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신부는 수유동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있었다. 40년 만에 돌아온 고국.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 40년이면 네 번 변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사실 그 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듣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보니 보고 들은 것 이상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문 신부는 가슴이 메었다.
문 신부는 어제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서울 도봉구 수유동성당 정요셉 주임신부의 마중을 받았다. 그리고는 명동성당에 가서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인 추기경과 김바오로 주임신부를 만났다. 그 뒤 명동성당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이날 오전 수유동성당으로 가는 중이었다. 정요셉 신부가 승용차를 가져오겠다고 했으나 문 신부는 일부러 전철을 타고 싶다고 했다. 서울의 사람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문 신부는 정요셉 주임신부, 그리고 수유동 성당에서 나온 또 한 신도와 함께 명동역까지 걸어가서 의정부행 전철을 타게 된 것이다.
2년 전에 수유동성당에서 중고등부 학생 10여 명이 미국에 있는 문 신부의 성당에 와서 며칠 묵고 갔다. 그때 문 신부가 한국을 떠난 뒤 근 40년간 한번도 돌아가 보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초청했기에 이번에 답례 차 온 것이다. 문 신부는 한국을 떠나면서 다시는 그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그 뒤 갖은 고생을 해서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신학대에 들어가서 신부가 되었다. 그 뒤 여러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하다 5년 전에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 산호제에 있는 한인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유동성당에 도착한 문 신부는 전교수녀의 안내를 받아 널찍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신부와 수녀, 그리고 신도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 신부는 저도 모르게 한 사람에게 눈이 갔다. 아련한, 그러나 아픈 기억…….
전교수녀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웃는 얼굴로 문 신부를 바라보면서 성직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해 준다.
그 다음으로 신도 총회장 김철주 요아킴, 선교분과 회장 박신국 요셉, 간사 박상묘 아가다…….
문 신부는 한 사람 한 사람 인사하면서 따라가다가 멈칫했다.
…… 누구?
문휘준 바오로 신부는 박상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숱 많은 은발의 활달한 모습의 신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전교수녀가 달려가서 맞이한다. 그리고 문 신부 앞으로 이끌고 왔다.
“저번에 말씀드린 문바오로 신부님이세요. 이쪽은 현베드로 신부님. 옆동네 쌍문동성당 주임신부님이세요.”
현 신부가 가까이 다가와서 큼직한 손을 내민다. 문 신부는 그 손을 마주잡았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여행은 어떠셨습니까?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
현 신부는 성격이 꽤 활달해 보였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치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해 주었다. 그 바람에 문 신부는 40여 년 전의 아련함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문 신부의 마음은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 신부는 할 수만 있다면 그 여자와 눈 마주치는 것은 피하려 했으나 대화 도중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눈이 가면 갑자기 숨이 탁 막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 여자의 웃음 한 조각, 숨소리 한 결 하나하나가 모두 확대되어 문 신부의 눈과 귀를 파고들었다.
이러한 문 신부의 상태와는 달리 회의실 안은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미국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왔었던 신부와 신도가 문 신부와 덕담을 주고받았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문 신부와 여러 가지를 묻고 답하고 있었다.
문 신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다. 여자가 옛 그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이름을 들어서가 아니다. 근 반세기 전에 보았던 사람. 그러나 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본능처럼 그리로 눈이 갔고 옛 기억이 떠올랐으며 또한 마음이 아팠었다. 이름을 듣기도 전에 알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기억에서 지워졌던 사람. 자신의 청춘을 지운 사람.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다고 생각한 사람.
문 신부는 마음으로 기도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여자의 미소와 그 재잘거림이 유난히 크게 문 신부의 귀에 울려오고 있었다. 여자는 아마도 문 신부와 연배가 비슷할 터이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겠지. 그러나 겉으로는 그보다 10년은 더 아래로 보였다. 게다가 문 신부를 바라보는 그 얼굴은 소녀처럼 볼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아니다. 눈을 돌리자.
문 신부는 벽에 걸린 십자가로 눈을 향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
문 신부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이……, 마음이 흔들린다.
안 돼. 제발.
그러나……, 자꾸만 떠오르는 한 장면.
1970년대. 대승리 그 새벽의 기억……. 왜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일까……?
문 신부는 눈을 감았다.
“아유, 시차 때문에 힘드시지요?”
전교수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담아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건넨다.
문 신부는 하루 종일 여러 사람 만나고 성당에 대한 설명 듣고 미사 드리고, 그리고 나서 밤늦게 손님숙소로 들어갔다.
문 신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성호를 그렸다. 기도를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도 기도를 했다. 힘겹게 기도를 이어갔다.
기도 중간중간에 한 이름이 자꾸 끼어들었다.
상묘. 게다가 그가 짓던 미소까지.
문 신부는 계속 기도했다. 기도했다. 아니, 기도하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문 신부는 눈을 떴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느님은 왜 나를 이곳으로 이끄신 것인가…….
하느님은 그 사람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계신다.
내가 태평양 저 멀리에 있는 것도 아시고.
그 거리는 지구 둘레 4만km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9천km 조금 넘으니까.
하느님은 그 거리를 좁히셨다. 아주아주 가까이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신 것인가? 물론 선한 목적이겠지.
시험인가?
내 믿음을 굳게 하시려는 뜻.
문 신부는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다음날 오전 미사와 모임을 마치고 몇몇 신부와 함께 절두산성당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문 신부는 지하철을 타고 가자고 했다. 합정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갔다. 조금 걸어가서 마을버스 종점을 지나 그 위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가니 곧바로 절두산순교성지가 나왔다. 오후의 미사시간은 3시. 그전에 주임신부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듣고 여기저기 안내받아 살펴보았다.
성물방을 둘러보고 사무실에 잠깐 들른 뒤 오후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본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려는데 저쪽에서 숨 가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전교수녀가 종종걸음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문 신부가 반가운 얼굴로 미소를 보내는데 수녀 뒤쪽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여자. 상묘.
미사를 마치고 본당을 나서는데 언제 왔는지 현 신부가 다가온다.
“좀 늦게 와서 따로 미사드렸습니다.”
현 신부가 시원시원하고도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저녁식사는 저희 성당에서 하십시다. 특별한 일 없으시죠?”
여자가 현 신부를 바라본다. 그런 다음 문 신부에게 눈을 돌리며 미소 짓는다.
“뭐 별일 없을 겁니다만…….”
문 신부는 전교수녀를 돌아다보며 대답을 했다. 수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서 저도 모르게 문 신부의 눈은 여자에게 향했다. 잔잔한 미소가 흐르는 그 얼굴로.
저녁식사는 꽤 성대했다. 수유동성당과 쌍문동성당에서 10여 명이 참석했다. 모두가 신부와 수녀뿐이었고 그 여자는 없었다.
그 여자? 문 신부는 마음속으로 멈칫했다. 이 자리에서 왜 그 여자를 찾는 거지?
문 신부는 미소 지으며 주위 사람들과 대화했지만 마음으로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유동성당 전교수녀가 핸드폰을 꺼내어 들여다보더니 옆 사람에게 나직이 무슨 말인가를 하고는 일어서서 방을 나간다.
잠시 후 전교수녀는 커다란 은쟁반에 무엇인가를 잔뜩 담아 가지고 들어선다. 그 뒤로 한 사람이 보이는 듯했다. 전교수녀는 돌아다보며 들어오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사양하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 전교수녀는 혼자서 들어왔다.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이 전교수녀에게 쏠렸다.
“아가다 님이 가져오셨네요. 맛있는 특식입니다. 그런데 아가다 님은 들어오지 않고 그냥 가셨어요.”
방 안의 사람들이 모두 ‘오’하며 탄성을 질렀다.
늘 저렇게 봉사하시네. 고마워라. ……
전교수녀가 은쟁반을 들고 와서 식탁 한가운데 내려놓는다. 그 위에는 고풍스럽게 인쇄된 작은 종이 포장지에 과자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문 신부 옆에 앉은 젊은 신부가 돌아다보며 말을 한다.
“아담한 제과점을 하시는데 자주 가져다주십니다. 오늘은 신부님이 오셔서 더 많이 가져왔네요. 하나 드셔보세요. 맛이 일품입니다.”
신부는 그러면서 하나를 집어준다.
문 신부는 그것을 받아 포장지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옅은 회색과 연두색으로 인쇄된 그림. 알갱이 빽빽이 영근 보리, 그리고 그 옆에는 넓은 들판이 멀리까지 펼쳐지고 또 그 옆으로 작은 길이 아련히 사라지듯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한 옆에 옛 글씨체로 ‘추억의 길’이라고 인쇄된 글자.
문 신부는 저도 모르게 전교수녀가 들어온 문 쪽을 돌아다보았다. 그 문은 마치 옛 기억을 차단하듯 닫혀 있었다. 더 이상은 생각금지라는 듯이.
문 신부는 고개를 돌려 전교수녀를 쳐다보았다. 마침 전교수녀도 문 신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 퍼지는 은은한 미소. 문 신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다음날 문 신부는 아침부터 몹시 열이 났다. 갑자기 추워진 겨울날씨로 인해 감기에 걸린 것이다. 12월 중순이 넘어가는 계절인데다 전날 밤부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온 세상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10년 만에 가장 아래로 수은주가 떨어졌다고 한다.
원래 그날은 하루 종일 여러 일정이 있었다. 새벽 일찍 원주와 제천 사이의 신림역에서 가까운 용소막성당에 들렀다가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가기로 했었던 것이다. 1898년 한 초가집에서 기도 모임으로 시작되었다가 1915년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예배당이 세워진 용소막성당. 유형문화재 106호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문 신부가 꼭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은 곳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열이 많이 오르고 머리도 어찔하여 문 신부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전교수녀가 하루 종일 문 신부의 숙소를 들락날락하며 돌봐준 덕에 저녁이 되자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 신부는 몸을 추스르고 간신히 일어나 기도실로 갔다.
문 신부는 기도했다. 몸은 휘청이는 것 같았지만 머리는 맑았다. 그것이 오히려 기도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한참 만에 문 신부는 기도실을 나섰다.
숙소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어머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전교수녀가 뛰어오고 있었다.
“아니, 왜 벌써 일어나셨어요? 좀더 누워 계시지.”
문 신부는 대답 없이 미소만 보냈다.
“아무것도 못 드셨죠? 그렇잖아도 미음 갖다드리려고 오던 참인데…….”
전교수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다본다.
문 신부는 그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그 여자.
그 여자가 대여섯 걸음 떨어진 채 서 있었다. 손에는 무엇인가를 든 채.
전교수녀가 그쪽으로 한 발자국 떼며 손을 내밀자 여자가 다가와서 눈처럼 흰 보자기 덮은 쟁반을 내민다. 무엇인가가 올려져 있었다.
전교수녀가 쟁반을 받아서 다시 문 신부 쪽으로 돌아섰다.
문 신부가 전교수녀를 바라보자 쟁반을 살짝 내미는 듯해 보인다.
“아가다 님이 맛있는 미음을 쑤어오셨어요.”
전교수녀의 맑고 선한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문 신부는 다시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교수녀도 여자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아가다 님은 요리를 아주 잘 하세요. 제과점도 하고 있거든요. 젊었을 때 제과점에서 일했었다나 봐요. 어제 가져온 과자…….”
“대승리…….”
문 신부는 깜짝 놀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이 입술에서 새어나온 것이다.
전교수녀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문 신부에게 고개를 돌린다. ‘무슨 말?’ 하는 듯했다.
여자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다. 눈빛이 한번 반짝였나?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문 신부는 슬며시 숙소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전교수녀도 여자 쪽을 바라보며 숙소로 가자는 동작을 한다.
다음날 문 신부는 하루 종일 성당 안에 머물면서 쉬었다. 다행히 이틀 만에 감기는 거의 나은 것 같았다. 저녁 8시 미사를 끝낸 뒤 숙소에 가서 조금 쉬다가 기분도 전환할 겸 거리로 나가 걷기로 했다. 전교수녀가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문 신부는 괜찮다고 하고서 혼자 성당을 나섰다. 전교수녀의 근심어린 얼굴을 뒤로 하고서.
성탄절을 앞둔 계절. 휘황한 장식과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는 성탄송.
차량 붐비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 신부는 옛 기억들을 떠올렸다. 휘준이 떠날 때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모습. 너무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는 정감만은 똑같았다. 오래 전 이 땅을 떠날 때 휘준은 마음이 아팠었다. 그리고 지금도 문 신부는 마음이 아팠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아린 것이다.
40년 시간의 단절. 그러나 그 40년 단절면의 이쪽과 저쪽이 밀착되어 버린 것 같았다. 20대 청년과 60대 말 노년의 세월이 간극 없이 연결된 것이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이.
문 신부는 인파 많은 밤거리를 걸으면서 대전의 대종로 거리를 떠올렸다. 봄날의 한낮 포근히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받으며 걸었던 그 길. 수많은 청춘들이 휘준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걸어오고 흘러가고 했다. 그날의 기억, 휘준은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한 생명이 절규하던 그날, 그러나 휘준 주변의 청춘들은 화려했다. 이 밤 성탄을 앞둔 청춘들처럼.
봄날의 나른한 햇살 대신 풋풋한 눈발 간간히 흩날리는 휘황한 거리. 지역정신 담긴 화려한 무늬가 장식된 보도블록을 걸으면서 문 신부는 오히려 매연 버스 지날 때마다 누런 흙먼지 일던 그 황량한 한길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날 휘준은 자신의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었다. 아니, 터뜨리려 했다. 심장 대신 염통을. 사실 그날 휘준은 염통을 폭발시켜 회색이든 붉은색이든 파란색이든 그 파편들을 하늘 높이 날려 올렸어야 했다. 그 뒤에 있었던 수치를 생각하면.
그러나 휘준은 그날 이후 전혀 다른 상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감옥으로, 미국으로.
문득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나 하고 문 신부는 의문이 떠오르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눈을 들어 앞을 보았다.
화려한 성탄장식을 한 상점들 사이에서 수수한 조명으로 간판을 한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제과점.
‘추억의 길’
과자 포장지에서 본 그 상호가 은은한 회색과 연두색으로 장식된 간판. 눈에 잘 띌 것 같지 않은 색으로만 되어 있었지만 화려하고 요란한 주변의 간판들 속에서 오히려 더 눈길을 끌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창에는 과자 포장지의 그 그림이 역시 은은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유리창 안에서 빛나고 있는 성탄트리만 아니었다면 계절을 짐작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문 신부는 상점을 망연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 그 앞을 지나는 사람. 그들 사이에서 문 신부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 너머에서. 유리창 장식그림 너머에서. 성탄트리 너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문 신부의 눈앞을 가렸다. 그러나 문 신부는 그대로 꼼짝 않고 서서 찾고 있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추억을. 그 추억 속의 한길을.
추억의 길.
휘준이 서 있었던 그 길. 하늘과 땅이 온통 암흑으로 덮여 있었던 그 새벽, 제과점을 마주보고 서 있었던 젊은이.
문 신부는 생각했다. 지금 나는 그때 그 젊은이가 아니잖아.
문 신부는 옛날처럼 피식 웃으려 했다.
그 순간 ‘추억의 길’ 유리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나왔다. 휘준이 의식하던 사람.
여자가 유리문을 붙잡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문 신부는 여자를 확인했다.
여자가 손으로 잡았던 문을 놓는다. 이쪽으로 한 발 떼었다. 그리고 또 한 발.
문 신부도 발걸음을 옮겼다.
행인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가까이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네 발걸음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은 멈춰섰다.
그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간다.
행인들 사이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 다시 오셨군요.
- 오라고 하셨죠.
- 너무 오래 걸리셨네요.
- 그래도 왔습니다.
- …….
- …….
“감기 도지면 어쩌려고 나오셨어요? 날이 많이 추운데…….”
“괜찮습니다. 덕분에 다 나았습니다.”
“들어오시겠어요? 여기 더 계시면…….”
“…….”
“…….”
“저 간첩 아닙니다.”
“네……?”
문 신부는 다음날 오전 10시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했다. 그 여자에 대해 고백했다.
그리고 미사 내내 마음이 갈등했다.
문 신부는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 음성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했다.
문 신부는 머리가 무거웠다.
마음속으로 내린 결정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거짓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을 속였다.
교회의 품으로 도피했을 뿐이다.
미사 후에 문 신부는 주임신부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주임신부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지나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문 신부를 바라보며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아직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말자고 하면서.
문 신부는 이틀 뒤 오후 비행기로 미국으로 떠난다.
그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
미국에서 올 때는 그러한 계획이 없었다. 수유동성당에서 머물다 이곳과 함께 미리 세워둔 계획대로만 움직이고 곧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바뀌었다.
휘준은 미국으로 떠난 뒤 한국과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 세상으로 나가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 외부로 향하는 모든 문을 닫았던 것이다.
당시 휘준은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환경을 부정했다. 자기 자신도 부정했다. 자신이 저항한 정부도 실은 자기 자신과 동일체라고 생각했다. 휘준은 그날, 대승리 제과점 앞에 갔었던 날 그곳에서 심장을 터뜨렸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못한 자신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특히 그 여자에 대한 고뇌를 해결하지 못해 오랫동안 갈등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생명을 버리는 대신 신앙의 길을 택한 것이다.
신부가 된 이후 한동안 휘준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길을 원하는 것인지. 만일……, 만일 도피를 위해서 신앙을 택했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속이는 일이다.
문 신부는 이 점을 늘 고뇌했다.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내면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그것 때문에 문 신부는 세상에 나오지 않고 수도원에서만 지냈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고 60대로 넘어가자 주변의 여러 권고도 있고 문 신부 자신도 이제는 스스로를 놓아주어야 할 때라 생각하고 한인 성당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수레바퀴는 서서히 도는 듯해도 결국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하느님은 휘준의 길을 막지 않았다. 그 길에서 늘 동행하셨다. 그리고 문 신부의 때를 기다렸다. 문 신부가 알지 못하던 그 시기가 될 때까지.
지금 문 신부는 하느님이 자신에게 열어준 길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