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면회 왔다. 퇴직 신청을 했다고 한다. 경찰생활 22년 만이다.
아버지 덕에 혹독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은 부끄러웠다. 동료들 소식도 들었다. 대부분 선처를 바란다는 글을 썼다고 한다. 20대 초중반 꽃다운 나이들. 미래를 망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다. 휘준 역시 그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길을 막았다.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휘준도 그와 같은 글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더 버텼다. 악에 바친 듯 저항했다. 휘준의 이러한 모습에 실은 경찰이 더 난감했을 것이다. 변호사도 그렇게 말했다. 정보부와 경찰은 아버지 체면을 세워주려 했었던 모양이다. 휘준이 조금만 꺾여준다면.
그러나 결국 아버지 덕을 보고 말았다. 아버지가 퇴직하는 대신 아들이 구제받았으니까. 아버지는 면회 와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아들에게 고마워할 것 없다고 말했다. 그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아버지는 아버지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자식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는 의미다.
휘준이 교도소에서 나오는 날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그 사흘 전 아버지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한 2기 유신정우회(유정회) 국회의원 73명에 포함된 것이다. 임기는 3년. 이들이 일종의 단합대회인 유신총회를 연 날이 바로 휘준이 석방되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경찰에서는 자진사퇴했지만 그 동안 쌓아놓은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서 권력자의 그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들 휘준이 치명적인 장애물로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충성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한 것이다. 그러한 날 자리를 비우고 반정부 데모꾼이었던 아들을 만나러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3년 전에 선출한 6년 임기의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여 국회의원이 된 뒤 유신총회를 여는 날, 영광의 그 자리를 어떻게 비운단 말인가.
휘준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대전으로 향했다.
그 여자.
대승리 입구의 제과점에 찾아갔다가 경찰에 붙잡힌 이후 그 수치스러웠던 기간 내내 휘준은 오직 이날이 오기만 기다렸다.
이제 여자는 휘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승리 제과점에서 해괴한 짓을 벌인 그날 제과점 주인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게 휘준은 체포되었다. 현행범으로. 흉기를 소지한 불순분자. 그 마을의 한 여자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로 범행을 준비한 지명수배자.
칼을 들고 나타난 흉악한 괴한에게 사람들은 욕을 퍼부었다. 경찰에게 붙들려 갈 때까지 휘준은 주변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그 여자를 찾으려 했다. 몸부림치면서 절규했다. 안 돼! 그 여자를 찾아야 해. 내 심장, 내 염통의 피를 보여주어야 한단 말이야!
기차 안에서 휘준은 2년 전 그날의 장면을 떠올렸다. 그 동안 수백 번 필름을 돌렸던 그때의 일.
그러나 휘준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 일이 지금껏 가장 얼굴 화끈거리게 만드는 기억이면서도. 단지 그날 그처럼 절규하면서도 끝내 여자를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하지만 휘준은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는 것이 있었다. 만일, 만일 여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로 휘준은 가슴을 갈랐을까? 그날 이후 고통과 치욕 속에서 지냈던 일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안도는 지금 대전으로 내려가면서 화려한 해피엔딩을 꿈꾸는 헛 마음이 감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감미롭다?
휘준은 눈을 감았다.
감미롭다고? 그 동안 감옥에서 밤마다 낮마다 지저분한 시멘트벽 마주보고 동화 쓰고 소설 쓰고 영화 찍던 그 공상들이 감미롭단 말이지? 여자를 다시 만나 대성리 한길을 걸으며 흰 구름 쳐다보며 그 작은 손 슬쩍 잡는 상상 속의 장면이 가슴 저리거나 아픈 것이 아니라 감미롭다는 거지? 그 새벽, 구름 낮게 뜨고 온 세상 암흑으로 뒤덮였던 한길 한복판, 그곳 네 발자국 떨어졌던 두 사람 사이에서 휘준이 아니라 여자가 먼저 다가와 부끄러운 듯 무릎을 살짝 굽히고 수줍은 얼굴로……. 아, 가슴 뛰는 그런 공상들이 감미로운 거구나.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휘준은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여자가 먼저 손을 내민 거야. 그렇지?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휘준은 그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는 것이고……. 휘준이 도망자라는 것을 알고도 그 뒷바라지 다 감당하려고 이를 악무는 순정녀……. 이루지 못할 비련의 슬픔을 안고도 사랑을 위해 모진 고난 스스로…….
휘준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팠다. 가슴이 아팠다.
왜 현실과 공상은 이리도 다른가…….
휘준은 대전역에서 내려 다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되기를 기다리려는 것이다. 두 시간 거리. 그 길을 그때처럼 걸어가련다. 욕심 부려 한낮에 찾아갔다가 지난번 그 사건이 났으나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련다. 혹 자정 전 제과점에서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일 새벽 첫 버스 타는 시각에 그 한길로 갈 것이다. 그 둘 중 하나에 여자는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정해진 운명이니까.
그러나 아직도 휘준은 가슴이 아팠다.
심장을 가른다면 이보다 더 아플까?
그것은 단번의 날카로운 통증일 거야. 물론 격렬하겠지. 단말마의 격통. 그러나 그것을 계획했을 때, 실패했을 때, 다시 떠올렸을 때,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할 때, 다시는 그러한 마음을 품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 때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해 봤니?
사상? 신념? 지조? 그거 다 웃기는 일이다. 그것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아. 오히려 마음을 강하게 할 뿐이지. 강한 마음은 단 한번 멋지게 부러지면 그뿐이다. 그 뒤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뒷사람들이 그 정신을 기리든 본받든 그것은 남의 일이다. 본인은 단 한 번의 결단이 주는 희열을 맛보고 끝나는 거지. 하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시효도 한도도 없어. 평생이 가도 아프고 죽은 이후에도 아플 거야, 그 마음이. 누구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수평선 너머, 저 우주 끝 그 너머까지 가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그 아픔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휘준은 가슴을 붙잡았다. 마음으로. 생각으로만.
아팠다. 가슴이 아팠다.
게다가 휘준이 생각하는 그 장소, 그 시간에 여자가 나타나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아팠다.
그래서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시간을 당기자. 거리를 당기자. 지금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때 문득 휘준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여자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여자는 늘 그 늦은 시각 그 장소에 그렇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너무 어리석은 것 아냐?
안 된다. 확인해 봐야 한다. 당장 가서.
다방을 나와서 휘준은 역전 광장을 가로질렀다. 3월초.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제과점. 지금 걸어가면 자정 전에 도착할 것이다.
어디서 잔다?
그것은 모르겠다. 어느 집 문이라도 두드리지 뭐.
지난번 그 집? 글쎄…….
어떻게 되겠지.
뒤에서 누가 부른다. 몇 번 불렀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휘준은 뒤돌아보았다.
가죽점퍼. 그 옆에 공군점퍼.
아직도 그 점퍼야?
휘준은 신기했다. 아니, 어처구니없었다. 감옥에서 있었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허구였던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점퍼가 다가와서 휘준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가서 얘기나 좀 하지.”
“지금은 안 되겠습니다. 일이 있어서.”
“잠깐이면 돼.”
“안 된다니까!”
휘준은 자기 팔을 잡은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형사 둘이 양쪽으로 와서 각각 한 팔씩 붙잡았다.
휘준은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다.
“어디에 가는 건지 모르지만 우리가 데려다줄 테니까 잠깐 얘기나 좀 하자.”
“여기서 하죠.”
“서에 잠깐 가.”
“갈 데가 있다니까요.”
“차로 데려다준다니까.”
휘준은 공군점퍼를 돌아다보았다. 그리고는 멍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대전경찰서. 휘준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마음으로는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다. 오늘밤 그곳에 가는 것을.
내일 밤에 가면 되지.
갈 수나 있을까?
점퍼들은 먹을 것과 음료수를 사왔다.
여기에는 왜 또 왔냐? 어떻게 지냈느냐? 힘들진 않았느냐? 건강은 괜찮느냐? 등등.
앞으로는 공부만 열심히 해라. 정치에 너무 깊숙이 빠져봐야 득 될 것 없다.
누구는 정치 모르는 줄 아느냐. 세상 일 다 똑같다. 손해 보는 사람만 손해 본다. 약을 때는 약아야 한다.
자신들도 악감정 있어서 그렇게 한 것 아니다. 그냥 맡겨진 일만 했을 뿐이다.
앞으로는 조용히 살자. 또다시 만나지 말고.
휘준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이 밤에 어디를 가려는 거냐? 데려다주겠다.
그전에 이거 하나만 읽고 지장을 찍어라.
점퍼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형식적인 거야. 읽어보고 이거 찍어서 꾹 눌러.”
점퍼가 인주를 내민다.
휘준은 읽지도 않고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일어났다.
“데려다줄게.”
“혼자 가겠습니다.”
휘준은 경찰서를 나왔다.
10시 반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여인숙에 갈까?
그 다음 순간 휘준은 버스정류장 쪽으로 뛰었다. 막차라도 타고 가자.
휘준은 중간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탔다. 막차라고 한다. 자정 직전에 대승리 입구에 서겠구나.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아, 보인다. 저 앞에 불빛이. 자정이 가까워 오는 이 밤 오직 그 한 가게만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휘준은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가게 창문 안으로 눈을 보냈다. 누군가가 있었다.
여자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휘준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여차장에게 갔다. 여차장은 표정으로 내리느냐고 묻는다.
휘준은 버스가 선 뒤 곧바로 떠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차장은 무슨 뜻인지 몰라 하며 휘준을 빤히 쳐다본다.
“저, 제가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요. 30초도 안 걸립니다. 내렸다가 곧바로 다시 탈게요. 꼭 부탁합니다.”
여차장은 눈만 끔벅이며 쳐다본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문은 열어주었다. 휘준은 내리면서 운전수를 슬쩍 쳐다보았다. 운전수가 백미러로 이쪽을 보는 것 같았다. 휘준은 운전수 뒷머리 쪽으로 고개를 까딱하며 숙였다.
휘준은 제과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가까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안에는 2년 전 휘준 앞에 서서 노려보던 바로 그 남자가 있었다. 남자가 제과점 안에서 이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휘준은 얼른 돌아서서 버스 쪽으로 뛰었다.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몇 안 되는 손님들과 운전수 모두 버스에 올라타는 휘준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다. 휘준은 고개를 꾸벅 한 뒤 자리로 가서 앉았다.
휘준은 왠지 싱거웠다. 실망이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조소에 가까웠다.
2년의 세월이 지났다. 휘준은 그 기간 동안 험악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그 2년은 엄청난 변화나 변혁을 뜻할 수도 있다. 제과점 여자에게도 그러할지 모르지 않은가. 게다가 엄청난 변화는 아닐지라도 시간이 지나며 자연히 변하는 것도 있을 테니.
휘준은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여자가 망부석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여자에게 그런 의무라도 있는 것인가?
아마 여자는 휘준의 정체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온 동네 사람 다 몰려와 구경한 것 같았으니까. 그날 휘준의 그 반미치광이 절규와 몸부림을. 그날 구경꾼들 사이에서 상묘 이름도 나왔으니 당연히 그 난리통 소문이 여자 귀에까지 들어갔을 테지. 여자에게 실성한 반푼이 같은 사내, 게다가 경찰에 쫓기는 인간이었다니 얼마나 입에 담기 좋은 스토리냐.
어쩌면 이 밤 휘준의 행동도 이야깃거리가 되어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2년 전 그 스토리를 기억해 내고 마침내 오늘 일과 연결시키게 되겠지. 그리고 여자의 귀에도 이 이야기가 들어갈지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으면서도 휘준의 마음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자포자기?
글쎄다…….
버스는 어느덧 종점에 도착했다. 짐작컨대 대승리 입구 마을보다 더 초라하면 했지 낫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서 내린 휘준은 그제야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밤 어디에서 잘 것인가?
운전수와 여차장이 불 켜진 한 목조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휘준은 뒤따라갔다.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가 문을 연다. 운전수였다. 궁금하다는 표정.
“저……, 죄송합니다만, 이 근처 어디에서 잘 만한 곳이 있을까요?”
운전수는 문을 활짝 열고 한옆으로 비켜선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날 밤 휘준은 버스 사무실의 기다란 나무의자에서 잤다. 여차장이 여자 숙소에 있는 여벌의 이불을 갖다주었다.
다음날 새벽 4시. 다른 운전수와 여차장을 따라 휘준은 버스에 올랐다.
휘준은 대승리 입구에서 내렸다.
그리고 한길 한가운데 서서 제과점을 바라보았다.
휘준 앞의 네 걸음 떨어진 곳, 그 장소에 마음속으로 여자의 환영을 세워놓고.
이것으로 마지막이구나. 여자를 찾는 것은.
하긴 이 동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니면 못 찾을 리 없겠지만 그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애당초 여자를 만날 것이라 기대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여자의 그림자만이라도 보고 싶고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차디찬 시멘트벽 쳐다보고 지낸 그 2년여의 시간 동안 오직 이곳에 달려오는 생각으로만 그 괴로운 시간들을 견뎠다. 어쩌면 영원히 이곳에 오지 못할 것이라 여기기도 했었다. 사방 막힌 그 좁은 공간에서 질식해서, 그리운 마음에 지쳐서, 괴로운 마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휘준은 그곳을 나가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정의도 자유도 민주도 사상도 모두 하찮게 여겨졌다.
오직 단 하나.
여자를 볼 수만 있다면…….
휘준은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여자가 망부석이 되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휘준 자신이 망부석이 되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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