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 쉼

나를 위한 마침표

by leeway

의도치 않게, 어쩔 수 없이 찾아온 쉼이었다.

일을 마무리하고 편하게 쉬고 싶었지만, 주판알을 아무리 튕겨봐도 그럴 틈이 없었다.
결국,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어제의 끝자락에서야 겨우 오늘의 쉼을 얻었다.


다음 달도 쉴 틈 없이 달려야 한다.

억지로라도 하루,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침.
고민할 틈도 없이 집을 나섰다.
출근하듯, 그러나 목적지는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그러다 만발한 노란 금계국을 만났다.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창문을 내리고, 선루프를 열었다.


상쾌한 공기, 반짝이는 햇살, 일렁이는 금계국 사이로 흘러드는 바람에 취해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눈치 보며 얻어낸 하루의 쉼.
조금은 불편했던 마음을 햇살 속으로, 바람 사이로 흘려보낸다.


눈을 감는다.

바람의 결, 햇살의 따스함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그 편안함을 오롯이 느껴보는 시간.


문득, 읽던 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다.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출근한 시간, 나는 도서관에 있다.

이 행운이 괜히 감사하다.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물욕 대신 책욕으로 가득 채워,
한 아름 책을 짊어지고 나왔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이번엔 영화관이 떠올랐다.

조금 먼, 하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작은 영화관.
허기진 배를 위해 김밥 한 줄을 포장했다.


도착은 영화시작 한 시간 전.
영화관은 산 중턱에 있다.
탁 트인 주차장, 열린 창문.

바람과 햇살이 또다시 찾아온다.


책을 펼치다 잠이 들었다.
아마도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나 보다.


그 영화관은 작고 아담했다.
좌석도 적고, 가격도 착하다.
뷰는 말할 것도 없다.


관람객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가장 중앙, 가장 정면의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엔 아무도 없다.


말 그대로, 황제 관람.


백만 년은 된 것 같다.
영화관에 온 게.


영화광은 아니지만, 이 시간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다음엔 메모도 해봐야지. 기억해두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루 종일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운 오늘.

그 느낌 하나로 쌓여 있던 힘듦이 조금씩 비워지는 느낌이다.


의도치 않은 쉼이었지만,
그 쉼 덕분에 마음속에 마침표 하나 찍는다.

5월, 이제 안녕.


바빠질 6월, 이미 예고돼 있지만
“5월도 버텼는데, 6월쯤이야.” 그렇게 여유 한 번 부려본다.

그럼에도, 내일까지는 마침표. 쾅!


오늘의 쉼은 조용히 속삭인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머무르는 지금도, 모두 다 널 위한 시간이야.”
“그러니 마음의 짐은 잠시 내려두고, 이 여유를 누려보렴.”



keyword
작가의 이전글꾸준함이 습관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