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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불편하게, 조금 더 소중하게

by leeway


"이걸로 하께요"


마음이 심란했다.

글씨가 잘 안 보인다.

직원들이 들고 온 서류도 멀찌감치 밀어내며 봐야 했다. 갑갑했다. 참다 참다 할 수 없이 안경점엘 갔다.


역시나, 노안이다.


실망한 듯, 풀 죽은 나를 보던 안경점 사장님이 한마디 건네신다.


"심한 건 아니에요! 심한 분들은 진짜 안 보인다고 오세요. 조금 일찍 노안이 오긴 했지만, 관리하시면 나빠지는 속도는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럴까요..?"


"그럼요!, 안 보인다고 자꾸 끼시면 더 나빠져요, 꼭! 필요할 때만 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노안 안경을 맞췄다. 고상한 말로 '돋보기'다.

그 후 언제나 나와 함께한다.

처음, 속상한 마음이 컸다.

내 또래들 중 '고상한 돋보기'를 끼는 사람은 아직 드물다. 아니,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엔 "없다!".


그래도 안 보이니, 끼게 된다.

새로운 세상이다.


잘 보인다.


그렇게 계속 끼게 되니 눈이 점점 나빠지는 듯하다.

가까이만 안 보였는데, 멀리 있는 세상도 점점 흐릿하다.


문득, 사장님 말이 생각났다.


"꼭! 필요할 때만 끼세요!"


"아!"


안약도 챙겨 먹고, 안경 끼는 횟수도 차츰 줄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안경을 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조금 불편해도 그냥 본다.

글자가 두 개, 세 개 겹치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웬만하면 그냥 본다.


그렇게 참아본다.

거짓말처럼 안경 찾는 횟수가 줄고 있다. 거의 안 찾는다.


그러다 문득,

책상 위에 보이는 건 뭐든, 하나는 그려야겠다 마음먹은 순간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뽀얗다.

소심한 듯 책상 한구석, 삐친 듯 앉아있는 듯하다.

다시 정성스레 닦아 안경집에 넣어준다. "좀 쉬어~"



처음엔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애지중지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그 가치를 잊기 쉽다.


하지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가까이 있기에,

오래되었기에,

익숙해졌기에,


소중한 무언가의 가치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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