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모로코에서의 성찰
- 모로코에서의 어느날, 나 자신을 되돌아보다
- 나는 무엇을 위해 북아프리카에 있었던가
-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보다 고귀한 가치가 있을 거라 확신하며 낭만과 방황만을 좇았던 나의 이십 대는 이곳 모로코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모로코라는 낯선 땅에서 맞이한 서른. 사실 여기에선 아직 스물여덟로 통해서 그런지 서른이라는 것이 실감 나진 않는다. 게다가 작년 이맘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 같은 고민, 하나의 목표에 머물러있으니 삼십 대라는 것에 아직 무덤덤할 뿐이다. 그럼에도 서른 살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폐해일까, 아니면 인간이 고안한 십진법적인 사고방식 때문일까. 도대체 무엇이 바뀐 것일까.
그렇다. 본질적인 것은 바뀐 것이 없다. 다만 불현듯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예전 같지 않다'라고 느껴질 뿐이다. 대충 먹고 자며 여행했던 22개국, 길 위에서 보낸 1,600km의 도보여행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지난날처럼 마음 이끌리는 데로 방황만 하며 살기에 많이 지쳐있다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그냥 피곤하다. 때문인지 그토록 원하던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해보게 된다. 루소는 말했다. 진정한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이십 대 때는 미치도록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고 분투했다면, 이제는 하기 싫은 것들을 격하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족에겐 출사표를 던지듯 집을 떠난 지 어느덧 일곱 달 째. 이곳에서 나름대로의 삶에 치이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가버렸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어언 육 개월. 이곳에서의 목표를 상기해본다. 챙겨온 카뮈, 니체, 하이데거, 홉스, 허먼 멜빌, 헤르만 헤세, 주제 사라마구 책을 탐독하는 것. 그리고 세 편의 장편소설과 떠오르는 주제들을 단편소설로 써내는 것.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초조해 말자. 책은 벌써 또 보내달라고 해야 할 만큼 다 읽어 가고, 단편소설으론 상을 또 받았으며, 이제 세 번째 장편소설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 이제 예전 같지 않은 것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어느새 예전의 그들 같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다 보면 가슴 아플 것 같으니 그만하도록 하자. 그저 앞으로 변해가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보려 한다. 한 번 있던 것은 영원하다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려본다. 니체는 광기 어린 초인에의 의지에,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으로 영원에 못 박혔다. 나는 무엇에 영원에 못 박힐는지. 이왕 못 박힐 거라면 낭만과 방황에 못 박히고 싶다.
- 2017년 2월 27일, 모로코 라밧에서