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거울속에는

by Rudolf

제1부 | 봄


제1장 | 거울속에는


1


인희.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지. 아무튼 국민학교 마치고 인희는 읍내 야간 공민학교 비슷한 데를 들어갔다. 졸업한 지 반 년 뒤에. 집에는 할머니와 당시 4학년인 남동생이 있었다. 엄마는 인희가 국민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이 화가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은 물론 약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거의 굶어죽다시피 한 것이다. 아마 내장 어딘가도 파열되었을 테고, 집구석에 기운 돋워줄 먹을 것 하나 없는 처지에 자포자기한 상태로 끙끙 앓다가 어느 날 밤 엉금엉금 집밖으로 기어나가 몸을 지렁이처럼 돌돌 말고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몸에 살은 거의 없이 마치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한 몰골로. 할머니가 뒷간 가다가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앉아 며느리 머리를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 그렇게 멍하니 밤을 새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밀수꾼인가 뭔가 하는 작자들을 쫓아다니다 몇 달에 한번씩 집에 돌아와서 행패만 부리고 휑하니 떠나곤 하다가 마누라 흠씬 두들겨 팬 뒤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밀수품 일부를 몰래 빼돌리다 들켜서 손발 잘린 채 저쪽 바다 어딘가에 잠겨버렸다고 한다.

인희가 공민학교 다닌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0월 초에 동네에 건달이 하나가 나타났다. 서울로 도망갔다고 소문 난 작자였는데, 어찌어찌됐는지는 몰라도 싸구려 양복 윗도리를 걸치고 껌 질겅질겅 씹으며 사설극장 야간영화처럼 금의환향 돌아온 것이다.

“니들 생각하는 것하고는 달라.” 건달, 아니 팔덕이 말했다. “서울 가면 코 베어가네 쓰리당하네 하는데 그런 거 죄다 병신 같은 놈들만 당하는 거야. 눈 똑바로 뜨고 걸어가면 서울 놈인지 촌놈인지 어떻게 알아? 서울 놈들도 거지 천지더만. 서울 거지들도 바글바글해. 내가 촌에서 왔는지 서울에서 굴러먹던 놈인지 지들이 어떻게 알아. 눈만 똑바로 뜨고 있으면 돼.”

아이들 대여섯이 따라붙으며 입에 손가락 물고 팔덕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호기심이 가득해 눈을 요리조리 굴린다. “코부터 닦아야 해. 누런 코 질질 흘리고 다니면 촌놈 아니래도 촌뜨기 취급당하는 거야. 그럼 그대로 끌려가. 염천교 밑으로. 거기서 죽도록 줘터지고 깡통 하나 받는 거야. 깡통. 깡통 알아?”

“거지 깡통? 저쪽 읍내 가도 그런 애들 있는데.” 인국이 말을 받는다. 코밑이 허옇게 헌 채 코를 흐륵흐륵거리며 팔덕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본다.

“넌 빠져, 인마. 네 할머니 장사 지내기 전에는 너는 서울 못 가. 너 말고 네 누나한테나 가라 그래. 이 촌구석에서 썩어봐야 공순이도 못 되고 니네 할멈 송장 옆에서 평생 벼룩 잡다가 쫑난단 말야.”

팔덕은 걸음을 성큼성큼 옮기며 인국에게 손짓하고 저만치 멀어져 간다. 인국은 멈칫거리며 다른 아이들을 둘러본다. 모두 자기보다는 어린 애들이다. 죄다 꾀죄죄한 얼굴에 호기심만 가득 나타낸 채 멈칫거리며 인국과 팔덕을 번갈아 바라본다.

팔덕이 걸음을 멈추고 반쯤 뒤돌아서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빨리 오라는 뜻. 인국은 마치 자신이 뽑혔다는 듯 약간은 우쭐한 느낌으로 슬금슬금 걸음을 움직인다. 팔덕이 뒤돌아서서 빨리 걷는다. 인국은 그 뒤를 따라서 잰걸음을 옮기며 다른 애들을 슬쩍 뒤돌아본다. 팔덕이 허름한 돌담 옆을 돌아 들어가자 인국은 뛰다시피 쫓아 담 옆으로 들어간다.

인국이 골목으로 들어서자 저만치서 팔덕이 걸음을 늦추고 말보로 담배를 꺼내어 문다. 바지춤에서 꺼낸 은빛 라이터에서 탁 소리가 나며 불꽃이 올라온다. 인국은 달리듯 그 옆으로 가서 나란히 걷는다.

“야, 인마, 빨리 오지 않고 뭘 꾸물거려?” 팔덕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비스듬히 위로 허공을 바라본 채 잔뜩 힘을 주고 말했다.

“팔뜩이 성, 어디 가는 거야?” 인국이 숨이 찬 목소리로 살그머니 물었다.

팔덕은 대답 없이 빨리 걷기만 한다. 담배연기를 길게 길게 내뿜으면서.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무심하게 묻는다. “니네 누나 요즘도 학교 다니니?”

“할머니 땜에 잘 못 가.”

“지금 집에 있어?”

“아니, 오늘은 학교 갔어.”

“언제 오니?”

“밤에. 잘 몰라.”

팔덕은 관심 없다는 듯이 성큼성큼 걸어서 저만치 멀어져 간다. 인국이 조금 쫓아가다 머뭇머뭇 제자리에 서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성인다.



며칠 뒤 늦저녁 팔덕이 인희네가 사는 초가집 바깥 탱자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빼물고 한 시간 이상 앉아 있었다. 늦가을인데다 9시가 넘은 캄캄한 밤에 몇 가구 안 되는 폐가 같은 집들이 한 덩이로 오밀조밀 붙어 있는 중에도 유난히 한 집만은 전혀 불빛도 없이 죽음처럼 새카맣게 놓여 있었다. 기름 찻종등잔조차 맘껏 켤 수 없는 처지일 것이다.

인희 할머니는 여든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근력이 좀 남아 있는 덕에 집 안팎이며 뒤란까지 그런대로 쓰레질하고 치워놓곤 했었다. 하지만 온갖 풍파에 시달린 탓에 요즘은 거동도 힘들어 인희가 거의 살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할머니가 어디서 모았는지 흙벽 속에서 때 묻고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어 월사금 만들어서 인희를 학교에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워낙 어려운 살림이라 인희는 학교 갈 시외버스 삯이 없을 때는 집 안팎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고, 어쩌다 할머니가 어디선가 구해 온 돈을 몇 푼 쥐어주면 한낮에 시외버스 타고 학교에 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오곤 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 저녁때면 인희는 집 앞 탱자나무 아래에 앉아 우두커니 별만 쳐다보았다.

인희는 보름 전부터 집에만 붙어 있다가 사흘 전에 어찌어찌해서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서 밤 9시경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팔덕은 그 시간에 맞추려고 진작부터 이곳에 와서 앉았다 일어섰다 빙빙 돌았다 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랄 났다고 학교에 다녀? 돈 벌어서 할멈 약이나 사다주지 않고. 병신 같은 년이 학교에서 뭐 배울 거 있다고 밤마다 나다니는 거야. 고거 이쁘장해서 이놈 저놈 주워먹으려 할 텐데.

아!

팔덕은 벌떡 일어섰다. 저만치 서너 집 건너에서 검은 흔적이 이쪽으로 쑥 돌아나오는 그림자가 비친 것이다. 팔덕은 반쯤 남아 있는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쏙 잡아빼서 아깝다는 듯이 한번 쳐다보고는 손가락으로 퉁겨서 멀찌감치 날려보냈다.

“야, 지금 오니?”

인희는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곧장 집으로 향한다. 방금까지 처져 있던 어깨에 힘을 주고 앞만 쳐다보고 걷는다. 몸에 헐렁한 교복, 책도 들어 있지 않은지 헐렁한 가방.

“이거 할머니 갖다주라. 인국이 걔는 집에 없던데 어디 간 거니?”

인희는 흠칫 놀라는 눈치다.

“이거 받아.”

인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걷는다.

“할머니에게 좋은 거다. 인국이는 어디 간 거야? 쪼끄만 놈이 밤중에 쏘다니기만 하고.”

인희가 얼굴을 반쯤 돌린다.

“아까 집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 많이 안 좋으신 것 같다. 이거 할머니 약이야.”

인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집 쪽을 빤히 쳐다본다. 팔덕이 얼른 인희 옆으로 다가가서 손을 쑥 내민다. 누런 봉투. 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어둠 속에서 거무튀튀한 병이 나타나고, 그것을 인희 얼굴 높이로 들어올린다.

“이거 하루에 세 번, 한번에 열 개씩 씹어먹는 거야. 물 없이 그냥 먹어도 돼. 이거 말야, 한 달 친데, 비싼 거거든. 할머니 드려. 금방 나을 거야.”

인희는 팔덕은 보지도 않고 약병 쪽으로만 눈길을 준다.



팔덕은 읍내 정다방에 앉아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레지에게 낄낄거리며 말한다.

“나 고삐리 아냐, 씨×. 도민증 있다구. 왜 내가 올 때마다 시비 거는 거야? 코핀지 커핀지 세 잔 가져오라니까. 미스 정 거하고 정 마담 거까지……. 뭘 꼬나봐, 씨×. 내가 다 낸다니까.”

팔덕은 느글거리는 웃음기를 머금으며 미스 정을 올려다보고 말한다.

“야, 너 이 촌뻘에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나 여기 토박이야. 내가 서울 갔다가 간만에 와서 날 몰라서 그렇지, 팔뜩이라고 하면 여기서 다 알아. 커피나 빨랑 가져와.”

팔덕은 담배를 비벼끄고 껌을 꺼낸다.

미스 정은 탁자 다리를 툭툭 치며 말을 내뱉는다.

“존 말 할 때 나가라. 오빠들 오기 전에.”

“오빠 좋아하네. 씨×, 내가 니 오빠다. 오빠라고 해봐. 화대도 줄게. 요거면 되니?”

팔덕은 왼손 엄지와 검지를 마주 비벼대며 대꾸한다.

미스 정이 카운터 쪽을 뒤돌아본다. 정 마담이 팔짱 끼고 앉아서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다가 미스 정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인다. 미스 정은 잠시 그대로 있다가 몸을 돌려서 카운터 쪽으로 간다.

팔덕이 윗몸을 의자에 뒤로 깊게 묻으며 낄낄거리듯 한마디 날린다.

“야, 니 냄× 나하고 한번 닦자. 화끈하게 해줄게…….”

그때 다방 문이 안으로 활짝 열리며 양아치 같은 폼으로 청년들이 한 떼 들어온다. 미스 정이 몸을 그쪽으로 돌리고 서자, 청년 하나가 그 옆을 지나치면서 미스 정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팔덕은 그 광경을 보면서 괜스레 불편해져 몸 자세를 바꾼다. 아니, 좀 비틀었다고 할까, 아무튼 신경이 곤두선다. 미스 정이 팔덕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팔덕은 눈 마주치는 것 피하듯 고개를 살짝 쳐든다.



인희가 시외버스에 올라탈 때 팔덕은 멀찌감치 숲 뒤에 몸을 숨기고 담배를 꼬나물고서 다 죽은 느티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둘은 비봉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두었다. 11월이라 날이 늦게 샜지만 그래도 촌부와 학생들은 신새벽에 다 떠나서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시외버스는 자리가 넉넉한 편이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저만치서 보따리를 안고 뛰어와 인희 뒤를 따라 차에 오르며 숨찬 소리로 묻는다.

“얘, 인이야, 할머니 어떠시니? 에고, 그 연세에 손주들 땜에 쉬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다 죽게 생겼다. 니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어디 가니?”

그 소리에 버스 안으로 들어가 앉던 몇몇 사람이 한마디씩 거든다.

할머니 약 사러 간대잖아요.

쟤 인이가 효녀지.

아유, 그래도 요즘 거동을 좀 하시나 봐요.

가시오개피 구해다 약 지어먹으면 좋다구 하던데.

아녀, 그런 건 너무 성해서 외려 독이 돼.

아이구, 아흔 다 됐으면 이젠 돌아가셔야지. 요즘 세상에 엄청 장수하셨구만.

그럼 애들은 어떡하구…….

인희는 모기소리만 하게 간간하게 대답하고 뒤쪽으로 가서 몸을 숨기듯 창 쪽으로 웅크리고 앉았다. 버스가 떠날 때 창문 너머로 뒤돌아보며 저 멀리 숲속 어딘가를 훔치듯 더듬는다.


인희는 이렇게 고향 해곶을 떠난 날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차라리 남몰래 밤에 걸어서라도 나왔으면 죄책감이 덜했을 것이다. 마을사람 여럿이 걱정해 주고 다독이고 칭찬하던 그 버스 안에서 인희는 그때 죽어버렸으면 좋았었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날 비봉 정류장에서 내려 팔덕이 그려준 약도대로 가슴 조마조마해 가며 찾아간 곳, 그때라도 발걸음을 돌렸어야 했다. 광복이발소 옆으로 난 좁은 골목길 끝 막다른 곳에 나타난 찌그러진 문짝 앞에 서서 그날 얼마나 망설였던가. 가슴은 콩딱콩딱, 대낮인데도 눈앞은 마치 검불에 씌운 듯 흐릿하니 마치 꿈속 같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얼마나 무모했던가. 무슨 마음으로 그 문을 두드렸는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초인종 세 번 눌러. 세 번. 그러면 어떤 아줌마가 나올 거야. 그 아줌마 따라서 안에 들어가 기다리면 내가 갈게.”

그 아줌마라는 사람은 인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뚝뚝한 얼굴로 나와서 문을 열어주고 위아래로 한번 훑어본 다음 들어와 하고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는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어떤 창호지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있으라는 시늉을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낮이지만 방 안은 무척 추웠다. 칙칙한 국방색의 담요를 깔아놓은 아랫목에는 온기가 약간 있는 듯했지만 왠지 꺼림칙해서 그곳에 앉지 않고 바람 새들어오는 문가로 가서 가슴만 콩닥거린 채 무릎을 감싸안고 그대로 얼어붙은 채 앉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인희는 미쳤던 게 틀림없었다. 아무리 열세 살 중학교 1학년이라도 그 정도 사리분별은 했어야 했다. 어찌 그리 무모했던가. 하지만 팔덕이 한 이야기는 인희의 귀에 밤이나 낮이나 맴돌았다. 서울 가면 돈 벌 수 있다는 것. 그 돈으로 팔덕이 준 할머니 약을 더 살 수도 있고, 인국도 국민학교 졸업하면 버젓한 중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희 자신도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허황된 꿈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엔 아무런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돈만 벌 수 있다면……. 팔덕이 서울 갔다 와서 재고 다니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걸까? 팔덕은 그 뒤로도 어둠 속에서 몇 번 더 인희네 집에 찾아와서 서울의 꿈을 심어주었다. 어느 동네 영자, 저 건너 마을 경순, 자기 외가의 삼촌네 동네에 살았다는 민식이라나 뭐라 하는 남자애 형제 등등 서울 가서 돈 벌어 다시 고향에 내려온 아이들 이야기. 인희는 넋이 나간 채 그런 이야기를 듣고 또 꿈속에서도 그런 세상 같은 곳을 찾아 어지러이 맴돌기도 했다.

할머니와 동생 인국. 그리고 인희가 국민학교에 가기도 전에 돌아가신 엄마.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고 한번도 엄마라고 불러보지도 못했던 것 같은 그 엄마라는 사람. 동네사람들 수군거림 속에서 막연히 짐작만 하는 엄마. 돈만 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엄마와 동생과 할머니…….

팔덕은 그날 오후 늦게 찾아왔다. 처음엔 한번 삐죽 창호지 문을 열고 들여다보더니 방바닥을 슬쩍 만져보고는 가버렸다. 인희는 마치 꿈결처럼 팔덕이 왔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그 뒤 찌그러진 주전자와 고구마 찐 것 몇 개 들어오고 나서 조심조심 몇 입 베어문 뒤 뒷간 갔다가 창호지 방 앞 툇마루에서 팔덕을 다시 만나 무슨 이야긴가 주고받고 한 등등이 모두 지금까지 비현실적인 느낌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은 그 방에서 그대로 쓰러져 잤다. 냄새나는 이불 한 채 갖다주고 팔덕은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벽에 눈도 뜨기 전에 팔덕이 밖에서 불러 인희는 흐트러진 머리 쓸어넘기고 대강대강 방 치우고서 창호지문 열고 나갔다. 날이 몹시 추웠지만 다행히 보따리에 잔뜩 쑤셔넣은 채 가져온 냄새나는 스웨터와 목도리가 도움이 되었다. 팔덕은 찐 감자 몇 개와 뜨거운 물을 담은 군용수통을 주었다.

거리로 나가자 팔덕은 륙색을 맨 채 어둠 속에서 성큼성큼 저만치 멀어져 갔다. 인희는 작은 보따리를 끌어안은 채 그 뒤를 힘겹게 좇아갔다. 마을을 벗어나 컴컴한 논두렁길을 한 시간 이상 걸어가자 희부옇게 하늘이 밝아왔다. 자그마한 동산을 넘자 널따란 들판에 고물상처럼 각종 물건들을 쌓아놓은 곳이 나왔다. 찌그러진 드럼통, 깨지고 망가진 부엌살림, 다리 부러진 지게, 망태기 속에 들어 있는 지저분한 옷가지,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녹슨 철판과 각종 깡통 등등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려 있고, 한쪽에는 나무판자들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그 옆을 돌아나가자 화물트럭이 나타났다. 원래는 국방색이었을 테지만 칠이 거의 다 벗겨나가고 심하게 녹슨 곳도 있으며 화물칸에는 각종 고물이 산더미처럼 실려 있었다.

화물차 건너편에는 다 쓰러져 가는 목재 움막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작은 들창으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팔덕이 그쪽으로 다가가자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런빛이 환하게 쏟아져 나왔다. 팔덕이 그리로 가까이 가자 안에서 시커먼 옷을 입은 키 큰 남자가 성큼걸음으로 나왔다. 팔덕이 그 사람과 두어 마디 하는 것 같더니 곧 몸을 돌이켜 트럭으로 향했다. 남자가 운전석 쪽으로 팔덕을 데리고 가서 손가락으로 안을 가리키며 뭐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남자는 다시 움막으로 돌아가 안에서 램프 불을 끄고 다시 나와 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채웠다. 그러는 중에 팔덕은 무언가 불안한 표정으로 남자의 행동을 눈으로 뒤쫓았다. 시커먼 남자가 트럭 쪽으로 와서 화물칸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아무 말 없이 운전석에 오른다.

팔덕이 인희에게 다가와 변명하듯이 말한다.

“운전석 옆자리에 물건이 잔뜩 쌓여 있어서 우리가 탈 수 없대. 화물칸에 앉아서 가야 돼.”

팔덕은 인희의 팔을 붙잡고 트럭 뒷바퀴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거 이리 줘.” 팔덕이 인희의 보따리를 받아 화물칸에 던져놓고 먼저 올라갔다. “내 손 잡고 올라와. 거기 바퀴에 발을 걸쳐봐.”



트럭 화물칸에서 11월의 매서운 새벽바람을 맞아가며 인희와 팔덕은 수원역 건너편에 도착했다. 인희의 양 볼은 빨갛게 얼어붙어서 입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온 터라 어디를 어떻게 거쳐 왔는지 알지도 못한다. 게다가 차가 하도 흔들리고 튀고 하는 바람에 인희는 온몸이 얻어맞은 듯 욱신 쑤셔댔으며 그 탓에 머리까지도 멍했다.

인희는 팔덕의 도움을 받아 조심조심 트럭에서 내렸다. 팔덕이 운전석 쪽으로 걸어가는 듯했으나 트럭은 그대로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도망치듯 달려가 버렸다. 보도에는 일하러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역으로 건너가고 역에서 건너오는 사람들, 지게꾼, 리어카, 자전거, 인도로 올라온 삼륜마차, 머리에 무거운 양은 함지박을 이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아줌마들, 지게꾼, 신문팔이, 구두닦이, 양복쟁이 공무원, 교복 입은 남학생 여학생, 시골티 물씬 나는 촌부, 군인, 심지어 검붉은 오지항아리 더미를 위태위태하게 가득 실은 소달구지까지 마구 뒤섞여 아침 출근길이 마치 전쟁터 같았다. 차도는 그보다 더했다. 버스, 시발택시, 지프, 트럭들이 마구 뒤엉켜 클랙슨을 울려대고, 정류장에서는 여러 버스가 뒤죽박죽인 된 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마구 밀고 올라가고 있었으며, 억센 처녀 모습의 버스 차장은 사람들을 향해 마구 소리치기도 하며, 버스 문에 매달린 채 차체를 탕탕 치면서 오라이를 연발하고 있었다. 시커먼 매연 내뿜고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며 달려가고, 여기저기서 욕설과 빵빵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난생처음 그런 혼잡함을 목격한 인희는 넋이 나가 있었다.

인희는 팔덕에게 팔을 붙들려 찻길을 건너 역으로 들어갔다. 그곳도 복잡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오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석구석에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는 사람도 꽤 많았다. 송아지 몸집만 한 보따리, 가방, 가죽상자, 지게 위에 올려놓은 짐 등등. 게다가 동생인 인국 또래 정도 되는 애들이 시커먼 손을 내밀며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헤매고 다니며 구걸하는 모습. 순경과 헌병이 곳곳에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팔덕은 그런 광경에 익숙한 듯 인희의 팔을 잡아끌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인파를 헤치고 매표소로 다가간다.


정오 무렵 인희와 팔덕은 서울역에 내렸다. 대낮이라서 춥지는 않았으나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비가 올 태세였다.

인희는 밀치고 밀리며 발에 차이고 하면서 서울역 광장으로 나왔다. 팔덕은 인희에게 얼굴을 돌리고 보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곳이 자기 무대인 양 자랑하는 몸짓이었다. 남대문이나 남산 등으로 손가락을 주욱 돌리며 신이 나서 설명을 하는 듯했지만 인희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인희는 팔덕에게 이끌려 길을 건너서 남대문 쪽으로 가면서 서울에 대한 이러저러한 설명을 들었지만 귀가 먹먹하여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팔덕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어깨를 펴고 신나게 떠벌이고 있었다.



2


남대문 근처 정류장에서 ‘청량리 가요! 왕십리 가요!’ 하고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버스 차장에 이끌리듯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한참을 터덜터덜 달려서 도착한 곳은 왕십리시장 지나 극장 근처였다. 버스정류장 쪽으로는 극장 옆으로 2~3층짜리 낡은 건물이 몇 채 줄지어 있고 맞은편에는 국민학교가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팔덕은 길을 건너 학교 담장 옆을 따라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길 맞은편 건물들과 학교를 번갈아 쳐다보며 걸었다. 해곶 읍내 학교와는 모습이 많이 달랐다. 커다란 신식 건물에 널따란 흙바닥 운동장 옆에는 축구 골대가 양쪽에 놓여 있고 운동장 가장자리로는 나무화분들이 길게 놓여 있었다. 인희가 나온 학교는 검회색으로 변한 오래되고 자그마한 목조건물 몇 채가 야트막한 둔덕 위에 세워져 있을 뿐이고, 그 아래로 비탈진 풀밭 사이로 돌계단이 운동장으로 나 있었다. 학교에는 담은 없이 낮은 관목으로 운동장과 바깥의 논밭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인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학교 여기저기를 쳐다보면서 팔덕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갔다.

왕십리는 조선 초에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려고 했으나 한 늙은 농부가 10리를 더 가라고 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한양 도성으로부터 10리 떨어진 연유에서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고, 서울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너른 평야 지역이 근접해 있다.

팔덕이 인희를 끌고 간 곳은 학교에서도 근 한 시간이나 떨어진 넓은 들판 같은 곳이었다. 그 너머로는 추수 끝난 황량한 논이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들판 옆으로 포장되지 않은 지저분한 길을 따라 잠시 걸어가자 연탄공장과 시멘트블록공장이 나타나고, 그 뒤로는 길게 옆으로 잇대어져 있는 판잣집이 여러 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폐허가 된 공장 같은 건물과 지저분한 양철로 지붕과 벽을 대신한 낡은 창고, 또 그 너머로는 커다란 방앗간 등이 띄엄띄엄 떨어진 채 연달아 세워져 있었다. 그 뒤로 한참 더 걸어가자 작은 숲이 나타났고 그 끝에 작은 헛간이 있었다.

팔덕은 검은 타르 칠을 했지만 비바람에 거의 다 벗겨져 얼룩덜룩한 진회색으로 변한 헛간으로 곧장 걸어갔다. 아마도 그곳이 목적지인 모양이다. 헛간 가까이 다가가자 팔덕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인희에게 잠깐 멈추라는 듯한 눈짓을 한다. 반쯤 얼이 빠지고 온몸이 지친 인희는 멍한 눈빛으로 팔덕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섰다. 팔덕의 눈짓을 알아차려서가 아니라 더 이상 걷기도 힘들고 무엇을 생각할 힘도 없어 저절로 멈춰섰던 것이다.

팔덕은 헛간 뒤쪽으로 돌아들어갔다. 헛간 뒷벽에 세워져 있는, 칠이 거의 다 벗겨진 기다란 나무판자 몇 개를 삐거덕삐거덕 이리저리 옮기는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사라진다. 인희가 여전히 멍한 눈길로 서 있는 사이 팔덕이 무언가 흡족한 듯 환한 얼굴로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팔덕은 인희에게 다가와 보따리를 받아들고서 따라오라는 듯이 다시 헛간 뒤쪽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인희는 자동인형처럼 발을 질질 끌고 뒤따라갔다.


그 헛간은 일종의 은신처였다. 누구 말로는 왜정 때 세워진 것인데 일본군 헌병대가 이 근처 지역을 순찰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임시로 지어놓은 것이라고도 하며, 육이오 때는 인민군이 포로들을 이동시키기 전에 잠깐 가둬놓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팔덕은 헛간 뒤쪽에 못이 빠져 느슨해진 판자들을 몇 개 뜯어내서 구멍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잠자리를 만들어 두었다.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도 하고 저보다 어린 애들이나 거지들을 어르기도 해서 돈과 먹을 것을 마련한 뒤 밤이면 이곳 먼 은신처까지 와서 잠을 자곤 했다. 서울역이나 용산역, 청량리역 근처 건물들 골목에서 거적을 깔고 자기도 했으나 날이 춥거나 비가 오면 그런 곳은 견딜 수 없어서 힘이 들어도 이 은신처까지 왔다. 그러다가 성수동이나 왕십리 일대의 가내수공업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을 조금씩 하고 그런 곳에서 밥도 얻어먹고 자기도 했다. 그러할 때도 팔덕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곳에 찾아와서 은신처를 정돈하고 혹여나 남들에게 들키지 않았는지 살피곤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뒤 팔덕은 왕십리에 있는 군용양말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실타래 날라주고 청소하고 공장 바닥에 물 뿌려주는 일을 했으나 워낙 눈치가 빠르고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덕에 일하는 품새도 빨라지고 손동작도 좋아 얼마 안 되어 방적기계 같은 조그만 틀 하나를 맡게 되었다. 이것이 팔덕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양말을 한 켤레 두 켤레 살짝살짝 빼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처녀나 나이 많은 여성들이었다. 남자 어른은 몇 되지 않고 대부분은 감독이거나 운반 또는 운전 일을 했으며, 자신과 또래인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으나 손이 서툴러 어른들 보조나 할 뿐이었다.

군용양말은 밖에 가지고 나가면 인기가 많았다. 돈으로 바꾸기도 하고 남에게 환심을 살 때도 써먹기 좋았다. 이런 식으로 팔덕은 돈도 약간씩 모으고 자신의 존재감도 높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말공장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주변에서 보는 눈치도 어딘지 께름칙했고, 무엇보다 공장 안의 공기가 너무 탁하고 하루 일을 마치면 실 먼지가 입속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속, 심지어 귓속까지도 가득 차고 눈까지도 침침해서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치 빠른 팔덕은 아주 적당한 때에 그곳을 나와 미제 물건을 구해다 팔기 시작했다. 이것도 진작부터 군용양말로 기름을 쳐둔 덕분에 별 힘을 들이지 않고 그 일에 뛰어들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건을 받아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문을 살짝 얹어 파는 수준이었으나, 나중에는 용산으로 무대를 옮겨 본격적으로 밀매를 하기 시작했다. 팔덕이 다루는 물품은 주로 담배와 커피였다. 팔덕은 눈치뿐만 아니라 코도 기막히게 영리해서 담배냄새만으로도 그 종류를 알아낼 수 있었다. 20미터 밖에서 누가 담배를 피워도 국산인지 양담배인지, 또 종류는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이것이 담배장사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팔덕은 담배 말고도 커피 냄새에도 역시 민감했다. 그 덕에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늘 입이 문제였다. 눈 코 귀 입 손 발 모두 재빨랐으나 그 중에서도 입이 너무 빨라 화를 자초하곤 했다.

팔덕이 고향인 해곶으로 다시 내려간 것은 도피였다. 자기 존재감을 너무 과시하고 다닌 탓에 터줏대감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은 남영동 복띠 아줌마한테 물건을 받으러 갔을 때 대문 밖 초인종을 누르려다 안쪽 마당에서 입 건 말소리가 웅웅하고 들려 멈칫하고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온 것이다.

“…… 그 멀쭉이 자식……. (중간은 잘 들리지 않았다) ……. 오늘 오면 시간 끌면서 붙잡아 두소……. (세숫대야를 발길로 탁탁 치는 소리) ……. 손 좀 봐줘야 하니까……. 이번에 아주 손모가지를 잘라버려야겠수다……. 재수 없는 자식. 이름도 첨 듣는 갯촌에서 올라와 불쌍하다고 봐줬더니……. (옷가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 난 좀 나갔다 올게니 여기 있다가…….”

팔덕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돌아서서 살금살금 골목을 돌아나가서 냅다 뛰었다. 그 길로 자기가 기거하는 방으로 가서 감춰둔 돈을 챙긴 뒤 양담배와 초콜릿이나 통조림 등 자잘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륙색과 군용가방에 쑤셔넣고 나와서 전차를 타고 동대문으로 갔다.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왕십리에서 내려 자기 은신처로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군용양말, 양담배, 커피를 비롯해서 미군부대에서 나온 각종 통조림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것들을 혹 누군가 침입한다 해도 찾아낼 수 없게 잘 감춰두고 다시 나왔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 중에서 일부만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더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그 뒤 해곶으로 스며들어 서너 달 보낸 뒤 이번에는 인희를 데리고 기분 좋게 다시 돌아온 것이다.

팔덕의 마음은 복잡했다. 우선은 인희를 어떻게 요리할까 내내 머리를 굴렸다. 멍한 표정과 겁먹은 눈에 입을 꼭 다물고 있지만 속을 알 수 없단 말이야. 일단 손에 돈을 좀 만지게 해주긴 해야 할 텐데…….

팔덕은 근처 도랑에서 물을 퍼와 헛간 옆에 설치된 펌프에 갖다 붓고 손잡이를 연거푸 눌렀다. 몇 번을 반복하자 꾸럭꾸럭 소리가 나면서 펌프에서 싯누런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팔덕은 나름대로 인희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 펌프에서 퍼온 물로 얼굴과 손발을 씻게 하고, 작은 등산용 소형 석유풍로로 물을 데워 소고기 통조림으로 찌개를 만들어서 딱딱한 식빵과 함께 먹게 했다.

“너 이 쇼빵 학교에서 주는 것하고 달라. 이거 미제야. 군바리들도 이런 거 못 먹어. 이 곤로(풍로)도 미군부대에서 나온 거야.”

그렇잖아도 인희는 식빵이 딱딱하지만 어딘지 고소하고 진득한 느낌이 들었던 차다. 인희는 눈을 들어 팔덕을 바라보았다.

팔덕은 인희의 눈이 깊다고 느꼈다. 팔덕은 마음이 흡족하고 자랑스러웠다. 미제 물건이 잔뜩 쌓여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인희에게 내보이고 맘껏 베풀 수 있게 된 이 상황이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같이. 그러자 인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마음속 저 깊은 속에서 은근하게 올라왔다. 단지 예쁘장하고 어리숙한 여자애 꾀어서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친혈육을 지켜주기 위해 큰 모험을 하고 있는 듯한 감상이 들었던 것이다.

“너무 많이 먹지 마. 설사할지도 몰라.” 팔덕은 통조림 더미 뒤에서 유리 약병을 꺼냈다. “이거 원기소거든. 하나 먹어.”

인희는 학교 아이들을 통해 원기소라는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해곶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정순네 집 라디오의 광고를 통해서도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인희는 알약을 받아드는 순간 문득 인국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할머니도.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온 거지? 인희는 군용반합에서 올라오는 김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 김 속에서 갑자기 자기가 떠나온 조막만한 초가집이 보였다. 지붕은 오랫동안 짚을 제대로 갈지 못해 반은 썩어 있는 그 집.

할머니…….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인희는 원기소가 들어 있는 손을 꼭 쥔 채 고개를 푹 숙였다.


3


11월의 쌀쌀한 날씨지만 인희는 그렇게 춥지 않게 밤을 보냈다. 팔덕이 군용담요를 잔뜩 깔아주고 덮어준 다음 UN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은 군용 털모자까지 씌워주어 새벽에만 약간 코끝이 시렸을 뿐 그런대로 잠자리는 견딜 만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한동안은 이것저것 생각이 복잡하며 눈물이 주체 없이 흘렀지만 어느 순간 잠들고 말았다. 거의 곯아떨어지기는 했지만 잠을 깨기 전에 어지러운 꿈에 잠시 시달렸다. 할머니 같기도 하고 버스에서 만난 마을사람 같기도 하고 수원역 같기도 하고 남대문 정류장 같기도 하고 마을 뒷산 무덤 사이 같기도 하고 이곳 헛간으로 오던 숲속 같기도 한 거무튀튀한 형상들이 뒤엉켜 꿈속을 휘저어 놓았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와락 팔을 붙잡는 바람에 인희는 잠을 깼다. 그리고 코끝에서 새벽 찬 기운이 스치는 느낌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여기는 집이 아니야.

코에 익은 퀴퀴한 흙벽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찢겨진 채 아직 벽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묵은 신문지 냄새도 나지 않았고, 눅눅하면서도 짙누런 이불의 뻑뻑한 촉감도 목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도 찌들대로 찌든 땟국 속에서 나는 가난의 냄새, 자신의 허파 깊숙이까지 본능처럼 스며들었던 비천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어둠의 냄새, 손으로 만지면 느껴질 듯한 암흑의 촉감들, 불길한 미래에서 보내온 듯 감은 눈으로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슬픔의 공간이 자신의 주위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인희는 또다시 눈물이 났다.


팔덕은 그날 오전 어디엔가 다녀오더니 가방에서 물건들을 우수수 쏟아놓았다. 진한 자줏빛 스웨터, 통이 좁다란 바지, 끈 달린 검은색 운동화. 모두 약간 해어지고 색 바랜 것이었지만 인희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호화로운 것이었다. 바지는 아랫단이 약간 너덜거렸고, 스웨터도 실밥이 여기저기 터져 있었으며, 운동화는 인희에게 약간 큰데다 뒤축 한쪽이 많이 닳아 있었다.

팔덕은 더벅머리 같은 인희의 머리칼을 면도칼로 단정하게 잘라주었다. 11월인데도 벌써 인희 손이 군데군데 튼 것을 때를 벗기고 크림을 발라 언뜻 보기엔 맨들거리게 해주었다. 그 뒤 인희에게 스웨터와 바지 그리고 구두를 입히고 신기고 나니 어제 막 갯벌에서 데리고 온 아이 같지 않았다. 얼굴도 바닷바람에 늘상 쐬었지만 스스로가 조심을 했었는지 아니면 천성적으로 피부가 희고 좋았는지 그리 보기 흉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예쁘장하고 얌전한 얼굴하며 약간 슬픈 듯이 보이는 표정이 남들 보기에 애틋한 정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몸매 가는 것까지 더해지자 너무 동화적 주인공처럼 보여서 애처롭기까지 했다.

위와 같이 이리저리 단장한 뒤 인희는 여전히 겁먹은 눈으로 팔덕을 따라 가을걷이 끝난 논밭 옆으로 난 기다란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오전 내내 찌푸렸던 하늘이 점심 뒤 갑자기 새파랗게 개어 있었다. 팔덕은 개선장군처럼 인희 앞장을 서서 씩씩하게 나아갔다. 어깨에는 두툼한 국방색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팔덕이 간 곳은 전에 다녔던 군용양말 공장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팔랑이입니다.”

팔덕은 가는 곳마다 이름이 바뀌었다. 그 하는 품새에 따라 사람들이 붙여주는 별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시다(보조) 필요할 것 같아서 구해 왔는데, 반장님 어디 계세요?”

예전에 알던, 심통쟁이라 부르던 아주머니가 뒷간 갔다 오다가 팔덕을 보고 다가왔다.

“에그머니, 너 팔랑이구나. 얘, 너 신수가 아주 훤해졌구나. 몰라볼 뻔했네. 그동안 뭐했었니?”

“예, 좀 왔다갔다 했어요. 여기저기. 저, 이 애가 제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인데, 심부름 같은 거 아주 잘 해서요…….”

그렇잖아도 심통쟁이는 인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듯 호기심 잔뜩 담은 얼굴로 인희의 눈 속 그 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말랐다.”

심통쟁이는 그렇게 선고를 내리듯 말하고는 돌아서서 공장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때 건물 밖으로 나 있는 나무계단 위쪽에 있는 이층의 문이 삐걱 열리며 30대 남자가 머리부터 내밀고 나왔다. 뒷머리를 바짝 밀어올려 깎은 위에 계급장 없는 군모를 단정하게 쓰고 있어서 사람들이 늘 정 선생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성은 송씨이지만 바를 정(正)자를 붙여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 칼날같이 줄 잡아 다린 바지, 반들반들 광낸 구두. 하지만 성격은 다소 무른 편이었다. 보기보다는 정이 많다는 뜻이다.

“오, 너 팔덕이구나. 목소리가 너 같아서 나와 봤지. 팔덕이 정말 맞는 거지? 아주 많이 변했네. 그런데 그 아이는 누구니?”

인희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제 고향 동생이에요. 어제 올라왔어요. 심부름 잘 해요. 시다 필요하시죠?”

정 선생은 계단을 또박또박 걸어 내려와서 인희 앞으로 다가왔다.

“몇 살이냐? 학교 다녀?”

“중학교 1학년인데, 할머니가 아파서 돈 벌고 싶다고 해서요.”

팔덕이 나서며 대답한다.

“이름이 뭐야?”

“…….”

인희가 우물쭈물 겁먹은 눈으로 정 선생을 올려다본다.

“인희, 송인희. 이름 이쁘죠?”

팔덕이 날름 끼어들어 대답했다.

“뭐, 인희……?”

갑자기 정 선생 눈이 둥그레진다. 마치 허깨비를 본 듯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그 애 안 돼요, 정 선생.” 공장 문 가까이까지 갔던 심통쟁이가 저쪽에서 소리치는 바람에 정 선생이 얼른 돌아다본다. “깨깨 말라 비틀어져 써먹을 데가 없어.” 심통쟁이는 코를 핑 풀고서 땅바닥에 탁 던져버리고는 헐렁바지 뒤쪽에다 손가락을 문댄다. 그리고는 검지를 들어 보이고서 옆으로 흔든다.

“팔랑이 그놈이 또 뭔 짓거리를 하려고 수작하는 게지 뭐.”

심통쟁이는 혼잣말 하듯 내뱉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팔덕은 자신이 양말을 빼돌릴 때마다 심통쟁이가 심상찮은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던 때가 생각나서 몸이 움칫했다. 실상 그것 때문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공장에서 나온 것이다. 갑자기 등으로 한기가 지나갔다.

“둘 다……, 이리 좀 와 봐.”

정 선생이 무언가 서두르는 모습으로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한다.

인희가 아직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이에 팔덕은 쭈뼛 몇 걸음 정 선생 쪽으로 옮기더니 더듬거리듯 말한다.

“저, 저는 다음에 또 올게요. 이 애가 갑자기 서울 오느라 많이 힘들어해서요.”

정 선생이 홱 몸을 돌려 이쪽을 보면서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을 무시하고 팔덕은 인희의 팔을 잡고 돌아서서 뛰듯이 걸어갔다. 뒤쪽에서 정 선생이 망연히 바라보는 모습을 두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양말공장 갈 때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간데없고 한편으로는 풀죽은 모습으로,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표정으로 팔덕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저 심통쟁이가 늘 걸린단 말이야.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 거기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인희는 아무 말도 않은 채 따라가기만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데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죄다 낯설고 무섭기까지 했다.

인희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타박타박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나 돈 벌어야 돼. 돈…….

인희는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는 혀를 간신히 움직거려서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팔 뜩 이 오 빠, 나 뭐 해 야 돼……?”

팔덕은 하늘에서 뇌성이라도 울린 듯 몸을 움츠리고 화들짝 돌아다본다. 그리고는 예상외로 인희의 당돌한 눈빛과 마주치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

“오빠, 나 집에 돌아가고 싶어.”

인희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인다.

팔덕은 누가 지켜보는 듯이 주위를 돌아다보고 살핀다.

“아냐, 아냐, 우리 다른 데 갈 거야, 지금. 조금만 기다려.”

팔덕은 인희의 팔을 잡고 앞으로 당긴다.

그러나 인희가 팔을 빼고 뒤로 물러선다. 눈에 고였던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르 흐른다.

“나 집에 갈래.”

“야, 너 그러면 안 돼. 이리 와!”

팔덕이 인희에게 다가가서 다시 팔을 붙잡고 홱 잡아당겼다. 그 팔이 너무 아파 인희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그대로 끌려간다.

“내 말 잘 들어. 여기 서울이야. 너 함부로 나다녔다간 무슨 일 날지 몰라. 여자애들만 잡아가는 사람도 많단 말야.”

인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싫어.”

“야!”

팔덕이 인희의 팔을 세차게 끌어당겨 자기 앞쪽으로 향하게 해서 등을 떼다 밀었다. 인희가 잠시 비틀거리다가 자세를 바로잡고서 그대로 선다. 팔덕이 다시 인희 앞으로 돌아가서 손가락을 찌르듯 내밀면서 낮은 음성으로 말한다.

“처음에는 다 그래. 나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 내 말 잘 들어. 나만 믿으란 말야. 너 돈 많이 벌게 해줄게, 응. 알았지?”

팔덕이 인희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손을 갖다댄다. 그러나 인희는 그 손을 뿌리치고 자기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4


팔덕과 인희는 다시 은신처로 돌아왔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헛간 판자벽 앞에 둘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햇볕이 따사했다. 둘은 그대로 말없이 한참 있었다.

팔덕이 피우던 담배를 던져버리고는 다리가 저린 듯 천천히 일어서서 종아리를 몇 번 주무르고 나서 허리를 편다.

“지금 가볼 데가 있는데, 갈 수 있겠어?”

팔덕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인희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앉아 멍한 눈으로 시들어 가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일어나. 가보자.”

팔덕이 한 손을 내밀어 인희를 일으킨다. 인희는 허수아비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일어섰다.

팔덕은 아까 양말공장에 갈 때 메고 갔던 두툼한 국방색 가방을 다시 들어올렸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 가면 돈도 벌고 잘 데도 있을 거야. 빨리 가자.”

팔덕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인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뒤를 힘없이 쫓아갔다.

두 사람 앞으로 약간 서쪽으로 기운 밝은 해가 맑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인희의 낡은 자줏빛 스웨터의 털실 올들에 비스듬히 내려앉는 햇빛이 반사되어 은빛 가루가 흐트러지며 날린다. 앞에서 가던 팔덕이 문득 뒤돌아보고 햇빛에 환하게 피어난 인희의 얼굴을 보고서 멈칫한다. 얼굴에 약간의 구릿빛이 비치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티 없고 해맑은 표정의 어린 소녀. 나이보다 어려 보이기까지 했다. 팔덕은 가슴이 설레면서도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살며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팔덕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 아프면 내가 업어줄까?”

인희는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팔덕은 인희 옆으로 가서 보조를 맞추어 걸었다.

“인이야,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돈 많이 벌어야 해. 내가 다 해줄 거야. 나만 믿고 있으면 돼. 지금 가는 공장의 사장 정말 좋은 사람이야. 너한테 잘해줄 거야. 내 말 믿지?”

인희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뜨고 걷기만 했다. 햇볕은 따스했으나 늦가을 오후의 비스듬한 햇살이 눈을 찔러 눈을 똑바로 뜨기 어려웠다. 인희는 실눈을 뜨고서 황량한 들판이 햇빛에 반사되어 오히려 여기저기에서 맑은 빛들이 피어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해곶 앞바다에서 파도가 넘실댈 때마다 물결에 부딪혀 하늘로 흩어지던 빛의 파편들을 떠올렸다. 수평선 저 멀리까지 한없이 퍼져가며 잔잔하게 흩날리던 빛송이들. 은색 반짝임으로 뒤덮인 바다. 그리고 그 너머 검푸른 바다 그림자 위로는 옅은 옥색을 띤 하늘이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인희는 타박타박 걸으며 이 들판이 해곶의 그 바다와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온 그곳을 지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걷고 또 걸으면 저 수평선 그 너머로 갈 수 있겠지.

할머니……. 인국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지만 팔덕에게는 보이지 않으려고 인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살며시 눈물을 닦았다.


팔덕과 인희는 버스를 타고 성수동으로 갔다. 성수동은 왕십리와 한강 사이에 있었는데 그리 멀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버스에서 내려 중랑천을 따라 나 있는 둑길을 조금 걷자 오른쪽으로 판잣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네가 나타났다. 그 속으로 내려가 지저분한 골목을 두어 번 꺾어 들어가자 널따란 길이 나왔다. 길 옆으로는 각종 가게가 늘어서 있고, 그 길을 지나 차 한 대 정도 다닐 만한 길로 접어들어 잠시 걸어가자 낡은 판자담장이 쳐져 있고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건물들이 몇 채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 두 번째 건물 앞에서 팔덕은 멈춰서서 인희를 돌아다보았다. 해는 거의 저물었지만 주변은 아직 환했다.


처음에는 흰색 페인트를 칠했겠지만 지금은 다 벗겨져 안쪽의 낡은 판자가 다 드러난 담장 사이에 시멘트로 세운 지저분하고 시커먼 정문 기둥 둘이 서 있었다. 시멘트 기둥에서 안쪽으로 열어젖뜨려진, 그 역시 낡고 낡은 허름한 나무판자 정문. 한쪽 기둥에는 한성인쇄소라는 한자가 들어간 나무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 광경 전체 중에서 그나마 덜 낡아 보이는 나무판에 선명하게 새겨진 검은 글자. 좋은 징조려나.

저 안쪽에서 건물 밖으로 한두 사람이 나왔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길거리에서는 서너 사람이 필터 없는 담배를 피워물고 인희네를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싸구려 담배냄새에 팔덕이 코를 찡그린다.

“들어가자.” 팔덕은 인희의 옷을 매만져 주며 말했다.

인희는 주저앉고 싶은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팔덕의 뒤를 따랐다.

국방색 천이 반쯤 덮인 낡은 트럭 옆으로 돌아가자 역시 지저분한 나무판자들이 어지러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고, 낡은 건물 벽에 붙은 외등 전구가 희미한 검붉은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아래에 있는 문을 팔덕이 밖으로 잡아당겨 열자 고요하던 하늘 아래로 갑자기 철커덕거리는 기계음이 요란하게 밀려나온다.

인희는 순간 멈칫했다. 팔덕은 인희에게 따라 들어오라는 몸짓을 한다. 문 안쪽에는 여러 인쇄물이 나무판자 받침 위로 수북이 쌓여 있어서 마치 골목 입구 같았다.

인쇄물 사이로 비집듯이 안으로 들어선 팔덕이 저쪽을 향해 허리를 굽신하며 소리친다.

“안녕하세요, 저 팔랑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팔덕이 여기저기 바라보며 머리를 숙이자 안쪽에서 누군가가 어이 하는 소리를 낸다. 팔덕은 그쪽으로 ‘아,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 지르고 나서 큰소리로 물었다.

“미스 곽 누나 어디 있어요?”

“저 뒤쪽에 가봐.”

팔덕은 인희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공장 옆으로 돌아간다. 공장 안은 고약한 화공약품 냄새, 잉크 냄새, 기름 냄새, 철커덕철커덕 요란한 소리, 인쇄공들이 서로 간에 주고받는 일본어 섞인 잡담 등으로 혼잡스러웠다. 인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을 휘둘러보았다. 생전 처음 공장이라는 데를 들어와 본 것이다.

“발 조심해! 밟으면 안 돼. 기름 떨어진 곳도 있어서 잘못하면 미끄러져.”

팔덕이 인쇄기 옆으로 버려져 있는 종이와 기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팔덕은 요령 좋게 장애물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 걸어가지만, 인희는 주변도 혼잡스럽고 머릿속도 혼란스러워 어떻게 발을 디뎌야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하며 간신히 쫓아가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 빨리.”

팔덕이 저만치에서 손짓한다. 그곳에는 나무계단이 이층으로 이어져 있었다. 인희가 발끝으로 걷듯 살금살금 장해물들을 피해 그쪽으로 다가가는데 계단 위쪽에서 젊은 여자가 내려온다.

“어, 너 팔랑이 아니니?”

“아, 미스 곽 누나, 저 왔어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니?” 미스 곽은 인희 쪽으로 호기심 어린 눈을 돌리면서도 팔덕을 향해 물었다. “너 살도 찌고 이뻐졌다. 요즘 뭐해?” 그러면서 여전히 눈은 인희에게 향해 있다.

“아, 저기…….” 팔덕은 계단을 몇 단 올라가 대꾸를 하면서 메고 온 가방의 지퍼를 주욱 열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이거 미제예요.” 두툼한 초콜릿.

“오!” 미스 곽의 얼굴이 환해진다. “여기엔 왜 왔어?” 초콜릿을 받아든 미스 곽은 다시 인희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동생?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이 그 얼굴에 지어졌다.

“이 애 우리 시골에서 온 아이인데, 여기 시다 필요하죠?”

미스 곽의 눈이 인희의 위아래를 주욱 훑는다.

“너 몇 살이니?”

“중학교 1학년이에요. 지금 열두 살. 생일이 빨라서 학교 일찍 들어갔어요.”

팔덕이 대신 대답했다.

미스 곽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덕에게 얼굴을 돌린다.

“시다?”

팔덕이 계단을 한 단 올라서며 얼른 대답했다.

“이 애 일 잘 해요. 시골에서 논밭 다 맸어요. 집안일도 죄다 하고.”

미스 곽은 인쇄물 감정하듯 인희를 다시 주욱 살펴보고 나서 말한다.

“너무 어려 보이는데.”

“아녜요. 국민학교 졸업했어요.”

“넌 가만있어 봐. 얘, 너 몇 살이니?”

“저…… 열두…… 살…….”

“학교 나왔어?”

“네……. 올해…….”

미스 곽은 고개를 갸웃하는 듯하더니 몸을 돌려서 계단을 올라가며 말한다.

“올라와.”



사무실 안은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자그마한 책상 둘. 한쪽 벽에는 각종 책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고, 종이뭉치와 신문뭉치에 잡다한 상자들이 천장 높이까지 들어찬데다 남아 있는 벽의 공간에는 어느 국회의원 이름이 적힌 달력, 곱게 한복 차려입은 여인이 들어간 또 다른 달력, 그리고 달력 말고도 주문처, 수량, 날짜 등이 빼곡히 적힌 칠판 등이 촘촘히 걸려 있어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석탄난로 위에서는 주전자에서 김이 폭폭 올라오고 있었고, 그 위로 연통이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었으며, 천장은 누렇게 변한 것에 모자라 여기저기 벽지가 찢어진 채 축 늘어져 있는 것이었다.

팔덕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죄지은 종처럼 어깨를 숙이고 곁눈으로 안을 살폈다. 사무실 책상 한편에 놓인 좁다란 침상에서는 늙수그레한 서너 명이 서로 꼭 달라붙은 채 화투짝을 뒤집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담배를 입에 물고 손에는 화투패를 쥔 채 돌아다본다.

“사장님, 이 아이 좀 보세요.”

미스 곽이 문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어물어물 서 있는 인희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수북한 흰머리에 안경을 코끝에 걸친 60대 남자가 돌아앉으며 담배를 낀 손가락으로 안경을 바로잡는다. 뭐야? 하는 표정이다. 동시에 사장 옆에 둘러앉았던 사람들도 어깨를 돌리고 고개를 문 쪽으로 삐죽 향한다.

그때 갑자기 전화통이 울렸다.

따르르르릉.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무엇엔가 들킨 듯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전화벨 소리를 좇아 눈길을 돌린다. 미스 곽은 인희를 들어오게 하려고 몸을 반쯤 돌려 막 문 밖으로 나선 참이었다. 사장은 입을 헤 벌리고 전화통에 눈을 꽂는다. 침상에 걸터앉아 있던 다른 한 사람은 입에 담배를 문 채 푹푹 기침을 하려는 듯 볼을 부풀리고서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전화통을 노려본다. 또 한 사람, 머리가 완전히 벗겨진 양복쟁이 노인은 눈높이로 들어올린 화투짝 너머로 오래된 벽걸이 거울 속에 비친 전화통을 나무라듯 쯧쯧거리는 표정으로 건너다본다. 그 짬에 군용 파커를 어깨에 걸쳐놓은 또 한 사람, 얼굴이 너무 검어 흐릿한 전등 빛과 허연 담배연기 속에서 눈코귀입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 중늙은이는 눈은 전화통을 향한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재빨리 아래로 내밀고서 화투패를 바꿔잡는다.

팔덕이 잽싸게 앞으로 달려나가 수화기를 잡아챘듯 들어올렸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한성인쇕니다!”



5


팔덕이 가방에서 꺼낸 양담배, 초콜릿, 비스킷, 커피, 트럼프 카드 등이 모두 사장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함께 화투를 치던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듯 목에 힘줄을 세우고 손 사장 어깨너머로 건너다본다. 또람뿌도 있고만……. 양복쟁이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마주 비비고 있었다.

손 사장은 괜히 심각한 듯 표정을 짓고 양담배 등을 만지작거리며 흠흠거렸다. 마음속으로는 고 가녀리고 예쁘장한 것이 아삼아삼 떠오르면서도 겉으로는 일부러 툴툴거린다.

“얘, 미스 곽양아, 고게 정말 일 제대로 할 수 있겠니? 고거 참 너무 아리해서…….”

“사장님, 괜찮으시겠어요? 너무 어려 보여서. 괜히 일 생기면 어떡해요?”

“흠.”

어떡한다. 대답은 했는데 무르기도 좀 뭣하고. 허 참, 고 조막만한 것을 어디다 쓴단 말인가. 인쇄소 억센 남정네들 속에서 고런 게 심부름할 일이 뭐가 있겠나. 웬만한 일은 미스 곽이 다 알아서 한다. 미스 곽은 하도 눈치 빠르고 몸도 재서 몇 사람 몫을 해내는 처녀다. 시집갈 나이 다 되어가지만 어디 총각도 마련해 놓지 않았는지 밤이고 낮이고 일에만 대달려 그 애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못할 판이다. 그런 미스 곽이 있는데 쬐끄만 어린 계집애 하나 더 들여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손 사장은 공연한 짓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런데도 그 아이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팔랑이 그 녀석이 하도 날래게 해대고 정신을 쏙 빼놔서 얼떨결에 그러마고 승낙을 줬긴 하지만 어딘지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었다. 너무 앳돼 슬퍼 보이기까지 한 고 녀석. 그것 참…….

“그런데 어디다 재워요? 잘 데도 없다는데. 저 팔랑이가 계속 데리고 있으면 좀…….” 미스 곽은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래, 그것도 문제는 문제다. 팔랑이 고놈 요상한 짓거리하고 다니는 것은 이미 다 눈치챈 바다.

“저, 그 밤다리 할매는 요즘 어디서 자나?”

공장의 직원들 점심을 지어주는 외다리 할멈이 있었다. 육이오 때 지뢰를 밟았다나 해서 다리 한쪽을 잃고 나무목발을 짚고 다니는데, 영감은 피난길에 죽고 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가 둘째 아들만 전쟁통 끝나고 어찌어찌해서 찾았지만 다리 하나 없는 어미한테 늘 행패만 부리다가 저쪽 어디께 시장 으슥한 곳에서 사람을 찔러 감옥살이한다고 했다. 그 할멈이 어느 비 오는 날 공장에 들러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그러잖아도 직원들 밥거리가 늘 부실해서 마음에 걸리던 차여서 아예 공장 뒤쪽에 조그만 창고를 식당 겸 주방으로 만들어 그 할멈에게 와서 점심거리나 지어주라고 했다. 할멈은 처음에는 잠도 그 식당에서 잤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근처 교회에서 재워준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들리는 말로는 여기저기 떠돌며 잔다고 하기도 하고 어느 떠돌이 늙은이를 만나 영감으로 들였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튼 오전 중 정해진 시간에 목발 짚고 뒤뚱거리면서 나타나 직원들 점심은 탈 없이 잘 챙기고 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쌀과 반찬거리 등도 미스 곽이 알아서 잘 사들일 테고 하니 손 사장으로서는 가끔 식당에 들러 직원들 우악스럽게 점심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 할멈은 거의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밤다리라는 말은 그 할멈이 나이치고는 밤눈이 밝아 밤에도 외다리로 불 없이 여기저기 잘 나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요즘 다시 교회에 가서 잔다나 봐요. 왜 저 그 이상한 할아버지 만나서 굴다리 지나 쪽방거리 거기에서 같이 살았었잖아요. 그러다가 두어 달 전부터 거기 안 가고 교회에 들어갔대요.”

허, 그래? 흠.

“그럼 그 할매한테 여기 식당에 와서 자라고 해. 고 애하고. 아 참, 이름이 뭐였지……? 인이, 인희, 인애…….”

“인희.”

“그래, 그 아이 팔랑이놈에게 맡겨놓으면 안 되니까 당장이라도 데려와.”

“오늘부터 재울까요?”

“아, 그래. 지금 빨리 쫓아가 봐. 오늘밤에는 여기 사무실에서 재우고 내일부터 할매하고 지내게 해. 오늘은 미스 곽양이 여기 와서 같이 자.”

손 사장은 다른 화투쟁이들을 돌아다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셋 모두 멀건한 눈으로 합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 통일방직 박 사장에게 전화해서 팔랑이놈에 대해 세밀히 알아봐야겠다. 하도 요상한 놈이라서 뭔 짓거리를 숨기고 있는지 몰라서…….”

손 사장이 전화기 쪽으로 의자를 돌린다.

“박 사장님은 잘 몰라요. 거기 정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




거 울

-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오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오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오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오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오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운사업(事業)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