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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Oct 03. 2024

밤 별빛 호숫가 단상

    

    한밤의 호반에서


    호숫가

    흐릿하니

    물안개 감싸돌며


    한밤중

    별빛가득

    살며이 내려앉는


    검은빛

    비단폭호수

    전설속에 잠들다


    억만년 태곳부터 명경한 호수속에

    은하수 흘러들어 별달빛 윤슬윤슬

    먼옛적 가슴저미는 옛이야기 감돌다


    잔바람

    호수물결

    밤바람 살랑찰랑

    

    사르르

    피어나는

    물안개 사릇사릇

    

    바람결

    흘러나오는

    눈물꽃물 애닯다


    바람결 흔들흔들 잔가지 잎새마다

    숨겨둔 사연사연 조곤히 속닥속닥

    밤새워 달별빛따라 감돌이며 흐르다




황혼녘 호수를 바라다본다. 심심산속 옹달샘은 아니지만, 동네 한복판에 놓인 아담한 호수. 그 주변을 모두 도는 데는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린다. 호수 가장자리로 골프 코스가 이어지고, 군데군데 앙징스러울 정도로 깜찍한(?) 작은 공원과 소로가 나 있다.

    깊은 산속이 아니라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그마한 연못을 보고도 광대한 호수를 연상대입하면 그것으로 태곳적 원시호수가 되는 것이니까.



먼 이국땅,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잔별들이 마치 고향 별인 듯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일제감정기 시절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향 땅에서 고향을 그리듯 멋쩍은 감상이 호수로 내려와 앉는다. 그런들 뭐 어쩌랴. 성냥개비를 보고 아마존 밀림를 연상한다 해도 나무랄 사람 하나 없는 멀고 먼 외지인데.

    이 글에 어울리는 밤 호수 사진 한 장 없어도 마음은, 그리고 내 임의의 글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심심산속 호수 (아니면 연못이라도 좋다) 건너편으로 가 있다.       

    그리고 문득, 아, 정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깨알 같은 별들. 그 사이로 엷은 밤 구름이 군데군데 퍼져 있다. 그런데 왜 제철이 아닌데도 밤하늘 기러기 V자 행렬을 기대하며 올려다보는 것일까?   

    아서라, 공연한 감상에 젖어 거짓부렁 같은 환상으로 마음을 더 침잠하게 만들어 봤자 밤하늘의 별들이 더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옛적 영화 한 장면처럼 은하수 밤하늘 아래에서, 기왕이면 언덕 위가 더 좋을 테니 그 장면까지도 마음으로 연출해서 오똑 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번쩍 들어 내 환상의 고향 안드로메다 별자리가 어디쯤에 있는지 별들 사이를 샅샅이 뒤져 보자.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별이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아리한 감상에 깊이 젖어들지 않겠는가.



한낮의 호수는 얄밉다. 저 혼자 잘난 듯 펑퍼짐한, 그리고 널따란 물웅덩이에 호수 주변의 광경을 거꾸로 담아놓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치미를 떼고서 돌아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들 어찌하랴. 이미 나는 객이 되어 호수가 담아내는 현실의 복사판 영상에 빠져서 약간의 환각에 젖어 있는데.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얼마나 위대(?)한가! 대낮 광명천지의 산하를 보고도 은하수 흐르는 한밤의 영상을 마음속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내가 만든 환각환상으로 들어가 먼먼 과거로 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곳은 이 지상과는 상관없는 먼 별세계 오색 회오리 구름이 몰아치는 태초의 혼돈이라도 상관없다. 나는 창조주가 되어 그 장엄한 광경을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아무곳에서라도 목격하고 목도하여 내가 만든 환상에 빠지는 것이다. 아, 그 광경, 그 장엄함, 그 기이함. . .

    


삼라만상 사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정면에서 똑바로? 아니면 작품사진처럼 부드러운 경사면을 지닌 각도로 비스듬하게,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위쪽이나 아래쪽이나 옆쪽이나 뒤쪽(?)이나 아무튼 깎아지른 듯한 급격한 앵글에다가 비행청소년 같은 심정을 더해서 반항적이고도 급격한 감정감각이 느껴지고 드러나는 황급한 마음을 마구마구 담아 셔터를 꽈악 눌러야 하는가? 그 순간. . .


    찰칵! 


그리하여 태초 이래 단 한 번도 찍힌 적 없는, 게다가 우직스러울 만큼 견고한 방어막과도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해서 쌔앵 내달리는 혜성의 긴 꼬리처럼 찰라의 환희가 담긴 괴상막측한 한 장의 사진이, 그러니까 태말까지라도 전혀 창조되지 않을 우주 속 유일무이한 환상의 사진이 최초로 태어나게 하자.

    이렇게 해서 단 하나의 생명이 담긴 사진이 삼라만상 속에 새로이 등장하고 말았다.

    바로 나 자신이!



풍덩!

    아, 환상 속으로 뛰어들고 나서 눈을 떠보니 이곳은 또는 그곳이나 저곳은 황혼녘 호수 반대편, 즉 이승의 자그마하고도 아담한 호수 가장자리였다. 그제서야 나는, 내 인식은 현실을 마주하고서 영영 잊어버린 줄 알았던 내 고뇌의 종점에 다다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확고한 내 자아, 내 못난 모습. . .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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