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

by Rudolf

제13장 |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



1


팔덕은 인희가 회사에서 뛰쳐나간 날 저녁과 그 다음날 인희를 찾기 위해서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사실 어떤 소득이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인희가 일했던 곳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인희 이야기는 없이 삐쭉 얼굴만 내밀고 아는 척하듯이.

“재미 좋으셔?”

원래 배운 것 없으니 팔덕이 하는 처사가 매양 이런 식이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인희를 찾기 위해서 팔덕은 온갖 곳을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아주 조그마한 흔적조차도.


팔덕의 대천 파라다이 호텔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좀 한가한 반면,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제법 붐볐다. 물론 한여름 휴가철 전후로 해서는 마당에까지 텐트를 치고 법석을 떠는 정도였다. 반값 숙박비가 꽤 좋은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몇 년이 지났다. 팔덕은 평택 회장에게 호텔 인수금도 다 갚았고 매달 수익금 중 일부도 꼬박꼬박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자기 주머니는 별로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주머니가 두둑해질 것을 기대하고 팔덕은 흐뭇해 하고 있었다.

대천 파라다이 호텔로 백 사장, 즉 대칠이파 두목이 건달 A, B, C, D를 거느리고 들이닥쳤다. 건달들은 한 달에 한두 번, 그리고 백 사장은 두어 달에 한번은 찾아왔었다.

호텔 안은 늘 ‘삐빠빠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반도 건달이란 건달은 적어도 한 번은 다녀간 덕에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백 사장이 로비로 들어서자 팔덕이 뛰듯이 달려와서 인사를 했다.

“응, 됐어, 됐어.”

백 사장은 한 손을 들어 보이고는 목에 두르고 양복 앞까지 길에 내려뜨린 흰색 비단 머플러를 한번 쓰윽 잡아당겼다.

“들어가시지요.”

팔덕은 프런트 옆에 있는 홀 안으로 백 사장과 건달들을 안내했다. 팔덕이 특별히 주문해서 갖다놓은 귀빈용 고급 소파에 백 사장은 흠 하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건달 A, B, C, D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이 홀은 IQ 32들이 늘 진치고 난리는 치는 곳이어서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백 사장이 온다는 연락을 미리 받아 IQ 32들을 모두 홀에서 내보내고 청소도 대강 해둔 뒤였다.

“왜 여기는 늘 이렇게 냄새가 심해?”

백 사장이 코를 찡그리며 한마디 한다.

그러자 건달 B가 끼어들었다.

“어이, 남생이, 후앙 좀 틀지 그래?”

그러자 팔덕이 얼른 대답했다.

“틀어놨는데도 이러네요. 좀 지나면 괜찮을 겁니다.”

이때 백 사장이 한 손을 들고 입을 연다. “아하, 표준말 쓰라니까 그러네. 후앙이 뭐야, 후앙이, 응?” 백 사장은 이마에 주름을 잡고 말을 이었다. “Fan. 일본사람들이 F 발음을 못해서 ‘팬’을 후앙이라고 읽었는데, 우리가 꼭 그걸 따라 해야 되는 거냐? 에이, 참…….” 백 사장은 잠시 말을 쉰 뒤 덧붙였다. “그리고 일본말 좀 안 쓰면 안 되겠냐? 우동은 가락국수로 고쳐서 말하고……. 아니, 요건 이미 세계적인 단어가 돼서 고치기 힘들겠다만, 도대체 우리 생활에서 일본말이 마구 튀어나오는 게 웬 일이냔 말이야. 광복된 지 얼마인데. 앞으로 우리 모두 조심하자, 응?” 백 사장은 담배를 피워물며 말을 이었다. “내가 sex 단어를 잘못 알아들어서 망신을 좀 당하긴 했다만, 나도 한 영어 한단 말이야. 알았어?”



백 사장은 무안한지 자세를 고쳐 앉고서 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건달 D한테 눈짓을 한다. 입은 다물고서.

그러자 건달 D가 나머지 A, B, C에게 고갯짓을 했다.

건달 A, B, C가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홀 밖으로 나갔다.

“험.” 백 사장이 또다시 헛기침을 한다.

팔덕이 뜨악한 표정으로 백 사장을 쳐다보았다.

“앉지 그래.”

팔덕이 머뭇거리며 서 있자 건달 D가 말을 한다.

“거 좀 앉으라니까.”

“아하, 좀 놔둬. 놔둬요, 나둬. 천천히, 천천히…….”

팔덕이 불안한 표정으로 백 사장과 건달 D를 번갈아 바라보며 쭈뼛쭈뼛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때 백 사장이 느닷없이 말을 했다.

“맹팔덕이.”

팔덕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백 사장을 쳐다본다.

“…….”

백 사장이 목에 두른 흰색 머플러를 한번 잡아당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 좋은데 그래. 여덟 가지 덕. 그 좋은 이름을 왜 숨긴 거야? 팔덕, 팔복 다 좋은 거잖아. 중국에서는 팔복이 최고 아녀? 성경에도 팔복이 있던데, 안 그래, 먹물?”

건달 D가 씨익 웃는다.

“내가 긴 말 않을 테니까 잘 들어, 맹팔덕이.”

백 사장은 소파 깊숙이 기대며 다리 하나를 다른 다리 무릎에 얹어놓았다.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면서.

“군대 면제됐다고?”

팔덕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 하고 대답한다.

“저것 보라니까. 목소리가 다 죽어가는 것 보니 군대에서도 안 받아주겠구먼. 쯧쯧.”

백 사장은 다시 한번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군수품 빼돌렸다며?”

팔덕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백 사장을 쳐다보았다.

“전시에 군수품 빼돌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현장에서 총살이야. 즉결처분.”

백 사장은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끈다. 그리고 몸을 팔덕 쪽으로 숙이면서 한 손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한다.

“타앙―!”

그리고는 싱긋 웃는다.

“지금 우리도 준 전시상태인 것 알지? 남북 대치가 전쟁상태인 거야.”

팔덕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 욕쟁이 할망구하고 같이 해먹었다는데?”

한번 더 타앙―!

“철종이 알지?”

백 사장은 등을 뒤로 젖히고 천장 쪽을 바라다본다.

“우리 세상은 좁거든. 두어 다리 건너면 다 알아.”

팔덕은 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우리 세계에서는 말이야, 제일 중요한 것이 무어냐 하면……. 야, 먹물,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의리 아닙니꺼, 의리. 의리 없으면 우리 모두 죽는다 아인겨.”

“들었지, 팔덕이? 의리. 의리가 뭐냐……. 뭐 지나가는 개나 소하고 다 의리 지키라는 게 아냐. 적어도, 적어도 말이다, 우리 세계 사람들한테는 등쳐먹으면 안 되는 거야. 이거 어기면 어떻게 되는 거냐, 먹물?”

건달 D는 똑똑히 보라는 듯이 동작을 크게 하며 손 칼날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한다.

“너 말이다, 군수품 공장 물건 훔쳐팔다 걸리면 곧바로 군대 가야 돼. 그 뭐라더라……. 집 없고 부모 없는 애들은…… 실미도 같은 데 보내서 곧장 북쪽으로 올려보낸다더라. 알어? 실미도는 모르지? 북파 공작원 만드는 곳.”

백 사장은 에구 무시라 하면서 몸을 떠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말이다, 내가 철종이랑 쇼부 봤다. 아니, 이거 우리말로 승부지, 승부. 우리 모두 표준말 써야 돼. 그런데 승부라고 하니까 뭐 꼭 내가 철종이하고 결투 한번 한 것 같다. 승부 대신 무슨 단어가 좋겠냐, 먹물?”

“해결이나 타협, 결정, 뭐 이런 단어가 어떻겠습니까?”

“아니, 아니, 우리말 없어?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순 우리말 말이야. 한자어 말고.”

건달 D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답을 한다.

“…… 그럼 마무리나 매듭, 매조지가 어떻겠습니까?”

“매조지? 그거 일본말 아냐?”

“아닙니다. 원래는 ‘매조지다’인데, 순 우리말입니다.”

“그래? 흠, 먹물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백 사장이 혼잣말처럼 마무리…… 매듭…… 매조지…… 하고 중얼거린다.

“매듭은 뒤끝이 좀 남는 느낌이 있으니까 마무리로 하자. 그래, 마무리. 철종이하고는 내가 마무리 지었으니까, 팔덕이 네 문제는 오늘 여기에서 나하고 끝내기로 하자.”

백 사장은 윗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눈을 크게 뜨고 팔덕을 바라다보았다.

팔덕은 얼이 빠진 모습으로 백 사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백 사장은 한 손으로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봉투를 들고 다른 손으로 탁탁 친다.

“그래서…….”

백 사장은 봉투를 팔덕의 앞 바닥에 던졌다.

“받아. 내가 조금 넣었다. 평택 회장님도 너 그동안 수고했다고 조금 보태셨어.”

백 사장은 새로운 담배를 꺼내어 문 뒤 금빛 라이터를 켰다.

“너 천애고아라니까 어디 가서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 그거 가지고 어디든 가서 네 마음대로 해. 그 대신, 다시는 이쪽 세계에 오지 말아라. 그리고 이쪽 애들 등쳐먹지 말고, 이놈아! 딴 데 가서 놀아.”

백 사장은 소파에서 일어나려 하다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한마디 덧붙인다.

“그리고 그 할멈, 욕쟁이 말이야, 여기 놔두고 너 혼자만 가. 그 불쌍한 할멈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다.”

에고……. 백 사장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혼잣말을 하고는 또 덧붙였다.

“먹물아, 내가 맹팔덕 씨에게 실례를 좀 범했다. 저 봉투 바닥에 던져놨는데, 네가 주워서 정중히 드려라. 험.”



2


정 선생.

인희가 봉제공장에서 사라지고 난 뒤 정 선생은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지냈다. 인희 바로 코앞까지 갔는데 어긋나고 만 것이다. 그날 정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서 이틀을 몸살로 앓아누웠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일이 있었어도 좀체 눕지 않았던 정 선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실감이 의외로 컸던 모양이다.

공장 사장은 걱정이 되어 집으로 찾아왔다. 정 선생이 간신히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서 죄송하다고 말을 했다.

“아녀, 이 사람아. 정 선생 마음 나도 알아. 공장은 걱정 말고 이삼 일 푹 쉬어.”

그리고는 자기 부인을 시켜 죽을 끓여다 주기도 했다.

정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면서 한동안은 공장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동안 사장에게 이것저것 신세만 지어서 보답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한 한편, 정 선생은 인국의 공부에도 집중했다. 신통하게도 인국은 특히 산수에서 발전이 빨랐고, 다른 과목들도 차츰 나아져 가고 있었다.

인국아, 조금만 더 하자, 응? 너 꼭 중학교에 가야 된다. 내가 못 이룬 꿈, 네가 다 해줘야 돼.

정 선생은 인국을 대할 때마다 이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당분간 인희는 잊자고 생각했다. 때가 되면 다시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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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순의 일요일, 첫눈이 왔다.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이상기온이라면서 덥던 날씨가 11월 들어서면서 갑자기 추워지더니 급기야 12월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온 것이다.

서설(瑞雪). 상서로운 눈. 복되고 좋은 일이 있을 듯한 눈.

그래,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정 선생은 인국을 데리고 경복궁에 가기로 했다. 만리동 언덕길을 미끄러질 듯 위태위태하게 내려가서 염천교를 지났다. 남대문과 덕수궁 앞길로 해서 세종로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남대문과 덕수궁 너머로 보이는 고궁의 지붕들은 흰 눈에 덮여 고적함과 고아함이 깃들어 세월을 넘은 멋과 풍취를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한자 그대로 하면 어진 모습을 세우라는 의미여서 봄을 뜻하고,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으로 예를 숭상하라는 뜻으로서 여름을 대신하며,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으로 의를 돈독히 하라는 의미에서 가을을 가리키고, 북대문은 숙정문(肅靖門)으로 정숙하며 고요하다는 뜻으로 겨울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곳에 보신각(普信閣)이 있다. 보신각에서는 새벽 인시(寅時)인 4시에 33번 타종해서 33천이 열리게 했으며, 저녁에는 유시(酉時)인 오후 6에 28번 타종하는데 이는 밤하늘 별자리 28수(宿)를 나타내는 것이다.

봄을 뜻하는 흥인(興仁)은 봄의 기운으로 새롭게 일어서되 스스로를 잘 돌아보라는 의미가 있으며, 여름을 뜻하는 숭례(崇禮)는 여름의 풍성함이 분수를 넘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가을을 의미하는 돈의(敦義)는 가을의 기운으로 말릴 것은 말리고 죽일 것은 죽인다는 뜻이 있으며, 겨울을 뜻하는 숙정(肅靖)은 겨울의 깊은 잠 속에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서울의 동서남북 사대문은 위치와 계절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리와 자연의 섭리를 축약하여 임금과 백성이 모두 하늘 아래 늘 겸양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렇듯 동서남북의 네 문은 자연의 천리(天理)에 거스르지 않고 하늘과 땅의 섭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 북대문은 각각 바람(風), 불(火), 금속(金), 물(水)을 뜻하며, 이들의 중심이 되는 보신각은 땅(土)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신각은 동서남북의 모든 기운을 조절해 주고, 더욱이 땅에서 소생되는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곳으로서, 모든 인간사의 출발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침과 저녁에 타종하여 만물의 생성과 운행을 천하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대문은 이성계 태조 7년인 1398년에 준공된 서울 도성의 정문이었으며, 세종 때 개수공사를 한 뒤 성종 때 다시 대대적으로 보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사대문(四大門) 사이에 사소문(四小門)도 세워 백성들의 출입을 도왔다. 북동쪽에는 홍화문(弘化門)을 세웠는데 후에 혜화문(惠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동소문(東小門)으로도 불린다. 또한 남동쪽에 광희문(光熙門)을 세우고, 남서쪽에는 소덕문(昭德門)을 세웠다. 소덕문은 소의문(昭義門)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흔히 서소문(西小門)으로 부른다. 그리고 북서쪽에 창의문(彰義門)을 세웠으나 이는 자하문(紫霞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도성에 여덟 개의 문을 만들고, 각각 그 의미를 부여했다.

정 선생은 눈 덮인 서울 시내 광경 위로 새파랗게 높은 하늘을 보면서 감탄했다. 만물을 하감하는 저 위용. 그 밑을 지나는 자신과 인국. 어떤 미래가 있을 것인가?

두 사람이 남대문과 덕수궁을 지나 중앙청 쪽으도 다가가자 육이오 때 폭격으로 만춘전(萬春殿)과 함께 무너져 불타버린 뒤 없어진 광화문 터와 중앙청 뒤로 보이는 북악산 자락이 눈에 확 들어왔다. 흰 눈 덮인 고궁의 지붕 너머로 조요히 솟은 낮은 산봉우리. 남대문을 지날 때부터 보기는 했지만 그제서야 갑자기 광화문 위로 솟은 눈 무덤이 정 선생의 눈에 확대되어 다가온 것이다.

조선의 도성 한성은 북악을 주산(主山)으로 해서 동쪽에는 낙산(駱山), 남쪽에는 남산, 서쪽에는 인왕산(仁旺山) 등 네 개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요새와 같은 곳이다. 남산은 목멱산(木覓山)이라고도 불렀다.

북악산, 조선 5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건만 그 역사의 굴곡과 왕조의 흥망에 대해서는 한사코 외면하고 실토하지 않는 무심한 산. 오늘 그 산 위로 눈이 쌓이니 지나간 5백 년의 오욕과 애증을 은백색의 신비 속에 감춘 채 만인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춰보라고 도전하는 듯이 보였다. 마치 그 속에 천고의 비밀보다 더한 것을 은닉이라도 한 듯이.

정 선생은 인국을 데리고 경복궁 안 근정전 앞에 섰다. 많은 사람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눈덩이를 뭉쳐서 서로 던지고 하며 부산했다.

근정전 앞마당에 쌓인 눈이 그 아래 화강암 바닥의 사각형 모양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을 보고 정 선생은 문득 생각이 났다. 근정전 앞뜰의 정원 돌들이 매끄럽게 마감되지 않고 울퉁불퉁 거칠게 되어 있었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임금과 대신들이 밟고 다니던 곳을 그렇게 거칠게 놔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은 걷기도 힘든 그 거친 돌들을 다듬지 않고 그냥 깔아놓은 것일까? 햇빛으로 인한 눈부심 방지라거나 미끄럼 방지라고도 하는데, 혹 편한 길보다는 고난의 길이 나라의 주인과 그 신료들에게는 필요하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 그것이 조선이 신봉한 성리학의 정신일까? 근정전 동문인 일화문(日華門)을 통해 근정전 앞뜰로 들어오던 문반(文班)들, 서문인 월화문(月華門)을 통해 드나들던 무반(武班)들, 그들은 걷기 불편한 이 거친 돌들을 밟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 선생은 때가 되면 역사학자에게 그 부분에 대해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한편, 근정전은 임금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지 4년 만인 1395년에 완공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첫 완공 이후 472년이 지난 1867년에 2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이 시기는 고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지 4년째로, 대원군의 권력이 막강해지던 때였다. 미국에서는 이 해에 러시아에서 알래스카 땅을 매입하여 국운이 한창 상승하던 시기였으며, 일본에서는 명치유신이 시작된 때이기도 했다. 한편, 근정전이 건축된 해에 그때까지 한양으로 불리던 이름이 한성으로 바뀌기도 했다.

여기에서 아쉬운 것은 일본의 명치유신이 1867년, 갑오경장이라고도 부르는 조선의 갑오개혁은 1894년부터 시작되어 불과 30년도 안 되는 개방개혁의 차이가 조선말 한국과 일본의 국력차를 엄청나게 벌려놓았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우리의 근대역사에서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 선생은 인국과 함께 열려 있는 근정전 안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살펴보았다. 칙칙한 색의 용상 뒤에 있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색이 바라고 그 전체에서 어두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으나 그 그림은 또한 조선의 임금들이 백성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지를 은유로 지시하는 계시와 같이 느껴졌다.

해와 달, 높이 솟은 다섯 봉우리, 늘푸른 소나무, 곧게 내리꽂히는 폭포, 크게 넘실대는 파도…….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며

꽃 좋고 열매 많이 맺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않으며

내를 이루어 바다로 가는도다



용비어천가 속에 들어 있는 조선의 건국이념과 겨레의 마음을 담아 그린 병풍. 선조들의 정신은 임금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리 곧았을 터인데, 그 5백 년 끝자락에 선 우리의 모습은 왜 이리도 초라한가?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우리에게서 사라진 역사와 민족의 긍지,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그러다가 정 선생은 얼마 전 찬바람이 몰아치듯 달려가는 인수동 골목을 지나다 어느 표구점 바깥에 내걸린 고화 한 점을 보고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이 떠올랐다. 눈 덮인 인왕산과 그 아래 왕궁의 고적함을 그린 것인데 그렇잖아도 여기저기 찢겨져 볼품없는 족자 그림이 바람에 요동을 치며 이리 뒤집히며 저리 날리고 했던 것이다. 그때 정 선생은 그 그림이 바람에 떨어져 나갈 것을 걱정해서 표구점 안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아차, 여기에서 정 선생은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표구(表具)라니, 그것은 일제 용어가 아니던가. 우리 전통으로는 장황(裝潢, 粧潢, 裝䌙) 또는 배첩(褙貼)이라고 하는데, 이제 그 용어는 사라지고 정 선생 자신마저도 표구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라고 자책했다.

정 선생은 이와 같은 여러 생각들을 인국에게 끝없이 쏟아놓았다. 어린 인국이 다 이해는 하지 못하더라도 그 마음에 울림은 남겠지 하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 선생은 나라와 자신과 인국, 그리고 인희를 하나로 엮어 이어보았다. 희망이 있는가?

자고 일어나면 매일같이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정치싸움과 부정부패 기사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인희와 인국들. 누가 그들을 절망과 어둠 속에서 꽃다운 시절을 보내게 하는 것인가? 정 선생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느꼈다.

정 선생은 이제 다시 인희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늘 그렇듯 팔덕을 찾으면 그 끝은 인희에게 닿을 것이다. 팔덕. 찾자.

우선 심통여사의 끈을 더듬어 보자.

대천.

그곳에 가보자.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주 희미한 자취라도 만날 수 있겠지.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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