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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우 Nov 09. 2024

82년생 김지영

1장. 여자 마흔, 정체성 위기

이름은 보통 할아버지나 아버지 등 집안 어른이 지어줍니다. 대부분 좋은 뜻을 담아서 희망적이고 잘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 음양오행을 고려하기도 하고 발음했을 때 이상하지는 않은지도 생각해서 짓습니다. 


이렇게 귀하게 지어진 자신의 이름이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누구누구의 엄마, 누구누구의 아내로 불립니다. 서서히 자신의 이름은 잊혀지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지 오래입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세련되고 예쁜 이름도 많습니다. 하지만 내 이름도 생각해보면 이쁘고 정감이 갑니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말해줍니다. 또한 그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이런 소중한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면 그만큼 반가운 일이 없습니다. 마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우연히 서랍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체성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 이름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내 이름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한자로 되어 있다면 한 글자 한 글자가 어떤 뜻이고 어른들께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라가는 마음이 담겨있는지 찾아보세요. 누구누구의 엄마, 누구누구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그녀

저는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두 달 전 부산의 한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에 참석한 어느 참석자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그녀는 첫 시간에 ‘슬픔’이라는 주제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을 때 글을 쓰고 발표했습니다. 글쓰기 수업의 첫 번째 시간은 처음 수강생들을 만나는 시간이어서 미리 글을 써 오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업 중에 글을 씁니다. 


그녀는 장소나 사람이 낯설기도 한 첫 시간이지만 글을 쓰고 씩씩하게 자신의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가 그녀는 갑자기 흐느껴 울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 먹고 산책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결혼했고 아이도 있는 엄마입니다. 


그녀는 산책하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났을까요? 당시에는 이 부분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남편과 아이의 뒷바라지만 하는 존재로만 느껴져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요.


글쓰기 수업에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섭섭함이나 억울함이 얼마나 억눌려 있었으면 그렇게 갑자기 눈물이 났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쓰기 수업의 제목은 ‘치유의 글쓰기’였습니다. 제목처럼 잘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은 그 누구에게도 소중합니다. 이런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 노트에 이름을 정성 껏 한 글자 한 글자 써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나의 이름을 내가 먼저 따뜻하게 부르고 쓸 때, 나에 대한 애정이 생깁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다른 사람도 나를 존중하게 따뜻하게 대할 것입니다. 






82년생 김지영

몇 년 전 봤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 그녀는 올해로 마흔이 조금 넘었습니다. 지영은 결혼 전에는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녀는 같은 직장의 선배인 여자 팀장처럼 결혼 후에도 아이 낳고 복직해서 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정성껏 아이를 키우지만 때때로 우울감을 느낍니다. 남편은 일찍 출근하고 퇴근해서 아이도 잘 돌봐줍니다. 하지만 대부분 육아는 자신의 몫입니다. 친정엄마가 가끔 와서 도와주지만 아이에게 신경 쓸 게 많습니다. 


이런 지영에게도 세계 일주를 한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육아에 지치고 가끔 우울감을 겪으며 자신의 꿈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한번은 시댁 가족 모임에서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친정엄마가 빙의한 것처럼 “사부인, 저도 제 딸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이상 증상을 보입니다. 시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비롯한 가족을 보고 있는 장면을 보고, 친정엄마가 질투하는 듯한 말을 한 것입니다. 지영은 이 순간 자신도 엄마와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내며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나 아내도 좋지만, 때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나 자신을 누군가 그 자체로 사랑해 주길 바라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건 엄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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