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흑산도, 즉 가거도는 이탈리아 반도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탈리아와 달리 아래쪽에서 왼쪽으로 삐죽 나온 구두코가 없을 뿐이다. 크기는 서울 여의도의 세 배 약간 넘을 듯. 위치는 동경 125도 07분, 북위 34도 04분.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km, 대흑산도에서 남서쪽으로 70km 떨어진 해상에 있다. 대한민국 최서남단에 있는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가가도로 불리다가 나중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가거도(可居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왜정 때, 즉 일제강점기 때 소흑산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소흑산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인근 해역에서는 가거도라고 흔히 부르고 있다. 섬 곳곳에는 후박나무가 군락으로 자라고 있으며 이 나무의 껍질, 즉 후박피가 한약으로 많이 팔려나가고 특히 소화기 질환에 좋다고 한다. 이밖에 현삼이나 목단피, 음양곽, 갈근 같은 희귀약초가 잘 자라고 있어서 목포 한약재상들과 거래하는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희귀새인 흰날개해오라기, 바다직박구리, 가흑비둘기 등이 많이 날아와 조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끔 찾고 있었다. 이밖에 어류도 풍부하고 특히 갯돔이나 감성돔, 볼락 등이 연중 잡히고 있어서 흑산도 식당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주민 대부분은 임씨였으며, 순지가 살았던 만재도는 임씨와 김씨가 대부분이었다. 19세기가 막 시작되는 1800년경에 나주임씨가 처음으로 만재도와 가거도에 들어왔다고 한다.
인희는 소흑산도에서 1년 반을 보냈다.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인희는 1949년에 세워진 흑산국민학교에서 소사 일을 했으며, 부두에 있는 잡화점에서 청소 일도 했다. 돈은 거의 받지 않고 먹고 자는 것만 해결해도 인희로서는 고마울 뿐이었다. 늘 말없이 곱상한 태도로 일을 하는 것을 마을사람들은 좋게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곳에 왔느냐, 부모는 알고 있느냐, 학교는 다니느냐 등등을 귀찮을 정도로 물었지만 인희가 제대로 대답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는 것을 보고는 포기했는지 나중으로 미뤄두었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해 겨울을 나고 봄에는 섬 북서쪽에 있는 항리분교에서 소사 일과 주변 과수나무들을 다듬는 일을 맡았다. 그곳은 부두가 있는 남쪽의 대리마을과는 달리 주민이 거의 없었지만 그 인근 아이들을 위해 1960년에 새로이 분교가 세워져 있었다. 산을 넘어 동쪽 기슭으로 내려가면 역시 같은 해에 세워진 대풍분교도 있었는데, 인희는 그쪽에 가서도 일을 도왔다.
소흑산도, 아니 가거도 사람들은 인희를 많이 아꼈다. 성실하면서도 말이 거의 없고, 무엇보다도 꿈꾸는 듯한 그 눈과 모습을 가련히 여긴 것 같았다. 자기 집에 와서 딸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인희는 자주 산 너머 대풍리를 지나 빈주암으로 가서 북서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곳 해안선 저 너머에는 만재도가 있다. 어선이 나갈 때마다 가득 싣고 온다고 해서 만재선이라 했다는 그 섬, 그곳에 순지 언니의 흔적이 있다. 소흑산도에서 북동쪽. 지금이라도 배를 타고 가면 순지 언니가 부두에 나와 맞을 것만 같았다. 갈매기 날고 섬새들 어지러이 눈앞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인희는 부러웠다. 아무 때나 날아올라 저 멀리 아스라한 곳 그곳까지 날아갈 수 있는 물새들. 순지 언니가 눈에 떠오르고 할머니와 인국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북동쪽이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 인희는 모른다. 다만 바다 밑에서 붉은 불덩이가 떠오르는 곳에서 비스듬히 위쪽을 마음에 두고 그곳에 눈을 주는 것이다.
인희는 이곳에 와서 방향에 대해 처음으로 배웠다. 동서남북 중 항상 남북을 중심으로 방향을 잡는다고 했다. 예를 들면 북쪽과 동쪽 사이는 동북이라 하지 않고 북동이라 하며, 북쪽과 서쪽의 중간은 서북이 아니라 북서라고 했다. 그리고 북쪽과 동북쪽 중간은 북북동, 동북쪽과 동쪽의 중간은 동동북이 아니라 동북동, 북쪽과 북서쪽 중간은 북북서, 북서쪽과 서쪽 중간은 서북서. 이와 같이 항상 남과 북을 먼저 집어넣는다고 한다.
그러나 ‘북동아시아’라고 하지 않고 ‘동북아시아’, ‘남동아시아’나 ‘남서아시아’라고 하지 않고 각각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라고 부르는 것은 좀 이상했다. 아마도 방향에서는 남북을, 그리고 지리에서는 동서를 중심으로 잡는 모양이라고 막연히 인희는 생각할 뿐이었다.
가끔 바다 서쪽 저 멀리로 검은 점들이 몇 개 모여 있는 것이 보이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중국 어선이라고 했다. 언젠가 한번은 태풍이 몰려왔을 때 거의 다 부서진 중국 어선이 소흑산도 항구로 피신해 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누군가는 아주 맑은 날 수평선 저 너머로 신기루처럼 떠 있는 중국 해안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희는 가거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산등성이를 남북으로 여러 번 왕복했다. 직선거리로 가면 두세 시간이면 되겠지만 남쪽 대리마을 뒤의 회룡산(266m)과 가거도에서 가장 높은 북쪽의 독실산(639m) 사이가 나름대로 험준해서 아직 어린 인희로서는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인희는 대리마을에서 항리까지 남북으로 이어진 산 중턱 길은 셀 수도 없이 오갔다.
인희는 특히 가거도 북쪽의 높담 지나 칼바위 근처에 앉아 소국흘도, 대국흘도, 개린여, 신여, 두억여, 오동여, 검등여 등 크고 작은 바위섬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바다 저만치에 떨어져 검푸른 파도 사이로 오순도순 삐죽 내민 누렇고 검은 바위들. 풍덩 바다에 뛰어들어 용을 쓰면 한숨에 다다를 듯한 그네들이 인희에게는 무척 다정하게 느껴졌다. 친구도 별로 사귀지 않고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 인희에게는 바닷가 돌바위들이 살가운 동무들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친구하며 바라보다가는 끝내 인희는 눈물짓고 만다. 할머니, 인국, 순지 언니…….
인희에게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얼마 뒤 동네 아이들이 해넘이를 보러 섬등반도에 가자고 했다. 11월초 바닷바람은 찼지만 서해바다 해넘이를 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가거도의 일몰은 늘 보는 것이었지만 특별히 아이들이 ‘반도’라는 곳에 가자고 해서 인희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아이들이 데리고 간 곳 섬등반도를 보고서 인희는 어이가 없었다. 섬 위쪽에서 동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곳이 있었다. 특이하게 그곳은 큰 나무보다는 작은 관목과 풀밭이 뒤섞여 바다로 길게 나간 황무지 같은 곳이었는데, 이 섬에서는 그곳 경치가 일품이라 하여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꼭 권하는 명승지였다. 하지만 인희가 떠나온 해곶에는 그러한 곳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무런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채. 인희가 처음 가거도로 들어올 때 방파제와 녹섬 사이를 지났는데, 섬등반도는 장군바위 쪽에서 나온 그 돌방파제보다 길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작은 섬에서는 모든 것이 축소되어 있는 듯했다. 바닷가를 따라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돌섬이나 해안 둘레 곳곳에도 모두 이름을 붙여놓아, 그 이름만 들으면 마치 다도해 섬들이나 유명 전설 지역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이 너무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져 모두 책상 앞에 늘어놓고 바라보는 올망졸망한 조약돌 같았다.
성건여, 두링여, 갓여, 중간갓여, 작은갓여, 기둥바위, 노루섬, 보찰여, 개린여, 신여, 두억여, 오동여, 검등여, 남대여, 무구여, 멍신여, 큰개, 작은개, 동개, 산탁개, 구멍섬, 덜섬, 선녀봉, 땅재, 해뜰목, 물등개절벽, 달뜬목, 구절곡, 빈주암, 신선봉, 패총, 매바위, 돛단바위, 청석바위, 선주바위, 거북바위, 방향바위, 장군바위, 남문바위, 높담, 문성말, 납당말, 간어, 외간어, 망부석, 녹섬, 누에머리, 청장판, 지급내리, 막취개, 일분개, 하늘개, 구곡앵화, 앞면일대, 동대문, 물릉매, 고래물품곳, 돌단나위, 선녀빠진데, 석순이빠진데, 오구멍, 상나무밭밑, 노랑섭날, 맨밑, 가거도리, 구절곡, 소풍미, 달넘덕, 물성말, 대위, 삿갓재……. 여기에 앞에서 언급한 칼바위, 소국흘도, 대국흘도…….
이름도 설고 모양도 신기한 각종 바위섬과 절벽과 아기자기하고 고만고만한 여러 지역들.
바다를 마주보고 높다란 바위에 앉으면 여러 조그만 바위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왜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많으면 저렇게 예뻐 보이는 것일까?
인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2
흑산도 위쪽으로 가도, 대둔도, 다물도라는 섬이 나란히 올라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대둔도에 교회가 두 곳 있었다. 그 중 하나에 광주의 어느 신학대에 다닌다는 한 전도사가 매주 토요일 내려왔다. 금요일 저녁 야간열차를 타고 목포에 와서 아침 첫 배로 흑산도까지 오고, 그곳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대둔도에 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일요일 저녁에는 왔던 길을 거꾸로 해서 올라간다. 그 전도사가 한두 달에 한 번씩 가거도에 왔다.
흑산도에는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되어 오면서 성경과 천주교가 전해졌다. 그 영향으로 가거도에도 천주교가 전해져 조그만 성당이 세워져 있었다. 신자는 작은 섬치고는 제법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개신교는 두 가정뿐이다. 이들을 위해 그 전도사가 오는 것이었다.
정씨 성을 지닌 그 전도사는 키가 너무 작았다. 인희보다 작았으니까. 마치 국민학교 학생 정도의 키였다. 그렇다고 난장이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전도사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가거도에 오는 날이면 그곳 아이들이 다 모여들었다.
전도사는 교회 일이 끝나면 이집 저집 다니며 잡다한 일을 도와주었다. 참으로 열정적이었다. 예배드리자는 말은 하나도 안 하면서. 그러자 자연히 사람들하고 가까워지면서 인희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희에게 아이들과 만날 때 정돈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인희는 전도사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어떤 때는 두 달에 한번 만나는 것이었지만 둘은 꽤 정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놀아주고 나서 인희와 단 둘이 남게 되자 전도사는 갑자기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었다. 그 얼굴에는 전도사가 평소에 보여주던 밝은 빛은 없고 깊은 실의에 빠진 절망자의 모습만 보였다.
인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옆의 좀 떨어진 돌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전도사의 얼굴에서는 눈물까지 보이는 듯했다. 인희는 두 손을 꼭 마주잡고 가만히 있었다.
잠시 뒤 전도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하겠노라고 했다.
“나 실은 어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었어. 대둔도에서 어떤 아가씨를 만났거든. 그래서 결혼식 끝나고 어젯밤에 이 가거도로 신혼여행을 오려 했었단다.”
인희는 깜짝 놀라서 전도사를 돌아다보았다.
전도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결혼 전날 신부가 도망간 거야.”
인희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키가 너무 작아서 싫었대. 나보다 많이 컸거든.”
전도사는 얼굴을 들고 해가 거반 내려간 서해바다를 바라보았다.
인희는 여전히 전도사를 바라보면서도 자기가 들은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희야, 희망 잃지 마. 나도 주저앉지 않을 거니까.”
인희는 전도사와 함께 바닷가로 나갔다. 말은 거의 주고받지 않았다.
전도사가 돌멩이 하나를 들고 바다를 향해 던졌다. 또다시 던졌다. 여러 개 연이어 던졌다.
그리고는 잠시 후 전도사는 인희를 돌아다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왜 바다를 보면 돌을 던지고 싶어지는 거지? 인희, 너도 그러니?”
인희는 바다를 바라보며 미소만 지었다.
전도사가 작은 조약돌을 주워서 인희에게 주며 말했다.
“한번 던져봐.”
인희는 돌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다 저 멀리로 던졌다. 그러나 2~3m 앞에 떨어질 뿐, 바닷가에도 닿지 못했다.
전도사가 다시 한번 돌을 주워 건네주었다.
인희는 힘껏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로 코앞에 돌이 떨어지며 다른 자갈에 맞아 튀어 날아갔다.
전도사가 또다시 돌을 주었다.
인희는 이번에도 힘껏 던졌다.
그러자 멀리, 인희가 생각해도 놀랄 만큼 저 멀리까지 날아가 바다 속에 풍덩 빠졌다. 작고 하얀 물거품이 그곳에서 일었다.
“됐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알았지?”
서녘하늘 야트막한 높이에서 날아든 저녁 햇빛을 받아, 가거도 앞바다 검푸른 바다의 너울들이 춤출 때마다 은빛 조각들이 점점이 연푸른 하늘로 날아올라 흩어지고 있었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