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남리 전설
이영진
부남리. 여그는 한질에서두 30분 넘게 언덕깨비를 올라야
마을이 나오는 산골이래요. 집들은 젠부 바다를 향해 있시오. 여그 사투리를 가마이 들어보면 시끄럽고 억세요.
그래도 여그 사람들 말뽄새가 어수룩하고 순박하고 정겹고 뭐 그렇소. 오래된 동네라서리 이 마을엔 많은 사연이 있디요.
1. 이사의 규칙
마을 아래 송영감 부부는 할머이가 죽어 나가자, 쐬주만 퍼먹던 하라바지도 뒤따라 가 빈집이 되었드래요. 아들들이 멫 번 왔다 가디이만 요즘엔 아예 왕래가 끊겨, 들고양이들이 삽니다. 이거이 시골 마을 이사의 법칙이래요 사람이 살다 떠나며는, 오래지 않아서 마당에 잡초가 자라구, 얼마 지나지 않아서리 들 고양이들이 이사를 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시 자연으로 돌아가지요.
2. 헛무덤
해신당 옆에 자그마한 포구가 있어서리 쪼만한 배로 먹고 살던 어부들이 메루치잡이 나서서 되우 큰 파도에 휩쓸려서는, 시신도 없는 헛무덤만 뒷산에 늘어 갑네다. 그리해서 이 바닷가는 늘 과부가 마이 살아, 사는 거이 되우 어렵소. 이거이 바다와 운명 같은 거 아니갓씀메. 바다에서 나서 바다로 가거나, 흙에서 나서 흙으로 가는 거이디요.
3. 이별
그 중에도 가슴 아픈 거이, 심성이 착하던 이장댁 데련님이 있었더랬시오. 이 파리하게 생긴 순댕이 앵경잽이가 군대 갔다 죽어 돌아와 장개도 못 가 본 체 마을 뒷산 지 하라바지 산소 옆에 묻혔고, 얼매 없어 이장댁도 집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드래요. 굿당도 열리고 좋은 데로 가라고 마이들 울고 했더래요.
4. 사랑의 끝
또, 어촌계장 딸래미는 얼굴도 예쁘장하고 엉뎅이도 실한 아이였드랬는데, 해안가 군인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입 맞추고, 옷에 손 넣고, 치매 올리고 남새시러운 꼴을 하는 걸 본 적도 있디요. 나는 몇 번이고, 그러면 안 된다 나뭇잎을 흔들며 만류를 했지만, 이 지지바가 도무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드라구요. 냉중, 미출하게 생긴 이 군인은, 어느 날 줄행랑을 놓아서, 이 정신나간 지지바가 밤꽃 피는 6월, 눈자우 벌게 개지고서는 해필 내 낭구 가지에 치매 입은 채로 목을 맸드래요. 안 된다고, 머스마는 앞으로도 얼매든지 있다고, 이라문 안된다고 내가 그렇게 외쳤는데도......
하눌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난 거이 아니겠슴가.
내도 이 지지바 매고 있느라고 얼마나 무겁고 아팠는지......
마이도 울었드랬시오.
그 일이 있고 나서 이 지지바 에미가 횃불을 들고와서리
이 재수없는 낭구 불 태워 없애 버려야 한다고 난리를 쳐서리, 이 숲이, 이 밤나무 숲이 몽창 없어질 뻔도 했디요.
여태꺼지 이 마을에 살고는 있습니다.
거의 실성한 채로.......마이도 늙었시오.
5. 결혼식
세월이 그리움을 지울 순 없습디다.
이사 간 이장집 아주머이가 어촌계장 집을 찾아와서리 죽은 딸래미 하구 자신 아들 하구 영혼 결혼식을 하자구 해서리,
이 둘의 결혼식을 해신당 옆에서 크게 열렸드랬시오.
마을 사람들 젠부 참석했지요. 하지만 군인들은 한나토 오질 않았시요. 예전에는 마을 한나 밖에 읎는 가게 어촌계장 집에서 쏘주도 사 가고, 라멘도 사 묵고 했는데 말이디요....
그눔의 군인 아새끼가 나쁜거이지, 군인 모두가 나쁜 건 아닌데 말이야요.... 또, 그렇게 세월만 흘렀시오.
6. 낭구의 꿈
이기 갱원도에서는 나를 낭구라고 부르디요. 가을이면 밤이 마이 열리드래요. 이 마을은 예부터 밤낭구가 많아서리 밤골이라 부릅네다. 그 중에서도 내를 왕낭구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내가 젤 키도 크고, 나이도 많고, 내 앞에 널찍하고 펜펜한 너럭바우가 있어서 그럽니다. 우리는, 우리 낭구는 새들과 바람과 다람쥐들과 어울려 잘 놉네다.
몇 번의 숭년에도, 몇 번의 베락에도 잘 전디던
내가 지난 여름 되우 쎈 바람에 내 가지가 잘리구, 부러져서리 더 이상 열매도 안 열리구, 잎사구도 달리지 않게 되었더래요. 고추도 여물지 않은 동네 얼라들이 내 나무 밑둥에 오줌을 갈기면서, 내를 보고 죽은 낭구라고 합니다만,
이는 인간들이 낭구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네다. 낭구는 꿈을 꿉네다. 그냥 잠을 자고 있을 뿐이디요.
언젠가 다시 따뜻한 봄이 오면, 새로운 잎사구가, 새 기운이 돋아날 거이라고 믿으며 은제까지라도 꿈을 꾸고 있을 뿐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