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택우(正心擇友)

by Rudolf

제 1 부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Homo Homini Lupus


‘시민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서로 돕지만

국가 사이에서는 서로 싸우고 전쟁을 한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시민론(De Cive)》 1642



정심택우(正心擇友) | 마음을 다해서 친구를 사귀다


1


“다음 주에 봅시다.”

“주말에 어디 갈 거예요?”

“리포트나 써야죠.”

“늘 그렇게 비밀주의로 살 겁니까?”

“나 비밀 없습니다.”

의준은 싱긋 웃으며 동료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금요일 정오경 의준은 강의실을 나서면서 이렇게 동료와 가벼운 말을 나눈 뒤 곧바로 핸드폰으로 주식을 확인했다.

전체 지표는 나쁘지 않았다. 선물도 괜찮았다. 하지만 하나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었다. 영국 BLT(Brit Life Tech) 주가가 약간 떨어진 것이다. 물론 아주 미세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준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BLT의 공격적 투자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 기업의 설명에 의하면 앞으로 6개월 내에 새로운 투자기업들이 더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 기업들은 모두 믿을 만했으며 재무제표도 괜찮았다. 따라서 초기와 같이 주가상승 폭이 크지는 않더라도 당분간은 느린 속도로라도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혹 어떤 요인에 의해서 주가가 조금이라도 하락한다면 아직은 100% 검증되지 않은 솔루션 때문에 불안심리가 작용해서 갑자기 주가가 크게 빠질 우려도 있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크게 오르겠지만 주식시장에서는 한번 소문이 잘못 퍼지면 회복하기가 힘든 경우도 종종 있다.

의준은 핸드폰으로 오늘 오후 런던행 항공권을 알아보았다.

직항은 매진되었고 파리를 거쳐가는 것이 몇 좌석 남아 있었다. 조금 망설이다 의준은 예약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미안. 급한 일이 생겨서 지방에 내려갔다 와야 해. 다음 주 안에 연락할게.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게 알려줘. Sorry.”

의준은 홍대 앞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가서 간단한 짐을 꾸려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격주로 열리는 런던정경대(LSE) 근처의 ES(Economic School) 주말강좌는 다음 주에 있지만 BLT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 런던으로 직접 가기로 한 것이다.

의준은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격주로 금요일 오후에 런던으로 떠나서 월요일 저녁에 돌아오고 있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한 학기 조기 졸업하고 아이비리그에 속한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을 3년 만에 마친 뒤 곧바로 한국으로 왔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한국의 해군에 복무하고, 제대한 뒤 대학원에 들어가 국제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의준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지 않고 한국으로 온 이유는 이중국적을 취득해서 나중에 정계로 진출할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군대를 다녀온 덕에 현재 이중국적은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상태이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가서 미국 국적을 얻은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준은 런던에 도착해서 런던정경대가 있는 킹스웨이 근처의 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늘 몇몇 친구들이 주말마다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하지만 의준보다 적어도 열 살 이상은 많은 사람들이다.

“Hi, Jun, how’s going?”

“What’s up?”

“Why are you here?”

“What’s new?”

이들은 ES 강의가 없는 주말에는 이곳에 모여 여러 정보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들하고 강의실에서뿐만 아니라 종종 화상통화를 통해서 대화도 여러 번 나누었기 때문에 늘 격의 없이 지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들과 연락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다. 그만큼 BLT 주식은 의준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의준이 다루고 있는 주식 금액 중 거의 절반을 여기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의준은 부모가 돌아가시면서 물려준 재산을 부동산과 주식, 현금으로 각각 3분의 1씩 나누어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주식에 투자하던 중 얼마 전 ES를 통해 알게 된 BLT에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ES 친구들을 만난 의준은 다소 의아했다. 아무도 BLT의 주가 하락에 대해서 의구심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런던에서 돌아온 희준은 증시가 개장되자마자 BLT 주식을 모두 팔아버렸다. 지난 주말 주가에서 별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희준의 본능은 지금이 피크라고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몇 주 동안 BLT 주식은 서서히 떨어져 갔다.



2


의준은 여러 공상 중에서 위의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사실 런던정경대는 몇 년 전에 여행 가서 건물은 구경한 적이 있었다. 밖에서만. 그 당시는 의준이 세계 여러 나라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던 때였다.

의준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있는 2년제 라스포지타스(Las Positas) 칼리지에서 1년 반 동안 공부도 했다. 그전에도 여기저기 단기 코스로 랭귀지스쿨을 다녔기에 영어는 꽤 통하고 있었다. 누구는 서부와 동부 악센트가 좀 다르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거 구별할 만한 사람들이 몇 있겠는가.

“그냥 하는 소리지…….”

의준은 지금도 그때처럼 세상에 나가서 밝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의준은 외부와 단절되기 시작했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것이다.

의준은 주식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 말은 틀렸다. 증권회사에서 전적으로 관리해 주고 있어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 옳다. 즉, 의준의 손에 주식이 없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의준은 정말로 주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회사의 주식이 얼마인지 또 전망은 어떤지 알고 싶지도 않고 또 알고 있지도 않다. 왜냐하면 증권회사에서 알아서 돈을 불려주고 때마다 통장으로 넣어주기 때문이다. 의준으로서는 그 관리비용만 넉넉히 주면 나머지는 다른 이들이 다 알아서 해주고 있었다. 의준 스스로 머리 싸매며 주식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매일 주식 체크하느라 바쁜 사람들도 꽤 있지만 의준은 그런 데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의준은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명균, 아니 계 실장이었다.

“잘 안 됐어.”

“…….”

“의준아…….”

“알았어요.”

의준은 전화를 끊었다.

의준은 서교동 홍대 앞 더준캐슬 주상복합아파트 30층 최상층 펜트하우스의 소파에서 입을 꼭 다문 채 천천히 일어섰다. 이곳은 극히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아는 의준의 초호화 아파트였다.

의준은 말 그대로 금수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것과는 좀 다르다. 의준의 부모가 서울 장안평 일대에 버려진 땅을 광활하다고 할 정도로 가지고 있었던 덕을 본 것이다. 의준이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그리 큰 부자가 아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야산과 잡석이 많아 오히려 짐만 되는 황무지 같은 땅들을 처분할 수도, 그렇다고 계속 지니고 있자니 관리와 각종 세금이 큰 부담이어서 오히려 골치만 아픈 상태였다. 그 땅들을 처분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글자 그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개발붐이 일어나면서 의준에 집은 하루아침에 거부가 되었다. 그 덕분에 운영난에 빠진 중고등학교도 사들이고 큰 개발회사와 건축회사도 세우며, 상가건물만 해도 수두룩하게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주택임대업도 크게 해서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왔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의준의 집안은 몇 대째 무녀독남으로만 이어져 내려와 일가친척이 거의 없었다. 의준이 5대 독자였으니까.

“정말 부럽다.”

주변에서는 의준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의준은 처음에는 이 말을 누렸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의준에 집에 어느 날 엄청난 불행이 몰아쳤다. 차마 말로 못 할 참극이 일어난 것이다. 의준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이 괴한에게 모두 살해당했다. 그것도 집에서. 한밤중 잠을 자다가. 칼로 온몸을 난자당해서.

그때 의준도 자기 방에서 자다가 칼에 여러 군데 찔려서 위험한 상태까지 갔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얼굴도 여러 군데 찔려서 그 사건 이후 의준은 얼굴 성형수술을 여러 번 받아야 했다. 그 탓에 얼굴 모습이 많이 변해 그 사건 이전에 의준을 알던 사람들은 몰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성대까지 다쳐서 한동안 목소리도 제대도 나오지 않았고, 그 이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제 목소리를 완전하게 찾지 못하고 약간 허스키한 느낌을 주는 음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일뿐만 아니라 그 사건 얼마 전에 의준보다 한 살 위인 외사촌 형이 강원도 포천의 한탄강에서 한밤중에 혼자 래프팅하다 실종되어 시신도 찾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발생한 뒤 곧바로 이런 참극이 겹쳐서 집안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의준의 지금 상태가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의준은 재산 대부분을 전문관리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인생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있었다.



의준은 택시를 타고 강남역으로 갔다. 의준은 특이하게도 운전면허증이 없다. 주행시험에서 한 번 떨어지고 나서 운전은 아예 포기했다. 하지만 의준의 재력을 생각하면 최고급 자동차에 운전기사를 둘 법도 한데 아예 차 자체가 없다. 재벌 2세가 아니라도 웬만한 재산이 있는 집안 자식이라면 고급자동차 경쟁에 뛰어들어 언론에도 간혹 등장할 텐데 의준은 그런 것에는 초연한 면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술은 좀 마시는데 담배는 전혀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의준은 강남역 근처의 글소리서점에 들렀다가 1번과 2번 지하도 출구 사이에 있는 높다란 건물의 2층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앉을 자리가 없다. 원래 커피나 티를 좋아하지 않는 의준은 가장 싼 커피를 한 잔 주문해서 손에 들고 커피숍을 두어 바퀴 돌다가 입구의 긴 나무탁자에 한 자리가 나자 높은 의자에 가서 걸터앉았다. 의준은 강남역에 올 때는 대부분 이 커피숍에 와서 앉는다.

의준의 또 하나의 특징. 대부분 싱글 양복이다. 주로 짙은 남청색이나 검은색. 그리고 보통 넥타이는 없이 목 단추는 푼 채 와이셔츠를 입는다. 남방을 입는 경우도 많고. 어떤 경우에는 집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을 때도 있다. 신발은 정장용 검정 끈 매는 구두. 머리칼은 40~50대의 헤어스타일을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아주 짧지는 않다. 안경은 끼지 않았고, 바닷가와 같이 햇빛이 아주 강한 곳이 아니면 선글라스는 쓰지 않는다. 백팩이나 가방 같은 것을 메거나 걸치지도 않아서 얼핏 보면 고리타분한 꼰대 같은 인상도 준다. 좋게 말하면 깔끔한 느낌.

의준은 글소리서점에서 사온 시집을 여기저기 펼쳐보았다. 의준이 서교동에서 굳이 이곳까지 오는 이유는 바로 그 서점이다. 그곳에 들러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점에 들어간 김에 대개는 시집을 한 권 산다. 평소 책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한번 우연히 시집 코너에 갔다가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꽂힌 시집을 꺼내어 보게 되었다. 그 시집을 주르르 훑어보고서 이런 책은 갖다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한 권 산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통 대신 다른 방법으로 그 시집을 사라지게 했다. 그 뒤부터 의준은 악취미처럼 그 서점에 갈 때는 종종 그 코너로 가서 둘러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가능하면 가장 오래된 시집, 또 무명의 시인인 것 같은 종류를 찾게 되었다. 또한 가장 재미없고 아주 허접하게 여겨지고 사람들이 모두 외면할 듯한 시집으로. 사실 이런 것들을 찾기도 힘들었다. 의준의 기준으로 보면 우선 초판이어야 하고, 발행일도 오래 전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집 코너에서 제일 구석에 구색 맞추기용으로 꽂혀 있는 듯한 것. 표지나 본문의 편집 등이 촌스럽거나 성의 없어 보일수록 좋다. 두께나 크기나 값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시인의 약력도 빈약할수록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 즉 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한다. 특히 읽으면서 화를 돋게 하는 시들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의준이 커피숍에서 읽기 힘든 시들과 싸움을 하고 있는 중에 30분이 훌쩍 지났다. 좋아하지 않는 커피도 홀짝거리다가 거의 바닥이 났다. 의준은 시계를 한번 슬쩍 쳐다보고는 천천히 시집을 덮었다.

의준은 시집을 탁자에 그냥 놔두고 커피숍을 나섰다. 의준은 마음에 안 드는 시집과 한바탕 싸우고 나서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놓고 나간다. 다음 사람 누군가가 가져가든 버리든 상관없이. 이렇게 해서 시집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시집 첫 장에 글을 하나 남겨둔다.

Weltschmerz.

이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세계고(世界苦)’를 뜻한다. 즉 모든 인류가 겪는 고통이나 슬픔, 비애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는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소설가 요한 파울 프리드리히 리히터(Johann Paul Friedrich Richter, 1763~1825)가 만들어낸 용어이며, 그림 형제의 독일어 사전에 의하면 ‘이 세상의 불완전이나 불합리로 인한 깊은 슬픔’이라는 뜻이다. (그림 형제는 1500년대부터 괴테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설이나 시 등에서 나오는 어휘를 모아 그 뜻은 물론 어원이나 변천사까지 모두 조사해서 기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서 현대에 접어들어 1960년 동서독 학자들이 합작하여 표준 독일어사전을 완성했다.)

의준은 이 단어 아래에 연도는 없이 날짜만 기록해 둔다. 1월 1일이면 ‘0101’로 표시하는 식으로.

의준은 커피숍 입구의 화장실에 들렀다가 커피숍 뒷문으로 나갔다. 앞문은 강남사거리 쪽이며 보도에서 계단으로 한 층 내려가야 하지만, 뒷문으로 나가면 곧바로 일층 뒷길이 된다. 차 두 대는 너끈히 다니는 길. 이렇게 앞뒤의 길이 차이가 나는 것은 건물이 비탈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의준의 장점 하나. 혼자서도 잘 지낸다는 것. 외로움을 거의 타지 않는다. 친구 없어도 되고, 여자 없어도 된다. 혼자서도 할 일이 많다. 주로 공상이지만. 그러나 그 공상이 종종 현실이 되어 의준의 세상을 뒤바꿔놓기도 한다. 그 한 예가 런던정경대이다.

의준은 강남사거리 뒷길을 통해 한참 걸어가서 국민은행 옆으로 돌아 강남대로로 나갔다. 그리고 양재동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지금부터 잘 생각해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많은 재산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계 실장에게 한 가지 일을 시켰으나 제일 중요한 것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죽음의 고통


비 오는 아침의 죽음이

맑은 날 저녁의 죽음보다 축복스럽다

먼 길 떠날 때

이제 곧 하늘에 수놓아질 별들의 환희를 포기해야 하는 슬픔이

죽음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맑은 날 아침의 죽음이

비 오는 저녁의 죽음보다 축복스럽다

먼 길 떠날 때

이제 곧 어둠과 함께 다가올, 지나간 그 밀어들의 기쁨을 포기해야 하는 슬픔이

죽음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비 오는 저녁의 죽음이

비 오는 아침의 죽음보다 축복스럽다

눈을 감을 때

빗물 사이로 비치는 그대의 발걸음을 외면해야 하는 슬픔이

죽음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맑은 날 저녁의 죽음이

맑은 날 아침의 죽음보다 축복스럽다

눈을 감을 때

햇빛 사이로 떠나는 그대를 붙잡지 못하는 슬픔이

죽음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모든 죽음이

모든 슬픔보다 축복스럽다

슬픔으로 사는 것이

죽음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고통보다는 슬픔이 더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의준은 조금 전 책에서 본 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 자신은 그따위 시에 잠겨 있을 만큼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자신의 전 인생이 달려 있는 일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죽음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라는 후렴 같은 반복구절이 자꾸만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그 허접스러운 시를 더듬고 있었던 것이다.

돼먹지 못한 시!

의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3


서교동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의준은 일인용 소파에 뒤로 길게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 한 가지. 하지만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같기도 해서 이쯤에서 포기하자는 생각도 슬며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의준 앞의 탁자에는 글소리서점에서 가져온 종이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 내용은 의준이 진료받은 치과가 서울에서 파산한 뒤 대전에 가서 다시 문을 연다고 했으나 아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준은 그 치과의 진료기록이 꼭 필요했다. 종이든 컴퓨터 파일이든 모두. 병원의 진료기록은 폐원하거나 휴원할 때 본인이 보관할 수도 있고, 보건소에 맡길 수도 있다. 만일 그 기록을 병원 원장이 어느 곳엔가 보관하고 있다면 훔쳐오거나 아예 불을 질러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보건소에 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러나 어떻든 그 치과가 다시 문을 연다면 훨씬 쉬워진다. 접근할 방법이 더 많아질 테니까.

“나는 치과가 제일 싫다. 드르르거리는 그 소리. 소름 끼치지 않니?”

“나도 그래. 치과에 좀 안 갔으면…….”

“양치질 잘 하면 돼.”

“그렇게 잘 알면서 형은 왜 충치가 생긴 거야?”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ㅎㅎㅎ

의준과 외사촌 형 석민, 이 두 사촌형제가 만나면 늘 이렇게 낄낄거렸지만 사실 두 집안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탓에 둘은 아주 가끔 만났지만 그럴 때마다 얼마나 반갑고 신났는지 모른다.

의준과 석민은 둘 다 어렸을 때부터 같은 치과에 가서 몇 번 진료를 받았는데, 그것이 의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발목 정도가 아니다.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다. 두 사람의 기록이 세상에 나오면 현재의 의준이 과거의 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의준은 한탄강에서 실종된 외사촌 형 석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준이 다른 치과에서 치료받는다면 과거의 병원과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 위험요소를 아예 제거해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다만, 그 진료기록을 없앤다 해도 DNA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누가 굳이 의준에게 유전자 검사를 하자고 요구할 것인가? 특별한 의혹도 없이 말이다.

의준은 지문 문제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전에 그 일을 저질렀다. 외사촌과 이종사존 간인 의준과 석민은 다행히 혈액형이 동일해서 특별히 DNA 검사를 하지 않는 한 지금의 의준이 과거의 의준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낼 수 없다. 얼굴도 여러 번에 걸친 성형수술을 통해 과거의 의준이나 과거의 석민 모두에서 벗어난 제3의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과거의 석민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 보상을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늘 가시로 남아 있는 것 한 가지, 그 치과기록. 그것만 없어진다면 평생 두 발 뻗고 살 수 있게 된다. 의준의 부모와 석민의 부모는 사이가 많이 안 좋아 거의 내왕도 하지 않는 사이였기에 교류가 별로 없었다. 의준의 부모가 모두 살해된 뒤 외삼촌이 의준의 후견인으로 행세하려 했으나 의준이 거절했다. 사실 외삼촌 외에도 외오촌 할아버지 대까지 나타나 접근했지만 의준이 먼저 나서서 모두 해결했다. 이 문제로 한동안 법적문제로 소송까지 벌어질 뻔했으나 의준이 한몫씩 떼어주는 바람에 모두 물러서고 만 것이다. 그리고 외삼촌 부부, 즉 석민의 부모는 그 돈으로 유럽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교통사고로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 여기에 의준에게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외삼촌 부부에게는 한탄강에서 실종된 석민이 유일한 자식이었다. 따라서 의준은 현재 부모형제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은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 쪽 외가의 오촌과 그 자식들인 외육촌과는 훨씬 전부터 왕래가 거의 없었다. 조부모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준네가 갑자기 갑부가 되자 먼 친척들이 달려들어 집적거리긴 했지만. 그러나 그때마다 의준이 적당히 떼어주어 모두 물러가게 했다. 그들 중에서는 지금도 가끔 나타나 손을 벌리는 이가 있기는 하지만, 의준이 적당히 돈을 쥐어쥐고 그 뒤로는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서 더 이상은 쭈뼛거리지 않게 했다.

현재 의준은 노숙자 명의로 구입한 핸드폰으로 명균과 통화한다. 아니, 명균 아저씨다. 계명균. 마흔이 넘은 친척. 의준의 외할머니 쪽 언니에게서 내려온 아주 먼 친척 되는 사람이다. 사실 남과 마찬가지이지만 의준이 수소문해서 찾아냈다. 아재라고 부르면 편하겠지만 의준은 실장이라고 불러준다. 사실은 그 이상 대접받아도 될 만한 분이겠으나 젊었을 때 큰 실수를 저질러 잘못된 길로 가서 인생이 망가진 사람이다.

의준은 계 실장과 문자 메시지는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음성통화만 하며, 계 실장에게도 다른 노숙자 명의의 핸드폰을 주어 두 사람은 그것으로만 연락하고 있다. 또한 의준과 계 실장은 전화로는 아주 간단한 대화만 나눈다. 남들에게 노출되어도 아무런 의미 없이 여겨질 만한 말만 주고받는 것이다. 그 이상의 내용은 메모로 만들어 강남역 근처 글소리서점 내의 두 사람이 정해 놓은 곳에 갖다놓고 가져가도록 해두었다.

이렇게 해서 의준에게는 두 가지 가시가 생긴 것이다. 하나는 치과기록. 또 하나는 계명균 실장.

하지만 의준은 계 실장에게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었다. 평생 믿고 함께 갈 사람으로. 만일 계 실장이 배신하면 그때는 의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계 실장도 알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 실장만은 끝까지 믿기로 했다. 그러한 한편, 의준은 계 실장에게 자신이 왜 그 치과기록이 필요한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계 실장도 의준이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묻지 않았다. 또한 현재의 의준이 과거의 의준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의준은 스스로를 달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

정심택우(正心擇友) | 마음을 다해서 친구를 사귀다.

동양사상의 하나인 양명학의 정심(正心)에서 비롯된 말로서,

이해관계가 아니라 신뢰로서 친구를 대하라는 뜻.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