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 3 | 달이 뜨면 어느 샌가 등장하는 밤의 신사
1
3학년 2반 반장 송민지가 교실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자 한 얼굴이 바로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째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댄 채.
교장선생님…….
민지는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고 입만 벌린 채 마주 보았다.
교장선생님은 손과 입 모양만으로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는 뜻을 전한다. 민지는 여전히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교장선생님은 다시 손을 흔들면서 문을 닫으라는 표시를 한다. 입 모양만으로.
민지는 마치 자동인형이 된 것처럼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리고는 약간 얼이 빠진 채 교실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쉰 개가 넘는 아이들의 눈과 마주쳤다. 호기심과 걱정과 묘한 흥분이 담겨 있는 눈들. 눈빛들.
민지는 자신만 알도록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며 아이들 쪽으로 살며시 기어갔다.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민지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저도 모르게 표현한 것이겠지만, 아이들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모두의 눈에 안도하는 빛이 도는 것이었다.
민지는 아이들에게 기어가서 잠시 그대로 엎드린 채 가만히 있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서.
아이들 몇몇이 소리나지 않게 민지 쪽으로 기어왔다. 그리고는 입 모양만으로 묻는다.
밖에 누구 있어?
민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민지는 모두에게 아직 더 가만히 있으라는 뜻의 표정을 보냈다.
아이들은 어딘지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한 스릴감, 긴장감. 그리고 공모감…….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났다. 실제로는 1~2분 정도였지만, 아이들에게는 모험영화 한 편에 해당할 정도로 긴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은 그 긴장감을 더 오래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슴을 콩닥거리면서도.
그렇게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가자 아이들 여기저기에서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다는 뜻 같았다.
눈치가 빠른 민지는 자신이 먼저 천천히 일어나서 허리를 숙인 채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를 살짝 올리고서 밖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 다음 아이들에게 돌아서며 윗몸을 느릿느릿 일으켰다. 민지가 완전히 일어서자 한두 아이들이 따라서 천천히 일어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이 모두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민지는 그 광경을 보고서 문으로 가서 살짝 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민지는 문을 활짝 열고서 밖으로 나갔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민지는 교실 쪽으로 돌아서서 아이들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모두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는 복도 이쪽저쪽을 둘러본다. 그런 다음 모두 민지 쪽으로 와서 둘러싼다.
“왜? 왜 그런 거야?”
“아까 영어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
“이 교실 밖으로 지나간 사람 누구야?”
“혹시 로봇 선생님?”
하지만 민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멍한 눈으로 아이들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반장?”
“민지야?”
“어디 아퍼?”
민지는 꿈꾸듯이 몽롱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아이들은 민지를 쫓아가며 계속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픈 데 있는 거니?”
“얘, 민지야, 말해 봐.”
아이들이 아무리 물어도 민지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아이들 일부는 민지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렸다.
그때 로봇 선생님이 1층 복도 끝 과학실에서 나오면서 아이들을 보고 다가왔다.
“너희들 아직 집에 안 갔니? 왜 여기 모여 있어? 무슨 음모를 꾸미는 거야?”
“비밀이에요.”
“보석 훔치는 거 말고 또 다른 비밀이 있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예요.”
“그럼 보석은?”
“그것도 할 거고요.”
“아, 우리 그것 때문에 한번 만나서 작전 짜야 하는 거 아냐?”
“지금은 아녜요.”
“이 녀석들 봐라. 너희들 그렇게 나오면 경찰에 신고해 버린다.”
“맘대로 하세요.”
“어쭈.”
그때 화장실에서 민지와 다른 여자아이들이 나왔다. 민지는 로봇 선생님을 보더니 얼른 고개를 외면하고 건물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민지를 쫓아서 뛰어갔다.
“민지야! 민지야! 얘, 민지야!”
여러 아이가 부르며 쫓아갔지만 민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 쪽으로 달려간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약간 더 큰 민지는 운동도 잘하고, 반 대표로 달리기 시합에 나간 적도 있을 정도여서 아이들과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교문을 나가 오른쪽으로 돌아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은 뒤쫓다가 말고 모두 그 자리에 섰다.
“쟤 왜 그래?”
“영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봐.”
“그 안에 누가 있었던 거야?”
“우리 지금 거기에 가보자.”
“그래, 그게 좋겠다.”
그 말에 모두들 우르르 다시 학교 건물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2
민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첫 번째는 교장선생님과 로봇 선생님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더 나아가 로봇 선생님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두 번째, 교장선생님이 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댔을까? 게다가 자신들이 그 교실에 숨어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또 왜 교장선생님은 그 교실 밖에 숨어서 자신들을 살피려 했을까? 그리고 왜 위의 모든 것을 비밀로 하려는 것일까?
세 번째, 지금부터 자신과 교장선생님은 어떤 관계가 되는 것인가? 공범? 동반자? 위험한 동반자?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인가?
네 번째, 이 사실들을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절대 비밀? 교장선생님이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댄 것처럼 죽을 때까지 이 비밀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만일 민지가 폭로한다면? 아니, 폭로하려는 것을 교장선생님이 눈치 챈다면? 죽음? 암살? 아무도 몰래……?
으으으으으…….
다음날 민지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열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병원에 데리고 갔으나 그저 감기몸살이라고만 한다.
민지는 열이 내리기는 했지만 그 다음날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오후에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이 함께 집에 왔다. 담임이야 그렇다 해도 교장까지 온 것은 너무 뜻밖이었다. 민지 엄마는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민지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교장선생님의 얼굴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전에는 그렇게 인자하게 느껴지던 분이었는데.
아이들은 민지의 방과 거실에서 야단법석을 떨다가 몇몇 여자애들만 빼놓고는 모두 학원에 가야 한다며 나갔고, 그 뒤를 이어 담임과 교장이 일어섰다.
교장은 아파트 현관을 나서다가 민지를 돌아보며 불렀다.
“민지야, 이리 오렴.”
민지는 쭈뼛거렸다. 그러자 엄마가 등을 떼다 밀다시피 해서 민지는 마지못해 교장 앞으로 갔다.
교장이 민지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늘 믿음직하게 아이들을 잘 이끌던 애가 갑자기 왜 병이 났니? 내일은 꼭 학교에 나오거라.”
교장은 이렇게 말하며 민지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교장과 담임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민지 엄마와 다른 아이들이 주르르 따라나갔다.
“민지는 나오지 마. 잘 쉬거라.”
담임이 제일 마지막으로 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혼자 방으로 들어온 민지는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손을 펴보았다. 그곳에는 교장이 어깨를 쓰다듬으며 손에 쥐어준 종이쪽지가 있었다. 그러나 민지는 그것을 곧바로 펴보지 않고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민지는 갑자기 몸에 한기가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엄마가 들어온다. 민지는 깜짝 놀라 손을 얼른 뒤로 감췄다.
“왜 그래? 뭐를 감춘 거야?”
엄마가 민지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거 뭐야?”
민지는 울상을 지었다.
“뭐냐니까?”
민지는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에서도 손은 내밀지 않고 계속 뒤로 감추고 있었다.
엄마가 다가와 민지가 뒤로 돌린 팔을 잡아당겨 손을 잡고서 폈다. 민지는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곧 손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엄마가 종이쪽지를 빼앗아서 펼쳤다.
엄마의 눈썹이 미간으로 모이고 이마에 주름살이 잡힌다. 그리고는 쪽지에 쓰인 글을 읽고 나서 민지를 쳐다본다.
“이거 누가 준 거니?”
민지는 거의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누구냐니까?”
그래도 민지는 일그러진 입을 그대로 다물고 있었다.
엄마가 쪽지를 민지 앞으로 내밀면서 말한다.
“이런 거 가지고 왜 그래? 너 아주 단단히 병이 난 모양이구나.”
민지가 종이쪽지를 들여다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건강 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거라
“누가 준 건데 그렇게 비밀처럼 구는 거야?”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고 방을 나갔다. 그러나 민지가 더 어이없었다.
민지는 종이쪽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종이 앞뒤를 계속 번갈아 뒤집어 보고, 손가락으로 글자를 살짝 긁어보기도 하고, 전등 빛에 비추어 보기도 하고, 창문에 갖다대고서 혹 종이나 글자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아니면 비밀이라도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살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종이, 평범한 문구였다.
민지는 온몸에서 맥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3
수업이 다 끝나자 3학년 2반 교실에는 또다시 음모처럼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모두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있는 휴식터로 몰려갔다. 그런 뒤 반 아이들이 사흘 만에 학교에 나온 민지를 둘러쌌다. 그러나 말은 없이 모두가 민지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민지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영어실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교장이 입에 손가락을 갖다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것만은 좀더 알아본 뒤에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뭐야, 그럼 교장과 로봇 선생님이 공범이야?”
“그런데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지?”
“우리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건데?”
“그 보석 정말로 훔치려는 거야?”
“교장이 자기도 끼어달라고 한 거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아이들은 이때부터 온갖 상상과 추측과 계획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우리 이렇게 하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참 들은 뒤 민지가 입을 열었다. 모두의 눈이 민지에게 향한다.
“경찰에 신고하면 어떨까?”
아이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놀라움과 실망감이 뒤섞인 채.
“내가 편지를 써서 경찰에 보낼게. 우리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고.”
“뭐라고 써서?”
“그 보석을 훔치려 한다고?”
“믿어줄까?”
“우리가 훔치려고 한 건데 우리가 신고해?”
“그 선생님들도 공모한 거잖아.”
“그럼 선생님이 정말 우리가 보석을 훔칠 수 있을 것 같아서 공모한 거야? 재미로 얘기해 본 거 아니었어?”
“나는 진짜였는데.”
“우리가 무슨 실력으로 보석을 훔쳐?”
“교장이나 로봇 선생님은 가능할까?”
“이게 영화냐? 교장과 로봇 선생님과 우리들이 공모하면 훔쳐지는 게 보석이야?”
“그럼 왜 교장은 우리들을 활용하겠다고 한 거지?”
“이용이 아니고 활용이란 말이지?”
“그 말이 그 말인 거야.”
“아냐, 달라.”
“어떻게?”
아이들은 옥신각신했다.
반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던 민지가 말을 꺼냈다.
“우리든 선생님이든 보석을 훔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불가능한 거야. 그냥 재미 삼아 해본 말일 뿐이야. 그렇지만……, 교장이 우리를 활용하겠다고 한 말은 꼭 알아내야 돼. 그것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무슨 비밀이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내?”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민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민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일단 보석강도에 대한 것은 결론을 내기로 했다. 재미로 시작한 것이니까 재미로 끝내기로. 즉 경찰에 신고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도 장난으로.
민지는 다음날 편지를 썼다. 학년과 반만 밝히고, 교장과 영어선생님 이야기는 뺀 채 그 반 아이들이 보석강도 음모를 벌이고 있다는 글을 써서 서울시 경찰청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낸 뒤 민지는 갑자기 장난 이상의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9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어른들도 생각지 못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보석. 정말로 보석을 훔치고 싶어졌던 것이다.
민지는 그를 위해 교장선생님을 이용하려 했다. 교장과 로봇 선생님이 자기들을 활용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민지는 오히려 자신의 계획에 두 사람을 끼워넣으려 한 것이다. 그 두 선생님은 깨닫지 못한 채 들어올 수 있도록.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