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내 누이 (1&2/6)

천방지축 단편열차 (4)

by Rudolf


고운 내 누이


1


“많이 먹어.”

“누나는 왜 안 먹어?”

“난 여기에서 늘 먹잖아. 나 걱정 말고 어서 먹기나 해.”

“같이 먹자.”

“그래, 그래.”

김포공항 앞 공항동의 양서출장소 근처 한식집 2층. 영철은 누이와 마주 앉아 있었다. 영철은 누이가 얹어주는 불고기를 천천히 먹었다. 참 오랜만이다. 누이를 보는 것은. 누이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5년 전 누이는 부천 어딘가의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었다. 그때 이후 5년 만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누이는 많이 먹으라고 하며 계속 영철의 숟가락에 불고기를 올려준다. 점심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에 식당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영철은 혹 주인이 뭐라 할까 봐 다소 불안했지만 누이는 모른 척했다.

식사를 다 한 뒤 영철이 계산을 하려고 주머니를 뒤지자 누이가 영철의 손을 붙잡고 잡아끈다. 그냥 내려가라면서. 이층에서 계단을 내려가 계산대 앞에 벗어놓은 신발을 신을 때까지 누이는 영철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영철은 가는 눈으로 노려보듯이 바라보는 주인의 얼굴을 외면하고 계산대를 지나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왼쪽 다리를 조금 저는 주인이 못마땅한 눈으로 영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이는 영철의 팔을 붙잡고 계속 식당 밖으로 이끈다.

식당을 나오고 나서도 누이는 영철을 밀고 가면서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영철의 손에 쥐어주었다. 돈이었다. 영철이 뿌리치려 하자 누이는 영철의 바지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이렇게 해서 영철이 누이와 헤어진 지 근 50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누이의 부고를 받았다. 부천에 사는 먼 친척으로부터. 그러나 장례가 끝난 지 이미 넉 달이 지난 뒤였다. 그 소포는 주인을 못 찾아서 돌고 돌다 간신히 들어온 것이다. 부고는 편지가 아니라 자그마한 소포 속에 들어 있었다. 그 소포를 받은 것은 경주교도소에서였다. 65세가 넘은 수형자들은 모두 그리로 이감되기 때문이다. 영철은 소포를 받고 외출을 요청했으나 교도소에서는 가석방을 신청해 줄 테니 잠시 기다렸다가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영철은 지금 누이가 묻힌 김포의 고려공원묘지 근처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에는 부모님의 묘가 있는, 그러나 아무도 돌보지 않아 폐허나 다름없을 초라한 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포 속에 들어 있는 편지에 의하면 누이에게는 자식도 없고 식구도 없고 보호자도 없어서 묘를 따로 쓰거나 요즘 많이 하는 납골당이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탓에 그나마 남아 있는 부모의 묘에 합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포 속에는 부고 외에도 누이가 영철에게 남긴 유물도 함께 들어 있었다. 낡은 노트 세 권. 대학노트의 반만 한 미니 노트. 그곳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촘촘히 글이 씌어 있었다. 수십 년 전부터 써내려왔을 독백과 일기. 그러나 마지막 노트는 다 채우지 못하고 3분의 1 가량이 비어 있었다.

영철은 그 글을 교도소에서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울었다.

영철은 김포로 가서 누이의 묘를 찾았다. 실은 부모님의 묘. 퇴락한 묘. 고려공원묘지 근처에 있어서 찾기는 쉬웠지만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 마침 다행히 바로 옆에 크게 쓴 묘소가 있어서 그 자손이나 관리인들이 가끔 떼를 깎아주었는지 조금은 정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봉분은 누이가 묻힐 때 누군가가 손보아서 그런지 작지만 그럴듯했다. 비석은 옛 부모님 비석 그대로지만 그래도 똑바로 세워져 있다. 이것 역시 이번에 다시 세워준 것 같았다. 하지만 비석에는 흐릿하게 두 부모님의 함자와 생몰연월일만 있을 뿐, 누이와 영철의 이름은 없었다.

영철은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가져온 소주를 잔에 따랐다. 절을 하고 소주를 떼 위에 붓고 또 절하고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영철은 일어나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는 없고 잔뜩 흐린 하늘.

넓은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다. 갑자기 저 멀리 한쪽 구름 속에서 번쩍하는 불빛이 보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는 그쳤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우르릉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빗방울은 비치지 않았다.

또다시 구름 깊숙이에서 번쩍하는 불빛.

하!

영철은 저도 모르게 큰 한숨이 터져나왔다.



2


영철이 자기 누이가 큰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누이와 헤어지고 나서 5년이 지난 뒤였다. 영철이 원양어선을 타고 나갔다가 부산항에 들어와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도중에 패싸움이 났다. 그때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게 되었다가 알게 된 것이다.

경찰은 영철을 심문하던 중 두 번은 소년원, 한 번은 교도소에 갔다 온 기록이 있어서 그 가족에 대해 확인해 보려 했다. 그리고 마침 그 경찰서에 부천에서 근무하다 고향인 부산으로 전근해 온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 영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5년 전 서울 공항동 근처에서 발생한 한 사고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 사고의 주인공이 마침 영철의 누나였기 때문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영철은 경찰서 안에서도 행패를 부렸겠지만 누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빨리 달려가고 싶어 경찰 말에 고분고분 따라주었다. 경찰도 골치 아픈 인간 오래 붙잡아두고 싶지 않다고 느꼈는지 반성문 같은 자술서 한 장 쓰게 하고서 곧바로 내보내 주었다. 그러면서 절대로 사고 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영철은 그 다음날 아침 곧바로 급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택시로 공항동으로 향했다.

영철은 지난번 그 한식집으로 찾아갔다.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이 친절하게 맞는다.

“어서 옵쇼. 이층으로 올라가시지요.”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래층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다.

“아니, 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주인이 무뚝뚝한 얼굴로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시 소리친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오셨네요. 자 자, 위층으로 가시지요. 이쪽으로…….”

주인이 영철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는 영철 뒤쪽에서 들어오는 두 부부를 향해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을 한다.

영철은 약간 한옆으로 비켜섰다. 손님 두 사람이 영철 옆을 지나 주인을 따라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한다.

잠시 뒤 주인이 다시 영철에게 다가왔다. 말은 없이 슬그머니 영철의 얼굴을 쳐다본다. 무엇을 주문하겠느냐는 듯한 표정이다.

영철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낮게 헛기침을 하고서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뭣 좀 물어보려고요. 저……, 여기에서 그전에 영순이라는 사람이 일하지 않았었나요?”

주인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없이 쳐다보기만 한다.

“지금도 여기에서 일하나요?”

영철이 초조해져서 다시 물었다.

주인의 가는 눈이 더욱 가늘어진다.

“아, 혹시……, 한 5년 전에 여기에 한번 왔었던 영순이 동생 아닌가……?”

“맞습니다.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제 누나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아직 여기에서 일하나요?”

“네에, 잠시 기다리십시오.”

주인은 일층 안쪽에서 어느 남자가 부르는 소리에 크게 대답을 하고 주방 쪽으로 뛰듯이 걸어간다.

영철은 멀뚱하니 서서 주인을 따라 눈을 옮기다가 식당 안을 빙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서 숯불에 고기 굽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인이 주방 안에서 직접 고기가 든 쟁반을 들고 나와서 종종걸음으로 홀 안으로 들어간다.

영철은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층에서 몇 사람이 내려온다. 주인이 그것을 보고 뛰어와서 계산대 뒤로 돌아 들어간다.

잠시 뒤 주인이 다시 영철 앞으로 왔다.

“식사 좀 하시겠습니까?”

“아뇨. 먹고 왔습니다. 저, 제 누나 소식 좀…….”

“그게 말이죠, 영순이가 그때…….”

주인이 영철의 눈을 피한다.

영철은 느닷없이 두 손으로 주인의 멱살을 와락 붙잡았다. 그 바람에 주인은 들고 있던 조그만 수첩을 떨어뜨리며 소리 질렀다.

“이게 왜 이래? 이 손 놔!”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쳐다본다.

“우리 누나 지금 어디 있어?”

영철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치듯 말했다.

“진석아, 경찰 불러! 파출소에 전화해!”

주인이 주방 쪽으로 소리를 지른다.

“우리 누나 말이야! 이 새끼, 말 안 하면 죽여버릴 거야!”

식당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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