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by Rudolf


Dum Spiro Spero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로마제국 시절 아프리카 노예로 끌려왔으나 유명한 시인이 된 사람이 몇 있다. 이들 중 두 사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 Publilius Syrus (BC 85~43), 시리아 노예 출신의 로마 제국 시인

- 시도해 보지 않고는 자신이 얼마만큼 해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 Publius Terentius Afer (BC 186~159(?)), 카르타고 노예 출신

-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 | Homo Homini Deus


이 말은 단순히 인간을 벗어난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마도 자유를 갈망하는 노예 신분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즉, 인간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그런 마음들, 그것을 신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중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Homo Homini Deus)’는 ‘Homo homini deus est si suum officium sciat(사람이 자기 본분을 지키면 다른 이들에게 신과 같이 된다)’에서 왔다고 하는데,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 1804~72)에 의하면, 여기에서 신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인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테렌티우스는 노예 신분으로 로마에 왔기에 그가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 뒤에 ‘Afer’를 넣은 듯하다.)




고대의 노예들은 대개 전쟁포로였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는 대부분 적의 포로 병사들을 끌고 왔다. 이들이 바로 노예가 된 것이다. 포로가 많을 때는 2만 명이 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노예는 전투 시에는 가장 혹독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해전의 경우 배 밑창에서 노를 저었고, 이때는 노예들의 발을 모두 연결해서 묶어 도주하지 못하도록 했다. 육상전의 경우에도 포로들을 묶어서 제일 앞쪽에 내세워 상대방이 공격하는 데 주저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평시에도 노예들은 심할 경우 광산에 끌려가서 100미터가 넘는 지하갱도에 들어가 혹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으며, 도로나 무기를 만들 때도 대량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그리스 지역의 옛 광산에서 노예들이 족쇄에 묶여 연결된 채 발굴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보아 노예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들이 많을 때는 1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당시에 노예들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노예가 모두 극한의 환경에서 일한 것은 아닌 듯하다. 특히 로마에서는 각 가정에서 노예들을 부리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주인을 잘 만난 덕에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는 예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위에 소개하는 두 시인의 경우처럼.

노예들은 사고팔 수가 있었고, 구타하는 것도 허용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법정에서는 노예를 고문해서 증거를 얻어내는 것도 합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고대사회에서는 노예가 경제의 큰 비중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노예는 가사 일에서부터 국가와 사회의 주된 노동력이자 경제력이 되고 있었던 셈이다.


로마제국 초기에는 노예가 주로 전쟁을 통해 공급되었으나, 그 이후 노예들의 자손이 노예가 되는 구조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노예 중에서 여러 방면의 숙련공들이 많이 나와 그들이 경제나 문화에 다양한 형태로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노예는 경우에 따라 자유인이 되기도 했는데, 위에 소개한 두 시인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주인들이 노예의 재주를 높이 사서 로마 시민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준 것이다.

노예는 로마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중국이나 한국의 농노, 노비, 미국의 흑인 노예 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종이라 불렀던 그들.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그들은 하나의 물건과 마찬가지로 취급을 받으며 평생, 아니 대를 이어서 그 신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살았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나 위안부의 경우도 의미상으로는 여기에 해당할 수 있겠다. 그들에게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기계의 부속품처럼 사용되다 버려졌으니까.

이렇듯 노예들의 삶에는 미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죽는다고 해도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자손이 대를 이어 노예가 되니까.


Letum non omnia finit

죽는다 해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한 대구(對句)도 있다.

Dum Spiro Spero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일까?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가 작곡한 오페라 《나부코(Nabucco)》(1842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에서 등장하는 장엄한 합창, 흔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 불리는 이 곡의 원명은 ‘Va, Pensiero, Sull’ali Dorate(가거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이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히브리 노예들의 애환과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담은 이 노래는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해준다. 또한 노예 선장 출신의 존 뉴턴(John Newton)이 작사한 ‘Amazing Grace’는 또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가. 찬송가에도 수록되어 있는 이 노래는 특히 그리스의 국민영웅 가수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가 불러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이렇게 예술 속 노예들의 삶은 오히려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젠장) 심지어 1970년 자메이카 출신 그룹이 불렀다가 모두 흑인으로 구성된 그룹 보니 엠(Boney M)이 1978년에 다시 불러 크게 성공시킨 ‘By the Rivers of Babylon(바빌론 강가에서)’는 중독성이 아주 강하고 무척이나 경쾌한 리듬으로 되어 있다. 가사의 내용은 유대민족의 불행을 노래하는 것이나, 실상 노예들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가사는 성경의 시편 137편을 참조한 것이라고 하는데, 바빌론 시대에서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그 노래는 현대인의 귀에 엄청 달콤하게 들려온다. 아주 낮은 톤으로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가슴이 저릿하지만. (이 곡은 한국에서도 그룹 ‘들고양이’가 리메이크해서 불러 큰 인기를 모았었지.) 이렇듯 노래는 참으로 감미롭다. 사실 모든 예술이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현실도 그러한가?


‘쿰바야(kumbaya)’라는 노래를 아시는지? 이 노래는 흑인 노예들이 힘든 환경에서 위로받기 위해 부른 노래 ‘주여 여기 임하소서(Come by here my Lord)’가 아프리카식 발음으로 변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저지르는 이 참혹함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 .’ 사실 이 말은 과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와 조지아 주에 걸쳐 살던 흑인 노예들이 쓰던, 토착어 비슷한 걸러(Gullah)족 언어에서 변형된 것이란다.


Kumbaya my Lord, Kumbaya Kumbaya my Lord, Kumbaya Oh Lord, Kumbaya

쿰바야 내 주여, 쿰바야 쿰바야 내 주여, 쿰바야 오 주여, 쿰바야

Someone’s praying, Lord, Kumbaya Someone’s praying, Lord, Kumbaya, Someone’s praying, Lord, Kumbaya Oh Lord, Kumbaya

누군가 기도합니다, 주여, 쿰바야 누군가 기도합니다, 주여, 쿰바야, 누군가 기도합니다, 주여, 쿰바야 오 주여 쿰바야


육신과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고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에서 흑인 노예들은 이 노래를 불렀다. 위안을 받았을까? 그래, 위안을 받았다면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출구 없는 삶. 1차대전이 끝나고 서구 젊은이들은 1천만 명이 죽은 전쟁의 참상을 보고 나서 그 현실에 절망한 끝에 사회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을 ‘Angry Young Man Generation’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들 전후 세대가 흑인 노예들보다 더 비참했던가?

(한편 6천만 명이 넘게 사망한 2차대전 직후 사회에 저항한 세대는 ‘Beat Generation,’ 즉 ‘출구 없는 세대’로 부른다. 이래도 우리는 전쟁을 찬미하겠는가? 6천만 명이면 한국 전체 인구보다 훨씬 많다. 우리 세대에서 누가 젊은이들을, 인류를 전쟁으로 몰고 가려 하는 것인가? 혹 누군가가 태어나자마자 6천 만의 시신을 차례로 숫자로 하나씩 세어간다면 얼마만 한 세월이 걸릴까? 혹 삼시세끼 밥도 먹지 않고 똥도 싸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시신만 세어간다고 가정할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것일까? 1초에 시신 하나씩 센다고 했을 때를 가정해 보자. 60초가 지나면 1분, 60분이 지나면 한 시간, 24시간이 지나면 하루, 365일이 지나면 1년. . . 이렇게 계산해 보니 대략 1.9년이 걸리는 것 같다. 혹 이 계산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어느 분이라도 검토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빨리 말을 한다고 해도

5천7백9십4만5천3백8십2,

5천7백9십4만5천3백8십3,

5천7백9십4만5천3백8십4. . .

이런 식으로 1초에 한 번씩 셀 수 있을까? 이것을 영어로 세면 더 가관이 된다.

Fifty-seven million nine hundred forty-five thousand three hundred eighty-two,

Fifty-seven million nine hundred forty-five thousand three hundred eighty-three,

Fifty-seven million nine hundred forty-five thousand three hundred eighty-four. . .


팔에 링거 주삿바늘을 꽃은 채, 태어나자마자 젖꼭지도 물지 않고 기저귀도 차지 않고, 그 지긋지긋한 학교에도 가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으면서 세어나갈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렸을 때의 기간은 빼고,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잠도 자고 한 뒤 회사에 나가 숫자만 센다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하루 8시간에, 미성년 나이를 제해 주고, 군대도 안 갔다 오고 만 20세부터 센다면 어떻게 될까? 그랬더니 695일이 걸린다. 그래서 이제 다시 숫자 세는 것을 1초가 아니라 3초로 늘려주었더니 2,085일이 나온다. 일주일에 5일 근무하면 2,919일. 여기에서 법정공휴일, 연차, 월차, 반차, 반반차, 출산휴가, 각종 경조사, 게다가 숫자만 세느라 생긴 이상 증세로 정신과 치료 받고, 운동도 못 해서 생기는 과로로 인한 입원, 가끔 눈치껏 땡땡이 등등을 다 빼 보면 넉넉잡고 10년은 걸리는 것 같다. 누구 이런 일에 자원해서 나설 분 계신가? 만일 3초가 아니라 틈틈이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추고, 50분 일하고 10분씩 쉰다면 족히 15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남들은 다 승진하는데 자기 혼자만 숫자 세느라 계속 말단 신세 면치 못하게 되겠고. 그래, 맞다. 우리는 한 번의 전쟁에서 이렇게 일일이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말이다. 원시사회였으면 그대로 인류멸절의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그들’을 찬양하는 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흑인 노예였다가 탈출한 미국의 더글라스 프레데릭(Douglas Frederick)이 쓴 자서전 《프레데릭 회고록》에는 미국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한국의 한 동화작가 이말녀 선생이 쓴 《보금이》에는 천민 신분 백성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그 작품 마지막에 보금이 일가와 마을 사람들이 양반들의 가혹한 처사에 못 이겨 대갓집에 불을 지르고 산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 . [갑자기 이 글이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다. (용서를 구한다.)]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잠인가요

.

.

.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 〈고적한 밤〉 중에서 |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이 글은 결론을 내지 않고 끝낸다. 예를 들면 현대에서도 형태는 달라도 실질적으로는 노예나 다름없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것이라든가, 거대자본이나 폭압정치 같은 저항할 수 없는 암흑 세력에게 종속된 채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계층에 대한 폭로 등이 이어지는 것이 이 글의 흐름에 어울리겠으나, 그러한 글들이 오히려 진부함으로 느껴질까 염려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갑자기 글 쓰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진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악행에 짓눌려서 그렇기도 하려니와, 노예로, 더 나아가 전쟁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꽃다운 젊은이의 죽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위의 사실과는 별도로 지금 현재 돌연 지치는 느낌이다. 소설이든 짧은 글이든, 아니면 시나 시조든 머릿속에서 피어오를 때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머릿속이 텅 빈 느낌. 그저 공허함만 밀려올 뿐이다.


쉬자. 나 혼자 이 세상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물론 내가 하늘을 짊어지고 고뇌할 아틀라스로 태어난 것도 아닐 테니. . . 이 가상의 공간에서 잠시 사라진다 해도 아쉬워할 이 누가 있겠는가. 오히려 숨어 있는 대한민국의 문재(文才)들에게 브런치를 맡기는 것이 글세상 공간에게는 유익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글을 써놓고도 혹 미련이 남아 당장 내일 다시 돌아온다 한들 어느 분이 나무라겠으며, 그림자처럼 뒷녘에 남아 ‘님’들 글 훔쳐본들 어느 누가 탓하리오. 이제 오늘은 나에게 선물하고, 내일은 ‘그분들’에게 모두 드리리.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그대에게


그러하나 아아,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내가 한 말을 나 자신이 급속히 '배신'한다 해도, 너그러운 글 동료들이여, 이 답답한 글쟁이 돈수(豚首)를 기꺼이 받아주시리라 믿으오.




배 신


시간이 사라져도

생명이 지나가도

사랑이 식어져도

밀어가 잊혀져도

맹세가 깨어져도

하늘의 별자리는 남는구나

운명처럼

미소처럼

배신한 여신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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