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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Apr 15. 2021

아주 슬픈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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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은 대학에 입학해서 영문과를 다니다 1학년 2학기 직전에 휴학을 하고 미국으로 1년간의 언어연수를 떠나게 되어 있었다. 비록 지방대학이지만 학교 성적이 좋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었고, 미국 유학비용도 상당 부분 학교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송연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8월 광복절 사흘 뒤 이상한 편지를 한 통 받았다. 학교에서 오는 것이나 공적인 것 외에는 거의 받아보지 못했던 편지다. 

    발신인은 무의도주민자치센터. 그리고 내용은 외할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송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친척이 있다니. 게다가 외할아버지. 송연은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겨졌다. 아버지 이름은 모르고 성이 진 씨인 것만 안다. 어머니 이름은 송선희. 그 밖의 것은 모른다. 아, 송연 자신의 생년월일만 빼놓고는. 부모의 고향이 어디인지, 몇 살에 송연을 낳았는지,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두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외할아버지라니.

    송연은 유학 준비 때문에 여러 가지로 바빴지만 시간을 내어 무의도로 찾아갔다. 주민자치센터. 

    “무슨 일로 오셨어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미소 지으며 묻는다.

    송연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보여주었다.

    여직원은 봉투를 보더니 눈을 찌푸린다. 그리고는 안에 든 내용도 보지 않고 돌려준다. 

    “이건 저희가 보낸 게 아닌데요.”

    “네? 여기 무의도주민자치센터라고 써 있는데…….”

    “저희는 이런 식의 편지는 보내지 않아요. 저희가 쓰는 정식 편지봉투가 있거든요.” 

    직원은 자기 자리 옆의 서류함에서 편지봉투를 꺼내어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모두 이런 공식적인 봉투만 사용해요. 그 편지처럼 손으로 이곳 주소를 써서 보내지 않아요.”

    송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혹시 이 편지 여기 어느 분이 써서 보내셨을지도 모르잖아요.” 자신 없는 말투.

    직원이 손을 내민다. 송연은 편지를 다시 주었다. 직원은 편지를 받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들에게 다니면 물어본다. 그러더니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직원이 다시 나와서 자리로 돌아와 편지를 송연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흔들면서 말한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이런 편지 보낸 적 없대요. 그리고 여기 소인을 보면 인천 간석동 우체국으로 되어 있거든요. 우리가 보낸 게 아니에요.”

    “그럼 여기 무의도주민자치센터라고 써 있는 것은……?”

    “글쎄,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네요. 누가 마음대로 썼을지도 모르고…….”

    송연은 난감했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송연은 자치센터 문을 나서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나서 다시 돌아서서 들어갔다. 좀 전에 송연을 응대했던 직원은 다른 중년 남자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송연은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창구 옆에 가서 서 있었다. 직원은 송연을 한번 슬쩍 쳐다보고는 그대로 자기 일을 처리한다.

    잠시 뒤 중년남자가 돌아서자마자 송연은 창구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저, 죄송합니다만…….” 송연은 봉투에서 편지지를 꺼내어 내밀었다. “이 내용 좀 한번 봐주시겠어요?”

    직원은 그 편지지를 받고 읽어본다. 그리고는 다시 송연에게 내밀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내용 같은데, 저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런 편지는 보내지 않아요.”

    송연이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며 편지를 받자 직원이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자신 없는 투로 한마디 덧붙인다.

    “혹시 법무부에 가서 알아보시면…….”     



송연은 경기도 과천의 정부청사 법무부로 찾아갔다. 그리고 안내실에 그 편지를 보여주고 문의했으나 법무부와는 관계없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송연이 끈질기게 묻자 4층 보호관찰과의 직원과 연결되어 한참 승강이를 한 끝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즉, 송정섭이 815 특사로 가석방된 것은 맞지만, 법무부 어느 부서 어떤 직원도 그런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 송정섭의 가석방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보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송연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확인도 받지 못한 편지 한 장을 방바닥에 펼쳐놓은 채 고시원 방에 앉아서 무릎을 껴안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 편지를 정부기관에서 보내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법무부에서는 송정섭이 무슨 죄를 지었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송정섭이라는 사람. 편지에 의하면 송연의 외할아버지라고 한다. 그리고 왜 하필 무의도일까? 무의도와 송정섭, 그리고 송연이 어떻게 연결되기에 그런 편지를 보낸 것일까? 지금까지 확실하게 알아낸 것은 송정섭이라는 사람이 실제의 인물이며 또한 가석방된 게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송정섭이 송연의 외할아버지라는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편지를 보낸 이는 고아원에서 자라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송연은 어떻게 찾아내서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일까? 그리고 그 의도는? 또한 송정섭이 감옥에 있을 때 알려주지 않고 가석방되는 시점에서 알려준 이유는? 

    그러나 이 어느 것 하나 송연은 짐작도 할 수 없었고, 또한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 즉, 외할아버지라는 단어. 사실 여부를 떠나서 가족과 친척이 없이 자란 송연에게 외할아버지라는 말은 너무도 뜻밖의 단어였다. 외계어. 단지 낯설다는 것을 떠나서 상상 밖에 있는 단어. 그러나 너무도 그리운 말이었다. 어딘지 따뜻하고 가슴 뭉클하게 해주는 말. 어떤 아련한 품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말. 송연에게 막연하게나마 뿌리를 느끼게 해주게 하는 말. 이 세상에서 송연이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를 주는 말. 어쩐지 눈물이라도 나게 해줄 것 같은 말. 너무도 그리운 말. 아, 그 단어, 외할아버지. 너무도 정겹다. 너무도…….

    송연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코끝도 매워오는 듯…….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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