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

by Rudolf

제23장 |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


1


팔덕은 편지를 받았다. 사실 팔덕에게는 편지가 올 일이 거의 없다. 숨어 사는 주제에 누구와 무슨 연락을 주고받을까. 하지만 유구와 온양, 그리고 천안 등지를 돌아다니며 똘마니들 몇을 만들어 놓았다. 팔덕이 그 지역을 정기적으로 돌지만 급한 일 있을 경우 연락을 주고받을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자신이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유구의 봉수사 아래 다 쓰러져 가는 집을 적당히 수리해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 주인은 대전 어딘가에 산다면서 그 집은 버려둔 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집에 세를 주고 들어오겠다는데 얼마나 고맙겠는가. 게다가 팔덕은 그 마을의 몇 채 되지도 않는 집에다는 인심을 베풀어서 주민들 눈 밖에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실 생활은 어려웠다. 여기저기 다니며 남 등치는 일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남들에게 소문나지 않게 은근히 그런 짓 하고 다니려니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다. 큰 거 한방 터뜨려야 하는데…….

그러던 차에 편지를 받은 것이다. 해곶에서 온 편지.

몇 년 전, 그러니까 인희가 사라지고 나서 전혀 소식을 모르게 된 뒤, 또한 정 선생이 찾아와서 자신도 모르는 인희의 행방에 대해 물은 뒤 팔덕도 인희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구상에서. 아니,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아아니, 팔덕의 손이 닿는 세계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팔덕은 해곶을 찾아갔다. 한밤중에. 그곳 지리를 잘 알기에 밤길이 어두워도 문제없었다. 해곶은 마치 죽은 마을 같았다. 노인들은 죽고 별로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외지로 많이 떠나서 한마디로 버려진 곳이었다. 팔덕은 인희네 집이 있는 갯벌 쪽으로 갔다. 그곳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 집, 자식들 일찍 다 죽고 할멈 혼자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귀신처럼 살아가는 그 집에서만 희미한 불빛이 비쳐나오고 있었다.

팔덕은 그 할멈에게 인희와 인국에 대해 물었다. 할멈은 말은 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팔덕은 할멈에게 돈을 쥐어주고 빈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혹 어떤 형태라도 인희 소식을 알게 되면 주소든 무엇이든 간단히 적어서 봉투에 넣고 누구에게 부탁하든지 우체부를 만나든지 전해 주라고 한 것이다. 이미 주소도 써 있고 우표도 붙여놓았으니 그냥 전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일러놓았다. 할멈은 눈도 어둡고 나이도 많지만 한글은 쓰고 읽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할멈이 병약해서 골골하면서도 그때까지 살아남은 게 신기하긴 했지만, 어떻든 살아 있는 동안에 인희 소식을 알게 되어 편지를 보내주기만 하면 팔덕으로서는 손해날 것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나서 팔덕은 이러한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런데 그 편지가 온 것이다.

팔덕은 큰 기대감으로 봉투를 찢었다. 안에서 나온 작은 종이에는 주소만 달랑 적혀 있었다. 할머니 글씨인지 누구 다른 사람이 썼는지 모르지만 지렁이 기어가는 글씨체로. 그러나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금방 죽을 것만 같던 할멈이 아직 살아 있군. 고맙소, 할멈.”

팔덕은 씨익 웃었다.

그날 바로 팔덕은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시내와 그 인근을 몇 년 동안 이 잡듯 샅샅이 뒤지며 은신처 찾고 도피처 만들고 한 경험이 있는 팔덕으로서는 그 주소를 찾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 집에는 여러 사람, 특히 여자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귀엽게 생긴 대여섯 살 남자아이도. 그리고 기대한 대로 인희도 나타난 것이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인희를 못 만난 지 꽤 오래되었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팔덕은 마음이 설렜다.

그새 어른인 된 인희. 첫눈에 알아보았다. 앳된 모습 때 헤어졌는데 그 곱고 예쁜 모습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더 화사한 느낌. 게다가 여전히 고왔다.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에 수심 같은 것이 보이긴 했지만.

그런데 어떻게 그 할멈이 이 주소를 알게 되었을까? 하긴 그것은 어찌됐든 팔덕이 알 바 아니다. 인희만 찾아내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인희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결혼했구나.

그리고 또 하나, 긴가 민가 하는 사실. 무엇이냐 하면 그 아이 아빠라고 생각될 만한 사람이 그 집에는 드나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희보다 나이 약간 많아 보이는 여자가 두엇, 그리고 중년 아주머니가 또 두엇, 잘 차려입은 중년부인,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40~50대 남자 두엇, 예순은 넘어 보이는 남자 노인 하나.

그리고 사흘에 한 번꼴로 그 집 앞에 작은 트럭이 오고 집에서 커다란 종이상자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무슨 물건을 만드는 집 같았다. 게다가 살며시 집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집 안에서 철커덕철커덕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당에 털실뭉치나 털실로 짠 여러 형태의 옷들이 자그마하게 쌓인 것이 보였다. 아하, 요꼬. 팔덕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요즘 그러한 집들이 천안에도 많이 있었던 것이다. 크게 말하면 가내공업. 사람들은 그런 곳을 편물집이라 불렀다. 집 밖에다 ‘편물집’이라는 조그만 나무판자를 붙여놓기도 했다.

팔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어디 가서 몹쓸 고생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저런 곳에서라도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그런데 아이가 있다.

남편은?

아이를 잘 보니 귀티가 난다. 아무렇게나 굴러먹는 놈하고 붙어서 난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아이에게서 팔덕은 돈 냄새를 맡았다.

본능적인 것이었다. 주머니가 궁하던 차에.

팔덕은 열흘을 빙빙 돌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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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팔덕은 아이가 대문 밖으로 나온 것을 보고 주위를 살피고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사탕을 내밀었다. 아이가 멀뚱한 눈으로 바라본다.

“받아. 괜찮아.”

아이는 뒤로 주춤한다.

“이름이 뭐니?”

아이는 빤히 쳐다보며 말이 없다. 약간 겁을 집어먹은 것 같기도 하고.

“몇 살?”

팔덕이 사탕을 내밀며 다시 물었다.

“이거 엄마한테 갖다줄래?”

팔덕은 다른 손으로 리본 모양으로 접은 조그만 쪽지를 내밀었다.

아이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뒤로 주춤거린다.

“괜찮아, 괜찮아. 착하지…….”

아이 얼굴이 울상이 되더니 뒤돌아서 뛰어간다. 울음 섞인 소리를 내면서.

“엄마!”

팔덕은 그 자리에 사탕과 종이쪽지를 내려놓고 얼른 일어서서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왜, 왜 그래, 성현아?”

놀라서 비명 같은 소리로 묻는 여자의 목소리.

인희일 것이다. 팔덕은 골목에 몸을 붙인 채 내다보지는 않고 귀만 쫑긋 세우고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

“엄마, 엄마…….”

그런 뒤로 아이를 달래는 소리.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 아이 야단치는 소리.

혼자 밖에 나가지 말랬잖아.

팔덕은 10여 분 꼼짝 않고 있다가 세상이 조용해지자 살짝 고개를 내밀고 살폈다.

땅에 내려놓은 사탕은 그대로 있었고 쪽지는 없어졌다.


팔덕은 인희가 나올까 궁금했다. 혹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는 않았을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평소 늘 조심스러워하던 인희의 성격으로 보아 남들에게 요란 떨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팔덕이라는 사람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존재는 아니잖은가.

팔덕은 시계를 보았다. 밤 9시 5분. 쪽지에 써놓은 시간보다 5분이 지났다. 양평동 동사무소 뒤편의 어린이놀이터 미끄럼틀. 인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앞으로 10분을 더 기다려 인희가 나오지 않으면 오늘밤은 틀린 것이다.

인희와 헤어진 지 거의 9년이 된다. 세월이 참 빨리도 갔구나.

“인희가 나를 보면 알아볼까? 이름을 알렸으니 알긴 하겠지. 그러나 내 모습은 이 9년간 어떻게 변했을까? 남들 보기에 내 모습은?”

팔덕은 마음이 씁쓸했다. 자기 자신이야 건달을 넘어 반사기꾼 아닌가. 여기서 등쳐먹고 저기서 사기치고. 체격이 크지 않으니 힘으로 남들 앞에 나설 수는 없고, 어릴 때부터 늘 해온 꼼수 짬수 뭐 그런 것으로 지금껏 살아왔으니 그런 것이 몸에 얼굴에 배어 나타나 있지 않을까. 당연히 그렇겠지.

젠장…….

팔덕은 인희를 좋아했다. 처음 해곶에서 데리고 나올 때는 흑심을 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희가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갖은 고생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해곶에서 곱게 자라게 놔둘 걸 그랬다고 얼마나 많이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어느 정도 돈도 모으고 자리 잡으면 인희를 자기 여자로 삼자고 생각하고 귀찮고 힘든 것을 참으면서도 나름대로는 뒷바라지를 다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인희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곧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시간에 지나면서 그 자취가 전혀 보이지 않자 이만저만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절망하기도 했다. 자신의 꿈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남들에게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으려 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인희를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인희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나 많은 밤 인희 얼굴을 떠올리며 잠을 설쳤던가. 영화를 볼 때마다 여주인공에게서 인희를 보았고, 인희와 함께 걷고 웃고 먹고 자는 공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유행가 가사마다 인희 얼굴이 들어가 있고 영화 포스터나 잡지의 여배우마다 인희 모습이 겹쳐졌다. 지나가는 예쁜 여자아이들은 모두 인희였다. 뒷모습을 보고 인희가 틀림없다 생각하고 돌려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팔덕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느꼈다. 족제비와 살쾡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한 자기를 인희는 물론 세상 어느 여자도 좋아할 리 없을 것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밤마다 잠을 설치고 해가 있을 때는 인희 모습 찾아 여기저기 눈을 돌리던 그 시간들. 그러나 이제 그 환상은 깨졌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것이다. 남의 여자가 된 인희.

팔덕은 옛 그 인희의 모습을 그리며 미끄럼틀 아래에 서 있었다.

시간은 9시 15분을 넘겼다. 팔덕이 자기 자신과 약속한 그 시간.

안 돼.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 꼭 만나야 해. 보고 싶다. 인희야. 제발, 제발…….

팔덕은 눈물이 나오려 했다. 지금껏 살아온 중에 딱 한번 흘렸던 눈물. 오늘 다시 나오려 한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나온 것인가…….

흐린 눈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환상이겠지. 늘 그렇듯…….

정말 인희였으면…….

인희였다. 몰래 숨어서 보았던 그녀 인희.

인희는 털 스웨터로 몸을 감싼 채 팔덕 앞에 서 있었다.

달빛 아래, 저쪽에서 비치는 가로등 희미한 불빛 아래, 눈물 어린 눈 앞에, 여전히 예쁘고 고운, 그러면서도 앳된 티 나는 성숙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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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덕 마음으로는 그 자리에서 손을 잡아끌고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은 간절했다.

팔덕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있었다. 눈물이 말라주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인희는 말없이 그저 서 있었다.

팔덕은 미끄럼틀 기둥에 기댔던 몸을 천천히 앞으로 세웠다.

“잘 지냈니?”

인희는 말이 없었다.

“좋아 보인다, 얼굴이.”

인희는 가만히 있었다.

“애가 참 이쁘더라.”

인희는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어떻게 지냈어, 오빠는?”

옛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가늘면서 다정한 그 목소리. 약간 냉기가 돌기는 했지만 그래도 옛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애 아빠는?”

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같이 사니?”

인희는 말이 없었다.

“언제 결혼한 거야?”

“어디서 살아, 오빠는?”

“응, 뭐 그냥 여기저기서. 나는 뭐 떠돌이잖아.”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이네.”

“밤이라서 그럴 거야.”

그리고 나서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 들어가 봐야 돼. 애가 깨면 많이 울어.”

“…….”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

“잘 데는 있어?”

“…….”

“들어갈게.”

인희가 몸을 돌렸다.

“애 아빠 연락처 있어?”

인희는 몸을 다시 홱 돌렸다. 팔덕은 자신이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자신의 말에 팔덕도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이야, 그게?”

인희의 말에 한기가 돌았다.

“아니, 너 고생하는데 애 아빠가 안 보이는 것 같아서.”

“그건 왜 물어?”

“아냐, 아무것도 아냐. 그냥…….”

팔덕은 당황스러웠다. 낭패감이 확 밀려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여기 찾아오지 마.”

인희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팔덕은 가만히 그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가는구나. 너는 가는구나. 나는 여기에 있는데 너는 그냥 가는구나.

팔덕은 달려갔다.

인희의, 뒤를, 쫓아, 가서, 어깨를, 잡고, 확, 돌려, 세웠다, 그리고, 껴안았다, 그런, 다음…….

그러나 팔덕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음은 인희에게 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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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월초, 인희가 팔덕과 함께 해곶을 도망나오던 날과 같은 날짜. 해는 이미 졌으나 잔광이 남아 있을 때 인희는 아직 좀 이르기는 하지만 성현에게 저녁밥을 먹이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다. 성현은 엄마가 일하는 동안은 혼자서도 잘 노는 착한 아이였다. 별로 칭얼대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조르지도 않았다.

성현은 마당에 없었다. 대문 옆의 쪽문이 열려 있었다.

인희는 그리로 나가며 불렀다.

“성현아, 들어와야지.”

성현은 보이지 않았다. 큰길까지 갔나? 금방 어두워질 텐데.

인희는 동네 어귀까지 나갔다. 가는 도중에 이곳저곳 골목을 흘끗흘끗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날이 찼다.

얘가 어쩐 일이야? 날 추워지면 감기 걸릴 텐데.

놀이터로 갔나……?

그러나 놀이터에도 성현은 없었다.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인희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혹 그새에 자기가 못 보고 지나쳐 온 골목 같은 데서 나와 집으로 간 것은 아닐까?

인희는 급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현 엄마, 애 찾아? 조금 전에 애 아빠하고 같이 걸어가던데.”

아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빠라니?”

“아니, 성현이랑 손잡고 가기에 나는 아빠가 온 줄 알았지. 아빠를 통 보지 못해서 나는 그 사람이 아빠인 줄 알았어.”

“어디, 어디로 갔어요?”

“저쪽 한길로. 김포가도 쪽으로 가던데……. 아니, 그런데 아빠가 아니야? 그럼 누구야, 그 사람……?”

인희는 그 뒷말은 듣지 못했다.

김포가도 쪽으로 뛰었다.

팔덕이 틀림없어! 나쁜 놈!

퇴근 무렵이라 길거리는 사람과 차로 혼잡스러웠다.

인희는 아이만 찾았다. 어른은 보지 않았다. 아이가 가끔 눈에 띄었으나 성현보다는 훨씬 컸거나 여자아이였다.

인희는 사람들을 밀치면서 마구 뛰어갔다.

김포가도. 그 좀 못미처에 김포가도로 들어가고 나가는 나들목이 있다. 그 일대는 차도도 인도도 극심하게 복잡했다.

찻길 저쪽 김포가도 쪽에서 실루엣으로 보이는 두 사람. 하나는 어른, 또 하나는 아이. 손을 잡고 있는 듯.

틀림없다.

인희는 멀리서 소리쳤다.

“성현아! 성현아!”

인희는 마구 뛰었다. 가로막히는 사람은 밀쳐냈다.

“성현아! 성현아!”

인희는 손을 마구 흔들어대며 뛰어갔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성현아! 성현아! 여기야! 여기! 엄마!”

실루엣 두 사람이 돌아다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남자가 아이를 안는다. 아이가 발버둥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두 실루엣은 찻길로 뛰어들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사이로. 달리는 차들 사이로.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자동차 경적소리.

“안 돼!”

인희는 비명을 질렀다.

인희는 정신없이 달렸다. 나들목을 거침없이 건너갈 때 자동차들이 급정거하며 비명을 질렀다. 인희가 풀밭 비탈을 뛰어 올라가 김포가도에 이를 때까지 아래쪽에서 차창을 열고 욕을 퍼붓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희는 찻길로 올라갔다.

그곳 차도도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급정거 소리, 경적소리, 차창 열고 욕을 퍼붓는 소리. 헤드라이트가 어지럽게 이리저리 비치는 가운데 아까 그 두 실루엣이 길 건너에 도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또다시 요란한 경적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온다. 인희 왼편 저쪽에서 어떤 사람이 자동차들 사이를 뚫고 요리조리 달려가고 있었다.

인희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차도로 뛰어들었다.

다시 한번 차도는 혼란으로 뒤덮였다.

인희가 차도를 건너자 그 너머는 약간 비탈로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바위. 그 사이로 난 크고 작은 나무들. 그 너머는 한강이다.

어디야, 어디?

인희는 무조건 풀밭으로 뛰어들었다. 바위가 많아 뛰기 힘들었지만 넘어지고 발에 걸리고 하면서 그래도 뛰어갔다. 한강 쪽으로 저 아래 시커먼 건물이 보였다. 어느 종교단체에서 수련원을 짓다가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한동안 방치된 건물이다. 그 일대에서는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인희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한번 넘어지기는 했지만 얼른 일어나서 뛰었다. 어디 다쳤는지는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인희는 다른 것은 생각지 않았다.

성현. 내 아기. 찾아야 해!

그 건물의 담은 공사하다 말아서 낮았다. 부서져서 뚫린 곳도 있었다. 공사중이라거나 출입금지와 같은 팻말이 있을 텐데 그런 것은 보이지도 않았고 또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철조망이나 밧줄을 쳐놓았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인희는 낮은 담을 넘어 시커먼 건물 안쪽 정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디지? 어디?

인희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짓다 만 탓에 나무틀이 삐죽삐죽 나와 있어서 기괴하게 보이는 시커먼 건물 옆으로 돌아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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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덕은 발버둥치는 아이를 안고 시커멓게 솟아 있는, 짓다 말아서 기괴스런 모습의 건물 뒤쪽으로 뛰어갔다. 그 앞쪽 역시 짓다 만 낮은 담으로 둘려 있었다. 그 한쪽에 강 쪽 절벽으로 무엇인가를 짓기 위한 것인지 비계가 낮게 설치되어 있었다. 강 쪽으로는 제법 높게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곳은 거의 낭떠러지 같은 곳이니까.

팔덕은 숨을 곳을 찾다가 힘이 들어서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아이가 팔덕의 손을 빠져나갔다. 아이가 비계 쪽으로 달려간다. 팔덕이 뒤쫓으려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그만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심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과 팔과 이마를 바닥에 찧고 말았다.

팔덕이 간신히 일어나서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비계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엑스자로 걸쳐진 비계 옆 받침대를 그 조그만 아이가 잡고 올라간다. 물론 강 이쪽은 비계 높이가 낮아서 떨어진다 해도 크게 다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위험했다.

팔덕은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뒤에서 인희가 건물을 돌아나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인희가 건물을 돌아 강 쪽으로 나가자 어둠 가운데에서도 두 사람이 명확히 보였다. 바닥에 넘어져 있는 남자. 강 쪽에 세워져 있는 비계를 타고 올라가는 아이. 안 돼!

“성현아! 성현아!”

인희는 소리 질렀다.

넘어져 있는 남자가 돌아다본다. 어둠속에서도 팔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인희는 팔덕에게는 관심 없었다. 지금 막 비계 위로 올라서서 이쪽을 쳐다보며 엄마 하고 외치는 아이.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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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쪽 비계 아래에 또 한 사람이 있는 것을 저 위쪽 두 사람은 보지 못했다.

도현은 팔덕을 뒤쫓아갔지만 건물 앞쪽으로 나가지 않고 건물 옆쪽, 역시 쌓다 만 담 쪽으로 달려갔다. 그쪽 역시 비스듬히 아래는 시커먼 강물이다. 도현은 무엇을 어쩌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팔덕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담 뒤로 숨으려 한 것이다.

도현은 담을 넘어 조금 앞으로 나아가다 발을 헛디뎌 아래로 미끄러졌다. 주변이 너무 어두웠던 탓이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다행히 참아냈다. 조금만 더 미끄러졌으면 강물 속으로 그대로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 간신히 바위틈에서 뻗은 나뭇가지를 잡고 버텼다. 그러면서 발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옮겨 바위를 타고 넘었다. 조금 앞으로 나아가자 강 쪽에 쌓은 비계 아래가 나왔다.

저 위쪽에서 소란한 음성이 들린다.

성현아!

안 돼!

내려와!

도현이 올려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비계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은 상황으로 미루어 알 수 있었다.

도현은 사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비계 아래쪽으로 발을 옮길 데가 있는지 살펴보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도현에게서 제일 가까운 곳의 비계 기둥 아래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 다음 것도, 또 그 다음 것도. 게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도현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비계 기둥 하나에 몸을 의지한다고 한 것일 테지만 아무튼 힘을 주어 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에 자기가 의지했던 기둥이 앞으로 밀리고 있었다.

도현은 깜짝 놀라 손을 놓았다. 그러나 늦었다. 기둥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순식간에 비계 전체가 저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인희는 비계 앞으로 뛰어가 위에 있는 성현에게 팔을 벌렸다.

“이쪽, 이쪽으로 와. 이리로, 이리로…….”

그 순간 비계가 강 쪽으로 비스듬하게 넘어져 간다.

“안 돼!”

아이는 주저앉으면서 비계 끝을 잡으려는 것 같았는데 그 다음 순간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성현아!”

비계는 강 쪽으로 조금 쓰러지는 듯하더니 곧 멈췄다. 그러나 비계 위의 판은 이미 30도 가량 기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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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희와 팔덕은 비계 앞으로 가서 여러 겹의 엑스자로 되어 있는 굵은 나무막대를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시커먼 물밖에 보이지 않았다.

성 현 아…….

안 돼…….

인희나 팔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현아…….

인희는 중얼거렸다. 입술에서 그 이름이 새듯이 흘러나왔다.

인희는 아무런 것도 의식할 수 없었다.

오직 시커먼 강물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름을 중얼거리는 채.

눈물이 흐르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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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는 비계를 잡은 손을 떼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인희 앞에는 팔덕이 서 있었다. 놀라서 크게 뜬 눈은 마치 악마의 굴 같았다.

악마…….

내 아기 죽인 악마…….

악마…….

인희의 눈에 바닥에서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비쳐 들었다. 녹슬고 긴 송곳이었다.

인희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여 그 송곳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이 모든 것은 인희에게는 천 년 동안 느릿느릿 이어지는 동작이었다.

인희는 또 다른 천 년 동안 아주아주 천천히 송곳을 팔덕의 몸에 꽂았다.

그리고 또다시 천 년의 세월을 지나며 송곳을 들어올려 다시 내리꽂았다.

그리고 또다시 천 년…….

또다시 천 년…….

또또 다시 천 년…….

인희는 자신의 손에서 튀는 피를 보았다. 천 년 동안.

인희의 손에서 튀어오르는 핏방울들은 하얀 별이 되어 은하수를 만들었다.

인희는 또 보았다. 고베 앞바다에서 할머니 손을 잡은 것은 인희가 아니었다. 성현이 그 작고 예쁜 손으로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을 잡고 나룻배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하늘로 오르더니 천 년 동안 은하수를 타고 흐르는 것이었다.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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