방송국의 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경매가 진행될 홀 가운데는 중앙의 경매 무대를 중심으로 해서 3면에는 적갈색 나무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놓여 있었으며, 그 사이로 두 개의 통로가 나 있었다.

경매 무대는 두 개의 단 위에 설치된 반원형 스테이지이며, 세 사람 정도가 간신히 올라갈 정도의 넓이였다. 그 스테이지 뒤쪽, 즉 태국 왕궁 벽 쪽 방향으로는 태국 왕실을 비롯한 여러 귀빈과 경매 진행을 맡은 인사들이 앉을 안락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스테이지 양쪽과 앞쪽은 경매 참가자들이 앉는 자리였다. 그리고 스테이지를 향해 각종 조명이 내리비추고 있어서 마치 화려한 독창 무대와도 같았으며, 그곳에는 경매 진행자가 아니라 여신이 강림하면 제격일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다란 출입문에는 양쪽에 무장을 한 태국 경비원들이 서 있었고, 간이이층 곳곳에도 경비요원들이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석 경위는 채 선생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그 경매 홀로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간이이층 중에서도 전망이 제일 좋은 자리의 한 의자에 앉게 한 다음 음료수와 간식을 가져다주었다.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아래층에 내려가 한국 측 경비원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경매 홀 안을 샅샅이 살피고 다녔다. 전문가들이 이미 점검한 뒤였기 때문에 석 경위가 나선다고 나아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경찰 신분답게 한번 둘러보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석 경위가 살핀다고 해서 잘못된 곳이 나타날 리는 없다.

석 경위는 싱거운 표정으로 한 바퀴 돈 뒤 현장 경비원이 안내해 주는 대로 경매대 바로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나 석 경위는 한 가지 찜찜한 것이 있었다. 채 선생이 전시관 근처에 와 있다고 전화를 해서 그쪽으로 가는 도중에 태국 경비원 사무실 뒤쪽에서 오토바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빨간색. 약간 멀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카티가 거의 틀림없어 보였다.

석 경위는 양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그쪽을 쳐다보다가 일단 채 선생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려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 채 선생을 만나 다시 돌아오면서 태국 사무실 쪽을 쳐다보았으나 이번에는 그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석 경위는 자신이 맡은 일이 있어서 그쪽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고서 채 선생과 함께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석 경위는 내내 그 오토바이가 신경이 쓰여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어떻든 이런 상태에서 경매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태국인과 한국인, 그리고 미국인 세 사람이 맡아서 번갈아 3개 국어로 진행되었다. 인사말씀, 안내말씀, 태국 왕실 소개, 코끼리 사파이어에 대한 세세한 설명, 참석한 주요 인사 등등 다소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 다음 경매행사 바로 직전에 특별실에서 주최 측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코끼리 사파이어를 감정한 세 사람이 소개되었다. 각각 태국인 따완 짠오치, 한국인 김성만, 그리고 캐나다인 로웰 샌더스였다. 모두 보석감정계의 권위자라고 한다. 이 세 사람을 대표해서 키가 훤칠하고 중후한 신사에 영화배우 같은 느낌을 주는 로웰 샌더스가 보석감정에 대한 총평을 한 뒤 세 사람이 합동으로 작성한 감정서를 사람들에게 내보였다. 이러한 순서 중 영어와 태국어는 모두 한국어로 통역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샌더스가 태국 왕실에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며 경매 스테이지 뒤쪽의 특별석에 앉아 있는 태국 공주에게 중세 서양식으로 인사를 해서 경매 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이렇듯 전문가가 세 사람이나 동원되어 감정하고 그것을 공개한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그 보석경매에 한국 경찰이 참관인으로 참여해 있다며 석 경위가 소개되었다. 석 경위는 그 순서는 생각지 못한 것이어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스테이지 뒤쪽의 태국 공주 쪽으로 고개만 살짝 까딱하고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국 왕실 경비원들이 코끼리 보석이 들어 있는 유리상자를 가지고 나와서 중앙의 스테이지에 마련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행사를 하는 도중 그 스테이지는 우주의 중심이 되어 있었고, 그때까지 스테이지 뒤 태국 왕실 너머에서 연주하고 있던 실내악도 연주를 멈추었다. 그 뒤 보석이 탁자 위에 놓이는 순간 경매 홀은 마치 깊은 바다 속 같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뒤에 진행과 통역을 맡은 영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태국의 공주를 소개하자 호리호리하면서도 우아한 중년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경매 홀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가득 찼다. 공주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한 손을 살짝 들어보이고는 우아한 자태로 스테이지로 올라갔다. 그때까지도 박수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공주가 스테이지에 올라서자 갑자기 박수 소리가 끊기고 홀 안은 또다시 바다 속 침묵에 잠겼다.

그러자 공주가 유리상자를 직접 열어서 보석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들어보였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런 뒤 공주는 사파이어를 천천히 자기 얼굴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사파이어에 살짝 입을 맞춘다.

바로 그 순간…….

여기에서부터는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상황을 설명해야겠다.

우선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홀 안의 모든 불이 갑자기 꺼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일시적으로 주 전력이 공급되지 않아도 비상전력이 가동되기 때문에 모든 전등이 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중앙전력과 관계없이 전력이 공급되는 일부 방범등은 꺼질 수 없었다.

그런데도 홀 안의 모든 전등이 한꺼번에 꺼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 순간 홀 안은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들이 마구 쓰러지는 소리,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

하지만 전등이 꺼진 것은 불과 2~3초에 불과했다. 곧바로 다시 모든 전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찰라와 같은 그 잠깐 사이에 석 경위는 스테이지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스테이지 아래쪽 단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석 경위는 한 팔을 앞으로 뻗어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바로 그 순간 모든 조명이 다시 켜진 것이다.

그러나 환한 빛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드러난 스테이지 현장은 엉망진창이었다. 공주는 몸이 앞으로 쏠렸는지 탁자와 함께 앞으로 쓰러져 있었는데, 다시 밝혀진 휘황한 조명 아래에서 공주의 손이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사파이어 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장면은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목격되었다. 스테이지가 홀 한가운데 있고,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있었던 데다가 간이이층의 사람들도 앞쪽 난간 쪽으로 달려나와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에 석 경위는 공주가 사파이어를 손에 잡는 장면을 본 직후 곧바로 벌떡 일어나서 벽 쪽의 출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석 경위는 문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제복 안에 감추어둔 권총을 빼어들고 자물쇠를 푼 다음 홀 천장을 향해서 한 발 쏘았다.

타앙―!

천둥소리보다도 더 큰 그 소리에 모든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거나 엎드렸다. 의자 쓰러지는 우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 다음 석 경위는 한 발 더 쏘았다. 이번에도 천장을 향해.

타앙―!

좁은 홀 안에서 울리는 어마어마한 폭발 소리.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경고의 메시지와도 같은 그 소리.

이번에는 홀 안이 갑자기 찬물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 모두가 겁에 질려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나중에 석 경위는 이 행동으로 인해 심한 질책을 받았다. 경솔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위험한 짓이었다고. 그 총소리로 인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 있었고, 만일 보석강도가 그 홀 안에 침투해 있어서 그 역시 총을 꺼내들고 대응했다면 엄청난 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 것이다.

어떻든 석 경위는 두 발의 총알을 발사한 뒤 또한 총소리만큼 크게 고함을 쳤다.

“모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무도! 절대로! Don't all move on the spot! No one! Never!”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작은 흐느낌 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홀 안은 고요 그 자체였다. 사실은 공포였겠지만.

석 경위는 문을 등지고 서서 권총을 앞으로 내민 채 서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두 경비원이 당황해하면서 석 경위를 쳐다보았다.

석 경위는 한 손을 들고 영어로 경비원에게 말했다.

“아무도 여기에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분은 공주님에게 가서 보호해 주세요!”

그 순간 간이이층 곳곳에 있었던 사복 경비원들도 뛰어 내려와서 일부는 석 경위 쪽으로, 또 일부는 스테이지 쪽으로 달려갔다.

바로 그때 비상 출입문이 열리면서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러나 석 경위는 그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면서 그들과 함께 온 한국 경찰과 경비원에게 말했다.

“여기를 완전히 봉쇄해! 아무도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

그러자 경찰과 경비원들이 홀 가장자리로 돌아 흩어지며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를 잡고 서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이 진행되는 동안 중앙 스테이지에서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공주가 근처에 있던 왕실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공주는 스테이지 한가운데로 가서 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 손에는 새파란 사파이어가 들려 있었다.

그러자 홀 안의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홀 전체에 박수와 환호소리, 휘파람소리가 울려퍼졌다.



태국 공주 외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온몸을 샅샅이 수색 받은 뒤 경매 홀에서 나갈 수 있었다. 여자들은 칸막이가 된 별실에 들어가서 태국 여자 경찰과 한국 여자 경찰의 입회하에 검사를 받았다. 물론 경매는 취소되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석 경위를 비롯해서 홀 안에 있었던 모든 경비원도 철저한 수색을 받았다. 그 뒤 경매 홀 전체를 샅샅이 수색했다. 벽이나 바닥, 천장, 행사용으로 설치된 모든 부속물까지 죄다 해체해 가면서. 석 경위 역시 온몸을 검사받았다. 심지어 허리에 찼던 권총집과 권총까지 포함해서.

이뿐만 아니라 경매 홀에 들어가 있었던 사람들은 한국 경찰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지루할 정로로 신원확인을 받은 다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것 역시 석 경위를 포함한 모든 경비원뿐만 아니라 방송국 직원, 귀빈, 내빈, 태국 왕실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단 한 사람, 공주만 빼놓고.

그날 밤 이 소식은 대한민국 전체는 물론 외신을 타고 온 세계에 긴급뉴스로 퍼져나갔다.


석 경위는 채 선생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불편한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좀 늦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채 선생은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나머지 일을 잘 마무리하라고 대답했다.

석 경위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사과하고서 일이 끝나면 연락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석 경위는 본청에 가서 고위층을 만났다. 그곳에서 수고했다는 말도 듣고, 총을 쏜 것 때문에 심한 질책도 받고 한 뒤에 새벽 2시가 넘어서 퇴근할 수 있었다.

석 경위는 시간이 늦어 채 선생에게 카톡으로 간단한 메시지만 보내고 나서 자신의 차로 갔다. 그리고는 차에 타서 권총을 꺼내어 탄창을 빼냈다.

그 뒤 탄창 안에 감추어둔 사파이어를 꺼냈다. 보석경매 도중 정전 때 순간적으로 바꿔치기한 사파이어. 총알 두 발을 발사하고 나서 남은 공간에 끼워놓았던 새파란 보석.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웰 샌더스로부터 지시받은 그 보석.

미국명 짐(Jim)인 석진우 경위는 사파이어를 손으로 들어올려 바깥의 희미한 보안등 불빛으로 확인한 다음 다시 탄창 속에 끼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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