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카페 | 여덟 번째 이야기
사나이 벌판가슴 불질러 태워놓고
돌아서 떠나시면 언누가 수습하랴
아서라 불장난일랑 사양타고 일러라
청춘이 어드메뇨 순정이 무엇인고
재너머 머스마들 빨래터 훔쳐보고
남몰래 가슴저미어 울렁증이 깊구나
보름달 휘영청이 고운녀 달비추어
콩다쿵 가슴안고 발걸음 사뿐하니
숫총각 물레방앗간 로맨스라 하리다
차 한잔의 카페 | 여덟 번째 이야기
☼
윤아는 자신이 운영하는 김밥집을 시도 때도 없이 닦고 쓸고 치우고 한다. 근 10년 동안 남 밑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에 자기 가게를 갖게 되어 감격도 크고 각오도 남달랐던 것이다. 그 덕분에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아주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이 가게는 정말 깔끔하네. 쥔 양반이 아주 부지런한가 봐요.”
내가 바로 이 가게의 주인이랍니다. 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윤아는 자부심이 커져갔다.
“아가씨, 복슬김밥 두 줄 싸줘. 우리 애들한테 갖다줘야겠어.”
30대 초반이지만 무척 앳돼 보이는 윤아를 가게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윤아의 김밥집에는 대학에 다니는 쌍둥이 조카 둘이 교대로 나와서 도와주고 있었다.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는데도 나이 어린 이모를 자진해서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윤아가 늦둥이로 태어나고 바로 위의 언니와 12살이나 차이가 나는 데다가 그 언니가 아주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이모와 조카 사이의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게 되었다.
“이 가게는 주인아저씨는 안 보이고 늘 따님들만 나와 있네.”
바로 옆의 표구점이자 동양화점이며 화랑이기도 한 명경서화의 노총각이 가끔 김밥을 사가며 한마디씩 한다. 이 노총각은 윤아가 주인인 것을 잘 알면서도 늘 그렇게 말했다.
“복슬김밥 이름 잘 지었어요. 따님들이 모두 복슬스러워.”
서글서글한 성격의 노총각은 이 김밥집에만 오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한다.
그럴 때마다 윤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그러나 주방에서 늘 바삐 움직이느라 항상 상기되어 있는 탓에 윤아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노총각은 화랑 주인인 명경(明鏡) 이정화 여사의 조카인데, 쉽게 말해서 분점을 하나 내서 조카에게 맡긴 것이다. 명경서화는 이정화 여사만큼이나 유명해서 그곳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인정을 해줄 정도이다. 게다가 이정화 여사가 아끼는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져 그 가게도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그 동양화라는 호칭이다. 이 말은 일제강점기에 서양화에 대한 대응개념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사실은 문제가 좀 있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기치로 아시아 전체를 정복하기 위해 만든 것이 ‘동양’이라는 개념이다. 서양에 대항해서 일본 중심으로 세계를 이등분하여 지구의 반쪽을 지배하겠다는 야욕이 담긴 용어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일본 자체에서도 동양화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북부지역에서는 북송화(北宋畵)라고 해서 산세가 우람한 풍이 주류를 이루고, 남부에서는 그보다는 완만한 풍의 전통화를 남송화(南宋畵)라 부른다. 이렇게 각기 자국의 특성이나 화풍에 맞는 이름을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제의 잔재인 동양화라는 이름이 아직도 널리 퍼져 있다. 따라서 일본화나 북송화 및 남송화와 대등한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한국화라고 해야 옳다. 물론 요즘은 한국화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어 일반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이들이 그저 쉽게 동양화라는 말을 입에 올리고 있는 것 같다.
그거야 그렇고, 윤아는 명경서화 노총각이 가끔 찾아와 주는 것이 무척 기뻤다. 새벽부터 거의 하루 종일 일만 한 뒤에 밤늦게 집에 돌아가기 때문에 윤아에게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다. 주말도 없고 공휴일도 없다. 친구는 물론 남자를 만날 시간도 없다. 남자는 사실 두 번 사귀었으나 모두 좋지 않게 끝났다. 한 번은 상대방이 싫다고 떠났고, 그 다음에는 윤아가 돌아섰다. 이렇게 두 번의 실연 경험이 있어서 남자를 만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것 말고도 지금은 한가하게 로맨스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이미 나이 서른을 넘어섰다.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고 가족이라고는 외국에 간호조무사로 나가 있는 언니 하나 있지만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서로가 힘들게 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모와 조카들이 도와주어 겨우겨우 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윤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 해본 일 없이 살아왔다. 그랬던 것이 이제 겨우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꿈을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이러한 중에 옆 가게 노총각이 서글서글한 눈매로 다가온 것이다.
처음에는 무덤덤했으나 가끔 찾아와서 크게 미소지으며 듣기 좋은 말도 해주고, 윤아 혼자 무거운 식재료 사서 나를 때 노총각이 뛰어나와서 도와주고 하면 윤아의 마음이 부풀어 오르곤 한다. 게다가 그 노총각은 조카들에게도 잘 대해 주고 말벗도 해주어서 복슬김밥 세 여자에게는 인기가 많다.
“자, 내가 왔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을까요?”
토요일 오후라서 마침 두 조카가 모두 나와 있을 때 노총각이 허리 뒤로 무엇인가를 감추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한 분 있었던 손님이 나가자마자 노총각이 들어온 것을 보면 유리문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들어온 것 같기도 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김밥 좀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가 드릴 것이 있어서 왔지요.”
노총각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으며 두 조카를 번갈아 쳐다본다. 윤아는 탁 트인 주방의 카운터 너머에서 홀의 광경을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이모님은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아무 말도 마시고 두 조카님이 맞춰 보시지요. 맞추면 두 분에게 드리고, 못 맞추면 이모님 겁니다.”
“그냥 이모 주세요.”
“처음부터 이모 주려고 오셨네요, 뭐.”
“아니, 아니, 오해입니다. 나는 이모님한테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어요. 오직 두 조카님에게만…….”
“주방으로 들어가세요. 우리가 나가서 망 봐줄 테니까.”
“아닌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나는 이모님하고 절교한 지 벌써 오래됐습니다.”
“얘, 우리가 얼른 나가자.”
“아니, 잠깐. 내 등 뒤에 선물이 있는데 그냥 나가면 안 되죠.”
그러자 쌍둥이 중 큰 조카 민지가 노총각 뒤로 돌아가서 감춘 것을 빼앗았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까부터 냄새가 나더라.”
민지가 빼앗아 온 봉투를 열어보니 햄버거였던 것이다.
“맨날 김밥만 먹지 말고 이런 것도 좀 드시라고 사왔죠.”
마침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아서 우리는 햄버거를 맛있게 먹었다. 노총각 자신의 것까지 포함해서 큼직한 햄버거 넷을 사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맛이 좋았는지…….
그러나 네 사람은 햄버거를 먹자마자 햄버거 냄새를 빼내기 위해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까지 틀어놓아야 했다. 두 조카는 부채를 마구 부쳐대고. 마침 그동안 손님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김밥집에서 햄버거 냄새는 좀 곤란하니까.
노총각이 이런 식으로 가게에 왔다 가면 그날 밤 윤아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걱정 반, 기대 반. 그리고 한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아련한 어떤 것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피어오르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두 조카가 모두 없을 때 노총각이 이번에도 허리 뒤에 무엇인가를 감추고 들어왔다. 손님이 둘 있고, 한 손님이 포장해 달라고 해서 윤아가 바쁘게 왔다갔다 할 때였다. 노총각은 가게의 분위기를 살펴보더니 슬그머니 다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가게 안이 조금 한산해졌을 즈음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허리 뒤로 손을 돌리고서. 그리고는 조카들이 없어서 게임하는 재미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허리에서 곧장 손을 빼내어 기다란 통을 하나 내민다.
윤아가 의아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자 노총각은 씨익 웃고는 원통의 뚜껑을 열고서 무엇인가를 꺼내는 것이었다. 둥글게 말아놓은 종이였다.
노총각은 혹 손님이 들어올까 하는 듯이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유리문 밖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얼른 그 종이를 윤아 앞에서 활짝 펼친다.
아―!
얼마 전에 노총각이 자기 화랑을 구경해 보라고 하며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벽 한쪽에 걸려 있었던 한국화 한 점을 보고 윤아는 감탄했었다. 태백산맥과 같은 첩첩산을 수묵담채화로 그린 것인데, 그 위로 붉은 해가 둥실 떠 있는 그림이었다. 먹으로만 그린 산맥 위에 떠오른 강렬한 붉은 태양. 윤아의 가슴에 그 태양이 깊고 깊게 파고들었다. 서양화 기법이 아니라 한국화의 독특한 붓놀림으로 그려진 붉은 태양. 그리고 그 거친 붓 터치.
마치 윤아가 잃어버린 뜨거운 마음을 누군가가 그곳에 옮겨다놓은 것 같았었다.
그날 윤아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마구 뛰면서 그 태양에 몰입했다.
그리고 그 노총각은 옆에서 그림과 윤아를 번갈아 보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바로 그 그림. 윤아의 눈앞에서 떠오르고 있었던 그 강렬한 태양.
이번에도 윤아는 지난번처럼 숨이 탁 막혔다. 자신의 어디에 그런 강렬함이 숨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용광로와 같은 뜨거운 어떤 것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윤아 자신은 전혀 의식하고 못하고 지냈었던 강한 분출감! 뜨거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엄청난 기세의 그 붉은색!
하―!
윤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뱉어내고 말았다.
노총각은 윤아가 그 태양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그 그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그 그림에게 주인을 찾아주는 동시에 자신의 마음의 주인도 찾고 싶다고 했다.
노총각은 이렇게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채 돌아갔었다.
그러고 나서 열흘 뒤 노총각은 그 그림을 유리 액자에 담아서 가지고 온 것이다. 강렬한 태양이 더 돋보이도록 만든 기막힌 액자를.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은 뇌물이죠.”
그 순간 누군가가 윤아의 눈을 보았다면 아마도 태양을, 용광로를, 용솟음을 보았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뜨거운 환희를 목격했다고 단언했을 것이다. 활성화되어 막 터져나오기 시작한 화산의 용암과 같은 것. 몇천 년 동안 갇히고 억눌려 있다가 막 세상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태양의 중심과 같은 어마어마한…….
윤아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억눌리며 살아온 자신의 어디에서 그러한 강렬함이 올라오는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그런 중에도 그러나 그 태양은 아마도 자신의 심장일 것이라고 윤아는 생각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 보는 뜨거움.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새로운 감정.
그러나 그 순간 윤아는 그 뜨거움과 자신의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윤아는 그림에서 눈을 돌려 노총각을 바라보았다. 윤아의 눈에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담겨 있었다.
“제 부탁은…….”
윤아는 이제는 뜨거움보다도 격렬한 심장박동으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뒷말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이대로 온 세상이 멈춘 다음 영원히 이어지길 바랐다. 진심으로. 왜냐하면 그 다음 말은 도저히 윤아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일 테니까. 그 말을 들으면 자신의 태양이 터져나가 어쩌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윤아의 마음에서 빗나갈 테니까.
제발, 제발 뒷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윤아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빌었다.
“작은 조카 민경 씨에게 제 마음을 대신 전해 주십시오. 제가 나이가 너무 많아 감히 직접 말을 할 수 없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그 순간 윤아는 자신이 본 태양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감추어두고 억누르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욕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세상은 멈추고 말았다. 온 천지가 얼어붙은 채로.
윤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민경을 축복하면서.
그리고 윤아 자신이 누릴 미지의 행복까지도 민경에게 모두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민경을 보았다면 온 세상 모든 꽃을 다 꺾어서 그 머리 위로 흩뿌려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민경의 손을 잡고서 이렇게 말해 주었으리라.
너에게는 흩날리는 꽃잎을,
나에게는 뜨거운 태양을
그렇잖아도 잔뜩 흐렸던 창밖에선 갑자기 소나기 쏟아져 내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윤아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나자 중년 아주머니 세 분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왁자지껄하면서. 그리고는 앉기도 전에 주문을 한다.
“복슬김밥 세 줄 말아주고……, 소쿠리냉면 둘. 빨리.”
윤아는 얼른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허청거린다. 그러나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몸을 꼿꼿이 세웠다. 이제부터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 곧 민지나 민경이 오겠지.
아, 금요일이니까 민경이 오겠구나.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되겠지…….
윤아는 손을 재빨리 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