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Be Not Proud | 죽음아 자만하지 말거라
- John Donne | 존 던 (1572~1631)
One short sleepe past,
we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 짧은 잠이 지나면
| 우리는 모두 영원히 깨어나고
| 죽음은 더는 없으리니
| 죽음아 너는 죽으리라
조선조 초기, 한 대갓집의 둘째 부인인 신씨는 남편의 역모가 발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가지고 있던 패물을 몽땅 싸서 첫째 부인 김씨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직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빨리 피신하라고. 이제 곧 삼족이 처형당하고 여자들은 노비로 끌려가게 되면 가문의 대는 끊어지며 제사마저 지내줄 이 없을 텐데, 첫째 부인이 어린 딸이라도 데리고 도망가서 후손 노릇을 하며 제사를 지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이다.
첫째 부인은 처음에는 자신도 남편과 함께 죽거나 아니면 둘째 부인과 함께 노비로 남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둘째 부인의 계속되는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자신의 친정이 있는 충청도로 피신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도망간 김씨에 대한 체포령을 긴급히 내리고 그의 친정에도 관군을 보내어 딸의 행방을 물었다. 충청도로 향하던 김씨는 이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남편의 팔 하나가 충청도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고운님 내님가신 발걸음 걸음걸음
총총히 좇으오니 고운눈 보내시어
어히타 서런이가슴 한순간에 녹으다
이렇게 해서 여인은 그해 겨울 거지 형상을 하고 간신히 은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현재 충청남도 논산군 은진면의 관촉사에 몰래 들어가 은진미륵 뒤쪽에 숨어 있다가 남편의 시신 일부가 묻힌 곳을 찾아나섰다.
유난히 추운 그해 섣달 그믐날, 가까스로 그 장소를 찾은 여인은 허겁지겁 어린 두 딸이 숨어 있는 은진미륵 뒤쪽으로 돌아와 보니 둘 다 굶주림과 추위에 못 이겨 얼어죽어 있었다. 여인은 죽은 두 딸을 안고 끌고 하며 한밤중에 남편이 묻힌 곳으로 가서 누인 뒤, 얼어붙은 두 딸의 몸을 녹이려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서 덮어주고 나서 그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 위로 밤새 눈이 내렸다.
다음날인 새해 정월 초하루 아침, 이름도 없는 한 묘역에 세 모녀가 얼어붙은 채 죽어 있었으나, 그 세 시신 근처만은 눈이 녹아 있었다.
간다간다 내 님이
어이야 어이어이 저이야 저이저이
내님이 가고자마 미리내 오르리어
가는님 목매붙잡고 몸부림을 하여다
아이리 아리아리 저이리 저리저리
고운님 발걸음이 휘어적 훠이훠이
가고저 하리오마는 이내몸은 서러다
가소서 가소가소 이내를 버리고서
가건들 잊지마소 요담에 내갈때지
그곳서 기나길어져 잊혀지나 마소서
어이야 어이어이 저이야 저이저이
하늘가 바라보니 내님이 아려져서
오늘도 님별바라기 밤새우어 하여다
위의 애련사(哀戀詞)는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 즉 확인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다.
조선조 세조 2년인 1456년, 뜨거운 여름이 막 시작되는 6월 초 성삼문은 아버지 성승,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참수형으로 머리가 잘려나갔다. 그 이후 또다시 군기감 앞에서 시신들의 사지를 찢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이는 백성들에게 본보기로 삼기 위함이었다. [군기감(軍器監)은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다가 다른 부서로 통합된 뒤 조선 초에 다시 설치된 기관으로, 병기 등을 관리하는 관청을 말하며 지금의 서울시청 자리에 있었다.]
성삼문 외에도 세조 암살과 관련된 인사들도 70명이 넘게 붙잡혔다. 이들은 각종 고문을 받은 뒤 여러 형태의 끔찍한 형벌을 당했다. 대부분 처형이나 유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중에는 끔찍한 혹형을 당한 이들도 있었다. [혹형(酷刑)이라 함은 처형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것으로서 능지처참(陵遲處斬), 박피(剝皮), 액수(縊首), 오마분시(五馬分屍), 요참(腰斬), 청군입옹(請君入甕), 활매(活埋) 등을 말한다. 이들에 대한 것은 너무 참혹해서 이곳에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사랑아 사랑아
먼먼길 그니따라 찾아온 타향하늘
한없이 높고높은 구름길 구릉너머
님얼골 구름에그려 바람따라 보내리
그중에서도 성삼문 일가는 멸문지화를 당해 가문이 끊어지고 말았다. 성삼문의 부친인 성승 역시 함께 처형당했으며, 동생 셋과 아들 셋도 남김없이 처형당했다. 세 동생의 이름은 삼빙, 삼고, 삼성, 그리고 세 아들의 이름은 맹첨, 맹년, 맹종이었다.
이렇게 해서 성삼문의 자손이 끊기고 두 아내와 딸은 관비가 되었다. 전재산은 물론 모두 몰수되었고.
성삼문 일가와 역모 관련자들이 처형당한 이후 한 선비가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달이 뜨지 않는 캄캄한 그믐밤에 아무도 몰래 한강 너머의 기슭 노량진으로 건너가서 묻었다고 한다. 현재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역이 바로 그곳이다. 또한 사육신의 갈가리 찢겨나간 시신은 처형 직후 전국을 돌면서 전시했다. 본보기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때 성삼문의 충절을 기리는 한 선비가 떨어져 나간 팔 하나를 몰래 빼내어 충청남도 은진에 묻었다고 한다.
성삼문의 부인은 두 명이었는데, 첫째 부인은 연안김씨이고 둘째 부인은 신씨라고 한다. 첫째 부인의 이름은 차산(次山), 그리고 첫째 부인에게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효옥(孝玉).
첫째 부인 신씨는 그해 9월 자신의 딸 효옥과 함께 노비로 끌려갔으나, 나중에 석방되었다가 성종 때 다시 노비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산다 함은 무엇을 말함이며
죽는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으니
살아도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않고
잘 죽으면 오히려 영생한다
살고 죽는 것이 다 나에게 있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알지어다
- 이준(李儁) | 1859~1907
- 이준은 평리원(平理院) 검사였으며, 48세에 자결. 평리원(平理院)은 대한제국 시기의 최고법원으로, 1899년(광무 3년)에 설립되어 1907년(융희 1년)에 해체되었다.
성삼문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그 중 맏딸은 박경림에게 시집갔고, 둘째딸은 다른 엄씨 가문으로 출가했다. 이들 가운데 박경림의 아들, 즉 성삼문의 외손자인 박호의 후손들이 성삼문의 제사를 지내주었다. 둘째딸의 아들, 그러니까 성삼문의 외손자인 엄찬은 자식이 없어서 그대로 대가 끊어졌다. 그리고 둘째 부인의 딸인 효옥은 노비가 되었다. 이밖에 성삼문의 둘째아들 맹년에게 어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성삼문과 함께 처형당한 류성원의 먼 친척인 류자미가 아무도 몰래 거두어서 길렀다가 나중에 며느리로 삼았다고 한다.
한편, 성삼문의 첫째 부인 연안김씨의 묘는 충청남도 홍성에 있다. 숙종 때 송시열이 성삼문의 팔이 묻혀 있다는 유허지를 정비하고 비석을 세워주었는데, 이때 연안김씨의 묘소도 함께 정비해 주었다고 한다. [유허지(遺墟地)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자취가 남아 있는 터를 말한다.]
그 곳
아무도 가지 못하는 곳
그러나 누구나 가는 곳
생각만으로도 가지 못하는 곳
그러나 눈만으로도 가는 곳
하늘보다 먼 곳
그러나 숨소리보다 가까운 곳
잠
침잠
영원한 잠
여기에서 애련사(哀戀辭)와 발음이 비슷한 중국의 애련설(愛蓮說)을 소개한다. 이는 주돈이(周敦頤)라는 북송(960~1127) 시대의 유명한 유교 사상가가 지은 것이다.
애련설(愛蓮說) | 염계(濂溪) 주돈이(1017~73)
뭍과 물에 피어나는 꽃중에 사랑스런것 많겠지만
진나라의 도연명은 특히나 매우 국화를 아꼈으며
이씨 당나라 이후로 사람들은 모란을 좋아했으나
나는 진흙에 피지만 물들지않는 연꽃 아끼는도다
맑고 출렁이는 물에 흔들리면서도 요염치 않으며
속은 비나 꼿꼿하여 덩굴없고 가지치지 아니하고
향기 퍼질수록 맑고도 자태 꼿꼿하여 기품있어서
멀리에서 보아도 고귀한 연꽃을 나는 사랑하노라
내가 보건대 국화야말로 은자들 꽃중에서 꽃이요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지만
연꽃이야말로 누가 보아도 군자의 꽃이 아니던가
도연명처럼 국화를 아껴주는 이는 들어본적 없고
나처럼 연꽃을 사랑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마는
부귀의 꽃 모란 사랑하는 이 의당 많지 않겠는가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 余獨 愛蓮之 出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余謂 菊花之隱逸者也 牧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牧丹之愛 宜乎衆矣
수륙초목지화 가애자심번 진도연명독애국 자이당래 세인심애목단 여독 애연지 출어니이불염 탁청련이불요 중통외직 불만부지 향원익청 정정정식 가원관이불가설완언 여위 국화지은일자야 목단화지부귀자야 연화지군자자야 희 국지애 도후선유문 연지애 동여자하인 목단지애 의호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