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Homo Homini Deus
‘인간적인 것만이 참되고 현실적이다
인간적인 것만이 이성적이고
인간이 바로 이성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
《미래 철학의 기초(Grundsätze der Philosophie der Zukunft)》 1842
1
다음날 아침 모든 언론과 신문, 인터넷은 충격적인 속보로 뒤덮였다.
― 한밤중에 울려퍼진 살인의 총성
― 충격적인 연속 저격살인
― 어둠 속에서 날아온 총탄에 즉사
― 범죄동기는 원한인가, 이권인가
― 현직 부장검사와 판사 부부 피격
서울 마포구 서교동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인 더준캐슬 5층의 한 부부가 전날 밤 자정 직전에 저격용 라이플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거실의 창가에서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경찰은 현재 용의자를 찾고 있지만 한밤중에 벌어진 사건이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한편, 서울시경찰청은 서울시 일대에 비상령을 발령하고 마포경찰서와 공조해서 범인수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피해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정보과의 젊고 장래가 유망한 박승업 검사와 그의 부인인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재판부의 강민지 판사였다. 이 두 사람은 창가에서 함께 밖을 내다보다 총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경찰로서는 범인의 자취를 전혀 파악하지 못해서 어디에서부터 수사를 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는 검사와 판사 부부가 동시에 저격당한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여기고 대한민국 수사력을 총동원하여 범인검거에 나서기로 했다고 긴급 브리핑에서 발표했다.
그리고 더준캐슬 아파트는 봉쇄되어 아무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었다. 또한 지하에서부터 옥상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수색이 벌어졌다. 그와 동시에 총탄이 날아온 곳으로 여겨지는 방향뿐만 아니라 아파트 사방으로 일정한 반경 지역은 아예 통행금지 구역이 되어 경찰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지나다닐 수 없었다.
게다가 아파트 주변은 각종 경찰차와 언론사 차량으로 가득 차고 취재진들이 북새통을 이루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TV 화면에서는 아파트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왔으며, 새벽부터 방송국 헬기까지 떠서 아파트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사법부와 입법부의 젊은 엘리트 부부가 함께 저격당해 사망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도 충격을 받았고, 시민들도 경악한 그야말로 역대급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라이플 저격에 의한 사건이었으니. 영화나 소설도 아니고. 이 사건은 긴급으로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 CNN을 비롯한 외국 언론사에서도 한국 방송국의 화면을 받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의준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인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박승업 검사와 강민지 판사. 더군다나 부부라니.
떠버리는 새벽에 신분확인을 받고 경찰에 연락처를 알려준 뒤 집으로 돌아갔다. 혼비백산한 얼굴로.
그리고 의준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만들어둔 비밀의 벽 공간에 라이플을 분해해서 총알이나 망원조준경, 방탄복 등과 함께 집어넣은 뒤 가방은 골프채로 채워놓았다. 이제 의준은 아파트의 다른 입주자들과 마찬가지로 경악하고 겁에 질린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다. 사실이 그러했지만.
“아니, 대한민국 서울의 치안상태가 이게 뭐야? 멀쩡한 시민들이 한밤중에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주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하니 선량한 백성들이 어떻게 정부를 믿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의준은 아파트 건축주로서 더준캐슬의 전 입주민을 대신해서 이렇게 정부에 항의할 수도 있다. 시행사의 표면적인 대표는 다른 사람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는 의준이니까. 그러나 이는 생각뿐이다. 지금 의준은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그런 데까지 관여할 수 있겠는가. 하긴 그럴 만한 입장이 된다 해도 의준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은둔자 본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어떻든 경찰 못지않게 의준도 이 사태를 빨리 수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에는 계 실장에게 연락할 수도 없다. 그와 연락하는 핸드폰도 아예 전원을 꺼서 라이플과 함께 그 공간에 집어넣었다. 아마도 계 실장 역시 당분간 그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서로 영원히 연락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지금의 상태로서는 그것이 피차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것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 검사와 판사가 계 실장과 어떤 관계이기에 그들이 저격당한 거야? 실수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나 죽었으니. 그것도 아주 정교한 솜씨로. 특등사수답게.
혹시 암살자는 계 실장이 아니고, 그 두 사람과 실질적으로 관계가 있는 다른 인간……?
만일 그렇다면 계 실장은 어떻게 된 거지? 어젯밤에 여기에 오지 않았단 말인가?
아이고야…….
의준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2
의준은 편지를 한 통 받았다. 편지 받는 일이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그 발신인을 안다. 관공서나 은행, 증권회사 또는 보험회사, 의준이 소유한 회사나 대리인들, 그 밖에 의준이 잘 알고 있는 극히 몇 안 되는 지인들. 예를 들어 그 망나니 모임인 티파티.
하지만 이번 편지에는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의준은 기분이 좀 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준 자신이 이렇게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를 계 실장에게 보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그런 편지를 받은 것이다. 물론 아직 내용을 보지 않았으니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보복받는 느낌이었다.
좋아.
의준은 봉투를 열었다. 메모지 한 장이 나온다. 내용은 딱 한 줄.
Homo Homini Lupus
라틴어.
이런 글을 보낸 의도가 무엇인지, 또 누가 보냈는지 따져보는 것보다 먼저 뜻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 이 구절은 의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을 직역하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것. ‘Lupus est homo homini’라고도 쓴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 BC 254~184)가 자신의 희곡인 《아시나리아(Asinaria)》에 처음 사용한 뒤,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 유럽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을 할 때 격언처럼 사용되었다. ‘아시나리아’는 당나귀 같은 가축으로서 힘은 세지만 고집스러운 동물이나 사람을 비유할 때 이용되는 말이다. 특히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1642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시민에 대하여(De Cive)》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사람들 간의 경쟁관계를 비유했다. 따라서 결코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보낸 거지? 내게 무슨 암시를 하는 것일까?
의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날 의준은 마음이 뒤숭숭해서 안정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심지어 그날 밤 꿈까지 좀 사나웠다.
게다가 다음날 오전에 또 하나의 편지가 왔다. 역시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뭐 하는 짓이야, 이거?
의준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편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노려보기만 한다고 해서 편지가 이실직고할 리 없어서 마음이 찜찜한 채 봉투를 열었다.
Homo Homini Deus
이번에도 라틴어 구절 한 줄. 이는 어제 편지의 격언과 대구가 되는 것이어서 그 뜻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
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인 로마의 희극작가 테렌티우스(Publius Terentius Afer, BC 186~159(?))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테렌티우스는 노예 신분으로 로마에 왔기에 그가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 뒤에 ‘Afer’를 넣은 듯하다. 따라서 테렌티우스가 쓴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라는 말은 단순히 인간을 벗어난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마도 자유를 갈망하는 노예 신분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즉, 인간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그런 마음들, 그것을 신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다. (테렌티우스는 25살에 그리스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근대에 들어서서 무신론자나 인간주의자들이 특히 이 구절을 많이 인용했다. 그중에서도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 1804~72)는 이 말이 ‘Homo homini deus est si suum officium sciat(사람이 자기 본분을 지키면 다른 이들에게 신과 같이 된다)’에서 온 것을 염두에 두어 그 신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인간상을 의미한다고 본 듯하다. 포이에르바흐의 해석에 의하면 이 구절에 나오는 신은 바로 인간, 즉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그러나 말은 그래도 사실 제대로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하지만 아프리카 노예 신분에서 이제 막 로마의 자유인이 된 20대 초반의 청년이 갈망한 Deus와 무신론의 관점에서 본 19세기 초인사상을 지닌 철학자들의 Deus가 과연 같은 것일까? 이들 인간주의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Deus는 결국 신이 아니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즉 초인과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것 또한 어쩌면 테렌티우스의 Deus와는 다른 Deus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한 Deus는 누구 또는 무엇일까? 한편, 이 구절은 토머스 홉스도 ‘Homo Homini Lupus’와 대구가 되는 의미로 사용했다.
의준은 머리가 아팠다. 그러잖아도 의준의 마음은 신산스러웠다.
그런데 왜 이런 라틴어 구절을, 그것도 상반된 의미를 지닌 두 가지를 보낸 것일까? 하루 걸러서 차례로. 그리고 ‘Lupus’가 먼저, ‘Deus’가 나중이다. 무슨 뜻일까? 편지를 보낸 순서에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동안에는 의준이 남들에게 각종 숙제를 내왔으나, 이번에는 의준 자신이 숙제를 풀 차례가 되고 말았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라고 했지…….
그때 문득 계 실장에게 묘지를 알아봐 달라는 숙제를 내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계 실장이 저격범이라면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으니까. 의준이 저격 날짜를 갑자기 앞당기는 바람에.
사실 그 묘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만일 그날 밤 의준이 죽으면 당연히 묘지에 묻혀야겠지. 그러나 의준 자신이 죽은 뒤에는 누가 그 묘지까지 찾아가서 묻어주겠는가. 따라서 그 묘지는 지금의 의준이 아니라 과거의 의준을 위한 것이었다. 아직도 차디찬 콘크리트 속에 그냥 방치되어 있는 그 시신을 위한 무덤 말이다. 안전한 곳에 숨겨놨기 때문에 발각될 염려는 없지만, 이제는 10년이 지났으니 제대로 묻어주고 향이라도 한번 피워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속죄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어쩌랴. 이미 저질러진 일인 것을.
아직 저격범이 잡혔다는 소식은 없다. 그러하니 계 실장이 범인인지 아닌지도 지금으로서는 모르는 상태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계 실장이 적당한 묘지를 찾아 알려주면 곧바로 의준이 옛 의준의 시신을 꺼내어 그곳에 묻어준 다음 저격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의 의준이 죽더라도 옛 의준에게 작은 도리나마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그 여자 때문에 마음이 급해 서둘렀던 탓에 묘지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계 실장이 혹 투철한 책임감으로 저격 뒤에 그 일을 마무리했다 해도 핸드폰을 꺼놓았으니 그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물론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영원히 계 실장과는 끊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그러던 판에 엉뚱한 라틴어 구절 두 개가 갑자기 등장했다. 수수께끼를 주던 사람이 오히려 수수께끼를 받았으니 아주 묘한 심정이 되었다.
3
한 달이 지나도록 저격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였다. 첫째는 엘리트 사법 부부가 함께 살해된 것이고, 둘째는 저격용 라이플이 사용된 것이며, 셋째는 아직도 범인이 오리무중이라는 사실 때문에.
경찰 관련 인력 수천 명이 동원되어 더준캐슬의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저격장소로 의심되는 곳도 특정되었다. 그 일대 모든 보안카메라를 몇 달 전의 기록까지 다 조사했다. 주민들을 가가호호 탐방해서 일일이 다 확인했다. 서교동 일대를 지났던 차량들에게도 블랙박스를 제출해 달라고 방송을 해서 꼼꼼히 살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의심될 만한 것은 없었다. 아니, 사실은 그 많은 것을 단시간에 다 확인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인적으로도 불가능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여러 방법을 통해서 모아진 자료들은 앞으로 계속 조사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범인이 외국으로라도 도피해서 잠적하고 신분세탁하면 이 사건은 영구미제가 되는 것이다.
의준은 5층에서 저격당한 사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검사와 판사 부부.
지금 의준은 저격사건 날 계 실장이 이곳에 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근거는 계 실장과 죽은 두 부부가 같은 대학의 같은 학과, 즉 법대를 나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졸업연도와 나이도 동일하다. 이 사실은 경찰에서는 아직 모른다. 계 실장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이 세 사람 중 검사인 박승업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계 실장과 강민지는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계 실장은 사법고시에 계속 실패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군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승업과 강민지는 결혼하고, 그 뒤에 강민지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박승업과 강민지가 결혼한 시기와 계 실장이 군에서 탈영한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근 20년이 지난 다음 그 세 사람이 동일한 장소, 동일한 시간에 다시 나타났다.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긴 했지만. 그렇다면…….
우연이었을까? 의준을 찾던 계 실장의 눈에 그들 부부가 보인 것이 말이다. 설마 처음부터 그 부부가 이곳에 산다는 것을 알고서 그들을 노리고 이곳에 왔을 리는 없다. 혹 망원조준경으로 의준을 찾다가 아파트 전체를 살펴보던 중 창가에 서 있는 그 두 부부를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사실 의준은 이 가설을 정설로 믿고 싶었다. 그래야만 논리가 맞으니까.
원래 그날 밤 살해되었어야 할 사람은 의준, 또는 떠버리, 또는 둘 다였다.
그러나 우연과 운명이 그것을 바꿔놓고 말았다.
이 논리가 맞을 것이다. 틀림없다.
계 실장, 계 실장과 박승업, 계 실장과 강민지는 어떤 관계일까?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계 실장은 부부가 된 그 두 사람을 한꺼번에 저격한 것일까?
여기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삼각관계이다.
빼앗긴 사랑.
의준은 아직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설, 시, 드라마, 영화, 연극, 유행가 등에서 지겹도록 나오는 주제 아닌가. 머나먼 옛날에서부터 지금까지, 또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문제는 두고두고 인류를 괴롭힐 것이다. 사랑의 패배자들이 겪는 고통, 그리고 복수, 그 처참함. 의준은 경험은 없지만 짐작은 어느 정도 갔다. 그 고통은 지옥보다 깊고, 피보다 진하며, 어둠보다 짙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훔친 자가 더 나쁜가, 그것을 보복한 자가 더 나쁜가?
만일 계 실장이 사랑을 빼앗겼다면 의준은 계 실장 편에 서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계 실장이 처음에는 총구를 의준에게 겨누었을지라도, 또한 청부의 약속을 목숨보다 더 중히 여겼을지라도 마지막 순간 그 총구를 돌린 것은 오직 사랑의 복수가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사랑의 복수. 결코 달콤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즐기리라. 사랑의 복수로 인해 보전받은 의준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4
저격사건도 점차 시들해져 갔다.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변한다. 그러나 의준은 잊을 수 없다. 단지 잊은 척해야 한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 다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전화가 왔다. 떠버리. 그동안 잘도 참았다. 그러잖아도 전화가 올 때가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
“어떻게 지내? 무섭지 않아?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잖아.” 떠버리가 호들갑스럽게 떠벌인다.
“별일 없었지?” 의준이 떠버리의 말을 끊듯이 하고 물었다. 떠버리는 그냥 내버려두면 상대방이 듣든 말든 한없이 늘어놓기 때문이다.
“많았지. 영화 찍었으니까.”
“…….”
“내 말 듣고 있지?”
“말해.”
“저번에 말한 내 외사촌 여동생 만나볼래?”
“…….”
“그런데 사실은 좀 문제가 있어서…….”
“…….”
“여보세요?”
“얘기해. 듣고 있으니까.”
“…… 음, 저 말이야, 알고 보니 사귀는 놈이 있더라고.”
이 말에 이어서 계속되는 떠버리의 장황한 설명에 의하면 이러하다. 여자의 이름은 명송이.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명문 예술대학인 마이카(MICA,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의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대학 근처의 존스홉킨스 공대에 다니는 한국교포와 사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깊은 관계는 아닌 것 같으니 의준에게 한번 도전해 보라고 한다. 자신이 도와주겠단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 외사촌 동생을 넘기려 하는 것일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도. 게다가 사실 떠버리로서는 의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잖은가 말이다. 설마 브리오니 재킷 하나 받았다고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고. 아, 코스닥에서 신세진 것도 있겠구나. 하지만 짐작건대 떠버리는 의준이 가진 것들에 마음이 쏠려 있는 듯하다. 떠버리 말로는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긴 운명의 동지가 아니냐고 요란을 떨지만. 하긴 영화장면 같은 그 유명한 저격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니 (사실 그것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요란한 총소리만 들었지만) 어디 가서 무용담처럼 떠벌리긴 아주 좋을 것이다.
아무튼 의준으로서는 아무리 그 여자가 눈에 선하다고는 하지만, 남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랑의 배신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생각해 보았잖은가.
그렇더라도 아쉬웠다. 정말 아쉬웠다.
혹 한 번만 더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또다시 편지가 왔다. 눈에 익은 은행이나 관공서 편지가 아닌 개인적인 것. 그러나 이번에는 발신인 주소가 있었다. 이름은 강석민.
의준은 머리칼이 쭈뼛 솟구쳤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고 한기가 쏴악 지나갔다. 남들이 봤으면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으리라.
말도 안 된다. 강석민이라니.
의준은 10년 만에 자신의 본 이름과 마주했다.
강석민은 한탄강 래프팅에서 실종된 의준의 외사촌 형이다.
게다가 그 발신인 주소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평로 123번길 45. 그곳은 아마도 한탄강 래프팅 캠프 근방 어디의 주소일 것이다. 한탄강을 건너기 전, 즉 동쪽은 내대리, 군탄리, 문혜리이고, 강 건너 서쪽에는 이평리, 장흥리, 어지리, 탄동리, 냉정리 등이 있으니 이평로 123번길 45는 금학산 가기 전 어디쯤일 것이다. 의준은 한탄강에서 실종될 준비를 하기 전에 그 일대를 대충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혔었다. 따라서 편지의 주소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이평로가 대강 어디쯤인지는 알고 있다. 게다가 그 주소는 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정확한 주소를 썼을 리는 없을 테니까. 단지 철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의준은 그동안 철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힘이 들어 외면하려 했었다. 10년 전 8월, 석민은 한밤중에 숙소에다 래프팅하러 간다는 간단한 메모를 써놓고 몰래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그날 낮에 미리 공작해 놓은 래프팅 보트를 꺼내어 타고 하류로 가다가 독수리바위를 지나 조금 내려가서 뛰어내린 뒤 서쪽 기슭으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그 밤에 동송읍과 87번 국도를 거쳐 서쪽으로 가서 금학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며칠 전에 미리 가서 으슥한 곳에 옷가지와 여러 물품을 숨겨놓았던 것이다. 마침 그날 저녁부터 태풍이 몰려와서 사흘 동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져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석민이 실종된 뒤 제대로 수색도 하지 못하고 끝내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가 원하던 대로 석민은 단순실종으로 처리되었다. 물론 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석민은 살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철원에서 편지가 왔다. 공식적으로는 실종된 석민의 이름으로. 게다가 실종되었다는 석민은 지금 여기에 있잖은가.
그러니까 실종된 석민이 살아 있는 석민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말도 안 돼…….”
의준은 약간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었다. 안에서 나온 종이에는 간단한 글이 한 줄 적혀 있었다.
내가 묻힐 곳은 금학산
‘나.’ 나는 누구인가? 편지를 보낸 강석민? 실종된 강석민?
그럴 리가 없다.
강석민은 지금 여기에서 편지를 손에 들고서 읽고 있지 않은가. 공포감에 사로잡혀서.
5
떠버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준은 받고 싶지 않아 끊으려 하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받게 되었다.
“바쁜 거 아니지? 나 이 밑에 와 있는데 올라가도 되나?”
의준은 어쩔 수 없이 지하주차장 가로대를 열어주고 올라오게 했다.
잠시 뒤 펜트하우스 한가운데에 있는 엘리베이터 홀의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의준은 돌아다보지 않고 서쪽 창가에 서 있었다. 밖을 내다보며.
“들어와.”
떠버리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말이 좀 이상해서 의준이 돌아다보았더니 떠버리 뒤에 한 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고 있었다.
“거기 창가에서 뭐 하는 거야? 총 맞으려고 해?”
떠버리는 신이 났는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승리감에 도취된 듯한 말투. 그 말을 한 다음 떠버리는 뒤를 돌아다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낸다.
“여기가 저 친구 아지트. 아니, 펜트하우스지. 진짜 펜트하우스. 페인트를 전혀 안 한 하우스. 이거 몇백 평이 넘어. 이 운동장에 화장 좀 해놓으면 굉장할 것 같지 않니? 네가 잘 꾸며봐.”
여자.
맞다. 그 여자다.
“어이, 친구. 잘 지낸 거지? 총소리 또 안 들렸어?”
떠버리는 의준과 여자를 번갈아 돌아다보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낸다.
“이 친구가 현 실장이야. 나하고 비슷하게 생겼지? 난 처음에는 어릴 때 남몰래 다른 집으로 보낸 내 쌍둥이 동생인 줄 알았다니까.”
여자가 약간 멋쩍어하는 표정으로 떠버리와 함께 다가온다.
의준 역시 당황스러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두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해. 이 친구는 나하고 사선을 함께 넘은 동지야.”
“안녕하세요.”
여자가 약간 수줍은 듯이, 그러나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아, 예…….”
의준은 멍하니 바라보듯이 하고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얼버무렸다.
이때부터 떠버리는 자기가 주인인 양 앉을 자리를 정해 주고 커피도 끓이고 간식도 찾아서 가져오고 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입을 놀린다.
“…… 우리 둘이 바로 저 서쪽 유리창 앞에 가서 서 있었거든. 재킷도 똑같은 거 둘이 같이 입고서 말야. 선글라스도 똑같은 것으로 꼈었다고. 완전 쌍둥이였지. 오늘은 저 친구가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는데, 그날은 내 스타일하고 똑같았어…….”
그러는 사이에 여자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펜트하우스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볼 게 하나도 없다. 장식해 놓은 게 없으니까. 그저 휑한 공간일 뿐이다. 게다가 천장까지 높아서 말이 울리는 느낌도 든다. 메아리처럼. 가정집이나 사무실보다는 고급 레스토랑을 차리면 더 어울릴 공간이었던 것이다.
아, 한 가지. 딱 하나 장식이 있다. 조각상. 옥을 다듬어서 만든 기가 막힌 작품이다.
마침 여자도 그것이 눈에 띄었는지 고개를 돌려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번 떠버리가 왔을 때 그 녀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을. 아니, 사실은 떠버리도 처음에는 웬 조각품 하듯이 그쪽으로 다가가려 했었다. 그러나 의준이 먼저 ‘모조품’ 하고 말하자 갑자기 시들해졌는지 돌아서고 말았었다.
여자, 이름은 명송이라고 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늘 떠버리가 한번 더 말을 해주어 새삼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가 조각상에서 눈을 떼고는 의준을 돌아다본다. 궁금하다는 표정 같았다.
의준은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다.
떠버리가 그 상황을 눈치 챘는지 얼른 나서며 먼저 말을 한다.
“저거 모조품이라고 하지 않았나?”
“사실은…….”
떠버리가 조각품 쪽으로 걸어가자 여자가 소파에서 일어나 뒤따라간다. 그러면서 마치 허락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의준을 슬쩍 돌아다본다.
의준은 그 눈길을 피하면서 그쪽으로 함께 걸어갔다.
네모난 옥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 조각상. 작품 이름은 ‘Spirit of the Sea’. 바다의 영혼. 라일 소펠(Lyle Sopel)이라는 조각가의 작품이다. 그 사람은 특히 옥으로만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며, 불교의 사상을 작품에 많이 가미했다. 이 조각상은 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바다 밑으로 내려가 연보랏빛 대형 소라를 집어드는 듯한 장면을 표현한 것인데 머리는 아래쪽, 발은 위쪽으로 솟구쳐 있다. 그리고 기다란 미역줄기와도 같은 천이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남자의 몸을 감싸며 위로 올라가 있고, 두 손으로는 지금 막 미역줄기 아래에서 커다란 소라를 집어드는 듯한 모습이다. 높이 122cm. 볼수록 빠져드는 작품. 특히 은은한 옥색이 동양적인 신비함을 풍기고 있었고, 연보랏빛 소라 역시 옥색과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전체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소라 쪽으로 아래를 향한 얼굴인데, 무척 억센 표정이면서도 보랏빛 소라에서 어떤 신비함을 발견한 듯 넋을 잃고 있는 눈과 입의 모습이다.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그 표정. 그러나 의준은 그 얼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았다. 바다 밑 보물 속에서 오히려 고통을 목격한 듯한 모습. 사실 의준은 그 얼굴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 작품을 가져다놓은 것이다.
여자가 조각상 앞에서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그러더니 약간 허리를 숙이고 조각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여자가 허리를 펴고서 의준을 돌아다본다.
의준은 말없이 한쪽 구석으로 가서 마구 쌓아놓은 책더미를 뒤졌다. 그중에서 한 권을 찾아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자에게 가서 내밀었다. 아주 묵직하고 큼직한 책이었다.
책 제목은 조각가 이름인 SOPEL, 그 아래 표지 한가운데에 위에 설명한 조각상 중에서 얼굴만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고, 제일 아래에는 ‘Alluring Presence(매혹적 존재)’라는 글이 들어가 있었다. 캐나다 뱅쿠버 외곽에 살면서 활동하고 있는 소펠의 옥 조각품은 미국의 조지 부시 1세 대통령과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의 설명을 읽어보면 한국인 조수가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도 들어 있다.
여자는 그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Spirit of the Sea’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나오자 조각과 비교하면서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의준은 마치 자기 자신이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옆에 있는 떠버리는 웬일인지 아무런 말도 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 같았다.
여자가 책을 덮고 의준에게 내민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창가로 천천히 다가간다.
끝?
떠버리는 싱거웠던 모양이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는 듯하더니 또다시 입을 연다.
“맞아. 거기야. 거기가 그날 밤에 우리 둘이 서 있었던 곳이야. 하마터면 우리 둘이 그날 밤에…….”
떠버리의 말은 그 뒤로 한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6
떠버리와 여자가 돌아간 뒤 의준은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다. 말은 주로 떠버리가 했고, 의준은 의자에 앉아서 돌부처처럼 가만히 듣기만 했다. 떠버리는 모든 것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미리 앞서서 추측하고 결론 내고 평가까지 혼자서 다 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여자는 간간이 의준에게 눈을 주어 허락을 받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그때마다 일어나서 펜트하우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치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이 넓은 공간에 작품들을 어떻게 배치할까 요모조모 가늠하는 것 같았었다.
아무튼 그 두 사람은 떠났다. 또다시 텅 빈 공간에 의준 혼자 남아 있다. 라일 소펠의 ‘바다의 영혼’과 함께.
이제 휑한 공간에 혼자 남은 의준은 혹 여자의 체취라도 남아 있을까 하는 마음에 숨을 크게 들이쉬며 그녀 송이, 명송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다른 이의 흔적이 갑자기 그리운 것은. 여자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태곳적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 모습은 이상하게도 잘 떠오르지 않고 그 이름, 그리고 이 빈 공간을 여기저기 다니던 발걸음의 흔적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떠버리가 부러워졌다. 상황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그 넉살스러운 성격. 세상 편한 듯이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왜 의준은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것일까? 왜 늘 자신을 부정하며 문을 닫고 사는 것일까?
살인자라서?
아, 그래. 내 묘지가 있어야 할 곳, 그곳에 가봐야겠다. 내가 죽어 묻힐 곳. 가짜 강석민이 진짜 강석민에게 보낸 편지의 나는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다. 실종되어서. 그러나 그는 아직 묻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묻혀야만 사망이 완성된다. 즉, 내가 죽어 묻혀야 하는 것이다.
7
늦가을 비가 참 많이도 온다.
의준은 철원으로 떠났다. 자신의 묘지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보내어 그렇게 친절히 알려주었는데도 외면한다면 예의가 아니다. 의준은 10년 전 그 비바람 부는 밤 고등학생 나이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금학산으로 향했었다. 비닐봉지에 싸온 신발과 비옷을 걸치고 이를 악물고서 산에 올랐다. 그리고 산등성이를 넘어 매바위로 향했었다. 그런 뒤 10년이 지난 지금 의준 역시 10년 전 그 길을 그날과 똑같이 비옷을 입고 걸어가고 있다. 10년 전에는 작은 플래시에 의지하며 걸었지만, 지금은 한낮에 가고 있었다. 밤과 낮은 바뀌었지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똑같았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은 그때는 순수한 석민이었지만, 지금은 의준으로 바뀐 석민이었다.
의준은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그리고 정상 쪽으로 걸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길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매바위 앞까지 갔다. 그곳에서 서쪽 비탈로 조금 내려갔다. 지형은 조금 바뀐 것 같았으나 의준의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아주 정확히 매바위 아래 그 지점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맞았다. 10년 전 구덩이를 파고서 자신의 옷가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넣어둔 가방을 숨겨두었던 곳. 그날 밤 그 가방을 파내고 나서 의준은 비바람이 부는 밤에 또 다른 곳으로 사라졌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장소로 온 것이다.
의준은 그곳에 물건 하나를 파묻어 놓았었다. 혹 나중에라도 자신의 죄를 증거하기 위한 단서로서. 그러한 상황이 되었을 때 의준은 사람들한테 그곳을 파보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죄를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의준은 메고 온 가방에서 조그만 삽을 꺼냈다. 그리고 땅을 팠다. 있었다. 바로 그 물건이. 비닐에 싸인 채.
의준을 그것을 손에 들고서 살펴보았다. 틀림없었다. 10년 전 파묻은 그대로였다. 의준은 그것을 다시 내려놓고 흙을 덮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단서를 하나 더 집어넣은 채.
의준은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수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의 지옥에서 퍼붓듯 쏟아지는 피울음이었다.
10년 전의 그 피울음.
그래, 이제부터는 10년을 거슬러 살아가야 한다. 피울음을 들어가며. 그리하여 1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내 과거로.
***
post hoc ergo ante hoc | 나중에 일어난 일이 먼저 일의 원인.
‘post hoc ergo proptor hoc’로도 쓰며,
인과관계의 오류를 의미한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