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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Apr 14. 2021

아주 슬픈 (3/20)

3     


페루 동부 앙카시 지역에서 동쪽 우아스카란 너머 국립공원의 산맥을 넘으면 산타루이스라는 산골마을이 나타난다. 주로 남미 원주민들이 모여사는 그곳. 새벽에 떠돌이 두 사내가 산에서 내려온 순간부터 그 마을에는 불길한 징조가 감돌았다.

    이들은 산맥 너머 서쪽에서부터 멀고 먼 길을 굶주리며 산맥을 넘어왔다. 영국인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도망쳐 온 것이다.

    마구엘과 비투안 형제.

    나이 마흔이 넘도록 결혼도 못 하고 죽도록 일만 한 끝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안데스 산맥을 넘은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그들을 원치 않았다. 몇 년 전 다른 마을에서 이 형제와 같은 탈출자를 하나 받아들인 탓에 주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도 끊어지고 근처에 있던 피혁공장도 다른 곳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마을 출신들은 다른 도시에서 일일 건설노동자로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는 순간 자신의 마을에서 공장이나 농장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유일한 성당의 신부는 그 형제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마을은 두 쪽으로 나뉘어 갈등하다 나중에는 살인사건으로 발전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마을의 농부가 밭으로 나가다가 신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앙심 깊은 이 농부는 평소 그 신부를 존경했으나 신부가 외지인을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성당에 발도 들이지 않았었다. 자신의 두 아들이 마을 외곽에 있는 플라스틱 생산공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부가 도망자를 받아들인 이후 영국 자본으로 세워진 그 공장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차례로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신부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던 중 그날 아침 일찍 이 농부의 집으로 오던 길에 칼에 찔려 살해당한 것이다.

    그 후 이 사건은 아주 복잡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동안 신부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교회 측에 서서 신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조속히 밝혀달라고 당국에 항의하면서, 더 나아가 신부가 보호해 준 두 탈출자를 자신들이 지켜주겠다고 한 것이다. 신부의 뜻을 이어받는 것이 신부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과는 달리 신부 살해사건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마을 사람들은 정부가 영국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를 미적거리는 것이라 여기고 경찰서에 가서 강력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페루의 한 산골 마을에서 시작되었으나, 차츰차츰 일이 커지면서 급기야는 페루와 영국의 외교문제로까지 번지고, 여기에 바티칸까지 가세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에 더해서 남미 여러 국가의 언론이 영국을 비롯해서 페루 곳곳에 진출한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기업들이 벌인 횡포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특히 유럽 쪽 국가들에서 불편한 기색을 나타내며 남미에 진출한 기업들이 공장을 다른 대륙으로 옮길 수도 있다는 식의 압박을 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6개국이 중심이 된 남미공동시장(MERCOSUR)이 이에 반발하면서 국제적인 정치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MERCOSUR는 중남미 전체 인구와 경제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남미에서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국제기구에 해당한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중남미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늘 신경전을 벌이던 멕시코와 미국이 가세하면서 미국은 남미 국가들, 멕시코는 유럽과 일본 쪽에 힘을 실어주는 바람에 양상은 국제 정치경제 전쟁 직전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분쟁 속에서 한국은 중남미에서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외교적으로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중남미 곳곳에 들어가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펼친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얻어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베네수엘라 산골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마약조직에게 갇혀 오랜 세월 지낸 미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마약조직에서는 그동안 미연이 중국인인 줄 알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한국인인 것을 알게 되자 여러 가지로 호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연은 갑자기 ‘오스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오스멜은 베네수엘라의 미인 영웅 오스멜 소우사(Osmel Sousa)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미연이 동양인 할머니이면서도 오스멜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면서 지어준 것이다.

    오스멜 소우사는 쿠바 태생으로서 1946년에 태어나 37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미인계를 지배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4대 미인대회인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어스(Earth)에서 총 22번이나 우승한 미인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오스멜이 있었다. 그녀는 미스 베네수엘라 조직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내면서 수많은 미인을 선발해 교육시켜서 세계 미인대회를 석권한 ‘퀸 메이커’였다. 오스멜 소우사는 미인대회 말고도 미남대회나 모델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서 베네수엘라에서는 거의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인 넷플릭스에서도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베네수엘라’를 만들었을 정도니까. 더군다나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독재정권 아래 놓여 있다가 미인대회로 인해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다. 한 야구장에서 미인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가난한 가정 출신의 여자가 선정된 이후 가난한 여성들이 미인대회에 나가기 위해 꿈을 안고 대도시로 진출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온 국민의 사회참여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베네수엘라에서는 미인대회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오스멜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미연을 그냥 ‘미’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에스파냐 어로 ‘belleza(美)’를 나타낸다고 하는 말을 듣자 곧바로 오스멜 소우사와 연결시킨 것 같았다.

    어느 날 마약조직은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미’, 즉 오스멜의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처음에는 트럭 뒤에 태워졌으나 중간에 작은 보트를 타고 조그만 호수를 건넌 뒤 다시 트럭에 태우고 갔다. 무려 한 달 동안. 중간중간에 여러 은신처에 들렀다가 미연을 다른 조직에게 넘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해서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도시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어느 지점에 미연을 내려주었다. 여전히 눈을 가린 채. 그리고 마음속으로 100까지 세고서 눈가리개를 풀라고 했다.

    미연은 그 말대로 100까지 센 다음 조심스럽게 눈가리개를 풀었다.

    미연은 눈을 뜨자마자 어지러웠다. 수십 년간 보지 못했던 광경. 너무도 낯선 세계.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눈앞에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불어오는 바람이 산골짝의 텁텁하고 더운 김이 서린 바람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막상 눈가리개를 벗고 보니 천지가 개벽한 듯 광경도 냄새도 모두 천상의 것이었다.

    아, 이런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시퍼런 바닷물이 저 멀리 한없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도 높은 하늘이 끝 간 데 없이 올라가 있었다. 그 하늘은 깊은 산맥 속에서 본 하늘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새파란 그 하늘이 어딘들 똑같지 않으랴마는 지금 미연의 눈앞에 높이 솟아오른 하늘은 생명과 환희와 희망이 담겨 있는 새로운 공간이었다. 게다가 시퍼런 바다와 투명한 푸른색 하늘이 서로 희미하게 사라지는 곳에서 만나는 수평선. 그 긴 선은 양쪽으로 한없이 확장되어 퍼져나가고 있었다. 생동감 넘치게 뻗어가는 생명처럼.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바닷새들.

    그리고 또 다른 생명들. 바다에는 요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맞아, 저게 바로 요트지. 말로만 들었던 그런 배들. 요트뿐만 아니라 작은 배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질주하고 있었다. 하얀 물거품을 내면서. 그들은 모두 생명이었다. 안데스 산맥 골짜기의 수십 년간 멈추어 버린 죽은 세계가 아니라 살아서 약동하고 활개 치는 생명이었던 것이다.

    미연은 넋을 잃고 그 광경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좁고 긴 부두에 온갖 배가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천국에서 온 사람들. 미연은 선남선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수십 년 전 과거에서 불쑥 나타난 그 단어. 맞아, 저들은 이 지상의 사람들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 날개 없는 천사, 선남선녀들.

    미연은 바다에 취해 자신이 서 있는 주변을 미처 의식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어느 도시의 항구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도시 이름도, 바다 이름도 모른다. 오직 새로운 세계, 천상의 도시에 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미연이 서 있었던 곳은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지중해 연안 휴양도시 카라발레다(Caraballeda)였다. 베네수엘라 수도인 카라카스(Caracas)에서 북쪽으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서 카리브 해가 북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 그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900미터가 넘는 고원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바로 그 고원 한가운데에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가 자리 잡고 있다.

    미연은 카라발레다의 경찰서로 찾아갔다. 그러나 자신이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자신을 풀어준 사람들도 미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협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연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내뱉는 순간,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온전치 못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는 어디를 가든 또 어느 때든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미연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십 년 세월 동안 미연 눈앞에서 끔찍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늘 미연의 귀에 남아 있다. 서양인, 동양인, 흑인, 인디오 등등 세계 온갖 인종과 국가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지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미연은 또다시 잃어버렸던 단어가 떠올랐다. 남녀노소. 맞다. 남녀노소 안 가리고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비명.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미연은 자기가 수십 년간 지냈던 그 산골짝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지구에 있는 곳인지 지옥에 속한 곳인지. 또한 그곳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었다. 오직 하루만 있었을 뿐이다. 하루, 하루, 또 하루……. 생명이 붙어 있으면 그것이 하루였다. 내일 생명이 없어지면 하루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수십 년의 하루들.

    그러한 미연에게 갑자기 다른 하루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 하루하루는 지금껏 보낸 하루들과 어떻게 다를지 미연은 아직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 지금까지 지낸 하루하루는 포기였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하루하루는, 미연은 어쩌면 공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입을 연다면.

    미연은 카라발레다 경찰의 도움을 얻어 카라카스에 있는 한국대사관으로 가게 되었다.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 거리와 타마나코 거리 사이의 고급 호텔 센트로 리도(Centro Lido)의 B 타워 9층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 속의 대한민국으로.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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