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파트 안과 산책로, 병원 그 이상을 다니지 않았다. 퇴원 후 병원을 다녀온 것만으로도 몸살이 났던 이후, 외출하기가 더욱 머뭇거려졌다.
그러던 내게 가장 애정하는 친구 B의 연락이 왔다.
"내일 오전만 일하고 반차 낼 테니까, 우리 경주 갈래?"
"시간 되겠어? 나야 좋지! 완전!"
늘 바쁜 B라는 걸 알기에,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그 말 속에 담긴 배려를 읽을 수 있었다. 계속 집에만 있는 나에 대한 그녀의 속깊은 마음이었다.
어제부터 갑자기 찾아든 가을, 어디든 한번 나가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함께 이 가을 속으로 가보지 않겠냐고 말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감당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 또한 지금 내게 던져진 과제 같았다.
지금까지 늘 "네가 운전해~"라던 그녀가 "오늘은 내 차 타고 가자!"라고 말한다.
이 또한 그녀의 세심함이다.
함께 카페에서 수다삼매경에 빠졌다가 대릉원과 천마총도 들렀다.
"얼마 만에 와 봤어?"
"오랜만에 오니까 좋지?"
"다음에 또 오자!"
끊임없는 그녀의 배려가 마음속 깊은 곳에 포근히 자리 잡는다.
누군가는 전화로 안부를 묻고, 누군가는 카톡으로 복귀를 궁금해한다. 또 누군가는 '어디가 좋더라'라며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안부도, 근황도, 정보도 아닌 '본래의 나'와 대화할 누군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병원에 입원한 누군가를 방문할 때는 환자가 아닌 인간 그 자체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p.277)
나에게 필요한 것도 '아픈 내'가 아닌 '본래의 나'로 대하는 누군가와의 대화였던 모양이다.
자신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할애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에게 마음을 다한다는 게 아닐까.
요즘 나에 대한 정의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친절'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절은
함께하는 이에 대한 배려이며,
함께하는 시간 동안 상대에게만 집중하는 몰입이자,
마음을 다하는 진심이다.
오늘 그녀에게 받은 건, 내가 생각하는 '친절'이다.
이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
'환자'가 아닌 '인간 그 자체'와 대화하는 그 따뜻함을.
시간을 내어 함께해주는 그 진심을 말이다.
"오늘 뭐해? 가을 구경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