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도둑과 낭만도둑 (1/10)

음모 1 | 밤마다 나타나는 어둠의 신사

by Rudolf

제1부

보 석 도 둑



음모 1 | 밤마다 나타나는 어둠의 신사



1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 지나 오른쪽으로 좁은 비탈길을 요리 구불 조리 구불 올라오는 자전거 대열을 피해 잠시 내려가면 샌프란시스코 만이 탁 트이게 보이며, 오밀조밀한 상가들과 좁은 도로를 지나면 바다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고급 레스토랑이 하나 나타난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1934~63년의 30년간 연방교도소로 사용된 앨커트래즈(Alcatraz) 섬과 그 너머로 베이브리지(Bay Bridge), 버클리 언덕,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 오클랜드 항구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바닷가의 레스토랑.

짐(Jim)은 안으로 들어가 한 테이블로 다가갔다. 허연 턱수염을 지닌 70대의 노신사 로웰 샌더스가 창밖으로 바다를 감상하다가 발소리를 듣고 돌아다 본다.

샌더스는 한 손을 들어 어서 오라는 표시를 했다.

짐은 샌더스 맞은편 의자로 갔다. 그러나 샌더스는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한다.

“여기에 오면 바다를 보고 앉아야지.”

짐은 미소 지으며 샌더스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Meta ta physik.’ 무슨 말인지 아나?”

샌더스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뒤로 기대면서 느닷없이 묻는다.

“형이상학.”

“자네는 그게 좋다니까. 늘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대답하는 것.”

짐은 대꾸 없이 바다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앨커크래즈 섬. 한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못 나온다는 섬.

“형이상학이 무슨 뜻인가?”

샌더스는 싱글싱글 웃으며 또다시 묻는다.

“자연학 이후.”

맞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Physik)》 다음에 저술해서 그렇게 불렀으니까. 영어로 형이상학을 메타피직스(metaphysics)라고 부르는데, 그 말은 라틴어 ‘ta meta ta physik’에서 온 것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안드로니쿠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논문을 정리하여 출간할 때 《타 피시카(τὰ φυσικά)》, 즉 《자연에 대해서》라고 제목을 붙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후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저술하면서 책 제목을 《자연 이후에 대해서》로 붙인 것이 지금의 형이상학이 되었다.

“유물론적인 대답이군. 형이상학을 형이하학으로 탈바꿈시켰어.”

“좋은 일이 있습니까?”

“‘Meta ta Physik’ 45쪽을 살펴보게.”

짐은 샌더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샌더스는 짐을 보지 않고 냅킨으로 입을 닦으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맛있게 먹게. 내가 자네 음식도 주문해 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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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천천히 레스토랑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그곳에 세워둔 최신형 이탈리아제 두카티 스크램블러 아이콘(Ducati Scrambler Icon)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빅 센터에 있는 메인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책을 모두 뒤졌다. ‘Meta ta Physik’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뜻한다. 고약한 인간. 책 이름이나 저자를 가르쳐 주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만 알려주었으니 그에 관한 책을 모두 뒤져야 한다. 시간이 한없이 걸릴 테지.

짐은 그 모든 책을 찾아서 일일이 45쪽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45번째 낡은 책의 45쪽 아래에 있는 주석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다.


Sanders E. B., 1952, ‘Logic and Metaphysics of Aristotle and His World’. . .


여기에서 숫자 1952가 중요하다. 1952번지라는 뜻이다. 또한 그곳에는 숫자가 두 개 더 있다. 참고문헌 페이지의 숫자. pp. 156-171. 그럼 도시는? 캐나다 동부에 있는 수도 오타와. 즉, 캐나다 수도의 샌더스 거리 1952번지, 156번지, 171번지 이 세 주소를 모두 찾아가 보라는 뜻이다. 그 셋 중 하나에 다음 일거리 내용이 있을 테니까. 샌더스는 늘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듯 일을 준다. 물론 그 대가는 아주 흡족하기에 불만은 없다. 하기 싫으면 안 찾아가면 그뿐이니까. 그렇게 되면 다른 녀석이 맛있는 과일을 따먹게 되겠지만. 어떻든 이렇게 샌더스는 늘 자신의 이름과 동일한 그 거리의 한 주소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곳은 건물일 수도 있고, 주택일 수도 있고, 어느 경우에는 공동묘지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할 일은 없다. 항상 최고급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곧바로 비밀계좌로 입금해 준다. 또한 책 페이지를 통해서 일을 알려주기에 경찰에게 추적당할 일은 없다. 샌더스가 배신하지 않는 한.


2


태국의 방콕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보석박람회가 열렸다. 최근 관광객을 주변 다른 나라들로 많이 빼앗기자 이목을 끌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그리고 이때 태국의 왕실에서 대대로 물려 내려오던 코끼리 조각상들을 전시했는데, 그 코끼리들에는 엄청나게 많은 보석이 박혀 있어서 전 세계 보석 애호가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박람회가 성공리에 끝나자 세계 각국에서 태국 왕실 코끼리 조각상들을 전시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폭주했다. 여기에 화답하기 위해 태국 정부에서는 전세계 코끼리 조각상 투어를 기획했다. 행사명은 Elephant Fantasy Global, 약자로 EFG. 아시아는 물론 유럽, 아프리카, 미주대륙, 오세아니아 등 5대양 육대주 25개 국가를 돌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한 달간 열리는 그 행사에는 관람객이 그야말로 광적으로 폭발했다. 태국 왕실에서 앞으로 1세기 동안은 그 코끼리 조각상들을 더 이상 전시하지 않는다고 한데다, 관람객 투표와 전문가들 추천으로 코끼리 조각상에 박혀 있는 보석 한 작품을 선택해서 경매에 붙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세계 보석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예술품 수집상은 물론 보석 밀매꾼에 일반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도 모라자 온 세상 보석 하이스트(heist), 즉 보석강도들까지 이목을 집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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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연초등학교 3학년 2반 담임인 채이슬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보름 뒤에 끝나는 코끼리 박람회, 즉 EFG에 반 아이들이 단체로 가기로 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 특히 여자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반대로 남자아이들은 시무룩해 한다. 그보다는 로봇박람회에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에게 밀려 할 수 없이 EFG에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 대신 남자아이들은 자신들이 보석 코끼리 하나를 훔쳐올 텐데, 여자아이들이 모두 망을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좋아. 니네들이 잘 훔치기나 해. 그냥 말로만 하지 말고 정말 훔치란 말야.”

반장인 민지가 남자애들에게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래, 맞다. 꼭 훔쳐야 해. 우리는 약속 지켜서 망을 철저히 볼 거니까 너희들은 약속대로 꼭 훔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절도 사전모의죄로 고발할 거야.”

“니네들도 공범인데?”

“그래도 상관없어. 훔치기나 해.”

“좋았어. 한번 해보자.”

그날부터 남자아이들은 인터넷을 다 뒤져 보석을 어떻게 전시하는지, 보안장치는 어떤 것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훔친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또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매일같이 모여서 상의하고 토론하고 계획을 세웠다.

반면에 여자아이들은 남자애들이 훔친 코끼리의 보석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 반지를 만들지, 목걸이를 만들지, 아니면 브로치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하며 황홀한 꿈에 젖어 있었다.

“남자애들이 우리한테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니?”

“신고하는 거지 뭐.”

“우리도 공범자잖아.”

“아니라고 하면 돼.”

“우리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잖아. 망을 보든 보석을 보든 그냥 보는 것만 하는 건데 뭐.”

“쟤들 실력으로 어떻게 보석을 훔치니? 각종 첨단장비가 다 동원되어 감시할 텐데.”

“그래도 나는 쟤네들이 꼭 훔쳤으면 좋겠다. 그럼 그 보석은 우리 것이 되잖아.”

“그래, 맞아. 제대로 훔치기나 하라고 해. 우리는 뒷짐 지고 망만 잘 보면 되니까.”

“그런데 이 말 비밀이지? 절대로 남들에게 하면 안 되는 거지?”

“말해도 상관없잖아? 아무도 안 믿을 건데 뭐.”

“그래도 성공하면……?”

“꿈도 야무지다.”

아이들은 그 야무진 상상에 신이 났다. 꿈에 부풀기도 하고. 특히 여자아이들은 보석이라는 말에 마음이 설레는 모양이었다. 한 아이가 핸드폰으로 태국 코끼리 보석을 검색하자 여자아이들은 모두 그 옆으로 몰려가서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은 그들대로 인터넷을 검색하며 보석 훔치는 방법에 대해 서로 상의하고 있었다.


다음날 영어시간에 담임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서 새로 온 영어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 로버트 강 선생님은 캐나다에서 오신 분인데, 어렸을 때 미국에 이민 가서 공부한 뒤 지금은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소리 질렀다.

“너무 미남이세요!”

“오빠――.”

그러자 남자아이들이 옆에서 흉내를 내며 놀려댄다.

“으빠, 으빠…….”

“차라리 아빠라고 하지 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담임인 채이슬 선생님도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옆에 서 있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이 다 보였다.

영어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인사했다.

“Good morning, everyone! 여러분, 안녕하세요.”

와아―!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해서 그 영어선생님은 학교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게다가 학교에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항상 운동장을 한 바퀴 돈 뒤에 학교 뒤쪽에 있는 주차장에 세우는 것이었다. 새빨간색의 날렵한 오토바이. 아이들은 모두 그 장면을 바라보며 넋이 빠지곤 했다. 특히 코너를 돌 때 거의 땅에 붙다시피 하는 것을 보면 여자아이들은 가슴에 손을 갖다대고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오토바이가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듯이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특히 반장인 민지는 두 손을 모아서 가슴에 댄 채 숨을 할딱거리기도 했다.

채이슬 담임선생님은 얼굴로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두 뺨이 발그스름해진 채 두 눈으로 오토바이만 정신없이 좇고 있었다. 그리고 오토바이가 코너를 아슬아슬하게 돌아서 주차장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남들 눈치 채지 않게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영어선생님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검은 헬멧을 들고 본관 건물의 현관으로 들어오는 순간 아이들은 모두 손뼉을 쳤다. 그중에서 민지와 담임선생님이 가장 열렬히 손뼉 치다가 서로를 바라보고는 둘 다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멈춘다. 그러더니 둘 다 얼굴을 반대편으로 싹 돌리는 것이었다. 흥 하듯이.

로버트 선생님은 얼마 안 되어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엄격하기 그지없는 데다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 교장선생님도 로버트 앞에서는 아주 상냥한 여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로버트 선생님은 약간 몸이 뻣뻣한 느낌이 드는 면이 있어서 아이들이 로봇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바람에 로버트 선생님은 로봇 선생님이 되었고, 또 선생님도 그 별명을 마음에 들어 했다.

“로봇 선생님, 우리 보석 코끼리 전람회에 갈 거예요.”

“남자애들이 보석 훔칠 거래요.”

“여자애들도 공범이에요.”

“우리는 망볼 거예요.”

“신나겠는데.”

“선생님도 끼어드릴까요?”

“좋지. Very good. 그런데 내 역할은 뭐지?”

“운반책. 오토바이 타고 보석 나르시는 거예요.”

“어디로?”

“어디로……?”

“어디지……?”

“그건 아직 안 정했는데…….”

“아지트를 미리 하나 만들어놔야지.”

“우리 학교로 하면 어때요?”

“학교 어디?”

“우리 반 교실.”

“담임선생님이 알면 안 되는데…….”

“우리한테 가담하게 하면 되잖아.”

“공범으로?”

“그렇지 공범.”

“신난다. 그럼 영어선생님, 담임선생님, 우리 모두 공범이 되는 거예요?”

“나도 공범으로 껴줘요.”

모두들 깜짝 놀라서 문 쪽을 돌아다보았다.

“교장선생님!”

“왜? 내가 끼면 정보가 다 새나갈까 봐 그래?”

그러나 모여 있는 아이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영어선생님은 여기 오시자마자 애들하고 갱단 조직하는 거예요?”

“아뇨. 우리가 끼어준 거예요?”

“아이디어는 누가 낸 거야?”

“남자애들이요.”

“아냐, 너희들이 먼저 꺼낸 거잖아.”

“담임선생님도 아시나?”

“아뇨. 아직 몰라요.”

“그건 예의가 아니지. 제일 먼저 담임한테 말씀드렸어야지.”

“이제 말씀드릴게요.”

“아냐. 됐어. 너무 많은 사람이 알면 정보가 새나가서 안 돼. 우리끼리 하자.”

“야호!”

“그럼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들만 아는 거야. 집에 가서도, 다른 반 친구들한테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네!”

아이들은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로봇 선생님에게 얼굴을 돌리고 눈을 찡긋하듯이 표정을 짓고는 교실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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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서 3학년 2반 27명 아이들은 모두 영어교실로 몰려갔다. 자기들끼리 구상해 놓은 계획을 로봇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시끌벅적한 아이들이었는데 이번에는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모두가 약간 긴장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자신들이 짠 계획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영어교실 가까이 다가가자 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들은 모두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리고 문 가까이 이르자 안에서 무슨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반장인 미연이 한 손을 들었다. 모두 걸음을 멈췄다.

미연이 살금살금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틈으로 말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애들까지 끌어들이면 어떻게 해?”

“애들이 먼저 저한테 말한 거예요.”

“그래도 끼어들지 말았어야지.”

“오히려 더 잘된 것 같은데. 아이들이 있으면 연극하기 더 좋잖아요.”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애들을 잘 활용해. 그 보석에 대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고.”

“염려 마세요.”

“나는 모른 척하고 있을 테니까 일이 생기면 알려줘.”

“알았어요.”

미연은 얼른 돌아서서 오른손 한 손가락을 입에 대고서 아이들에게 쉿! 하는 동작을 보였다. 그리고는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아이들은 어떤 음모라도 꾸미듯 모두가 소리도 내지 않고 돌아서서 살금살금 걷는 것이었다.

미연은 얼른 뒤쫓아가 아이들 옆을 지나서 앞장섰다. 그리고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타나는 가장 가까운 교실의 문을 살짝 열어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문이 소리도 내지 않고 열렸다.

미연은 아이들에게 들어가라고 신호를 했다. 아이들은 무슨 공범이라도 된 양 모두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마지막 아이가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 미연은 살그머니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했다.

모두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몸을 낮추고 앉자마자 밖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며 창문으로도 그림자가 비쳤다.

잠시 후 미연이 문을 살짝 열고 밖을 살피다가 또다시 얼른 닫으며 급히 몸을 낮춘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보며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갖다댔다.

그 뒤 고요가 흐르는 교실 안.

창문으로 또 한 그림자가 지나가면서 발자국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이번에는 그 발자국이 사라지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서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인내하면서 기다렸다.

시간이 무척 더디게 흘러간 뒤 문 앞에 앉아 있던 미연이 살짝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미연 바로 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입술에 한 손가락을 갖다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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