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 7 | 달빛에 비치는 검은 그림자
1
다음날 오전 석 경위는 명동에 있는 대형백화점으로 갔다. 그곳의 수입품 코너에서 스카프 두 장을 샀다. 똑같은 것으로. 그것을 각각 따로따로 포장한 뒤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평택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넓은 임야 한가운데에 월드가든이라는 테마공원이 있다. 그곳은 세계 각국의 유명한 정원을 축소해서 만들어 놓아 인기가 많았다. 석 경위는 그 정원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주목나무 미로로 들어갔다. 이는 영국 런던 근처의 햄프턴 코트(Hampton Court) 궁전에 장식된 정원의 미로를 본뜬 것으로서, 이 정원은 윌리엄 오렌지(William of Orange) 공을 위해 1689~95년에 조성되었다. 윌리엄 오렌지 공은 네덜란드의 왕자였으나 런던으로 가서 영국 국왕 제임스 3세의 딸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2세 여왕과 결혼한 뒤 1689년에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만들어 가톨릭교도들이 영국의 군주가 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영국의 절대군주제를 종식시키고, 영국인들에게 헌법적 권리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로부터 영국은 입헌군주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1688~89년에 있었던 이러한 사건을 역사에서는 명예혁명 또는 무혈혁명이라고도 일컫는다.
햄프턴 코트 궁전의 정원과 같은 미로는 소용돌이와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서 처음과 끝이 혼동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형태를 보고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신의 모토로 삼았다는 말도 있다.
Ma fin est mon commencement et mon commencement ma fin
시작이 곧 끝이요, 끝이 곧 시작이로다
이러한 말을 회문(回文, palindrome)이라고 하는데, 앞에서부터 읽거나 뒤에서부터 읽거나 의미가 같은 것을 말한다. 유럽의 중세 때나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시문이 꽤 유행했었다고 한다. (필자는 조선시대 연산군이 폐위된 뒤 지은 ‘회문고시(回文古詩)’를 《인간은 인간에게》라는 장편소설에서 소개한 바 있다. 칠언율시 4행인 이 한시는 앞에서부터 읽거나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거나 그 뜻이 동일하게 통한다. 연산군이 악정(惡政)을 베풀기는 했지만 시문에는 꽤 능했던 모양이다.)
사람 키만 한 주목나무들이 만든 미로 속에서 미지의 길을 탐색해 나가는 즐거움. 그와 동시에 그 미로에는 음모도 포함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체 모를 인간이 아무도 모르는 책략을 꾸미는 것. 그런 일은 밝은 데로 나오면 안 된다. 백주 대낮에라도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어서 선하고 정정당당하지 않은 어떤 일을 도모해야만 제격이다. 석진우와 로웰 샌더스처럼.
샌더스는 석 경위보다 한국을 더 잘 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보석 감정가에 골동품과 미술품 전문가인 그는 특히 동아시아 고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저서만도 몇 권이나 되며, 학계에서는 전문가요 원로 대접까지 받고 있다. 게다가 샌더스는 보석에도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어서 중요한 보석의 감정에 자주 참여하곤 했다. 이번 태국의 코끼리 보석에서도 태국 왕실의 특별초청을 받았고, 한국의 박람회 이전에 태국으로 직접 가서 왕실의 지극한 대접을 받으며 왕실 소유의 여러 보석을 감상도 하고 감정도 한 바 있다. 그리고 샌더스는 특히 중국의 갑부들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보석을 소개하고 매매를 중계해 주기도 했다. 물론 이들과 거래할 때는 대부분 무대 뒤에서 이루어져 세상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들이 바꿔치기나 도난을 통해 중국인 손으로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일이 바로 코끼리 보석이었다. 은밀한 과정을 통해 샌더스에게 그 사파이어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시가의 세 배를 주겠다고 하며. 그 보석을 원하는 측에서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여러 박물관에 전시된 가짜 보석의 진품을 상당수 소유하고 있는 그들은 개인 소장품으로 보석 왕국을 만들어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즐기고 누리고 또 서로 간에 매매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가격과 관계없이 오직 유명한 보석에 대해서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태국 코끼리 보석박람회가 기획되었을 때 샌더스는 가장 먼저 그 소식을 들었다. 태국 왕실에서 감정가로 그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샌더스에게 감정 받는 것이 왕실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라 판단하고 그를 선택한 것이다.
샌더스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석진우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했다. 그가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머리도 비상하게 좋다는 것을 알아낸 뒤에 접근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샌더스의 사촌 형이 석진우와 연결된 것을 알게 되었다.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였던 것이다. 운명과도 같이. 그 뒤 뜸을 들이듯 석진우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대하다가 그가 힘들게 살아온 것을 알았다. 또한 석진우의 내면에 부와 권력에 대한 강한 열망이 존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의 눈과 말을 통해서. 그리고는 모험을 했다. 샌더스는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대해 알려준 것이다. 물론 비유적으로. 그리고 그 비유를 석진우가 알아차리는 것을 보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 뒤부터 샌더스 자신이 간단히 처리할 수도 있는 소소한 일들을 석진우에게 맡기며 과할 정도로 보상해 주었다. 그러자 머리 좋은 석진우는 그 의미를 깨닫고 맡겨준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샌더스는 석진우를 자신의 동반자로 삼기로 하고 태국 코끼리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음모나 거래에 대한 것은 오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오타와의 샌더스 거리에 있는 여러 주택과 상점의 하수인들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혹 나중에 문제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샌더스와 석진우는 조금도 연결되지 않게 된다. 또한 이것은 두 사람 간에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서울에서 열리는 코끼리 보석 경매장의 전기전자 회로의 조작 문제는 전적으로 샌더스가 책임지기로 하고, 사파이어 바꿔치기는 석진우가 맡기로 했다. 그 모든 방법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서로 참견이나 확인하지 않고, 또한 서로가 최고의 전문가라는 것을 믿기로 하면서.
따라서 석 경위는 샌더스가 어떤 식으로 경매 현장을 2~3초간 완벽하게 정전시켰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고. 석 경위는 자신이 맡은 일만 감쪽같이 해내면 된다.
그러나 석 경위는 고민이 많았다. 그 경매 현장에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때문에. 더군다나 그 사파이어에 아주아주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고. 그러나 사실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글자 그대로 기적이 생겼다. 경찰서로 편지가 온 것이다. 그것도 석 경위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출근한 첫날에. 물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미연초등학교 3학년 2반 반장인 송민지가 보낸 편지. 자기 반에서 이루어진 보석강도 음모를 제보한 편지. 석 경위는 그것을 통해 전람회 경비에 참여하고 있는 동료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고, 결국 경매 참관인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다. 하늘에서 만들어준 것이다. 베풀어준 것이지.
그러나 석 경위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도 쉽게 일이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잘 짜놓은 각본처럼.
그렇다고 그 각본을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
어떻든 석 경위는 미리 약속한 대로 코끼리 보석을 전달하기 위해 오늘 미로정원에 와 있는 것이다. 이 미로정원 속을 돌다 보면 어느 순간 샌더스가 나타날 것이고, 석 경위는 그를 지나치면서 슬쩍 전해 주면 된다. 그러고 나면 두 사람은 다시는 보지도 연락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가명으로 된 제3국의 은행계좌에 약속된 돈이 들어오게 된다. 이 역시 확인할 필요도, 의심할 필요도 없다. 문서 하나 없어도 철저히 지켜지는 것이 그 세계의 약속이니까. 석 경위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그 돈을 찾아가면 된다. 그때까지는 월급쟁이로, 엘리트 경찰로 살아가면 된다. 만일 원하지 않으면 그 돈을 찾지 않으면 그뿐이다. 지금 석 경위로서도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일단 최대한 노력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미래가 일구어진다면 굳이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다. 혹 자신의 후대를 위해 남겨놓을 수도 있는 것이고.
2
석 경위는 밤늦게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바로 집으로 가지는 않았다. 무엇인지 모를 허전함과 자괴감, 우울함 들이 몰려와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이슬 선생.
갑자기 보고 싶었다. 사실은 오늘 하루종일 그녀 생각만 했다. 석 경위는 차 안의 콘솔박스에 넣어둔 포장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스카프가 들어 있다. 이슬을 위한 선물.
석 경위는 후회가 되었다. 좀 일찍 돌아올걸. 샌더스와 스쳐 지나간 뒤 석 경위는 차를 타고 한없이 달렸다. 고속도로로. 때로는 지방도로로. 산길도 가고 해안가도 갔다. 무턱대고 달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허전해서 그랬을까? 큰 일을 하나 처리하고 난 뒤의 허탈감 같은 거…….
그러고 나서 석 경위는 밤늦게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마음이 너무 허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자꾸 한숨만 나오는 것이었다.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다. 모든 게 잘 되었는데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차를 계속 몰고 있었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이슬의 아파트 쪽으로 자꾸 가는 것이었다.
어느덧 이슬의 아파트 근처에까지 다 왔다. 그러나 차를 세울 만한 곳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아파트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서 그냥 가기로 하고 방향을 틀고서 신호등 앞에 선 차들 꽁무니에 가서 멈춰섰다. 그리고 괜히 아쉬워서 핸드폰을 켰다.
아, 이슬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얼른 열어보았더니 간단한 인사말이다. 오늘 잘 지냈느냐는 말. 한 시간 전에 온 것이다. 석 경위는 이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잘 지내셨습니까?”
“뭐 그렇죠. 저녁은 드셨어요?”
“아직 못 먹었습니다.”
“어머,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바쁜 일이 있었나 봐요?”
“지방에 좀 다녀올 일이 있어서요.”
“피곤하시겠네요.”
“참, 제가 지금 아파트 근처를 지나가는 길인데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네? 여기에 오셨어요?”
“일부러 온 건 아니고……, 뭣 좀 하나 전해드리고 싶은데…….”
“네, 그러세요. 제가 아파트 경비실 앞으로 나갈 테니 그리로 들어오세요.”
그렇게 해서 석 경위는 이슬을 만나게 되었다.
“오늘 백화점에 갈 일이 있어서 이거 하나 샀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드리려 한 건데…….”
“어머, 이게 뭐예요?”
“별거 아닙니다. 스카프인데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석 경위는 시간도 늦고 또 어딘지 자기 자신이 마음이 안 들어 곧바로 떠나기로 했다.
“죄송해요. 너무 늦어서 차 한 잔도 못 하고 가시네요.”
“내일 전화 드리겠습니다. 잘 주무십시오.”
3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석 경위가 안 것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사실은 진작에 이메일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허탈해서 정신없이 차를 몰았던 탓에 일이 엄청나게 커지고 말았던 것이다. 미국의 한 업체에서 이메일 왔다. 신상품 안내 광고 이메일인데, 50% 할인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물건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메시지다. 샌더스에게 물건을 전달한 뒤 곧바로 이메일을 확인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었을 텐데.
즉, 스카프 상자가 뒤바뀌었다는 뜻인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석 경위는 백화점에서 나와 평택의 월드가든에 도착한 뒤 주차장에서 스카프 상자 포장 하나를 조심스레 푼 뒤 코끼리 사파이어가 들어 있는 작은 가죽 주머니를 집어넣고 다시 포장했다. 그리고 헛갈리지 않게 살짝 표시까지 해놓았다. 그랬는데도 뒤바뀌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샌더스와 스쳐 지나간 뒤 주차장에 가서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늘 치밀하고도 담담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던 자신이. 핸드폰으로 지도 앱을 사용할 때만이라도 이메일을 확인했다면 해결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즉, 채이슬.
이슬이 스카프 상자를 열었으면 그 안에 스카프 외에 엉뚱한 물건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당연히 석 경위에게 연락을 했을 텐데…….
혹 어젯밤 너무 늦어 아직 상자를 열어보지 않은 걸까? 그럼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확인해 봐야 하나?
그런데 만일 상자를 열어보고도 연락하지 않은 것이라면?
석 경위는 사고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머릿속 회로가 꺼져버린 듯한 것이다.
그리고…….
나 지금 떨고 있는 거지?
느끼지는 못하지만 석 경위는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쪽 세계에서 배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짐작할 만하니까. 샌더스는 석 경위의 한국 집이나 전화, 친척 등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에 근무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조만간 어떤 행동이 들어올 것이다. 도망가도 소용없다. 석 경위 대신 친척들이 당할 테니까. 그리고 석 경위 역시 지구에서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디에선가 샌더스와 마주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또한 달러가 입금된 은행계좌도 동결될 테지.
한 가지 구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경찰에 자수하는 것. 그리고 보호를 요청하는 것. 하지만 이것도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저들이 언젠가는 찾아낼 것이다. 게다가 친척들이나 주변인물들이 모두 처참하게 당한 뒤에. 석 경위 혼자 당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주변인물들이 먼저 차례대로 당하게 될 것이다. 고통을 주려고. 천천히. 저들이 정한 순서에 따라서.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석 경위 차례가 되겠지. 설사 감옥에 가 있더라도. 또는 비밀 보호시설에 격리되더라도.
석 경위는 경찰이다. 그동안 배운 것을 통해서만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 온갖 범죄집단이 저지르는 끔찍한 사례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벌어지는 보복범죄. 이것은 원한보다 더 끔찍하다.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배신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석 경위는 치밀한 범죄자이긴 하지만 냉혈한은 아니다. 저 혼자만 살자고 주변 사람들 모두 희생되는 것을 방관만 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한다. 이제 어차피 석 경위의 모든 것은 망가졌다. 미래도, 과거도, 희망도, 돈도, 사랑도. 그리고 사파이어도.
사파이어.
이제라도 찾아서 샌더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나머지는 그 다음 문제다.
석 경위는 이슬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새벽이지만 어쩔 수 없다.
– 일어나셨나요?
석 경위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슬이 지금은 어디로도 출근하지 않으니 새벽같이 일어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마냥 기다릴 여유는 없다. 어떻게 하지……?
그나저나 그 보석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이슬은 보석경매 날 석 경위와 함께 현장에 있었고, 더군다나 그날의 사건이 뉴스를 통해 온 세상에 다 알려졌으니 그것이 어떤 보석인지는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하 참…….
안 되겠다.
석 경위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이슬의 아파트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전부터 마음이 께름칙했던 것,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어떤 파국으로 몰고 가는 듯한 불길한 느낌. 석 경위로선 알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우연의 일치를 가장해서 자신을 지옥의 늪으로 이끌어가는 듯한 불길함.
그러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지고 분석할 계제가 아니다. 일단 파국을 막고부터 봐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석 경위는 한 가지를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제발, 제발 아직 그 포장지 뜯지 말았어라. 제발, 제발 부탁이다.
석 경위는 이슬의 아파트에 다 왔다. 그러나 아직 이슬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아직 안 일어난 걸까?
그 순간……, 안 돼!
석 경위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혹 저놈들이 벌써 손댄 것은 아니겠지?
석 경위는 가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아냐, 놈들이 아직은 이슬에 대해서는 모를 거야. 아니, 그렇다면……, 혹시 현희에게 손을 뻗은 것은 아니겠지?
석 경위는 운전하면서 음성으로 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간 뒤에 현희가 전화를 받는다.
“아침 일찍부터 웬일이야?”
“별일 없지?”
“무슨 일?”
“아니, 그냥. 꿈자리가 좀 뒤숭숭해서.”
“요즘 일이 많이 힘들었나 보네. 늘 모범생으로만 사니까 힘들지. 빈틈도 좀 보여주고 그래. 긴장도 풀고. 보석강도 흉내도 내고. 음모도 꾸며보고 그래. 내 말 맞지?”
“그래,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무슨 일?”
“아니, 그냥. 아무튼 주변에서 찜찜한 거 있으면 알려달라고.”
“별일이네. 아침부터 갑자기 전화해서 이상한 말만 하고. 혹시 보석에 대한 거야? 그 사파이어…….”
“그래, 알았다. 나중에 전화할게.”
온 세상이 죄다 사파이어에 빠져 있군…….
석 경위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석 경위에게서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면 현희네 집이다. 그동안 자신에게 여러 모로 도움을 준 그분들에게 석 경위는 지금 오히려 끔찍한 일을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 같다. 하긴 석 경위 주변의 인물들을 조사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석 경위의 심장박동이 갑자기 더 빨라졌다. 그와 동시에 등줄기에 한기가 확 지나간다.
석 경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슬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간다. 계속…….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
석 경위는 이슬의 아파트 근처의 상가 뒤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댔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주차장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석 경위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아파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4
이슬은 아침 일찍 아파트를 나섰다. 평소 같으면 월요일 아침에는 더 일찍 학교에 갔겠지만, 휴직한 뒤에는 새벽운동을 하러 나가는 것이다. 미세먼지 앱을 보고 공기가 괜찮으면 아파트 옆 근린공원의 하천을 따라 나 있는 자전거도로를 달린다. 자전거로. 그러나 핸드폰 앱에 공기가 나쁘다고 나오면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에 올라간다. 하지만 이날은 공기가 괜찮은 편이라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강변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달린 뒤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서 집 쪽으로 향했다. 새벽인데도 구간에 따라서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 집에서 나올 때는 괜찮았는데 차츰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꽤 짙어졌다.
이슬은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달렸다. 안개가 다시 엷어진다. 시야가 넓어졌다. 그래도 이슬은 속도를 올리지 않고 천천히 자전거를 몰았다. 가끔 다른 자전거들이 옆으로 지나가고 앞에서도 오곤 한다.
그러던 중에 한 자전거가 이슬 옆을 지나쳐 가더니 저만치 앞에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다.
응?
아는 사람 같은데……?
앞 남자가 자전거 속도를 줄인다. 이슬도 브레이크를 살짝 걸었다.
아, 로봇 선생님.
이슬은 로버트의 자전거 옆으로 가서 멈춰섰다.
“굿모닝. 아침 운동 나오셨습니까? 반갑습니다.”
로버트가 완전 한국어 억양으로 굿모닝을 한다.
“어떻게 여기에 오셨어요? 댁이 이 근처예요? 의왕에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얼마 전에 이사했습니다. 채 선생님 댁 근처일 겁니다.”
“어머, 그러세요? 그런 말 안 했잖아요.”
“뭐 일일이 얘기하고 다니기도 그렇고 해서…….”
“오늘 학교 가셔야 하잖아요?”
“아, 오늘 휴가 냈습니다. 일이 좀 있어서.”
“바쁘신가 봐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참, 오늘 여기서 만났으니 이 근처에 새벽에도 맛있는 커피 파는 데가 있는데 거기에 가보시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있고 한데…….”
“현희가 알면 질투해요.”
“하하! 너무 나가시네요. 우리 그런 사이 아녜요.”
“두 분이 다정해 보이고 오토바이도 진하게 타시던데?”
“오토바이 탈 땐 원래 그래요. 문 선생님하고는 아무 관계 아닙니다. 잘 아시잖아요. 학교에서 만난 거. 그 이상은 아니에요. 저한테 전화가 와서 그냥 만났을 뿐이에요.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인데요?”
“개인적인 거라서 제가 말씀드리긴 그렇고……. 직접 물어보세요. 별 다른 거 아니니까.”
“청춘 남녀가 백주대낮에 껴안고 오토바이 타면 오해 받아요.”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습니다. 오해 받지 않게.”
“어머, 그렇지 않아요. 두 분 보기 좋았어요. 정말이에요. 송 선생님 정말 좋은 분이세요. 같이…….”
“저 따라오시겠어요?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금방 갈 겁니다.”
“아니, 저는 오늘…….”
“괜찮습니다. 안 잡아먹어요. 커피 한 잔만 하고 가는 거니까.”
로버트는 이 말을 하고는 얼른 돌아서서 자전거를 몰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이슬은 피식 웃으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석 경위는 아파트 단지를 서너 바퀴 돌았다. 새벽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단지 내에서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이 일에서 옳고 그름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모두가 잘못된 일인데. 범죄에서 비롯된 일을, 여기에서 옳다라든지 정의라든지 그런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서든지 그 범죄가 밝혀지지 않게, 더욱이 그것으로 인해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할 뿐이지. 즉, 자신의 범죄를 감쪽같이 숨겨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럼, 어떻게……?
새로운 범죄……? 범죄를 범죄로 덮는다……?
석 경위는 갑자기 숨이 막히며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리고 손에 땀이 배고 등줄기를 타고 시커먼 무엇인가가 쓰윽 지나간다. 그러면서 머릿속이 뾰족해지는 것이었다. 송곳 끝처럼, 북극의 얼음산 끝처럼.
석 경위는 이슬이 사는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몇 층 몇 호인지는 모르지만 다닥다닥 붙은 저 창문 중 하나에서 이슬이 아마도 지금 잠들어 있을 것이다. 채이슬. 채 씨가 많지는 않겠지. 경찰 신분으로 관리실에 찾아가서 물어볼까? 하지만 무슨 명목으로?
석 경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CCTV가 설치되어 있나 해서. 하지만 금방 포기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어떤 일도 벌일 수 없다. 금방 들통 날 테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밖으로 나가자. 단지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이 안에서 어물쩡거렸다는 것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곤란한 일만 발생할 뿐이다.
하……. 방법이 없다, 방법이.
어떻게 한다……?
일단 출근부터 할까…….
이슬은 일부러 로버트 옆에 붙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따라갔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특히 문현희 선생에게. 물론 로버트 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그 두 사람이 별 관계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현희 선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사실 로버트가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이슬은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친절과 부드러운 눈길 등등으로 인해서. 게다가 캐나다 교포라는 말이 어딘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미국 교포나 일본 교포라고 했으면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캐나다. 미국보다 더 낭만적으로 들리고 어딘지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 알래스카나 시베리아 같은 추운 나라도 있지만, 캐나다 북쪽의 그 북극은 좀 색다를 것만 같았다. 게다가 어디에서 들었는데 생각은 안 나지만 캐나다의 숲은 환상 그 자체라고 했다. 깊은 산 속의 침엽수 밀림과 빙산, 빙하, 너무 새파래서 맨눈으로 보면 시릴 것 같은 맑고 푸른 호수와 하늘……, 그런 것들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현희 선생이 로버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어서 마음이 복잡했었다. 그리고 저번 날 현희 선생이 로버트의 오토바이 뒤에서 허리를 꽉 붙잡고 떠나는 날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다. 만일 그것이 현희가 아니라 이슬 자신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지금은 로버트 대신 석 경위가 그 자리를 채워주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생활을 할 때 보았던 로버트의 모습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곧바로 고개를 저어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며 털어버리려 하긴 했지만.
그런데 오늘 새벽 뜻하지 않게 로버트를 만났다. 아주 가끔이지만 로버트의 오토바이를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본 듯한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이슬의 아파트 근처로 이사 왔다는 말을 들으니 어딘지 아주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가능성이 거의 없기는 하겠지만 혹시…….
그러나 곧 이슬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참 웃긴다고 생각했다.
얘, 뭐 하는 거니, 이슬아? 공연한 생각 하지 마.
공연한 생각? 뭐가 공연한 건데?
하지만 정말 공연한 생각 같은 느낌도 든다. 그리고 석 경위의 얼굴이 슬그머니 머릿속에서 올라온다.
이슬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괜히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어제 저녁 헤어지면서 석 경위가 준 선물상자가 생각났다.
무슨 선물일까……? 뜯어보고 나올 걸 그랬나? 어젯밤에 일부러 뜯지 않고 잔 것이 살짝 아쉬웠다. 어딘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 선물을 오랫동안 느껴보기 위해서 어젯밤 뜯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 운동을 다녀와서 아침밥도 다 먹고 옷까지 제대로 차려입은 다음, 하나의 의식처럼 그 상자를 풀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슬 자신도 정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어떤 아슬아슬함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누리기 위해서.
그런데 지금은 로버트를 따라서 어딘지 알 수 없는 찻집, 아니 커피숍으로 가고 있다. 캐나다에서 온 미남 선생님과 안개 낀 새벽에 자전거 도로를 달려서.
그러니 마음이 약간 복잡해져도 되는 것 아닌가? 이것도 하나의 스릴이 되는 것일까? 아슬아슬한 경계선의 마음.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지? 아슬아슬하다는 것이……? 그리고 또 경계선이라니? 무슨 경계선……?
이슬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았다. 6시에서 1분이 넘었다. 오늘은 뭘 하지? 오전에 어학 학원에 등록하러 갈 일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 영어는 일단 말은 통하니까, 휴직 중에 프랑스어 하나를 더 확실히 잡아놓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몇 번 도전했다가 번번이 시들해지곤 해서 늘 아쉬웠던 프랑스어. 그런 다음 유럽 쪽이나 캐나다 대학으로 가볼까……. 이슬은 이 참에 아예 한국에서 사라져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그거야 천천히 생각하자. 일단 프랑스어나 마스터해 놓고…….
로버트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비스듬히 올라가는 길. 자전거도로에서 빠져나가는 출구다. 그 위로 올라가서 조금 더 달리자 찻길이 나왔다. 안개는 더 짙어졌다. 도로에는 아직 차들이 많지 않았다. 조금 더 달려가니 아파트 단지가 나타난다. 그 옆으로 돌아들자 산길처럼 좁은 도로가 나타난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짙은 안개 속에서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다. 약간 힘들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런 길로 가서 커피점이 나오나……?
이슬은 자전거를 멈췄다.
앞서 가던 로버트가 조금 더 가다가 뒤돌아보고 자전거를 멈춘다. 그리고 한 발을 내리고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슬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였다. 돌아서서 내려갈까……. 이슬은 한 발로 땅을 짚고 서서 물끄러미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로버트가 사이클복의 포켓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엇인가를 꺼낸다.
5
석 경위는 본청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이라 차가 별로 없어서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석 경위는 우선 그 보석에 대한 정보가 들어와 있는지 경찰 통신망을 세세히 살폈다. 그리고 샌더스에 대한 정보나 기록도 뒤졌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긴 샌더스는 그러한 흔적이나 꼬리를 남길 인간이 아니다. 늘 감쪽같이 일을 벌이고 마무리한 뒤 예술계와 보석계의 상류층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그 위치의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저분한 일은 아래에서 다 처리한다. 게다가 그것이 샌더스와 연결될 일은 전혀 없다. 석 경위의 경우에도 그러하니까. 석 경위와 샌더스는 마주친 적도, 서로 연락한 일도 없는 것이다. 외면적으로는.
이제 저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려나……?
석 경위는 자신의 친척과 친구, 동료들을 모두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그중에서 저들의 공격 대상은 어디까지일까? 우선 석 경위가 가장 아파할 만한 곳을 놈들은 건드릴 것이다. 누가 그 첫 대상이 될까? 언제일까?
석 경위는 아침 6시 반도 안 되어 몸이 좋지 않아 쉬어야겠다고 말하고 본청에서 나왔다. 일단 경찰 통신망을 통해 자신과 관련된 정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이제는 이슬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슬에게 카톡도 몇 개 더 보내고 통화도 시도했으나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게다가 석 경위는 이슬의 아파트가 몇 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현희에게 연락해서 물어보기도 어렵다. 무엇인가 이유를 대고 물어봐야 하는데 마음이 급박해서 그런지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저 입 속이 바싹바싹 타고 심박만 빨라져 갈 뿐이다. 사고가 마비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경찰서에 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자신의 정체가 만천하에 공개되거나, 감쪽같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석 경위는 비장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둘러보고는, 또한 밖으로 나와서도 본청 건물을 한번 둘러본 뒤 차를 몰고 경복궁역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직터널 방향으로 차를 돌린 뒤 그대로 달렸다. 또다시 이슬의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속 연락하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석 경위는 아직 이슬까지는 저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자신의 차를 뒤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이슬의 아파트로 가면 안 된다. 다른 곳으로 유인할까? 저들의 정체를 한번 파악해 봐?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