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 6 | 그러나 그것은 도둑고양이 날렵한 소리
1
코끼리 보석 경매는 결국 취소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근 한 달간 그날 정전사건에 대한 기사와 뉴스가 거의 모든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각종 질타기사와 분석 및 추측기사가 난무했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었다. 태국은 모든 언론이 한국으로 특파원을 보내어 현장 취재를 했으며, 세계 각국의 모든 언론에서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시 여기고 집중적으로 취재한 부분은 세 가지였다.
첫째, 코끼리 사파이어는 온전한가였다. 정전된 2~3초 사이에 바꿔치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태국 왕실에서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정전에 대한 것. 여기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건축, 전기, 전자, 컴퓨터, 범죄 등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해서 한 목소리를 냈다. 기막힌 범죄조직의 소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전에 대한 원인을 몇 달 간 정밀조사를 했으나 그 원인을 결국 찾지 못했다.
셋째, 만일 누군가가 보석을 바뀌치기했다면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 중에서 사람들은 세 번째에 관심이 더 많았다. 신비의 그 보석도둑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부터 온갖 상상과 추측이 난무하고, 그런 것들이 보석도둑에 대한 각종 음모론적이고도 신비한, 그러면서도 때로는 낭만적인 이야기로 변신해서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 세계에서 소설, 연극, 음악, 뮤지컬,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도 변형되어 온 세상은 보석도둑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에 더해서 그날 보석경매가 이루어지려던 그 홀은 대중에게 호기심의 대상으로 부상해서 철거하지 말고 보존해 달라는 각종 민원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아무것도 만지거나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단체관람객을 받아 그 홀을 관광투어코스에 넣게 되었는데, 이것이 소문이 나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탓에 광화문 일대는 관광버스와 관광객의 긴 행렬로 하루종일 몸살을 앓게 되었다.
2
석 경위는 채 선생과 함께 스카이라운지 바에 앉아 있었다. 토요일 점심때였다.
“정말로 술은 한 잔도 안 하세요?”
“원래는 말술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 해요.”
“정말요? 전혀 안 해요?”
“그렇다니까요.”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이유라……. 언젠가 한번 큰 실수를 했죠. 술고래가 되어가지고. 그때 하마터면 경찰대에서 쫓겨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수님이 저를 감싸주었습니다. 그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딱 한 번만 기회를 더 준다.”
석 경위는 오른손 둘째손가락을 들어서 내보이며 말했다.
“딱 한 번.”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한 번을 아끼려고 그 다음부터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때 그 교수님이 그랬거든요. 경찰대 시절뿐만 아니라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라고. 좀 아리송하죠, 그 말?”
“그러네요.”
“그 뒤 교수님이 여러 가지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미국 유학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연결시켜 주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죠.”
“너무 좋은 분이시네요.”
“갚아드려야죠. 언젠가는.”
“복이 많으시네요. 좋은 사람 만나는 것은 평소에 그만한 복을 쌓아놓았기 때문이래요.”
“채 선생님 만난 것도 그 복 중 하나입니다.”
“호호호.”
채 선생은 휴직 중에 프랑스어 어학연수를 다녀오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좋은 데 알면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혹 캐나다에 대해서 잘 알면 그쪽의 프랑스어 교육기관에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것이다. 프랑스어는 퀘백 주에서 주로 사용하지만 영어와 함께 엄연히 캐나다의 공용어에 속한다.
“로버트 선생님이 캐나다인이니까 그분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런데 그 보석은 도난당한 거 아니죠?”
“글쎄요. 어떨 것 같습니까?”
“경찰이 더 잘 알지 않아요?”
“경찰은 공식적인 발표 외에는 개인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채 선생이 석 경위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무하시네요.”
“나가시죠. 바깥 공기가 좋아요.”
두 사람은 석 경위의 차를 타고 인천 송도로 향했다. 그리고 바닷가로 갔다. 하지만 차가 너무 많아 바닷가 도로 근처에는 차를 세울 수 없어서 송도 시내로 들어가려는데 채 선생의 핸드폰이 울린다.
“어머, 송 선생님, 웬일?”
채 선생은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석 경위를 돌아다본다.
“저기, 현희 선생님인데요, 지금 로버트 선생님과 함께 있는데, 올 수 있으면 오라는데요. 미술관이래요.”
석 경위는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어디랍니까?”
“일산이라는데.”
“거기는 왜……?”
“그냥 간 거래요. 어떻게 할까요?”
“가죠, 뭐.”
채 선생은 약간 주저하며 석 경위를 쳐다본다.
“우리 둘이 같이 가면 오해할지 몰라서…….”
“오해가 아닌데…….”
석 경위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3
길이 의외로 잘 뚫려 있어서 두 사람은 생각보다 일찍 현희와 로버트가 와 있다는 갤러리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전화가 온다. 현희였다.
“지금 어디야?”
“막 안에 들어왔어.”
“이층에 오면 카페가 하나 있어. 그리로 와.”
“OK.”
두 사람이 이층으로 올라가서 카페로 가자 로버트가 일어나서 맞는다.
“오, 석 경위님, 뉴스에 잘 나왔던데요. 이번 보석사건에서 최고 영웅입니다.”
무슨 속셈이냐?
“두 사람 보기 좋습니다.”
석 경위는 로버트가 내미는 손을 잡으면서 대꾸하며 현희를 바라보았다.
현희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날짜만 잡으면 되겠어.”
그러자 채 선생이 대꾸한다.
“남 말 하시네.”
“로버트 선생님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릴 거라고 말을 해서 둘이 같이 있을 줄 알았어.”
석 경위는 로버트를 돌아다보았다. 싱글벙글 웃는다. 표정에 밝다. 아무런 티 없이. 순수한 느낌. 하지만 로버트는 채 선생을 미행했었다. 지난번 석 경위가 보았을 때 한 번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슨 이유였을까? 청춘남녀의 짝사랑?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보석 경매일에 박람회장 바깥에서 보았던 빨간색 오토바이, 그것이 저 녀석하고 관련이 있을까? 그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신분 확실한 캐나다 교포. 어떻든 저 녀석은 보석강도와는 관련이 없다. 범인은 다른 사람이니까. 바로 석 경위 자신. 그런데도 로버트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네 사람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한 것 중 최고의 소재는 바로 그 보석 경매일의 사건이다. 그 현장에 석 경위뿐만 아니라 채 선생도 있었기 때문에 현희와 로버트는 두 사람에게 모험담이라도 되는 듯이 자꾸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유 말도 마. 얼마나 무서웠는데.”
“총소리 날 때 느낌이 어땠어?”
“난 기절하는 줄 알았어. 석 경위님이 글쎄 천장에 대고 쏜 거야.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총 잘 쏘세요?”
로버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다.
“아, 뭐 직업이 그러니까…….”
“나도 총 쏘고 싶다. 로버트 선생님은 총 쏴봤어요? 캐나다에서 무기 마음대로 살 수 있나?”
“라이선스만 있으면 살 수 있어요.”
“그럼 로버트 선생님은 총 샀나요?”
“하나 있죠.”
“지금?”
“아뇨. 집에.”
“어떤 거?”
“장난감 총.”
그 말에 모두 웃고 말았다.
“그런데 어떻게 두 분이 같이 거기에 갔었습니까?”
“데이트한 거지 뭐. 그런 걸 왜 물어봐요?” 현희가 로버트를 나무란다.
“부러워서 그렇죠.” 로버트가 현희가 무섭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며 대꾸한다.
“아, 참. 보석경매 하던 날, 그곳 주변에 갔었습니까?”
석 경위가 로버트에게 물었다.
“저요? 아니, 가지 않았는데. 거기 가봐야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요 뭐.” 로버트가 싱글싱글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석 경위는 거짓말이라고 느꼈다. 경찰 본능으로.
정체가 뭐지? 왜 미연초등학교에 온 거지? 채 선생을 뒤쫓은 이유는? 짝사랑? 혹 보석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다. 머리만 지끈. 아차, 그리고 지금은 현희와 가까이 지낸다. 무슨 이유일까? 방향을 바꾼 걸까? 채 선생이 나하고 가깝다는 것을 알고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희한테서 들어서 알게 되었을 테지.
그럼 현희한테 접근한 이유는? 그냥 청춘 남녀의 본능과 권리로? 현희는 로버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두 사람은 얼마나 가까울까?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은 걸까?
석 경위는 얼굴에는 느긋한 듯 은근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어지러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혹시 저놈도 그 보석을 노린 걸까? 만일 그렇다면 경쟁자가 된다. 이미 승부는 났지만. 그런데 저놈이 어떻게 해서 미연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서울 시내, 아니 대한민국에 영어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는 학교가 한둘이 아닐 텐데 하필 그 학교에 들어간 거냐고? 게다가 현희하고 가까이 지내질 않나, 채 선생 뒤를 미행하질 않나, 그리고 또 왜 하필 내 주위를 빙빙 도는 거지? 무슨 낌새라도 눈치 챈 거야? 나와 현희가 외사촌이라는 것을 알고서, 게다가 내가 저절로 그 학교에 나타나 줄 것을 알고 미리 와 있었단 말이야? 이게 말이 돼? 저놈 전지전능한 거야?
너무 비약했다. 만일 석 경위가 보석 범인인 것을 알았다면 미리 막았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신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다. 모든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석 경위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달래서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네 사람은 한 시간가량 잡담만 하고 현희와 로버트는 미술관 관람을 미리 다 했다기에 그냥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자 로버트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현희가 석 경위를 보고 말을 한다.
“나는 로버트 선생님 오토바이를 같이 타고 왔어. 그거 타고 갈게.”
“…….”
석 경위가 멍하니 현희를 쳐다보고 있는데 곧바로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 오토바이가 나타난다. 새빨간색 두카티. 로버트는 검은색 헬멧을 쓴 채로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었는데, 한 손에 또 하나의 헬멧이 들려 있다. 새빨간색. 오토바이와 같은 색이다.
현희가 오토바이로 다가가자 로버트가 헬멧을 건네준다.
석 경위와 채 선생이 입을 헤 벌리다시피 하고 바라보고 있는 중에 현희와 로버트는 동시에 주머니에서 빨간 스카프를 꺼내어 목에 매더니, 현희가 로버트의 허리를 꼭 껴안은 채 요란한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내며 떠나갔다. 현희가 한 손을 들어 흔들면서.
뒤에 남은 석 경위와 채 선생은 나란히 서서 오토바이가 멀리 달려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채 선생은 슬그머니 손을 놓고 그 대신 석 경위의 팔에 손을 끼고 몸을 살짝 밀착시킨다.
그 순간 석 경위는 온몸에 전기가 쫘르르 흘렀다.
4
채이슬 선생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에 아직도 달콤함이 배어 있는 채로. 석 경위가 차로 데려다주어 아파트 앞에서 내려주었다. 혹 아는 사람이 볼까 약간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그렇다 해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약간은 당당한 듯이 내린 것이다. 그리고 석 경위의 차가 떠날 때는 손도 흔들어 주었다. 누가 보든 말든.
석 경위의 차가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는 것을 본 뒤에 돌아서서 1층 현관문으로 들어서려다 채 선생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얼른 돌아다보았다. 얼핏 어떤 오토바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경비실 앞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빨간색이었던 것 같은데…….
혹 그 오토바이는 아니겠지?
사실 언젠가부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떤 오토바이를 본 것 같기도 했지만, 세상에 많이 다니는 것이 오토바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아파트 안에도 오토바이가 꽤 있었고, 배달 오토바이도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듯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빨간 오토바이도 하나둘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오토바이가 이곳에 올 리도 없다. 이슬이 사는 아파트를 알지도 못할 텐데.
…….
잘못 봤겠지.
이슬은 집에 들어가서 샤워를 한 다음 창문가로 갔다. 아파트촌의 창밖은 언제 내다보아도 수학적인 화폭이다. 네모난 공간마다 불이 환하고 그것들이 다양한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슬은 한 가지 마음이 찜찜한 것이 있었다. 며칠 전에 3학년 2반의 반장인 민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꼭 알려주어야 할 게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화로는 이야기할 수 없고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한다. 이슬은 요 며칠 여러 잡다한 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었던 데다가 오늘은 석 경위를 만나는 바람에 그 전화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휴직한 상태에서 반 아이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새로 담임이 된 선생님과 대화해 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일에 잘못 끼어들었다간 교사 세계에서 엉뚱한 소문이 날 수도 있다. 교단을 떠나지 않을 바에야 그런 일에 휘둘리지 않는 게 낫다. 그런데도 민지의 평소 성격을 보아서는 간단치 않은 일일 것 같아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오늘 석 경위와 데이트한 것에 대한 여운을 즐기고 싶었는데 공연히 민지 생각을 해서 기분이 잡치는 느낌이 들어 이슬은 갑자기 고 녀석이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기분전환을 할 겸 혹 석 경위가 카톡 보낸 것은 없나 하고 기대감을 가지고 핸드폰을 열었더니 민지에게서 카톡이 하나 와 있다.
‘선생님.’
이 말뿐이다. 그런데 그 한 단어에서 어떤 절박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누구한테 말 못 할 고민이라도 있나?
이슬은 갑자기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다 한다. 실제로 이슬이 교사생활을 한 지난 몇 년 동안 어른들은 생각지도 못할 여러 일이 아이들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했었다. 아이들의 세계가 단지 동심의 세계만은 아니다. 어른들 못지않게 그 세계도 복잡다단하다.
그러나 이슬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끼어들면 안 돼. 네 부모나, 아니면 새 담임에게 말해라. 나는 이제 학교를 떠난 사람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슬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벨이 울리자마자 이슬이 전화를 받는다.
“그래, 잘 지냈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네, 잘 지내요. 저, 그런데…….” 머뭇거리는 느낌. “지금 시간 되세요?”
“응, 괜찮아. 무슨 일 있는 거니?”
“잠깐만요. 제가 다시 할게요.”
민지가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얘가……? 이슬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초조해진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다시’는 얼마의 시간을 말하는 것일까……? ‘다시 할게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이슬이 시계를 보자 한 1분 지났나? 그런데도 좀이 쑤신다. 내가 먼저 전화해 볼까……?
특별히 할 것이 없는데도 중요한 무엇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긴 것처럼 좀이 쑤신다. 시계를 다시 보니 2분이 지났다. 시간이 이것밖에 안 흘렀나?
핸드폰이 울린다.
이슬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죄송해요. 오빠가 들어오는 바람에요.”
“무슨 일인데?”
“저……, 말씀드려도 돼요?”
“그럼. 말해 봐. 마음 편하게 갖고.”
“…… 저……, 있잖아요…….”
“응, 그래. 말해 봐. 괜찮아. 천천히 말해.”
“…….”
“민지야. 여보세요……. 민지…….”
“저 범인을 알아요.”
“…….”
“선생님?”
“무슨 범인?”
“…….”
“얘, 민지야?”
“그 보석.”
“무슨 보석?”
“코끼리 보석.”
“무슨 소리야?”
“…….”
“민지야?”
“저……, 선생님 봤어요.”
“누구? 나?”
“네. 선생님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디서 봤다는 거야?”
“보석전람회에서요. 경매하는 날.”
“…….”
“선생님?”
“그런데? 그게 뭐?”
“선생님이 어떤 남자하고 만나서 같이 들어가는 거 봤어요.”
얘가 뭐라는 거야? 그게 어때서?
“그게 뭐…….”
“그리고 다른 사람도 봤어요.”
“다른 사람? 누구?”
“…….”
“얘, 민지야!”
“로봇 선생님.”
“…… 로봇 선생님?”
“네. 로봇 선생님도 오토바이 타고 거기 갔었어요.”
글쎄……,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지?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 갔을 텐데…….
“그리고 또 한 사람도 봤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지금? 또 누굴 봤다는 거야?”
“교장선생님.”
“…….”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로버트가 그곳에 갔었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교장선생님까지? 하지만 뭐…….
“그런데 그게 뭐가 이상해서 그러니? 거기엔 많은 사람이 갔을 텐데.”
“저, 실은 제가 어떤 말을 들었거든요.”
이렇게 해서 이슬은 민지를 통해 교장선생님과 로버트가 영어실에서 나누었다는 대화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복도에 숨어서 미진에게 쉿 하며 입에 손을 갖다댔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이 코끼리 보석을 훔쳤다고 할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공식적으로 코끼리 보석이 도난당하거나 바꿔치기 당했다는 말도 없었다. 또한 이슬 자신이 바로 그 현장에 가 있어서 모두 목격하고 경찰에서도 모든 사람을 다 조사했는데.
“저……, 제가 경찰에 가서 모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이슬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아냐, 아냐. 좀 기다려 봐. 아니, 내 말을 들어봐.”
이슬은 자신이 그날 경매 현장에 들어가서 본 것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보석이 바꿔치기 당했다는 말도 없었잖아. 누가 훔쳐간 것도 아니고. 아무런 일도 없는데 무슨 신고를 한다는 거야?”
“아녜요! 저는 알아요. 경찰만 모를 뿐이에요. 그 두 사람 수상해요.”
“그런데……. 혹시 네가 경찰에 편지 보냈니? 보석강도 음모를 꾸민다고?”
“…….”
“음……. 그래, 말 안 해도 돼. 그런데 아무 일 없었는데 뭘 신고한다는 거니?”
“…….”
“민지야……. 얘, 민지야?”
그러자 전화가 탁 끊어졌다.
“민지야? 민지야? 얘……?”
이슬은 민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받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했다. 그래도 받지 않는다. 여러 번 계속 전화를 해도 역시 받지 않는다.
이슬은 조금 망설이다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큰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잠 자거라. 아무런 일 없을 거야. 등등.
그러나 이슬은 갑자기 머릿속이 어수선해졌다. 로버트와 교장선생님이라니? 보석경매 하는 날 왜 그곳에 갔을까? 두 사람이 모두. 그리고 두 사람은 왜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또 왜 교장선생님은 민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손가락으로 쉿을 했을까……?
게다가……, 교장선생님과 로버트는 어떤 관계인 거지?
이슬은 혼란스러웠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