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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쓰는 팀장 Jul 31. 2021

처음 느낌 그대로

  몇 년 전 개봉된 ‘미드나잇 선’이라는 영화는 여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이 소녀가 앓고 있는 XP라는 질환은 100만 명당 1명이 걸리는 희귀병으로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피부암이 걸리거나 뇌 세포가 파괴되어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소녀는 어릴 적부터 외부와 단절된 채 2층 방 창가에 앉아 매일 창밖을 지나가는 소년을 보며 첫사랑을 시작한다. 소년이 지나갈 때마다 큰 나무 뒤로 소년의 모습이 사라질 때, 소녀는 ‘짜증 나는 나무’라고 항상 투덜거린다. 좀 더 소년의 얼굴을 오래 보고 싶은 첫사랑의 두근거림이다.      

  “매일 네가 창가에서 지나가길 기다렸어. 그때가 하루 중에 제일 좋았어.”라는 첫사랑의 고백은 영화 내내 우리의 첫사랑을 생각나게 한다. 그 느낌, 그 설렘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누구나 이렇듯 처음 시작이 있다.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 동기이며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교회를 다니는 여학생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남중을, 그녀는 여중을 진학했다. 학교 가는 버스를 매일 나보다 한정거장을 먼저 승차하였고, 내가 다니는 중학교가 가까워서 항상 내가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학교 가는 버스가 저 멀리서 보이면 그녀가 있는지, 없는지 밖에서 연신 살피며 그녀가 탔으면 얼른 버스를 타고, 그녀가 없으면 그녀가 있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녀를 한없이 기다리다 지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추운 날 아침 일찍 나와 그녀가 탄 버스를 기다려도 추운 줄 몰랐다. 학교 가는 버스에 워낙 많은 수의 학생들이 타다 보니 밖에서 그녀가 있는 버스를 구별하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은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는 절친에게 항상 같은 버스를 타라고 종용하였고 나의 친구는 버스 창문을 열고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 OO아, 기다~ 타라~”      

 그러면 나는 얼른 그 버스를 탑승하고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힐끔힐끔 거리며, 그냥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설렘만 가득 안고 등교를 하였다. 잠깐 짧은 순간이지만 매일매일 그 학생의 얼굴을 잠시나마 볼 수 있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하루 중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이렇듯 인생의 첫 경험은 항상 우리를 설레고 행복하게 한다.      

 

 대학에 들어와 IMF를 겪으며 어느덧 나도 졸업반이 되었다. 나라 전체가 불경기이고, 기업이 매각되고, 구조조정으로 평생직장이 없어지며 50대의 가장들이 줄줄이 퇴사를 하는 혹독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 취업은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고 나는 100개가 넘는 기업에 입사 지원을 했지만 면접도 보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 거의 부지기수였다. 그때쯤 모교 외래 교수를 겸임하시고, 은행 본점에서 근무하시는 교수님께 심부름을 갔다가 많은 수의 직원들이 창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렇게 직장인들이 많은데 ‘나 하나 일할 곳이 없다’ 고 생각하니 눈물이 맺혔다. 은행 로비 안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나도 일하고 싶다’를 10번 넘게 되뇌고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천신만고 끝에 나는 지원한 기업에 합격 통지를 받았고, 그 당시 가장 연봉이 높은 회사를 선택하고 취업을 하였다. 처음 출근하는 날,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감,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은행에서 잊지 못할 결심을 한 나는, 나의 다짐처럼 정말 원 없이 일 할 수 있었다. 첫 직장생활이라 많이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은행에서의 나의 경험은 첫 직장을 시작하는 나의 초심이 되었다. 이렇듯 첫 경험은 항상 우리를 설레고 행복하게 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팀장으로 승진하였다. 입사 후 처음으로 관리자로 승진하게 된 것이다. 중간에 이직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중간관리자로서의 승진은 정말로 내 인생에서 기쁜 일 중 하나이다. 처음 팀장이 되고 나서 설렘과 동시에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고 부러움과 시샘을 받으며 첫 관리자로서의 직무를 시작하였다. 이때의 흥분과 가슴 두근거림은 한동안 숙면을 못 할 정도였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에는 항상 처음이 있다. 첫사랑, 첫 직장, 첫 이별, 첫아이 처음이라 설레고 행복하고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도 앞선다. 이제 중년의 인생에서 무엇이 더 처음이 있으랴 생각하지만 아직 우리 인생에도 처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처음을 많이 경험했다고 모든 것의 처음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은 아니다. 처음은 항상 어설프고 힘들지만 처음의 마음과 설렘은 항상 우리에게 행복한 긴장감을 준다.  이제 처음이 사라져서 인생을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는지...     

 첫 사랑한 아내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주위 사람이, 나의 일이 예전보다 더 애틋하지 않고 열정이 생기지 않는 다면 부디 처음으로 돌아가 초심의 설렘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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