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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은 유학을 포기했다. 물론 2학기 등록도 포기했다. 외할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족도 부모도 형제도 모두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유학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된다. 안 가도 그만이다. 가족을 찾는 게 우선이다.
물론 그 편지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아로 지낸 송연 자신을 일부러 찾아내서 송정섭이라는 사람의 가석방 소식을 알려준다는 것이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게다가 왜 하필 무의도에 있는 행정센터에서 보낸 것으로 했을까? 송연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무의도라는 섬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다.
유학 포기에 대해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송연의 결심은 확고했다. 지금까지 근 20년을 살아오면서 온갖 것 다 겪었다. 그것을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왜 일어났을까?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송연에게 가족이, 부모가, 보호자가 있었다면 겪을 필요가 없었던 일들이다.
그러나 이제 어쩌면 송연이 지금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남들이나 누리는 단어처럼 여겨졌던 가족, 그리고 너무도 정겨운 단어 외할아버지…….
송연은 새벽에 집을 나서서 무의도로 다시 찾아갔다. 전철을 몇 번 바꿔타고 인천공항역으로 가서 자기부상철도로 갈아타고, 그리고 무의대교를 통해 잠진도라는 조그만 섬을 지나서 무의도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가는 길이라서 첫 번째보다는 고생을 훨씬 덜했다.
송연은 무의도 입구 삼거리 로터리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가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송연은 막상 무의도에 다시 왔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계절은 8월말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고, 사람들도 많았다.
그날 하루 종일 송연은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걷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했다. 실미해수욕장에 가서는 유명한 영화 ‘실미도’라는 곳의 무대인 그 섬을 건너다보기도 했다. 송연은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실미도가 무의도 옆에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무의도를 실미도와 연결시켜 섬의 이미지가 어딘지 음산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섬 전체의 모든 것이 밝고 환했던 것이다.
송연은 무의도 제일 남쪽 끝 광명항 건너편의 펜션 근처까지 갔다가 산길을 걸어서 넘어가 하나개 해수욕장까지 갔다. 저녁 무렵 황혼이 질 무렵이었다. 다리가 퉁퉁 부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모래사장에 서서 해가 지는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루의 피곤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 하루 종일 송연은 무의도 곳곳을 다녀보았다. 특별히 어떤 의도나 계획은 없었다. 단지 편지봉투에 쓰여 있는 무의도라는 글자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다. 오전에는 그 행정자치센터에 한 번 더 가서 지난번 만났던 여직원에게 송정섭이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지만, 그보다도 다른 이에 대한 신상정보는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이것이 제 핸드폰 번호와 집 주소입니다. 혹시 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서요. 부탁드립니다.”
송연은 이렇게 말하며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그러나 직원은 그 종이가 부담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송연은 억지로 맡기다시피 창구 안으로 밀어넣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 얼른 돌아섰다.
그런 뒤 무의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외할아버지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그리며 나이 든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지금 이곳 남쪽 해안가에 와서 선 것이다.
송연은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지나간 적은 있다. 그러나 바다에서 캠핑을 하거나 저녁노을을 감상한 적은 없었다. 송연의 삶은 그런 것들과는 너무도 멀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중학생들 과외, 학교와 이곳저곳의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지금도 그런 생활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자신이 지금 서해바다 석양과 마주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송연에게는 단순한 서쪽하늘 해넘이를 감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주는 것이었다.
송연이 자란 고아원 근처에는 대왕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높이 20미터 이상 곧게 쭉쭉 올라가는 대왕참나무 숲은 송연의 피난처였다. 낮이고 밤이고 시간만 나면 그곳에 갔다. 그리고 참나무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참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들과도 대화하고, 그 바람 소리에게서 위로를 얻고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특히 저녁 무렵 참나무들 사이로 빗살처럼 비쳐드는 석양의 황금 햇살은 송연의 마음을 황홀하게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 서해바다로 넘어가는 해가 만들어내는 황혼은 참나무 사이로 갈라져서 비쳐드는 그런 것이 아니고 마치 태초의 온전한, 조금도 흠이 없는 완전체였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그 황홀감!
송연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서해바다 해넘이를 찍은 핸드폰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감상의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