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데?' 싶다면 맞아요, 당신입니다!!
며칠 전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전 직장에서 동료로 만나 이제는 직장 밖에서의 생각도 선뜻 꺼내보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는데요. 지금도 서로를 '00님'이라고 부르고 처음 만났을 때의 깍듯함(!)이 있는데 대화 주제는 날로 다채로워지는 것이 참 좋은 사이랍니다. 이번에 만났을 때 "좋은사람도감"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의 사례 100가지를 모은 책이라고 하는데- 가게에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할 때 야무지게 박수 쳐주는 사람, 시리에게 존댓말로 말을 거는 사람 등 너무 사소해서 스스로를 비롯해 주변 사람 여럿이 떠오르는 사례들이었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했을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 사람, 사람 참 좋지!' 생각했을 지은이들이 모두 무척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사람'에 대해, 유니콘 같은 한 사람을 떠올리는 것보다 다양한 사람에게서 각자의 스승같은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장에서 스승의 모습들을 찾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직장이기도 하고, (직장을 옮긴 후에 더 여실히 느끼지만) 경험이 부족해 보고 배울 사람이 찾는 것이 제게 요긴한 지름길이 될 테고요.
(참고 1) 좋은 사람 != 착한 사람. 제가 닮고 싶은 사람의 도감에 좀 더 가깝습니다.
(참고 2) 사소한 순간을 캐치하는 것이 묘인 바- 부러 더 별 것 아닌 듯한 순간을 작성해보려고 했는데,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 복 탓(?)에 그러지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써봅니다.
1. '저는 모르지만 00님이 아실 수도 있어요'라고 다음 갈 곳을 알려주는 사람
입사 직후에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담당 도메인의 최신 정책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간의 도메인 변화 히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 정말 많은 분들께 질문하며 도움을 받았는데요. 아무래도 담당자도 바뀌어가며 개선되었던 도메인인 터라, 이 시점까지의 히스토리는 A가 아는데 그 다음부터는 B가 알고- 하는 부분들도 꽤나 많았습니다. 그 때 참 감사했던 분들은 "저는 그 부분은 모르겠네요."에서 끝나지 않고 "저는 모르지만 그 다음에 B가 이 도메인을 맡았습니다."라고 다음 갈 곳을 알려주는 분들이었습니다.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정책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담당했던 사람으로부터 전해듣는 풍부한 맥락과 경험담도 참 소중한 터라 결국 역대 담당자들을 한번씩은 만날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았답니다.
2. 회의록에 참고 문서 링크를 붙여주는 사람
회의 주제에 관련된 히스토리를 회의 참여자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 회의록에 댓글로 슥 참고 문서 링크를 붙여서 더 궁금한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회의는 '함께 검토'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라 똑똑해서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3. 기대효과와 리스크를 함께 말하는 사람
'일이 되게' 하기 위해 그 일을 달성했을 때의 기대효과를 납득시키고 함께 으샤으샤 힘 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위험 요소를 맞닦뜨렸을 때 그걸 해치울 수 있도록 일으켜주는 것이라고 요즘 참 많이 느끼는데요. 그러려면 리스크가 서프라이즈여서는 안 됩니다. 정확도야 떨어질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어야 하지요. 당장 일을 빨리 시작하고 싶을 때는 부러 사람들을 걱정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초반에는 리스크를 (알면서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종종 보았고, 부끄럽지만 저도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이 일이 안 될 이유'를 떠올리기보다, '되어야 할 이유'부터 생각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게 효과적인 단계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품 복잡도가 높아질수록 리스크를 파악하는 게 곧 이 일을 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기대효과에 대한 질의응답 만큼이나 리스크에 대한 질의응답도 충분히 갖고, 구성원들이 심적으로 대비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결국 이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팀의 지구력을 길러낼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답니다.
*이건 별도의 주제로 브런치 글을 한 편 작성해볼게요.
4. 요청사항 / 질문의 긴급도를 알려주는 사람
발신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하나이지만 수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러 개의 요청사항 / 질문이 섞여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그 안의 우선순위를 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답변 수신 희망일자나 우선순위를 함께 알려주는 사람이랑 일하면 일의 진행 속도가 높아지는 느낌입니다.
5. 인비 보낼 때 상대 캘린더 빈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
구글 캘린더 모바일 앱에서 여러 사람의 시간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탓에, PC에서 인비를 보내는 경우에 할 수 있는 배려이기도 한데요. 조정하기 어려운 다른 일정과 겹치는 경우 시간 변경을 재요청해야 하는 상대의 시간과 수고를 아껴주는 배려라- 특히 고맙고 좋은 행동으로 느껴져요.
6. 업무 툴은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
저는 운 좋게도 대부분의 회사에서 같은 업무 툴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슬랙, 노션. 누군가에게는 정말 낯선 툴일 수 있고 그래서 처음엔 헤맬 수 있습니다. 잘 모르겠는데 매일 사용해야 하니 초반엔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이럴 때 혼자 알아볼 방법도 많지만, 그래도 모르겠다면 언제든 물어봐도 괜찮다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요. 이런 사람을 동료로 만났을 때 절로 기분이 좋아져요!
7. 적시에 회의 주제를 환기시켜주는 사람
어릴 때 부모님한테 정말 여러 번 당부를 받았던 가르침이 '남의 말 끊지 말기' 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대 말을 끝까지 듣는, 제 인생에서 대부분은 좋은 결과로 돌아온 습관을 갖게 되었는데요. 이게 과하게 발현되면 일에서 안 좋은 경우가 생겼어요. 바로 회의 중 이야기가 산으로 갈 때 끊을 타이밍을 늦게 치고 들어가는 케이스였습니다. 그래서 회의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시에 목소리를 내는 동료들을 보면서 저 점을 꼭 닮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밀도 높은 회의로 우리 모두의 시간을 아끼는 것도 배려이니까요.
8. 좋은 게 좋은 거지~ 를 경계하는 사람
쉽고 맘 편하게 갈 일을 굳이 어렵게 만들 필요도 없지만, '정말 이게 맞아?'를 한 번이라도 자기 머리로 스스로 의심해보고 필요할 때 용기있게 반기를 드는 사람이 일할 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게 아니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소신껏 애써서 의견 내는 사람을 닮고 싶고 좋아한답니다.
9. 나이가 아니라 역할로 존중하는 사람
얼마 전에 정말 닮고 싶은 동료를 뵈었는데요. 저와 15년 이상의 연차 차이가 있고, 한 도메인을 깊게 경험한 시니어 개발자셨습니다. 제가 그 도메인의 스쿼드 PO로 합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두고 1:1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내심 '주니어 연차의 PO가 온다고 하니 싫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나이나 연차 때문에 제가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러지 말고 소피가 PO로서 저를 잘 견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제 역할에 대한 존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제 직무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 오래 기억하고 싶은 '좋은 사람'의 순간이라 기록해둡니다.
10. 출장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는 사람
지난 주에 도쿄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태어나 첫 출장이라 철없이 설렌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요. 제 마음을 알았는지 한 동료가 출국 전에 공항에서 챙겨 마시라며 공항에 있는 카페의 음료 기프티콘을 보내줬어요. 사실 출국 때부터 바빠서 음료를 사먹지는 못했지만, 동료의 배웅을 받고 '가서 고객 인터뷰 진짜 열심히 하고 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이런 모습을 닮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2시에 노트북을 열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자정이 넘어 발행 버튼을 누릅니다. 아! 사이 시간 내내 글을 쓰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밥도 먹고 춤 학원도 다녀오고 산책도 하고 왔는데요. 내내 직장에서 만나서 감사했던 좋은 사람 상을 떠올렸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직장 생활의 보람을 새삼 다시 느꼈어요. 행복한 직업인이 되고 싶었는데, 이 생활을 함께 해주시는 분들 덕에 좀 더 수월하게 그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을 발견한 횟수만큼, 일상이 행복해진다!" 행복한 마음으로 내일부터 또 새 한 주 열심히 제품 만들어봅시다.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