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팬 [下]

by 이월


"나랑 먹는 게 비슷하네?"


"아. 그래요? 채소 좋아하는 거요?"


"아니. 그것도 그런데, 닭가슴살도 많네. 다이어트해?"


"매일 하는 게 다이어트는죠. 어휴."


김유나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띠며 물 한 컵을 건네주었다. 동식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따질만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서 물만 삼킬 뿐이었다. 낯선 집에 둘만 있는 게 어색해서인지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김유나의 친구들이 기다려졌다. 집들이 약속 시간은 아직 사십 분 정도 남아있었다.


"아잉, 뭐야. 오늘 친구들 못 온다고 방금 연락이 왔어요."


핸드폰을 잡고 있던 김유나는 당황한듯했다.


"응? 모두 다?"


"네…"


"무슨 일인데?"


"제 생각엔 제가 오빠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괜히 둘이 있는 시간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거 아니니깐 오라고 카톡 할게요."


카톡으로 친구들과 대화하던 김유나는 이내 곧 방으로 들어가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너희 다 안 오면 더 어색해. 빨리 와! 음식도 인원수대로 했단 말이야."


속닥이는 듯했지만, 방문 너머로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이 안 오면 나만 집들이하게 되는 건가?'


동식은 김유나와는 단둘이 오래 있어 본 적은 없어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TV라도 켜서 어색한 거실을 채워볼까,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지 고민하던 동식은 스피커 옆에 자신의 사진이 놓인 것을 보았다. 아기자기하게 자신과 관련된 물품들로 꾸며진 작은 덕질 공간인듯했다.


"이거 내가 사인해 줬던 거네."


동식이 참여했던 공연 티켓, 포스터, 김유나가 만들었다는 포토 카드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스피커가 올려진 수납장 구석 안쪽으로 작은 수첩이 떨어져서 벽 사이에 껴있었다. 벽 사이로 들어가 버린 수첩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듯해서 꺼내주기 위해 수납장을 살짝 움직여서 수첩을 빼냈다.


"수첩도 만들었어?"


동식의 사진이 표지로 장식되어 있었다. 동식은 수첩을 촤르르륵 넘겨보았다. 김유나의 빼곡한 글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포스트잇 표시가 있는 페이지를 열어보았더니 동식의 공연이나 TV 출현, 유튜브 방송 스케줄이 월별로 적혀있었다.


[오빠 바빠서 밥도 못 먹으면 어떻게(우는 얼굴 그림)]


동식의 바쁜 스케줄을 걱정하는 메모가 작게 적혀있었다. 웃으며 수첩을 덮으려던 차에 일부 메모가 거꾸로 되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다시 열어본 수첩은 올바른 방향으로 쓰인 페이지와 거꾸로 적힌 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올바르게 적힌 페이지는 팬심으로 가득한 메모 들었고. 거꾸로 적힌 페이지는 장보기 목록을 적어 놓은 듯했다.


"생활 메모인가? 장보기 리스트도 있네."


메모들이 귀엽다고 생각했던 동식은 읽어 나갈수록 인상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 우유_A 브랜드 저지방

냉동 닭가슴살_C 브랜드 1kg

샴푸_B 브랜드 무향

커피_D 브랜드 스틱커피, 디카페인은 A 브랜드

비누_E 브랜드 오이 향 (아마?)

운동화_N브랜드 에어 M1906 시리즈 그레이색상

블루투스스피커_B 브랜드 106시리즈

캡모자_N브랜드 별 시리즈 네이비. A 브랜드 스탠다드 화이트

…. ]


"이거…. 다 내가 쓰는 물건들이잖아."


동식은 거꾸로 된 다른 페이지도 펼쳐봤다.


[ 헤어스타일 상관없음. (B 공연 퇴근길 팬 미팅)

명랑한 여자. 가끔 특이해서 지루하지 않은 여자. (C 유튜브 N회)

기타 배우길 원하면 알려줄 수 있음. (B 유튜브 초대석)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옷차림으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C 유튜브 N회)

아이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A 공연 인터뷰)

다이어트보단 운동 좋아하는 것을 선호. (D 공연 퇴근길에서 다이어트하는 팬들 걱정함)

….]


동식이 어딘가에서 말했던 호감 가는 이성에 대한 메모가 적혀있었다. 메모의 중간에 적힌 한 줄이 볼펜으로 찍찍 그어져 있었다. 글씨는 볼펜에 가려졌지만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동식의 시선이 그 한 줄을 향해 쏟아졌다.


[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에 대한 존경. (인스타 라이브 방송_MBC 다큐 V를 본 후기)

->어떻게 만들지? 없어도 됨. 이상형은 아님]


동식이 김유나를 알기 전에 SNS에서 라이브 방송을 한 적 있는데, 최근 본 다큐에서 나온 여대생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메모가 적혀 있는 듯했다.


"장애가 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SKY대학에 들어간 사람.."


동식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사망한 소미주가 손가락이 하나 없는 고학력의 여대생이었지.'


"아니라니까. 빨리 와! 선물사와~! 오는 거로 알고 있는다. 끊어!"


방에서 통화하는 김유나가 답답한 듯 소리치자, 동식은 재빨리 수첩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수첩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기엔 커서 일부가 튀어나왔다. 동식은 바지춤에 넣었던 티셔츠를 빼내어 수첩을 마저 가렸다. 그리곤 옆에 있던 리모컨을 잡고 TV를 켰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척 시선을 뒀지만, 공식의 머릿속엔 온갖 추측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음식, 생활용품 전부 나를 따라 하고 있는 거야?'


동식은 김유나의 집을 다시 둘러보았다. 동식의 취향과 같은 인테리어 소품과 벽지 색상들이 동식을 쳐다보는 듯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전에는 우연히 취향이 비슷할 뿐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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