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처럼, 본능처럼 남은 것

푸시업과 집필에 대하여

by 이우

본능처럼 남은 것



- 우연히 시작한 푸시업
- 푸시업만큼 열정을 쏟게된 무언가
- 이제 몸에 베어버린 본능들에 대하여



DSC01874.jpg 홀로 푸시업을 시작했다... 천 개를 하게 되었다.



군 시절, 남자들의 세계에서 주눅 들고 싶지 않았다. 홀로 푸시업을 시작했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 서른 개도 간신히 하던 내가 노력하니 백 개를 하게 되었다. 백 개도 하다 보니 거뜬해졌다. 하루에 천 개를 하기 시작했다. 백 개씩 열 세트, 같은 동작을 열 번만 반복하면 되었다. 천 개마저 아주 쉬워졌으니 운동을 마친 후 마무리 운동 격으로 푸시업 천 개를 하게 되었다.


전역을 하고도 매일 천 개를 했다. 지루하고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지독하게 했다. 하지만 언 오 년 전쯤이었을까,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 뒤부터는 점점 푸시업을 줄이기 시작했고 이내 중단하게 되었다. 그 노력과 열정을 다 집필에 쏟아부은 것이었다.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 나갔고, 부단하게 습작들을 써보았다. 읽고 쓰는 건 푸시업처럼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진득하게 잘 할 자신이 있었다.



DSC01900.jpg 읽고 쓰는 건 푸시업처럼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진득하게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근래, 나는 무척이나 지처 버렸다. 열정에 가득 차 푸시업을 천 개 하던 그때처럼, 정렬에 가득 차 탐독하고 집필하던 그때처럼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때는 휴식도 잠도 잊고 살았다. 먹는 것도, 우정도 사랑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하루의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걸 절감한다. 쉬어야만 하고 자야만 한다. 그리고 책보다는 따스한 것에 애정이 간다.


그래도 나는 그때의 관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 번에 푸시업 백 개는 거뜬히 한다. 그때 열정의 십분의 일은 온몸이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독서와 집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렬이 지나쳐 사랑에 빠진 것처럼 문학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그 시절, 그때의 십분의 일 만큼은 나를 헌신할 수 있다. 그건 이제 내게 본능처럼 남아있는 셈이다. 운동장에서 푸시업을 다시 한 번 해보았다. 이제는 다시 소설을 손볼 차례다.




1529133096926.jpg 나는 그때의 관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내게 본능처럼 남아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