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육성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모자를 쓰고 위생 복장을 입듯 꼼꼼히 몸을 감싼 후, 큰 보냉 백 가방에 시체가 쪼개어 들어간 일회용 통과 검정 비닐봉지를 넣었다. 외부와 노출된 복도식 빌라라서 혹시 누군가 보게 되면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도록 김유나의 집으로 옮길 때는 일상복을 위에 덧입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고 해도 둘은 마트 이름이 적힌 큰 보냉백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김유나는 경찰서로 전화했고 사건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동식은 김유나의 집에 조사를 나온 경찰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구경하는 주민인 것처럼 연기했다. 육성호는 동식의 집을 찾아갔던 그날 조사 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었지만, 김유나의 신고로 다시 경찰서로 긴급체포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육성호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기 때문에 경찰들은 그를 다시 잡지 못했다.
[ 유나야 너는 나에게 과분했어. 너는 늘 너보다 더 학력이 높고 예쁜 여자들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도 유나가 이 모습 이대로 나를 만나줬으면 했어. 그렇게 해줄래? 오늘이 내 사랑의 증명임을 너는 알겠지. 나의 첫 번째 팬 나의 뮤즈 유나에게. 사랑해. ]
시체가 들어있던 통에서는 육성화의 머리카락뿐 아니라, 아주 작게 부러진 식칼의 조각도 나왔다. 사건의 손가락들은 모두 육성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도 김유나의 말대로 헤어진 전 남자 친구의 보복으로 프레임을 잡아서 소식을 전했다. 한참을 이슈 거리가 될 것 같았던 사건은 다른 연예계 이슈로 인해 금방 내려왔다. 동식을 힘들게 했던 사건은 유력한 용의자가 조사를 받기 전 자살함으로써 종결되었다. 김유나와 동식은 며칠의 간격으로 살던 빌라를 각자 떠났다.
몇 달 뒤 동식의 연극이 끝난 오후. 공연을 보고 나온 김유나는 동식의 차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유나야. 오래 기다렸어?"
"퇴근길 한두 번 기다리나 이 정도는 기다릴 줄 알았어요~ 대학로 짬밥 제법 되니깐 걱정하지 말아요. 히히."
"그래도 기다려줘서 고마워. 오늘 너희 집 집들이 오는 친구들은 나도 오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머글 친구들이라서 연극, 배우 이런 건 잘 몰라요~ 그냥 지인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빠 얼굴에 적힌 배우! 글자는 제가 못 숨깁니다~”
김유나는 밝은 목소리와 함께 두 손목을 짤랑짤랑 흔들어 동식이 빛난다는 듯 표현을 했다.
"하하. 너무 띄운다. 아참, 뒷좌석에 집들이 선물 있어. 집에 도착하면 줄게."
오늘은 김유나의 집들이가 있는 날이다. 초대받은 동식은 좀 일찍 가서 김유나의 일을 거들기로 했다. 토막살인 사건 이후 김유나의 부탁은 좀처럼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김유나는 배우와 팬의 선을 지키는 것인지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부탁할 때는 늘 거절해도 된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런 김유나의 부탁을 수락하면 불편한 일은 없었다. 팬이어서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부딪히는 일도 없었고 항상 넘치는 리액션으로 감사함을 표현하여 부탁을 들어준 동식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실례합니다~"
"어서 오세요~"
김유나의 집에 인사와 함께 조심스레 들어오자, 김유나는 밝고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동식의 인사를 받아쳤다.
"친구들이 오기까지 2시간 정도 남았네. 뭐부터 해야 하나?"
손을 씻고 팔을 걷어붙인 동식은 부엌을 어슬렁거렸다.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요리들은 이미 다 되어 있어서 끓이기만 하는 정도의 간단한 일들이 남았고 동식이 도와줄 만한 일은 많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주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혼자 다 해놨네."
"어휴 그래도 우리 제법 오래 했어요. 남은 시간에 커피나 한잔해요. 앉아 있어요. 금방 내려올게요."
동식은 커피머신을 달그락거리는 김유나를 바라보다가 집을 돌아보았다. 전에도 봤던 기타가 거실에 서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기타 아직 배우고 있어?"
"아뇨. 그때랑 똑같은 수준이에요. 언젠가 다시 배울 생각으로 가지고 있는 거예요."
동식은 오랜만에 김유나의 기타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 기타를 몇 번 쳐보던 동식은 고개를 돌려 집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집이랑 가구 위치가 비슷하다."
"한국 집 구조가 다 그렇죠."
화이트톤의 인테리어와 검정 우드의 선반들 그리고 거실 한쪽 벽면이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나랑 취향이 똑같단 말이야."
"뭐라고 하셨어요? 원두 가는 소리 때문에 안 들렸는데."
동식은 거실 소파에서 김유나가 있는 부엌으로 다가갔다.
"나랑 인테리어 취향이 비슷하다고 한 거야. 물은 냉장고에 있나?"
냉장고를 연 동식은 물을 찾아 시선을 더듬더듬했다. 냉장고에 식재료들은 대부분 채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평소 건강식으로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오빠 차가운 물 안 마시잖아요. 정수기 있어요. 그걸로 줄게요."
"고마워."
냉장고 문을 닫으려던 동식은 묘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 냉장고를 열어 찬찬히 둘러보았다. 동식이 먹는 우유 브랜드와 같은 우유. 동식이 먹는 유산균 음료. 냉동실에는 동식이 먹는 것과 같은 브랜드의 닭가슴살이 들어있었다. 우연일까. 싸한 기분을 감춘 채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김유나에게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