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tschmerz
이 글은 Weltschmerz(벨트슈메르츠), 즉 세계고(世界苦)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낭만주의에 대해서 먼저 언급해야겠다.[Welt(세계)+Schmerz(고통)]
낭만주의(romanticism)는 우리가 흔히 낭만이라고 하는 것과는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낭만주의에서 낭만은 글자 그대로인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우울하고 비관적인 느낌이 더 든다고 보면 된다. 이 글의 제목이 낭만실종사건이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이다. 낭만이 실종된 낭만주의.
그렇다면 낭만은 무엇일까? 이 단어는 프랑스어 ‘로망(roman)’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자로는 浪漫, 영어로는 romance로 표현한다. 낭만은 정서적으로 감미로운 분위기에 젖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한편, 로망(roman)은 소설을 뜻하기도 한다. 원래 roman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쓴 이야기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이 말이 17세기경에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감성적인 이야기, 즉 소설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뭐 이것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19세기 전반부에 서구 유럽을 휩쓸었던 새로운 문학사조인 낭만주의는 어떠한가? 사실 낭만주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매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새로이 떠오른 낭만주의 선도자들은 자유(진보)주의자/보수주의자, 혁명파/복고파, 무신론자/신앙론자 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서로 반대적 개념이 아니던가. 따라서 낭만주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그 당시까지 유럽에서 이어져 오던 문학적 개념이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인 현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떻든 이 글은 낭만주의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오늘의 주제는 앞서 언급한, 낭만주의에서 발생한 Weltschmerz(世界苦)에 대한 것이다. 이 ‘세계고’를 좀더 쉽게 표현하면 염세주의나 비관적이고도 감상적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낭만주의 시대의 문인, 그중에서도 특히 시인들은 당시 전쟁과 혼란 속에 싸여 있던 유럽의 분위기에서 (현대에서 종종 언급되는) 일종의 세기말적인 현상을 목도했던 것 같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서유럽을 휩쓸고 있었던 잦은 전쟁과 정치적 혼란, 급격히 심화된 빈부의 격차, 귀족계급의 몰락, 신대륙 발견에 이은 집단이주 등으로 문화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마디로 흔들리는 세계관이 지식계급을 지배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을 비롯한 문인들 역시 그러한 혼란의 시기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계를 자신들이 이끌어나가지 못한다는 좌절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이를 거부하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독일의 소설가인 장 파울이 가장 먼저 ‘세계고(世界苦, Weltschmerz)’라는 말을 인용했다. 사실 이 용어는 현대 독일어를 완성시켰다는 그림(Grimm) 형제가 독일어대사전에 처음 수록한 단어다. [장 파울(Jean Paul, 1763~1825)은 독일인으로 본명은 요한 파울 프리드리히 리히터(Johann Paul Friedrich Richter)이지만,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너무 신봉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식인 장 파울(Jean Paul)로 바꿨다.]
그 이후 프랑스에서 세계고는 ‘세기(世紀)적인 병(病)’으로 불리면서 수많은 시인이 동참하게 되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인들이 당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우선 프랑스의
마르키스 사드(the Marquis de Sade, 1740~1814)
샤토브리앙(François-Auguste-René, vicomte de Chateaubriand, 1768~1848)
알프레드 드 비니(Alfred Victor de Vigny, 1797~1863)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 1810~57),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1821~67)
폴 베를렌(Paul-Marie Verlaine, 1844~96)
등이 여기에 적극 동참했으며, 에이레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영국의
로드 바이런(Lord Byron, 1723~86)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이탈리아의
자코모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 1798~1837)
대륙을 가로질러 독일의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
니콜라우스 레나우(Nikolaus Lenau, 1802~50)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폴란드의
율리우스 수오바츠키(Juliusz Slowacki, 1809~49),
또 그 너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 1799~1837),
미하일 레르몬토프(Mikhail Lermontov, 1814~41),
게다가 이에 머물지 않고 바다를 건너가서 미국의
내더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64)
등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세계고의 주된 특징은 무엇일까? 간략하게 말하면 염세주의도 아니고 허무주의도 아닌, 일탈된 일무주의(逸無主義)라 할 수 있겠다. 세상에 대한 혐오와 허무, 사회와 인간에 대한 회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시각 등등. [일무주의에 대해서는 제일 아래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의 시인들 중에서 말년에 극심한 질병 속에서 고통받다가 47세에 세상을 떠난 알프레드 드 뮈세의 묘비에는 그의 시 ‘엘레지(Elegie, 哀歌)’가 새겨져 있다.
사랑하는 친구여, 나 잠들거든
내 무덤가에 버드나무 한 그루 심어주오
축 늘어뜨린 버드나무라면 더욱 좋다오
정답고도 감미로운 그 푸른빛
나 잠든 무덤 위에 살며시 그림자 드리울 테니
알프레드 드 뮈세가 남긴 명구
- 이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절망의 노래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랍니다. 끊임없이 우는 불멸의 노래를 나는 알고 있지요. (‘오월의 노래’ 중에서)
- 인간은 수도자와도 같고, 고통은 스승이려니, 고통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한답니다. (‘시월의 노래’ 중에서)
알프레드 드 뮈세는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76)와 깊은 사랑에 빠져 베니스로 함께 도피행각을 벌였는데, 당시 이 사건은 아주 유명해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한편 작곡가 쇼팽(Frédéric Chopin, 1810~49) 역시 조르주 상드와 깊은 연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다 파경에 이른 뒤 39세에 숨을 거두었다.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시
모든 물체의 왕이자 온 세상의 주인이요
신비에 싸인 악의 황태자
지상 최고의 존엄자요 지고지순의 지성을 갖추고
영원한 악을 선물하며 모든 행동을 주관하는 황제
그렇다면 200여 년 전에 흘러간 한 문학의 사조가 갑자기 현대의 여기에서 왜 튀어나왔을까? 또한 Weltschmerz(벨트슈메르츠)의 세계‘고’(世界苦)와 ‘낭만’주의라는 용어의 단어적 모순은 어떻게 일치시켜야 할까?
최근 어느 인사와 대화 도중 그분이 바로 이 Weltschmerz에 대해 언급했다. 최첨단의 시대인 21세기 초에 역설적이게도 세기말적인 블루(우울), 즉 코로나 블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단어가 나온 것이다. 그분에게 있어서 세기말적인 코로나 블루는 바로 Weltschmerz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역설했다. Weltschmerz는 19세기가 아니라 두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21세기의 시사용어가 될 날이 가까워져 간다고. 그러면서 이러한 말을 덧붙였다. 가짜 낭만주의, 즉 낭만을 잃어버린 Weltschmerz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낭만이 사라진 낭만주의 Weltschmerz. 그렇다면 우리 세대에 낭만은 어디로 갔을까?
집 나간 낭만을 찾습니다. . .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왜 우울이나 멜랑콜리를 블루(blue)로 표현했을까? 청명하게 맑은 하늘 그 깊은 색에 왜 우울을 덧씌웠을까? 궁금하지 않으신지. . . 이쯤에서 간단하게 블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찰(?)해 본다.
블루 | 가죽공정 중에서 크롬으로 무두질한 가죽으로, 염색이나 도장을 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블루(blue) | 야구에서 심판을 뜻한다고 하는데, 예전에 심판들의 복장이 파란색이어서 그렇게 불렀다나.
매리지 블루(marriage blue) | 결혼 전에 겪는 우울.
블루 블러디드(blue blooded) | 고귀한 혈통 또는 귀족을 뜻함.
트루 블루(true blue) | 충실함을 의미.
(브런치 작가이신 김성수 님께서 Weltschmerz를 일무주의로 정의하자는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일(逸)은 편안, 만족, 게으름의 뜻이고, 무(無)는 도가에서 허무가 아니라 인위(人爲)가 없다는 무위(無爲)의 뜻에 가까워 Weltschmerz를 정의하기에 적당하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의견을 보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