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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n 19.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17)

제4장 | 마술정원 (2)

주원은 여러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하고 협연도 여러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오케스트라 구성에 대해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우선 반원형을 원 중심에서 부채꼴로 6등분한다.

    왼쪽 첫 번째 구역에 제1바이올린. 그 제일 끝 뒤쪽에 하프.

    두 번째 구역은 모두 제2바이올린.

    세 번째에서 다섯 번째 구역을 앞에서부터 동심원으로 일곱 칸으로 나누면 그 제일 앞쪽 세 칸에 비올라.

    세 번째 구역 넷째 칸에는 플루트와 피콜로. 다섯째 칸은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 그 뒤 여섯 번째 칸은 호른. 제일 뒤 일곱 번째 칸은 드럼과 심벌즈.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구역의 넷째 칸은 오보에와 호른.

    그 뒤인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구역의 다섯째 칸은 파곳(바순)과 콘트라바순.

    네 번째 구역의 여섯째 칸은 트럼펫. 그 뒤로 일곱째 칸은 팀파니.

    다섯 번째 구역의 뒤쪽 여섯째 칸은 트롬본과 튜바. 그 뒤인 일곱째 칸은 기타 여러 가지 타악기.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구역의 앞쪽 첫째 칸에서 다섯째 칸은 모두 첼로.

    마지막 일곱 번째 구역의 첼로 뒤인 여섯째 칸과 일곱째 칸은 전부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

    왼쪽 바이올린 뒤에는 그랜드피아노나 오르간.

    대략 이렇다. 상황에 따라 바뀌거나 악기가 첨가되기도 하지만.

    오케스트라 인원 역시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현악 부분만 말하면 제1바이올린의 경우 보통 6~8풀트(pult)이다. 풀트는 악보대 하나를 함께 보는 두 사람의 연주자를 말한다. 따라서 예를 들어 7-6-5-4-3이라고 하면 이것은 다음과 같다. 즉,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숫자가 각각 14-12-10-8-6이란 뜻이다. 대개의 오케스트라에서는 이 정도 규모가 제일 많으며, 그보다 많거나 적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악기 전체 규모나 구성도 지휘자나 곡의 성격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1980년대까지는 말러나 슈트라우스를 연주할 때 10-9-8-7-6의 조합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악기만 80명이 되는 것이다. 카라얀의 오케스트라에서는 이러한 규모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6~8풀트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서울의 금천구에서 한때 1천 명이 넘는 인원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여 한국 최고기록을 수립한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주원이 알기로는 서양의 경우 그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동원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인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섬세한 연주가 필요할 때는 적은 인원으로도 얼마든지 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악기도 물론 변화가 많다.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진다. 더군다나 어린이 오케스트라일 때는 모든 악기를 다 동원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 전통악기를 삽입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주원은 편가 도장의 아이들 상황을 모르기에 그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공상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속으로 외쳤다.

    좋아. 한번 해보자. 

    Try!     



주원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그리고 저 혼자 이리저리 멋진 어린이 오케스트라단을 구성해 보는 것이었다. 혹 규모가 제법 되고 가능성 있다면 아버지에게 원조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을 터였다.

    주원이 어린이 오케스트라단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엄청나게 많았다. 책과 CD로도 나와 있었다. 그렇겠지. 대한민국 음악 수준이 보통이 아닌데. 

    “생각보다 엄청나네. 하긴 요즘 한국에서 음악 열풍과 산업이 폭발적이라고 하니…….”

    주원은 서점에 가서 책과 CD를 사왔다. 그리고 어린이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는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여러 개가 있었다. 형태도 다양했다. 그 중에는 공연 도중 해설해 주는 곳도 있었다.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태권도 오케스트라단을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었다. 태권도 건물에 음악학원도 있으니 서로 도우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편가가 자신감 있게 말하는 데에는 그러한 배경도 염두에 두었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는 자신감이 있었겠지. 악기나 대원이나 모두.

    “아무튼 편가 그 인간은 좀 특이해…….”

    주원은 인터넷으로 어린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찾아보았다. 의외로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지방의 한 어린이 오케스트라에서는 007 영화의 곡을 공연하면서 모든 어린이 단원들이 검은 선글라스와 장난감 총을 착용해서 스파이 연출을 했다고도 한다. 

    재미있었겠다……. 

    주원은 괜히 흥분이 되었다.

    혹시 현재 공연하는 곳은 없는지 찾아보았다. 주원 근처에서는 아쉽게도 이미 공연이 끝난 곳이 몇 군데 있었고, 아이들 방학에 맞춰서 새해 초에 공연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군데 수소문해서 알아본 결과 다행히 용인의 한 대학 강당에서 며칠 뒤 공연한다는 소식을 얻을 수 있었다. 입장료는 무료란다. 월드드림(World Dream)이라는 국제자선단체가 주관하고 용인의 그 대학에서 찬조출연도 한단다.

    주원은 보스턴에서 월드드림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매달 몇십 달러를 보내며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에는 특별후원금을 별도로 보내고 있어서 그 이름을 들으니 더욱 반가웠다.     



그 공연이 있는 날, 잘 아는 사람들의 공연에 가는 것 외에는 밤에 거의 외출을 하지 않던 주원이 저녁밥도 먹지 않고 나가려 하자 남궁 여사가 팔장을 끼고 서서 노려본다. 

    주원은 모른 척하고 현관을 나섰다. 

    대문으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현관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온다.

    “말이나 하고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주원은 아무 대꾸도 않고 대문을 밀고 나갔다. 몇 발자국 걸었다. 그리고는 발을 멈췄다. 

    주원은 한숨을 크게 쉬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대문으로 가서 인터폰을 눌렀다. 잠시 있자니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문이 열린다.

    주원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현관 쪽으로 걸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남궁 여사가 나온다. 

    “뭐 놔두고 간 거 있어?” 

    목소리는 얼굴 표정과는 달리 좀 가라앉아 있다.

    “공연 보러 가는 거야. 애들 오케스트라인데, 참조할 게 좀 있어서.”

    남궁 여사는 아무런 표정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데려다줄까? 어디야?”

    “용인인데, 택시 타고 갈게.”

    “내가 불러줄게. 가서 밥은 먹는 거니?”

    남궁 여사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마 핸드폰 가지러 가는 모양이다. 남궁 여사는 길이 너무 막히거나 피곤할 때는 승용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고 앱으로 택시 부르곤 했었다.   

   


의외로 길이 막혀 주원은 간신히 그 대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이라서 어디를 어떻게 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택시가 학교 정문을 통해서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많은 차들이 와 있었다. 주원은 소강당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택시를 세웠다. 

    서둘러서 소강당 안으로 들어가자 어른과 아이들이 바글바글 웅성웅성 복잡했다. 강당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이들 공연에는 별 지장 없어 보였다. 

    “혹시…….”

    누군가가 뒤에서 말을 붙이는 것 같았다. 주원은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머!”

    “얘, 너 주원이 맞지? 정주원!”

    “백선미!”

    예고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아이. 친하지는 않았지만 성격이 활달하고 약간 푼수기가 있었던 아이였다. 헤어진 지 10년이 되었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친구 옆에는 중학생 같은 여자애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너 보스턴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어떻게 지내니? 한국에 언제 들어왔어? 아 참, 얼마 전에 네 이야기 라디오에서 한번 나왔다고 하더라. 어디 아픈 거니? 지금 괜찮아? 난 학교에 있어. 중학교 음악선생. 아직은 기간제이지만. 여기엔 어떻게 왔어?”

    예나 지금이나 말하는 것이 속사포다. 

    주원은 반갑기는 했지만 어딘지 눈치가 보였다. 몰래 왔다가 들킨 느낌. 

    “응, 그냥 구경 왔어.”

    이렇게 해서 그 친구에게 이끌려 앞쪽으로 갔다. 미리 와서 앉아 있는 자기 식구들에게 간 것이다. 그곳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 인사했다. 그 친구 언니, 형부, 어머니, 꽃다발 들고 온 중학생 조카, 사촌언니, 사촌언니의 딸, 그 딸의 친구, 언니의 옆집 사람, 그 사람 아들 등등 모두 열 명이 넘었다. 꽃다발만 해도 일고여덟 개는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집 식구들 목소리가 왜들 그렇게 큰지, 그리고 동작도 목소리 못지 않게 커서 죄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넙죽넙죽 절하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성악을 전공한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주원은 감탄했다. 

    “얘가 고1 때 미국에 갔는데, 음악영재 그런 거 있지? 바로 그런 애야. 너 바이올린 맞지? 미국에 가서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쓸었어. 얼마 전 라디오에도 얘 소식이 나왔을 정도야. 얘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그것도 긴급뉴스로 나온다구.”

    “어머나. 엄청난 친구 뒀네.” 

    “우리 선미 좋은 친구 많구나. 너 좋은 미국 남자 소개받아서 결혼해라.” 

    “거기 이민 가면 우리 식구 모두 초청해.” 

    그 친구는 주원에 집에 대해 부풀려서 떠벌였다. 

    “어머, 집이 그렇게 부자야? 아유, 곱게도 생겼네. 공주님 같아.” 

    “우리 선미 잘 부탁해요.” 

    아이고…….

    “여기는 누구 보러 오셨대?”

    주원은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이렇게 말할밖에.

    “아뇨, 그냥 누가 알려줘서요…….”     



주원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나왔다. 

    대학 정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핸드폰 앱을 통해 택시를 불렀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주원은 오늘 본 공연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눈이 번쩍 뜨였던 장면. 그것은 공연 전에 그 대학 태권도학과 학생들의 특별찬조출연이었다. 흰색 도복을 입은 건장한 남녀 학생들이 무대 위와 그 아래 관람석 앞의 공간에 나와서 10분 정도 태권도 시범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편가의 도장에 그 대학 졸업장이 걸려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이 대학이 태권도로 유명한가 보네…….

    그 방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주원은 갑자기 편가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음, 그렇구나…….’

    그야 어떻든 오늘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러 왔다가 태권도와 음악이 결합되는 것을 보니 은근히 더 치밀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음악들. 캐롤송 위주에다 한국 민요를 곁들였는데 편곡을 꽤 잘 한 것 같았다. 아주 흥겨우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린이합창단치고는. 우리 전통악기들도 적절히 가미한 것도 좋았고. 아이들 수준이 생각보다는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이했던 점은 아프리카 전통악기인 쉐케레가 동원된 점이었다. 아이들 딸랑이 같은 형태의 악기였는데, 물론 그보다는 훨씬 컸고 울림도 아주 깊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특히 아프리카 특유의 반복되는 리듬이 쉐케라 흔드는 소리와 함께 어울리면서 열대의 아프리카 평원이 겨울의 대한민국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쉐케레를 흔들 때 아이들이 일시적으로 아프리카 원주민 가면을 쓴 것도 재미있었다. 일종의 변신이다. 월드드림이 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단체라서 그러한 퍼포먼스를 보인 것 같았다. 아주 완벽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미국에서 이와 비슷한 공연을 할 때는 쉐케레 대신 남미에서 주로 사용하는 마라카스가 등장한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마라카스가 나오는 무대는 화려했던 반면, 오늘 쉐케레의 무대는 상대적으로 차분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아프리카의 소박한 정서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나 어떻든 이 공연을 보고 주원은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술과 태권도가 가미된 어린이 오케스트라. 여기에 합창도 삽입하고 국악도 동원한다면 화려한 변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와 감동과 태권도의 파워.

    게다가 편가의 원대한 계획대로 세계 여러 나라 다니면서 그 나라 민속음악과 연결하고, 그에 맞는 퍼포먼스도 곁들이며 마술과 태권도 시범을 더한다. 이 모든 것을 모두 어린이들이 하도록 꾸미는 것이다. 마술까지. 

    괜찮겠다. 



편가의 야심에 주원이 끌려가는 것 같아서 다소 자존심 상하는 기분도 들기는 했지만 주원으로서는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동안 주원은 오직 바이올린 독주자로서 할 수만 있다면 북극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싶어했다. 그러한 욕심 때문에 여러 오케스트라단에서 입단 제의를 했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그러한 한편으로 주원은 자신에게는 한 분야에 최고봉에 이를 재능은 없는 것 같다며 비하하면서 우울해 하며 남들 모르게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주원은 사회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 마음과 현실, 꿈과 실력, 그 사이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밀리는 감정.

    그러나 이제 주원은 새로운 세계를 본 듯했다. 

    방향을 돌려볼까…….  


[다음 이야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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