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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초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그 전 해의 10월 5일에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한인 동포사회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상을 주었는데, 그 당시 남미 베네수엘라에 가서 구호활동을 하는 바람에 상을 받지 못한 분이 마침 샌프란시스코 인근 베이 지역으로 돌아왔기에 1년이나 지났지만 시상식을 가진 일이었다. 또 하나는 그날 오후 총영사관 내에서 60대 후반의 한국인이 경비경찰의 총에 맞아 즉사한 일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일은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 외교부에서 모두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5년 전 늦가을 한 병사가 서울 용산의 국방부를 찾아갔다. 이름은 송정섭. 그는 2년간의 방황 끝에 간신히 들어간 전문대학을 마치고 군 복무 대신 방위병으로 인천의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송정섭의 집은 인천 앞바다 무의도.
지난봄 함께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던 다른 방위병이 동네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허위서류를 발급해 주었다가 감사에서 적발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할머니에게서 양담배 한 상자, 즉 10갑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조사받는 과정에서 그 담배를 옆 동료인 송정섭과 나누어 가졌으며, 송정섭도 자신의 행위를 알고는 묵인해 주었다고 진술했다.
송정섭은 그로 인해 헌병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리 큰 문제로 번질 것 같지 않았으나 옆 동료가 며칠 괴로워하다가 연락을 끊은 채 사라지고 만 뒤 일이 복잡하게 되고 말았다. 헌병대에서는 송정섭에게 겁을 주었다. 송정섭으로서는 실질적으로 탈영에 해당하는 그 동료를 찾아오거나, 아니면 혼자서 죄다 뒤집어쓰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담배 한 상자든 몇 백만 원이든 뇌물은 모두 똑같고, 더군다나 군 복무자 입장에서 공문서 위조는 죄가 더욱 크다고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이 공모한 것이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조사를 맡은 헌병대 중사는 꽤 너그러운 사람 같았다. 한편으로는 겁을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자 사는 가난한 할머니를 도와주려 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수 있다며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송정섭이 주범은 아닐 듯하니, 조사과정만 잘 견디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중사가 송정섭을 따로 불렀다. 자신이 잘 아는 군 법무관이 서울 용산의 국방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그에게 한번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답답하던 차에 송정섭은 동사무소에 가서 이러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이렇게 해서 송정섭은 서울 용산의 국방부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
송정섭은 국방부에 들어가서 그 법무관 사무실을 찾았다. 법무관은 잠시 사무실을 비웠다고 하는데, 당번병이 옆방이 마침 비어 있으니 그곳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이 알려주겠노라고 했다. 송정섭은 그 말대로 옆방에 들어갔다. 방 주인이 이사 가고 또 다른 사람이 이사 오는 과정인지 잡다한 물건 보따리가 몇 개 있고 책상이나 책장 등의 집기가 약간 어질러져 있었다. 송정섭이 그곳 의자에 앉아서 잠시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대위였다.
송정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경례를 했다.
“응, 됐어. 쉬어.”
그러고 나서 대위는 검은 서류가방을 건네주며 말했다.
“저 창문 밖으로 내다보면 검은 승용차가 있는데, 그 차 뒷좌석에 이것 좀 갖다놓고 와. 차 문은 열려 있으니까. 그냥 놓고 오면 돼.”
대위는 이 말만 하고 도로 나가버렸다.
송정섭은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검은 승용차 뒷좌석 문을 열고 가방을 놓으려는 순간 몇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 송정섭은 저도 모르게 돌아다보았다. 사복을 입은 두 사람과 상사 한 사람. 세 사람은 다짜고짜 송정섭을 붙잡고 팔을 뒤로 꺾은 채 구타를 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 권총을 들이댔다.
그 뒤 송정섭은 육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서 죽도록 맞았다. 처음에는 이유도 말해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자신은 1급 군사기밀을 빼낸 간첩 혐의로 붙잡힌 것이다. 그것도 현행범으로.
송정섭은 단지 어떤 대위의 심부름을 한 것뿐이라고 항변했으나 소용없었다. 그가 설명하는 그런 대위는 국방부나 그 어느 부대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법무관 사무실의 사병도 송정섭에게 옆방으로 가 있으라는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했으며, 인천 헌병대의 그 중사도 송정섭에게 그 법무관에게 가보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송정섭은 동료의 살해 혐의까지 받게 되었다. 그 동료는 송정섭이 체포된 뒤 2주가 지나 무의도 남쪽 해안가에서 복부와 목이 심하게 찔린 채로 발견된 것이다.
송정섭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형도 함께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형은 건달처럼 살면서도 어디에서 돈이 들어오는지 잘 쓰고 다녔다. 하지만 그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어선을 타고 나갔다가 실수로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한 해군에게 나포되었으나 이례적으로 한 달 만에 돌아온 전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뒤 2년 만에 바다에 나가 심한 폭풍을 만나서 실종된 뒤 돌아오지 않아 최근에 사망 처리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보안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아버지가 납북되어 사상교육을 받고 돌아와서 두 아들에게 붉은 물이 들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실종된 것도 실은 북으로 넘어가기 위한 속임수였다. 송정섭의 형은 북에서 아버지가 보낸 대리인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받으며 간첩짓을 했고, 송정섭 역시 그들의 지령에 따라 국방부 내에 있는 고정간첩과 연락이 닿아 기밀을 빼돌리려다 체포된 것이란다. 그리고 동사무소 동료가 이 사실을 눈치 채자 아무도 모르게 그를 살해했다고 했다.
송정섭은 모든 것을 부인했다. 엄청난 구타와 고문에도 견뎠다. 몇 번 실신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설사 아버지가 북에 살아 있고 또 형과 연락이 닿았다 해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송정섭은 그 사실도 꾸며진 것이라고 여겼다. 형이 어디서 못된 짓을 해서 돈을 구해 왔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아버지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신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도 암시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뒤 형이 자백했다는 말을 들었다. 형과 대질심문이 있었던 날, 송정섭은 형의 눈을 보고 그것이 거짓임을 알았다. 형은 더 이상 고문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 뒤 형은 조사 도중 죽었다. 하지만 송정섭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죽는 것이 더 나았다. 형이 잘 죽었다고 생각했다. 형이 고문 받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은 자신이 고문 받는 것보다 더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래, 차라리 잘 죽었어…….
송정섭은 악질 간첩으로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동료 살해 혐의까지 더해져서. 송정섭은 군 형무소에 가서도 날마다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인했다.
송정섭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그와 함께 인천의 모 전문대학에 다니는 여학생. 김미연. 그녀는 집안이 좋았지만 가난한 섬 출신의 송정섭과 동거를 했다. 부모가 그 사실을 알고 극렬하게 말렸으나 그녀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임신했다.
송정섭이 간첩으로 잡혀 들어가자 김미연도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 집안의 막강한 배경이 그것을 막아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이 운영하던 큰 회사를 나라에 바쳤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까지 빨갱이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벌어놓은 돈만으로 만족하자며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이민 가기로 했다. 그때서야 김미연은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다.
김미연은 딸을 낳았다. 송정섭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날이었다. 딸의 이름은 선희.
김미연은 선희가 백일이 지난 다음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미싱공으로 일하는 송정섭의 큰누나를 찾아갔다.
송정섭이 붙잡혀 들어간 뒤 그 주변 사람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과 친구 등 모두가 크고 작을 뿐 경찰과 중앙정보부에 시달리고 여러 가지 불이익도 받았다. 그래서 그들 모두 송정섭과 관계된 일이라면 손사래를 치게 되었다.
김미연은 송정섭 큰누나에게 자신은 곧 외국으로 떠난다며 아기를 부탁했다. 큰누나는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받아 거의 혼이 나간 채 혼자 살고 있는 무의도의 홀어머니에게 전해 주었다.
그로부터 5년 뒤, 군부대에서 대규모 간첩사건이 적발되고 그 일당이 붙잡혔다. 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송정섭이 단지 그들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군부와 중앙정보부에서는 그 일을 비밀에 부쳤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봄, 송정섭에게 석방 제의가 들어왔다. 그동안 충분히 고생했을 테니 이제는 전향하라고. 하지만 송정섭은 전향할 게 없었다. 단 한 번도 빨갱이인 적이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저쪽에서 말을 꺼냈다. 대통령 취임 첫 광복절 특별사면에 선정해서 석방시켜 주겠다고.
그렇게 해서 8월 15일, 송정섭은 45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나이는 일흔이 다 되어갔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목을 매어 자살하고, 큰누나 역시 그보다 먼저 혼자 살다가 폐결핵과 폐암이 겹쳐서 죽고 말았다. 작은누나도 어머니보다 먼저 동두천 창녀촌에서 포주에게 얻어맞아 반병신이 되었다가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송정섭의 부모는 원래 황해도 해주에서 살았는데, 육이오 일사후퇴 바로 직전에 두 딸만 데리고 피난 내려왔다가 모진 고생 끝에 어찌어찌해서 무의도에 들어가 자리 잡게 된 탓에 남한에는 친척이 하나도 없었다. 아주 먼 친척의 친척뻘 되는 사람이 파주에 하나, 원주에 하나 산다고는 했지만 월남한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형무소에 가 있는 동안 송정섭에게는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었고, 그 역시 아무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송정섭은 간첩과 접선한 사람인데다가 살인혐의까지 있었기 때문에 설령 친척이 있다 해도 아는 척할 리 없었다. 그러나 누나들과 어머니가 숨질 때마다 형무소에서는 송정섭에게 그 사실은 알려주었다. 하지만 송정섭은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송정섭은 가석방되기 몇 달 전부터 교육을 받았다. 일종의 사회적응교육. 하지만 그에게는 소용없었다. 45년간 세상은 너무도 변해 있었던 것이다.
송정섭에게는 출소 후에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한 시립아파트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1년이 시한부이고, 이 이후에는 자립해서 나가야 한다. 이 밖에 정부에서 주는 약간의 노령연금과 위로금이 매달 지급된다고 했다. 송정섭은 이동과 거주는 자유로웠지만 외국에는 나갈 수 없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매달 1~10일 사이에 가까운 경찰서나 파출소에 가서 신고해야 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정부에서 상담원이라는 사람이 파견되어 생활지도를 해준다고 했다. 주민등록증도 새로 발급되었고, 출소 선물이라며 단순한 기능을 지닌 핸드폰도 지급되었다. 그것으로 급한 일이 있으면 지정해 준 상담원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특이한 사항이 있을 때도 반드시 알리라고 했고. 그리고 형무소 구내매점에서 적당히 골라 입혀주고 사준 옷가지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가방은 가득 찼다.
간첩. 비전향 장기복역수. 게다가 증거는 없지만 동료 살해범. 그러다가 특사로 풀려난 독종. 어딘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송정섭 자신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송정섭의 어머니는 손녀와 1년을 무의도에 살았으나 주변의 욕설과 기피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평화시장에 있는 큰딸에게 갔다. 그러나 3년 뒤 큰딸이 죽자 동두천에 있다는 작은딸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하지만 작은딸마저 6개월 뒤 자살하자 다시 손녀를 데리고 무의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 년을 산 뒤 송정섭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선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선희는 할머니와 살면서 부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물론 너무 어렸기 때문에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떻든 선희로서는 다만 주민등록등본에 나오는 가족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알 뿐이었다. 또한 고모들에 대한 기억도 희미했다. 거의 기억이 없다고 해야 옳았다. 게다가 선희는 여러 고아원을 전전해 다니며 산 탓에 모든 기억들이 뒤죽박죽이었다.
송정섭은 감옥에 있는 동안 김미연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어찌되었을까? 송정섭은 자신이 잡혀 들어간 뒤 낙태라도 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자신의 가족처럼 그녀의 가족도 끔찍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와 그 가족에게도 송정섭은 큰 죄를 지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60대 후반. 어쩌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혹 살아 있다 해도 자신과는 전혀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오직 그녀만 그리고 살았다. 이 세상에서 그가 상상으로나마 꿈꿀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송정섭은 상담원에게 부탁했다. 김미연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느냐고. 살아 있다 해도 그녀에게 찾아가지 않겠노라고 했다. 상담원은 처음엔 난감해했다. 그러나 송정섭이 그녀의 옛 주소나 주민센터로 찾아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송정섭은 며칠 뒤 그녀의 가족은 아주 오래전에 남미로 이민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송정섭은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내용은 그가 고통 받은 지난 45년의 세월을 보상받고 싶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보상? 공식적으로 자신은 간첩인데 무엇을 보상받는다는 말인가? 편지를 보낸 사람은 송정섭이 억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어떻게? 그리고 주소는 또 어떻게 알았을까? 송정섭은 이 일을 상담원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며칠 뒤 또다시 편지가 왔다. 이번의 내용은 미국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하라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자신들이 책임진다고 했다. 망명? 무슨 사연으로 망명을 하라는 것인가? 미국인에게 북한 간첩을 보호해 달라고 하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들’이라고 밝힌 그들은 누구인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인가? 하지만 미국대사관으로 망명하라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송정섭 자신은 이제 자유인이나 마찬가지다. 망명을 한다고 해서 더 큰 자유가 얻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송정섭은 밤새워 뒤척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