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ana Arcanissima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또 가장 넓은 것은?
사람 나름이겠지만, 혹 마음이나 생각이라고 답을 낸다면 어떻게 여기실지. 마음으로는 온 우주를 품을 수 있고, 생각으로는 우주 너머까지도 갈 수 있다. 상상력의 크기가 얼마만 한지, 또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달라진다.
秋夜雨中(추야우중) | 가을밤 비는 내리고
-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 | 857~?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 가을바람 스산함에 시를 읊고
| 세상에 내 마음 아는 이 없어
| 창밖은 자정인데 비만 내리고
| 등잔 앞에서도 마음은 만리밖
신동이라 불리던 최치원이 12살에 당나라로 유학 가서 공부하던 중에 고향을 그리며 지은 시라고 한다. 어린 최치원은 공부 중에 책상 앞에 앉아서도 만리 밖의 고향을 바라보았다. 비록 최치원뿐이랴. 우리 모두 눈을 감고도 온 세상을 넘어 우주 끝까지 달려갈 수 있지 아니한가. 사실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눈을 감을 때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참고로 위의 시에서 知音(지음)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참다운 친구를 뜻한다. 이는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것으로,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우정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즉 자신을 알아주는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더 이상 없다고 하고서 거문고 줄을 끊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죽지 않았다
매일 밤
나는 생각 속에서 죽어가고 있노라
다행인 것은
생각은 죽어가도
머리는 우주를 떠돌며
광활한 구석구석 뒤지느라 쉴 틈이 없음이라
하여
나는 혼자 있어도 바쁘고
할 일이 없어도 분주하구나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말이 있다. 고요한 마음 가운데에서도 속 깊은 생각이 흐르는 것을 일컫는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 혹 겉보기에 왜소하거나 추레해 보인다 해도 누가 감히 그 속을 능히 헤아리랴.
조선조 숙종 때 전라좌수사와 평안감사를 지낸 이택(李澤)은 이런 글을 남겼다.
감장새 작다하고 大鵬아 웃지마라
九萬里 長天을 너도날고 저도난다
두어라 一般飛鳥이니 네오긔오 다르랴
여기에서 감장새는 굴뚝새를 뜻하고, 네오긔오는 ‘너나 내나’의 뜻이다. 굴뚝새는 진갈색의 작은 새로서 옛사람들에게는 굴뚝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초췌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대붕은 날개 길이만 3천 리에 달하며, 하루에 9만 리를 날아간다. 또한 북녘바다에 사는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되었다고 한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나오는 바로 그 새다.
그러하니 대붕과 감장새가 어찌 비교가 되겠는냐마는, 하늘을 난다는 면에서는 너나 내나 일반이라는 뜻이다. (그러하니 이는 곧 가랑이 길다고 숏다리 우습게 보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하겠다.)
Quod ubique,
Quod semper,
Quod ab omnibus.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믿는 것. 무엇일까? 어느 시대, 어디에서건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 혹 시간을 예로 들면 어떨까.
시간의 길이는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 누구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가만히 있어도, 무엇인가에 몰두해도 시간은 간다. 사람에 따라 상대적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시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즉,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고, 누구나 믿는 것’이라는 뜻이겠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다는 의미.
이는 지난 일은 마음에 묻고 새 마음을 가지라고 할 때도 사용된다. 하지만 그동안 수억의 밤을 보냈는데 그것을 한꺼번에 털어내기가 쉽겠는가. 또한 수억의 밤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데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으랴. 이렇듯 가고 오는 수억과 수억 사이에 우리 인간은 서 있다. 이들 사이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코 베어간다.
코 없이 어찌 눈앞에 놓인 수억의 날들과 밤들을 누리겠는가. 혹 송구영신을 맞이하기 위해 도회지건 야외로건 나가신다면 코 베어가지 않도록 마스크로 잘 가리고 있어야 할 터이다. 즉, 코를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은 코만 조심해도 되겠다. 코로 생명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코로 생명이 나가면 우리는 이 세상과 작별해야 한다.
그러하니 코, 코가 생명이다. 적어도 요즘 시국에선.
성경에도 이렇게 나와 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 이사야서 2장 22절
이와 같은 모든 사유와 유추를 할 수 있는 것, 오직 인간뿐이던가. 인간 위의 존재가 이 글을 보고 나무라실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인간의 시간이기에 이러한 허언을 즐겨보기로 한다.
그러함에도 한 해의 마지막 날, 많은 것들이 스쳐가고 또 더 많은 것들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느껴지는 것 하나.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이라.
생명.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축복스럽고 신비한 것은 없음을 느낀다.
생명이 있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명. 신비 중의 신비로구나.
Arcana Arcanissima!
신비 중의 신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