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그때의 나를 돌아본다.

by leeway

기다림, 그건 나에게 늘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내가 참 좋아하는 셋째 외삼촌과 피자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외삼촌이 대학 입학 후 맛난 거 한 번 못 사줬다며 연락해온 거였다. 그렇게 우린 아마도 점심시간쯤 만나기로 했던 듯하다. 기분 좋게 룰루랄라~ 약속 장소로 향했고, 아마 10분 정도는 일찍 도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외삼촌은 약속 시간이 되어도 오질 않았다. 10분이 더 흘렀을까? 그때 나의 인내심은 딱 10분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 10분 뒤,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있지 않아 외삼촌이 집으로 연락을 해왔지만 나가지 않았다. 약속도 안 지키는 사람이랑 무슨 피자냐며.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제멋대로였다. 조금 더 기다리면 어때서, 외삼촌이 그렇게 미안하다 했는데 끝까지 나가지 않았던, 완전 고집불통에 내 기준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철부지 20대였다.

그때 외삼촌은 일을 하고 있을 때였고, 아마도 회사 일이 녹록치 않았을 테니, 늦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다.


이제는 그 어리석은 기다림의 정의를 시간은 참 많이도 바꿔놓았다. 지금 나에게 기다림은 배려다. 아마도 그때는 상대에 대한 예의를 운운하며 나의 기준(10분)에 굉장한 정당성을 부여했던 듯하다.

철부지 어렸을 적 내 모습은, 나 스스로 익어가는 시간을 버텨내는 지금과 한없이 오버랩된다. 그때의 내가 아주 작은 지혜 하나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작은 지혜 하나 알지 못했기에 지금은 그 기다림이 배려라는 것을, 나의 내면을 다스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일찍 도착하더라도 정시에 도착한 상대를 위해, '저도 방금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품어낼 수 있기를.

늦어져 미안해하는 상대에게 '천천히 와요, 저도 가고 있어요'라는 따뜻한 배려 하나 담아낼 수 있기를.

그렇게 기다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답을 내린 지금, 나는 오히려 그 기다림조차 즐겁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세월의 힘이란 게 이런거 아닐까. 급하게 판단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몰랐던 마음의 여백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서툰 경험들이 나를 조금씩 자라게 했다는 걸 깨닫는 것.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기다림 속에 숨어있는 따뜻함을, 그 시간이 만들어내는 배려의 깊이를.

그리고 실수조차 소중한 배움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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