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모던보이 백석 시인
백석(白石)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1912~96, 83세)이며, 평안북도 정주 출신. 오산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그는 특히 키가 183cm로서 장신이었는데, 오늘날 기준으로 해도 큰 키였지만 당시로는 거의 거인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대의 백성들이 전체적으로 작은 키였기에 오늘날로 치면 194cm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인 평균 키는 164.1cm. 한반도에서는 북쪽으로 갈수록 키가 컸는데, 함경북도가 가장 커서 평균 167cm였다고 한다. 따라서 170cm만 되어도 큰 키였는데 183cm면 당시로서는 아주 희귀한 경우에 해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백석은 아주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는데, 그가 영어강의를 하는 사진을 보면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아주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머리 한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양쪽으로 쭈욱 민 듯이 옆머리칼이 툭 튀어나와 기인으로 보이기까지 했을 텐데, 당시로서는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모던보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당시로서는 드물게 세 번 결혼했다. 1939년에 결혼한 첫 번째 부인, 1942년에 결혼한 두 번째 부인과는 각각 1년간 살았다. 세 번째 부인과는 1945년에 결혼한 뒤 북한에서 50년간 해로했으며, 세 번째 부인과 같은 해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백석의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이자 그의 첫 소설인 《그 모(母)와 아들》(1930), 그리고 시로는 〈정주성(定州城)〉(1935)이 있다. 백석은 북한 작가여서 한때 남한에서는 기피인물로 여겨졌으나, 1988년 북한 작품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뒤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山턱원두막은뷔였나 불빗이외롭다
헌깁심지에 아즈까리기름의 쪼는소리가들리는듯하다
잠자려조올든 문허진城터
반디불이난다 파란魂들같다
어데서말있는 듯이 크다란山새한마리 어두운 곬작이로난다
헐리다남은城門이
한을빗같이훤하다
날이밝으면 또 메기수염의늙은이가 청배를팔려올 것이다
산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기름이 졸아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졸던 무너진 성터
반딧불이 날면 파란 혼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커다란 산새 한 마리가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하늘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참고] 청배는 우리의 토종배로서 다 익어도 푸르스름한 빛이 난다. 일본에서 들어온 신고(新高)배보다는 작지만, 주로 술을 담글 때 많이 사용하는 돌배보다는 조금 크다. 전라북도 부안 개암사의 청배나무가 유명하다.
2002년 8월에 창간된 계간문학지 《시인세계》에서 2005년에 한국 시인들 156명을 대상으로 해서 지난 100년 동안 발간된 시집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여기에서 백석의 《사슴》이 1위로 선정되었다. 그만큼 백석의 시는 주목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집은 1936년 100부 한정판으로 발행된 것으로, 판권 포함해서 72쪽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발행은 선광인쇄주식회사(鮮光印刷株式會社).
이 시집의 가격은 2원. ‘에게, 겨우~’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당시의 다른 품목과 비교해 보면 얼마만한 가치인지 알 수 있다. 당시 쌀 한 가마의 가격이 13원이었다고 하니, 그 돈으로는 겨우 그 시집을 6권밖에 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가격은 일반 다른 시집들보다 2배 비싼 것이었는데, 페이지 수는 다른 시집들에 비해 반도 되지 않았다. 참고로 당시 고급 양복 한 벌이 30~40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시집 가격이 비싼 것은 둘째 치고, 한정판으로 나오다 보니 그 시집을 구하기도 무척 어려웠던 모양이다. 당시 윤동주의 경우에는 연희전문학교 도서관에서 필사해서 가지고 다녔고, 또한 문인들은 그 시의 필사본을 선물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고도 한다.
이 시집의 표지에는 흰색 바탕에 ‘白石 詩集 사슴’이라고만 되어 있다. 아무런 그림도 없고, 다른 부연 설명도 없이. 이 시집의 종이는 모두 전통 한지로 되어 있는데, 종이 한쪽 면만 인쇄하여 그것을 접어서 제본했다. 쉽게 설명하면 일반 책이면 4쪽에 해당하는 지면에 2쪽만 인쇄하는 '자루매기 방식'으로 제본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144쪽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데도 당시 문인들은 이 시집에 열광했다. 이 책의 100권 중에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손님에게 친필 서명하여 1원씩 받고 20권을 팔았다. 그리고 몇몇 지인들에게 별도로 증정하고, 나머지는 도서관 등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러하니 이 책을 시중에서는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 책을 필사하여 가지고 다니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을 법하다.
[위] 종이자루(봉투)처럼 접어서 바깥쪽 면만 인쇄하는 것을 자루매기 방식이라고 한다. 페이지 수가 적을 때 생각해 볼 법한 형태가 아닐지. . .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필명은 백석(白石)이지만 한자는 두 가지이다. 白石과 白奭. 여기에서 석(奭)은 성(盛)하다는 뜻이며, 붉다는 의미로 사용될 때는 혁으로 읽는다.
백석은 광복 이후 남북분단으로 인해 남한에 내려오지 못해 북한 땅에 남게 되었으나, 그의 사상을 의심받아 1960년대에 숙청당했다. 그 이후 양강도의 한 협동농장에서 문학과 관계없는 일만 하다가 83세인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세 번째 부인도 사망했다.
백석은 일본어와 중국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는데 이중에서 (일본에 유학했음에 불구하고) 일본어를 제일 못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그는 당시 최고급 양복과 양말에 최첨단 헤어스타일로 인해 최고 멋쟁이요 지식인으로 유명했으나 반면에 심한 결벽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에서 출판부로 옮겨 잡지 《조광(朝光)》의 창간호 발간에 참여했는데, 이때 그 잡지가 발간 1주일 만에 3만 부가 매진되는 등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 조선일보에서 나와 함경도로 올라가 교사를 하다가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그 뒤 만주 등지를 떠돌며 만주국의 관리도 잠시 하는 등 여러 경험을 쌓는 동시에 러시아어를 배웠으며, 토머스 하디의 《테스》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백석의 첫째 부인은 이화여전 출신이며, 두 번째 부인은 북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해도 백석은 기인에 속했을 테니, 당시 그의 행적이나 모습은 가히 혁신적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사족으로 하나 덧붙인다면, 백석과 윤동주의 시에는 모두 프랑시스 잠과 마리아 릴케가 등장한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인터넷 사이트 ‘나무위키’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