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카페 | 여섯 번째 이야기
글로써 마음얻고 말로써 위로받아
정다운 눈길로써 한미소 주고받고
따스한 손길내밀어 흐른눈물 닦을제
시든꽃 피어나고 물오른 마른줄기
오늘은 내가받고 내일은 보태주니
아직도 사람세상은 아름답다 하리다
차 한잔의 카페 | 여섯 번째 이야기
☼
화창한 날 오후. 그러나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아직 저녁이 아닌데도 해를 등지고 걷는 내 그림자가 길게 나아간다. 숲길이어서 보기에 괜찮아 핸드폰을 꺼내어 내 그림자를 사진 찍었다.
사진을 확인해 보니 검은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 옆에는 검붉게 단풍 든 나무들. 마치 음산한 영화 포스터나 추리소설 표지 같은 느낌이다. 사진 속에서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사진은 마음에 들었다.
이 사진 어디에 써먹을 데 없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괜히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감상에 빠져 시를 몇 편 쓴 적이 있었다. 내 딴엔 정말 괜찮다 싶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더니 굉장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머, 이 시 정말 좋다. 언제 이런 걸 썼어? 숨은 재주가 있었네. 나 혼자만 보기 아까운데. 이거 한번 응모해 봐. 틀림없이 당선될 거야.”
에이, 뭘 응모…….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은근히 기대가 되어 인터넷으로 시 공모하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마침 며칠 뒤에 마감되는 곳이 하나 있었다. 어느 유명한 문학인을 기리기 위해 시와 소설 등을 공모한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망설이다가 용감하게 그 시를 포함해서 몇몇 시를 출판사에 보냈다. 마감하는 날이다. 그러나 마감일 소인만 찍히면 된다고 해서, 시가 든 봉투를 우편으로 보내고 나서 얼마나 가슴이 설렜던지.
그리고 그날 밤 크게 후회를 했다. 택배로 보낼걸. 등기로 보낼걸. 속달로 보낼걸. 편지가 실수로 배달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혹 우체국 소인이 희미하게 찍혀 날짜가 안 보이면 늦게 보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날 밤 이런 오만 가지 생각들 때문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은 괜한 걱정에 사로잡혀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집안일이나 미용실 일이나.
유명한 부티크 & 살롱에서 새끼 미용사로 5년 동안 일하다 독립한 지 반 년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래도 그 살롱 이름 덕분에 금방 소문이 나서 제법 손님은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쩌다 시를 응모했다는 말이 나와서 졸지에 나는 시인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 그 시들을 응모해 보라고 한 사모님이 미용실에 또 와서 응모에 대해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늘 칭찬해 주는 그분이 고마워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여사님 덕분에 시인 되게 생겼어요. 호호호.”
그 말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옆에 있는 마트는 물론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제과점, 꽃 배달 가게, 심지어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알게 된 것이다.
“아이구, 축하합니다.”
사람 좋아 아파트 주민들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발 벗고 나서는 1초소 아저씨가 나를 보고 반색하며 말했다.
“네? 뭘요?”
“시인 되셨다면서요? 응모에 당선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경사 났네요.”
그 며칠 뒤 아파트 게시판에 공지사항으로 축하 메시지가 붙었다. 그 덕분에 주변에서 아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카톡으로 하트도 마구 날려주고 그랬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바로 나였다. 나는 정말로 당선된 것으로 여긴 것이다. 마음이 그랬다.
이쯤 되면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여튼 발표일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벌써 보름 전에 그 결과가 올라와 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 채 그 기사를 눌렀다. 그랬더니…….
말해서 무엇 하랴. 뻔한 것을. 그런데 그보다 더 힘이 들었던 것은 그 심사평을 읽고 나서였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응모를 해서 시에 대한 관심이……,
예년에 비해 수준 높은 작품이 많이 들어와서 심사하기에 무척……,
그에 비해 습작 수준의 작품들도 일부 있었던 탓에 아쉬움이…….
이 심사평이 또 밤새도록 나를 괴롭게 했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이. 나 스스로는 애써 ‘무척……’에 속한 것으로 자위하려 했으나, 마음은 자꾸만 ‘습작 수준의……’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보는 이 없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리며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있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더 난처하게 된 것은, 누군가가 그 출판사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가 수상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소문을 퍼뜨린 일이다. 그 뒤부터 여기에서 수군, 저기에서 손가락질…….
결국 나는 지방으로 이사하고 말았다. 미용실도 문 닫고 근 6개월 동안 집안에만 갇혀 있다가 최근에야 규모를 아주 작게 해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전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핸드폰 그림자 사진을 보고 감탄하면서 써먹을 데를 생각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아니, 그 속담은 조금 빗나간 것 같고, 좀더 적당하고도 교훈적인 것이 있을 텐데……. 제 버릇 개 못 준다? 글쎄다, 그것보다 더 근사한 게 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이 안 난다.
그야 어떻든,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그것을 크게 확대해서 호들갑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어림도 없는 꿈을 꾸는 버릇이 어려서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아직도 시들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씁쓰름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그런 꿈도 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헛된 망상으로 크게 망신당한 처지로서는 아무래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할머니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재능봉사라고도 하고 이미용봉사라고도 하는 것을 얼마 전부터 시작했다. 내가 이사 온 동네가 시골이다 보니 집들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데 노인들이 많이 산다. 그리고 거동하기 불편한 분들도 많다. 양로원이나 그 비슷한 시설이 많은데도 그런 데 가기 싫어서 혼자 또는 노인 부부가 같이 사는 집도 꽤 많았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나 또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있는 노인들의 머리를 다듬어주는 일을 자원해서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겁도 났었다. 혹 그분들 머리 잘못 다듬어 드렸다가 고집 센 분 만나서 곤욕을 치르는 것은 아닌지 하고. 하지만 연세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 온순하고 별 탈 없이 잘 받아들였다. 그리고 머리를 산뜻하게 다듬어 드리고 나면 그분들이나 나나, 그리고 옆에서 돌보는 분이나 또는 자녀분들이 무척 좋아하고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보람이라고 할까, 아무튼 마음에 기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 응모 사건으로 시골로 도망치듯 내려온 것이 늘 마음에 걸려 사람들 만나기 무서워서 숨어지내듯 하다가 그런 일을 하니,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 듯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왜 있잖은가, 그런 거. 어떤 동굴 속에 들어갔다가 그 끝으로 나갔더니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더라는 것 말이다. 그래, 맞다. 무릉도원.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별천지. 조선시대 후기에는 아예 제목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소설이 나왔었다. 당시에는 언문이라 불린 국문으로 쓰인 그 작품에는 다섯 명의 미인이 자기들 스스로 결혼 상대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남존여비 사상에 물들어 있던 당시의 풍조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소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야 어떻든, 과장되이 말하면 나는 노인들 이미용봉사를 나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맛본 것 같은 감격을 누린 셈이다. 그러나 ‘감격’이라는 표현을 남들에게 쓰면 쉽게 들뜨는 내 냄비 같은 성격을 탓할 것 같아서 사람들한테는 그런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든 근신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런데 그 일을 하던 중 만난 할머니 한 분이 시인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글도 제법 쓰셨다고 한다. 어느 날 그분의 머리를 다듬어 드리다가 어쩌다 보니 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절대로 오버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시에 대해서 이것저것 말을 꺼내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분하고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요즘은 전혀 사람들을 안 만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 응모에서 내가 심사위원도 하고 그랬다우.”
“어머, 그러셨어요? 시 쓰는 분들이 많죠? 시 응모에 많이들 보내오나요?”
“아유, 그럼. 요즘 글 쓰는 사람들이 좀 많아.”
“그래도 시는 좀……. 시만 써서는 살기 힘들잖아요?”
“그러게 말야. 시인들이 배 많이 곯지. 불쌍해…….”
“시 심사하시다 보면 엉터리 시도 많겠네요?”
“아유 말도 마. 애들이 써도 그보다는 낫겠다 싶은 것들도 수두룩하게 들어와. 기본도 안 갖춘 인간들이 너도 나도 시를 쓴다고 야단이야. 시가 그냥 써지는 거야? 멋으로 쓰는 거냔 말야. 그런데도 그런 부끄러운 것들을 써서 보내는 거야.”
나는 얼굴이 화끈했다.
“최근에는 어떤 시를 심사하셨어요?”
“응, 작년 가을에 말이야, 한 반년 됐지……. 그때도 수백 수천 통이 들어왔어요. 대부분은 쓰레기였어. 얼굴 두껍게 그런 것들을 보내오니…….”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그런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말을 돌리려 했다.
“요즘 건강은 괜찮으세요?”
“응, 그래서 말야……, 응……, 어……, 내가 방금 무슨 얘기 했었지……? 아, 시! 맞아, 시. 그런데 그때 시 몇 개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 약간 거친 면이 있어서 아깝게 떨어지긴 했지만……. 누가 조금만 봐주면 아주 훌륭한 시인이 되겠던데. 그 시 쓴 사람.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그 시는 아까워. 그때 내가 좀더 고집을 부렸어야 했는데…….”
나는 갑자기 귀가 탁 트이는 듯했다.
“어떤 시인데요?”
“그 시 중에서도 하나가 무척 뛰어났는데 제목이 눈……, 눈……, 눈으로 보는……. 그게 뭐더라……? 생각이 잘 안 나네…….”
“눈으로 보는 마음!”
“그래 맞아, 눈으로 보는 마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