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 휴가철이 막 시작되는 때였다. 그러나 때 이른 장마가 지나간데다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로 있어서 불볕더위, 가마솥더위, 찜통더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온 나라가 펄펄 끓고 있었다.
신문과 라디오에서는 연일 한낮 온도가 기록을 세우고 있다며 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온 세상이 탑탑하고 숨이 막혀 있을 때 반가운 소식이 정 선생에게 전해졌다. 백 사장이 대천 파라다이 호텔에서 정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팔덕을 찾았다고. 이것이 바로 무더위 끝에 소나기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정 선생은 반갑고도 고마운 마음에 급하게 물었다.
“팔덕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백 사장은 뜸을 들이듯 말을 천천히 하며 대답했다.
“급히 서두를 것 없습니다. 그놈 그냥 놔둬도 더는 도망갈 곳 없으니까 마음 느긋하게 가지셔도 됩니다.”
사실 정 선생도 지금은 휴가철이어서 직원들이 교대로 공장을 빠져나가기 때문에 자신이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1주일에서 열흘 뒤에나 찾아가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정 선생은 8월 하순이 가까워서야 간신히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직원들 휴가 보내랴, 거래처 독촉에 시간 맞춰 물품 내보내랴, 자신의 급류와 같은 급한 마음 달래어 여름 소나기에 실려 떠나보내랴, 이렇게 7월 중순부터 근 한 달 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말았다.
광복절이 지나고 나서 주말이 되자 정 선생은 오전근무만 하고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서 대천으로 향했다.
대천 해수욕장은 시끌벅적했다. 더위가 다소 꺾이긴 했지만 젊음은 가시지 않은 청춘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난리판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대천 파라다이 호텔에서도 여전히 삐빠빠룰라 합창이 터져나오고 있었고, 심통여사와 외다리 상이군인의 욕반 말반도 변함없이 층층마다 방마다 떠돌고 있었다.
미리 전화로 연락을 해놓은 덕에 정 선생은 가자마자 백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백 사장은 밖으로 나가자 하고서 북적거리는 호텔 마당을 피해 조금 떨어진 곳의 나무그늘에 의자 여럿을 갖다놓게 하고 그곳에 가서 앉았다.
“생각보다는 마음 느긋하시군요. 한 달이나 지나서 오시다니.”
“아닙니다. 제가 재주가 적어 남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게 일이라서 이일 저일 떠맡다 보니 이렇게 늦었습니다.”
백 사장 주위에는 변함없이 건달 A, B, C, D가 맴돌고 있었다. 그 중 적어도 한 명은.
건달 A가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가지고 온다.
“양동이째 내와라. 그게 뭐냐? 바께쓰가 아니라 양동이다. 알았지?”
“아아뇨, 괜찮습니다.”
정 선생은 괜히 무안해졌다. 건달 A에게 눈치가 보였다.
그러자 백 사장이 느닷없이 묻는다.
“정 선생은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모양이오? 타지에 와서도 송구영신예배 참석한 것을 보니.”
정 선생은 약간 당황해서 서둘러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 잠깐 가본 이후 한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말을 한 뒤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덧붙였다. “아, 제가 방황하던 시절에 산속 기도원에 전전하며 신세진 일은 있었지요.”
정 선생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죽기는 죽어야 하는데 어떻게 죽어야 옳은지 그것을 몰랐었지요. 사실 죽으러 기도원에도 가고, 절에도 가고 그랬던 겁니다. 그런데 죽지 못했습니다. 이곳저곳 떠돌며 신세만 지고 말았지요. 이 말이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정 선생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몇 발자국 바다 쪽으로 걸었다.
“그날 밤 문득 생각이 나더군요. 오랜 옛날 송구영신예배에 갔었다가 감동받았던 기억이. 그리고 사실은……, 인희를 찾기 위해서 간 것이기도 합니다. 저 위에 계신 분이 도움이라도 주실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정 선생은 여기까지 말한 뒤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침묵이 계속되자 백 사장이 험! 하며 다리를 바꿔 꼬고 앉았다. 그리고는 담배를 다시 꺼내어 문다. 길게 담배연기.
“흠……, 내 이야기도 해야 되는 건가…….” 백 사장은 목에 두른 눈부시게 흰 목도리를 한번 잡아당겼다. “난 말이오, 내 이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사람이오. 이해……하지 못하실 텐데……?”
백 사장은 싱긋 웃으며 다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나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다 이 말이오.”
백 사장도 담배를 입에 문 채 일어섰다. 그런 상태로 느릿느릿 말을 잇는다.
“우복동이라는 곳 들어보셨소? 속리산에서 조금 내려가면 청화산이 있소.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인 이중환 선생이 쓴 택리지에는 청화산이 속리산보다 더 명산이라고 되어 있다오. 경상북도 상주 근처인데, 그 청화산 남쪽 기슭에 용유리 화산마을이 있소. 늘 안개에 싸여 있어서 사람들이 잘 찾지 못하고, 그런 덕에 어떠한 전쟁이나 침입에서도 단 한 번도 참화를 입지 않았다고 하오. 우리는 그곳을 우복동(牛腹洞)이라 부르고 있지요. 일종의 도피처 같은 곳이오. 황소 뱃속 같은 곳이지. 그 속을 누가 들여다보겠소? 나는 바로 거기에서 태어났소. 외지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서.”
백 사장은 담배를 툭 던져버리고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었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이러했다.
백 사장의 고향은 자신이 말한 대로 우복동이었다. 세상에서 숨은 곳, 따라서 세상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곳. 뭐가 찢어지게 가난한 곳. 그곳에서 자란 백 사장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그곳 사람들 모두가 그러했다. 백 사장은 어린 시절, 소학교 구경도 못해 본 어린애가 한밤중 집을 떠나 열두 고개, 열두 굽이, 열두 구름을 넘고 건너고 지나고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 얼어죽기 직전에 산골 어느 교회, 그것도 찢어지게 가난한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이 마침 12월 31일 밤이었다. 교회 문을 간신히 열고 들어갔을 때 찬송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찬송가의 곡도 가사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노래는 천상의 음악처럼 들려왔다. 그 아이가 들은 대로 사실 그곳은 천상이었다. 그날 이후 그곳에서 먹고 잘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봄이 되자 그 아이는 도망쳐 나왔다. 연봇돈을 모두 훔쳐서.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 교회를 찾아가 보니 없어졌더군요. 목사님과 그 가족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디다.”
그 이후 백 사장은 송구영신예배, 즉 1년에 그 예배 한번만은 꼭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교회, 그 목사님과 가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역시 백 사장 말대로 정 선생 과거 못지않게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알고 보면 모두가 그런, 숨기고 싶은 사연들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정 선생도 백 사장도 동시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하나 물어봅시다.”
자신의 과거를 다 이야기한 백 사장이 담배를 다시 피워 물면서 말을 했다.
“정 선생 같으면 어디로 숨겠소?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로 갈 것 같소?”
“…….”
“잘 생각해 보시오.”
“…… 무인도……?”
“그곳에서 혼자 살 수 있겠소?”
“…….”
“우선 엉뚱한 이야기부터 하나 하리다.”
정 선생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백 사장을 바라보았다.
“‘실’이라는 말 들어보셨소?”
“실? 털실 같은 것……?”
“맞아요, 털실. 털실은 꼭꼭 뭉쳐 있지요. 그 깊은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몰라…….” 백 사장은 말을 끊은 뒤 잠시 뒤에 이었다. “‘실’은 말이오, 그러니까 털실 속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이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진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실’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심심계곡과 같은 장소를 말한다. 마치 중국 명나라 때 시내암이 쓴 원본을 나관중이 나중에 손질을 잘 해서 세상에 내놓은 수호지 소설에 등장하는 양산박이나 홍길동이 마지막에 들어간 율도국처럼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일종의 이상향 같은 곳이다. 경남 청학동 도인마을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러나 청학동 같은 이상향보다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은신처 같은 곳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실’은 전국에 열 곳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적지미였다. 이들 ‘실’은 한국 역사 5천 년 동안 모든 난리나 전쟁이 비껴갔으며,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한 반면 세상에서 잊혀진 곳도 되는 셈이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들어가면 그렇게 깊은 곳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바깥에서 볼 때는 그곳까지 눈이 닿지 않는 것이다.
긴 설명이 끝나자 백 사장은 정 선생에게 물었다.
“자, 그렇다면 세상의 눈을 피해 도망치고 싶은 팔덕이놈이 어디를 생각했을 것 같소? 그놈 고향인 해곶이라면 경기도 서해안인데, 게다가 서울에서 굴러먹다 이 대천까지 와서 법석을 떤 그놈은, 자기 활동무대였던 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을 택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소?”
백 사장은 건달 D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놈이 보배요. 정 선생처럼 과거에 법 공부 좀 했다고 하니, 나중에 둘이서 한잔하면서 이야기 좀 해보시오.”
백 사장은 물고 있던 담배를 빼서 건달 D에게 들어보이며 쓰윽 미소 짓는다.
“바로 저놈이 온양에서 유구 넘어가는 길에 있는 송악의 유곡리 느릅실이라는 곳을 딱 짚은 거요. 그곳이 바로 아까 말한 열 곳의 ‘실’ 중 하나인 게지요.”
백 사장은 의자에 앉아 허리를 의자 속으로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놈은 아직도 그곳에 틀어박혀 있는데, 우리가 제 놈을 알아낸 것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합디다.”
백 사장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무 때나 잡아다 비틀면 꼬꼬댁할 거요.”
백 사장은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듯이 정 선생을 바라본다.
“우리 대신 정 선생이 시간을 내어 한번 가보슈. 우리가 자꾸 등장하면 그놈 경기해서 또 어디로 튈지 몰라요.”
2
인희는 신창에서 온양을 거쳐 단숨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한성인쇄나 편물공장, 봉제공장 등으로 갈 수도 있겠으나, 그런 곳의 기억은 인희로서는 지워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인희는 다시 한 번 가거도 그 섬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겨야 한다. 가거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너무 고마웠다. 타지에서 온 어린 소녀를 따뜻하게 맞아서 해코지는커녕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해주려고 많은 분들이 애써주었다. 언젠가는 한번 더 그곳에 가서 그 모든 분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꼭 가야지. 인희는 마음속으로 미소 지었다.
참, 그 전도사는 어찌되었을까? 무척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분이었는데. 하지만 결혼 전날 신부가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너무 슬펐다.
꼭 좋은 분 만나 행복하게 사세요.
그 전도사에게 기회가 닿으면 꼭 연락해 보고 싶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도움을 받고 싶기도 했다. 앞으로 언젠가는 연락해 봐야지…….
인희는 자기 마음을 저 남쪽 하늘로 날려보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조각구름에 실려서.
인희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나 저러나 그 권 부자 댁은 어쩌면 좋지? 그곳 이야기도 전도사 사연 못지않게 슬프다. 아니, 그것보다 더하지. 정말로 참담한 이야기라고 할까. 소설이나 영화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참척(慘慽)이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모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통함을 나타낸 말이란다. 더군다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동딸임에야.
인희의 마음은 다시 우울해졌다.
인희는 맑은 오월의 하늘을 쳐다보고 한숨을 내쉰 뒤 마음을 가다듬었다.
인희는 입고 있는 옷과 구두와 핸드백이 모두 불편해서 시장에 가서 편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목포에서 사준 것은 모두 트렁크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허름한 여인숙을 찾아 들어가 잠자리에 누웠으나 머릿속은 송곳처럼 뾰족해져서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다음날부터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다른 이의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다녔다. 스스로 판단하고 정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당장 자야 할 곳도 정해야 한다. 또한 정 선생님 소식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 또한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인희는 밤늦게까지 뒤척이며 복잡한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잠든 모양이다.
복잡하고 답답한 꿈에 시달리다 새벽녘에 잠이 깼다. 더 잠을 자려 해도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와 점점 잠에서 멀어져 갈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 일어나 앉았다.
조그만 들창을 통해 옅은 새벽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문득 오늘 해곶에 내려가자고 생각했다. 여러 번 망설이다 포기한 해곶. 이번에도 포기하면 영원히 갈 수 없겠다 싶었다.
마음이 해곶으로 향하자 조바심이 나서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인희는 서둘러 방을 정리하고 씻고 나서 여인숙을 나섰다. 짐은 여인숙에 맡겼다.
5월의 새벽거리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새 해는 꽤 올라와 있었다.
인희가 탄 버스는 안양을 거쳐 자신이 일했던 군포를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새벽인데도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해곶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인희는 수원역에서 내렸다.
인희는 팔덕과 함께 11월초 새벽바람을 맞으며 수원역에서 트럭에서 내렸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 시간쯤 되었던 것 같았다. 그날 참 추웠었지. 그런데도 길거리에는 온갖 차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지나갔고 사람들도 꽤 붐볐으며 또 활기차 보였었다. 인희는 그날 새벽 트럭 화물칸에 몸을 싣고 추위에 떨었던 기억에 갑자기 몸서리가 쳐졌다.
수원역 정류장에서 수많은 버스가 서고 가는 가운데 인희는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몰라 이 차 저 차를 살펴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이제 막 떠나는 한 버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얘, 너 인희 아니니? 너 인희 맞지?”
인희가 깜짝 놀라 돌아보자 속도가 막 붙고 있는 버스의 창문 하나에서 손과 얼굴이 반쯤 삐죽 나와 있었다. 인희는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인희야, 너 어디로 도망간 거야……? 니 할머니 벌써 돌아가셨다……. 인국이도 머얼리로 가버리고……. 어디로 간지도 몰라……. 인희야……. 너, 인희 맞는 거지……. 너무 컸구나……. 그 새……. 몰라 볼 뻔했다……. 인희야……. 인희야, 얘, 너 어디서 사니……? 인희야…….”
버스는 검은 매연을 뿜어대며 차량 속에 묻혀 저 멀리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인희는 손을 들고 잠시 뒤쫓아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인희는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하악……, 하악…….
맞아……. 해곶 인희네 집에서 좀 떨어진 명석이 오빠네 집 어머니였다. 아마 그럴 거야. 반쯤 열린 차창으로 본 모습이었지만 분명히 그럴 거라고 인희는 생각했다. 목소리도 똑같았다. 인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아, 안 돼……, 안 돼…….
길가는 사람들이 인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인희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비틀비틀 몸이 휘청거렸다. 마침 옆에 있는 가로수를 붙잡고 버텼다.
할머니……. 돌아가셨다……. 인국이 머얼리 가버렸다…….
이 말이 끊임없이 인희의 귓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인희는 어떻게 서울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이 세상의 모든 희망이 끊어진 것 같았다. 이대로 죽고 싶었다.
앞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 할머니……. 인국아…….
인희 자기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이대로……, 여기에서 나는 죽어야 해…….
할머니도, 인국도, 정 선생님도 모두 인희에게서 떠났다. 이 세상에 자신이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아무도 없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그날 하루 종일 인희는 그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온종일 방황하던 인희는 저녁때가 되자 트렁크를 맡긴 여인숙으로 갔다. 딱히 갈 곳도 없어서 하룻밤 더 자기로 했다.
여인숙 입구 사무실 방에 가서 하루 더 묵겠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궁금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민다.
“어디에서 왔니? 학생 같은데…….”
“다니다 말았어요. 목포에서 왔어요.”
“그래……? 사투리 안 쓰는데? 서울 말씨는 아닌 것 같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았어요.”
아주머니는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일할 데 찾니?”
“…….”
아주머니가 방 밖으로 나왔다.
“영등포 양평동에 가면 요꼬 하는 데 있어.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아, 예. 저 해봤어요.”
“그래? 그럼 한번 해볼래, 거기 가서? 아무 때나 가도 일할 수 있을 거야, 거기 가면. 그런데 손이 그렇게 고와서 그런 일 안 한 것 같은데…….”
“몇 년 전에 해서 그래요.”
“그럼 그동안 무슨 일 했는데?”
“그냥 이일 저일…….”
“목포에서 왔다고?”
“네…….”
“거기에선 뭐 했는데?”
인희는 대답 없이 아주머니의 눈을 피했다.
여인숙 아주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날 아침 인희는 아주머니가 그려준 약도를 받아들고 여인숙을 나섰다. 아주머니는 자기가 전화로 미리 연락해 두었으니 민지 엄마를 찾아 자기 소개로 왔다고 말하라고 일러주었다.
(당시 가정에서 하는 편물기계는 ‘가로’로 틀을 옮기며 일을 하는 것으로서, 가로를 나타내는 한자 횡(橫)을 일본어로 ‘요코’로 발음하는 데에서 그 기계를 흔히 ‘요꼬’로 불렀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